08

뱀파이어가 된 메구미 (2)

***

괴물 새끼. 잇새로 토해낸 단어에는 공포와 경멸이라는 양가감정이 뒤섞인 채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은 새삼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다. 아닌 밤중에 복면의 암살자를 마주한 일곱 살 고죠 사토루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실패했으면 배우는 게 있어야지. 새파란 육안이 가느스름하게 빛났다. 건장한 체격의 암살자는 흙바닥을 긁으며 신음했다. 자그마한 발이 그의 목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상전술식 하나 완성하지 못한 어린애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 사지의 힘줄을 절단당했다. 상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바닥을 기고 있었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고죠 사토루는 끔찍할 만큼 강했다. 암살자는 눈을 감았다. 끝이었다. 자박자박,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지척에 멎는다. 고요한 밤이었다. 희미하게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살려줄까?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암살자가 번쩍 눈을 떴다. 고사리 같은 손에 어울리지 않는 비수가 들려있었다. 날이 한 뼘 크기의 단도였다. 암살자는 그것이 내내 제 품에 있던 것임을 알았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가져간 것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고죠의 얼굴에서는 이렇다 할 살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제 목을 노리는 이들이 워낙 많은 탓인가. 말간 얼굴에서 찾을 수 있는 감정은 기껏 따분함 정도다. 고죠는 암살자의 생사에 별반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사는 쪽이 좋다. 일단 도주해 다음 기회를 노리는 편이…. 순간, 고죠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회를 엿보던 암살자는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진하던 미소가 거짓말이던 것처럼, 인형 같은 무표정을 한 어린애가 날붙이를 쥔 팔을 들어 올렸다. 얇은 입술이 달싹였다. 거짓말이야.

암살자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부릅뜬 눈이 똑바르게 고죠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죠는 무심하게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인간 같지 않다는 평가는 귀에 인이 박이게 들었다. 기분이 나쁠 것도 없었다. 당장 누구랄 것 없이 고죠 사토루 자신조차 그렇게 생각하는걸. 인간과 주령 사이 겉모양 이외의 어떤 기준이 존재한다면 그는 인간보다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주령에 가까울 것이다.

저주의 왕 스쿠나는 당대 최고의 주술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술계는 스쿠나를 주령으로 정의했다. 그는 인간으로 비롯되었으나 저주의 왕으로써 인간을 도륙했고, 끝내 그들의 왕으로 죽었다. 스쿠나가 주령이기를 선택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을 저버린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거창하게 포기라는 단어씩이나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인간의 삶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고죠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주령이 죽건, 사람이 죽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도덕은 족쇄였고 규율은 입김 한 번이면 부서질 만큼 닳아빠진 멍에에 불과했다. 그런 나를 인간으로 정의 내리는 건 성급한 일이 아닌가? 어린 고죠는 몇 번이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물음을 삼켰다.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놀랍도록 투명했다. 깊은 두려움과 경계심. 그들은 고죠를 인간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인간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것뿐이지.

치미는 의문들을 혓바닥 아래에 감춘 그는 재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인 양 굴었다. 털끝만큼이라도 속내를 드러내면 두 번째 스쿠나의 탄생을 저지하겠다는 명목 아래 열 살도 되지 않은 그를 토벌하려 들 자들이었다. 고죠의 성장환경은 그랬다. 부족한 것 없이 지긋지긋한 삶이었다.

열다섯이 된 고죠는 고전에 입학했다. 고죠가의 장로들은 피를 토할 기세로 그를 말렸지만 그가 고집을 굽히는 일은 없었다.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전에 입학한 고죠는 생에 처음, 스스로가 인간임을 실감했다.

고전의 학생 대부분은 일종의 떨거지였다. 명망 있는 주술사 가문에서 훈련받아온 가문의 적자보다는 타고난 주술의 격과 재능이 모두 떨어지는 가문의 서자, 혹은 주술과 연관이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주술적 재능을 발현한 아이들. 그들은 고죠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전 내 그의 위치는 말 안 듣는 학생이자, 싸가지 없는 후배, 재수 없는 친구, 또라이 선배 정도였다. 누구 하나 그에게 스쿠나를 겹쳐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인간이 되었고, 끝내 하나뿐인 친구의 목을 조르며 인간이기를 선택했다.

고죠 사토루는 인간이다. 나뭇가지처럼 마른 몸이 힘없이 무너지는 순간 그 사실을 절감했다. 먼지처럼 쌓인 불안이 현실을 퇴색시켰다. 실내는 적막했고 공기는 물을 머금은 듯 무거웠다. 얇은 커튼으로 한 겹 걸러낸 볕이 피부에 닿았다. 무딘 날붙이가 살갗을 스치는 듯한 감각이다.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났다. 그 감촉이 고죠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소스라친 고죠는 반사적으로 침대를 살폈다. 숨소리가 고르다. 잠든 얼굴이 평온했다. 몸을 일으킨 고죠는 잠든 이의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시체처럼 차던 얼굴에 온기가 돌았다. 말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고죠는 허리를 숙이고 이불 위에 가지런히 놓인 후시구로의 손을 잡았다. 뼈대가 얇고 가는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가 길고 끝이 가지런한 손은 다 자라지 않은 순간조차 우아했다.

후시구로 메구미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깡마른 어린애는 어디 하나 예쁜 구석이 없었다. 볼품없는 옷차림, 초연한 태도, 아이답지 않은 염세적 말투에 건조한 표정까지. 그나마 예쁘장한 얼굴조차 장점은 아니었다. 젖살도 다 빠지지 않은 얼굴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죽은 아비를 빼닮은 채였다. 인상적이었던 건 꽉 쥐고 있던 손 정도. 얼핏 보았던 손은 모양이 다 잡히지 않은 채로도 가늘고 섬세했다. 후시구로 메구미의 술식이 밝혀진 이후 고죠가는 기함을 금치 못했으나 고죠는 그것이 썩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죠는 더러 후시구로를 붙들고 주술을 가르쳤다. 영특한 아이는 한번 들은 내용을 잊는 법이 없었다. 그가 문제를 내면 후시구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답을 읊었다. 그려봐. 대답을 마친 후시구로가 연필을 쥐었다. 하얀 스케치북 위에 작은 술식이 펼쳐졌다. 사각사각. 작은 손이 움직일 때마다 연필의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고죠는 턱을 괸 채 그 모양을 응시했다. 까만 연필 머리가 종이 위를 지났다. 차근차근 술식을 그려내던 손이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후시구로가 작은 목소리로 술식 몇 구절을 읊었다. 연필을 지탱하던 검지가 느슨해지면 똑바르게 천장을 향해있던 연필의 꼬리 역시 비스듬해졌다. 손톱 끝이 연필의 몸통을 가볍게 눌렀다.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고민은 오래가지 않는다. 후시구로는 다시 연필을 움직였다. 사각, 사각. 고죠는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를 떠올렸다.

학자가 되어도 좋겠지. 젠인의 상전술식을 이어받았다지만 결국 고죠가 거둔 아이가 아닌가. 손바닥이 넓고 투박하던 후시구로 토우지의 것과도, 마디가 굵고 커다란 고죠의 것과도 다른 그 손은 격투와 어울리지 않는다. 날붙이보다는 붓, 맨바닥에 피로 술식을 그리는 것보다야 커다란 도화지에 색색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울릴 손이다. 조금 더 자라면, 언젠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오면 원하는 것을 물어보자. 주술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 바람대로 살게 해줘야지. 손이 귀한 세계라지만 하나쯤 평화롭게 사는 아이가 있어도 나쁘지는 않겠다…….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날이 있었다. 감은 눈꺼풀 안으로 핏물이 엉겨있던 손이 떠올랐다. 식신을 불러낼 수 없게 이리저리 비틀어 묶은 손가락은 희다 못해 검게 질려 있었다. 손톱이 피가 통하지 않아 부어오른 살갗을 파고들었다. 엉망이 된 손이 천천히 그의 등을 두드리다, 이내 맥없이 꺾였다. 후시구로의 손이 닿았던 자리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타는 듯한 감각에 숨을 삼킨 고죠가 몸을 움츠렸다. 후시구로의 손에는 아직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왜 치료를 하다 말아?!

나을 수 있는 상처는 스스로 낫게 하는 편이 좋아. 그게 이런 어린애라면 더. 너도 알 텐데?

이에이리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의 항의를 무시했다. 주술로 몸을 치유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자연치유력이 떨어진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고죠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면 안 되나.

어린애를 돌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족이 생긴 것 역시 처음이었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은 것도 처음, 허무하게 잃어버린 것도 처음. 저지른 과오를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이에이리의 물음은 의지가 아닌 가능의 문제였다. 적어도 고죠에게는 그랬다. 잠든 후시구로를 안아 든 고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실내는 적막했다.

그쯤 츠미키가 탈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츠미키는 고죠가가 운영하는 병원의 1인실로 옮겨졌다. 혹여 문제가 생길까 이지치를 붙여둔 보람이 있었다. 쓰러진 아이의 상태를 보고하는 목소리가 침울했다. 고죠가 머리를 짚었다. 지금 당장은 후시구로의 곁을 비울 수 없다. 그는 이지치 편에 츠미키에게 전할 메시지를 전달했다. 후시구로는 무사히 찾았고, 회복될 때까지는 츠미키를 만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지치가 낮게 신음했다.

‘츠미키양이 걱정할 텐데요….’

“그건 네가 좋게 돌려 말해야지. 나중에 봐서 츠미키한테 이상한 말 했으면 가만 안 둬, 이지치.”

네? 이지치의 물음을 못 들은 체한 고죠는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눈이 뻐근했다. 열흘 가까이 눈을 붙이지 못한 탓이다. 흐릿하게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침대맡에 매달린 수액이 눈에 들어왔다. 호스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이동한 영양액이 반창고 아래로 사라졌다. 입술 새로 버석한 웃음이 샌다. 또래보다 몸집이 작은 일곱 살 어린애가 홀로 차지하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침대였다. 한참 그를 바라보던 고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구부리자 후시구로의 몸에 긴 그림자가 진다. 손가락을 얽은 상흔이 도드라졌다. 등이 화끈했다. 엉망이던 머릿속으로 죽어가던 남자의 모습이 맺힌다. 마음대로 해. 무책임한 최후를 떠올린 고죠가 잇새로 욕설을 뱉었다.

후시구로는 잠귀가 밝았다. 예민한 탓이라고 했다.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 하나 없이 자란 애들은 대게가 그렇다고 하더라. 자정에 가까운 늦은 밤, 남매가 사는 집을 찾은 고죠는 빈번히 잠에서 깬 후시구로와 눈을 마주쳤다. 조용히 선물만 놓고 갈 셈이었는데. 가지고 온 것들을 문가에 내려놓은 고죠가 후시구로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알았을까. 무하한으로 발소리를 죽여 걸었는데. 묻는 대신, 고죠는 후시구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자, 메구미. 그렇게 인사하면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후시구로는 얕은 한숨과 함께 이부자리에 눕곤 했다.

후시구로는 꼬박 보름을 잤다. 눈에 띄는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에 묻은 저주는 말끔하게 걷어낸 후인데도 그랬다. 그 사흘간, 고죠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후시구로의 곁을 지켰다. 사방이 틀어막힌 네모난 방, 변하는 것이라곤 커튼을 지나는 빛의 양이 전부. 날이 밝고, 다시 어두워지기까지. 눈먼 고요 속에서 그의 정신을 지탱한 건 후시구로의 숨소리뿐이었다.

메구미. 이름을 불러본들 후시구로의 눈이 뜨이는 일은 없다. 고죠는 두툼한 이불이 느리게 오르내리는 광경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호흡은 규칙적이고 체온도 정상이다. 의식만이 돌아오지 않았다. 뱀처럼 손가락을 얹은 흔적에 시선이 미칠 때면 토기가 치밀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후시구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는 감히 이동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고죠는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사이로 비추는 시야가 부옜다.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 울음처럼 떨어져 마른 손을 적셨다. 겁이 났다. 사실은 네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너를 잃을까 겁이 나서 소중하지 않은 척 미련하게 굴었다…. 성기게 이어지는 고해에 긴 잠에서 깨어난 후시구로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사토루. 젖은 공기가 무겁다. 다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사위가 고요했다. 얇은 가슴이 일정하게 부풀고 꺼지길 반복한다. 후시구로는 어깨를 옹송그린 채 우는 남자를 위로하지 않았다.

사토루. 짧은 단어 사이 몇 번이고 잔기침이 샌다. 열흘을 감금당하고 보름을 잠들어 있었으니 목이 타는 건 당연했다. 고죠는 거친 들숨과 날숨에 가쁘게 오르내리는 등을 쓸었다. 뾰족하게 마른 어깨에 눈이 간다. 한 손에도 들어올 만큼 가느다란 목을 여윈 손가락이 감싼 채다. 그는 잎사귀가 죄 떨어진 계절의 나무를 닮아있다.

고죠가 마실 물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후시구로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수해樹海를 닮은 눈동자가 망연하게 고죠를 향한다. 그가 거리를 좁히자 후시구로의 눈이 깜빡였다. 이불 위에 놓인 손이 가지런하다. 컵을 쥘 기운은 없는 것 같았다. 고죠의 무릎이 침대의 가장자리를 눌렀다. 침대 한쪽이 가볍게 꺼진다. 고죠의 얼굴을 향하고 있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고죠는 후시구로의 입술에 대고 컵을 기울였다. 차가운 물이 바싹 마른 입술을 적셨다. 후시구로는 곧장 가슴을 쥐고 몸을 웅크렸다. 앙상한 몸이 당장에라도 부서질 듯 떨렸다. 황급히 컵을 치운 고죠가 후시구로를 끌어안았다.

“메구미, 많이 아파? 병원에 갈까?”

후시구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입술을 꽉 깨물고 한차례 숨을 고른 후에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차가워. 막 냉장고에서 꺼낸 찬물을 담은 컵의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짧게 탄식한 고죠는 후시구로를 두고 거실로 나섰다. 그림자가 진 침실, 얇은 어둠이 깔린 눈이 말갰다. 눈이 깜빡일 적마다 긴 속눈썹이 나풀댔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건조한 바람이 샜다. 후시구로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제 목을 더듬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긴 한숨이 흘렀다. 후시구로는 피로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고죠는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화는 고죠의 물음과 후시구로의 대답으로 이루어졌다. 고죠는 세심하게 후시구로의 상태를 살폈다.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 후시구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크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알아차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이제 막 병석에서 일어난 후시구로는 가장 먼저 연년생 누이의 안부를 물었다.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지 못해 간신히 이름자나 발음하는 수준이었다. 츠미키는. 몇 음절도 되지 않는 물음이었다. 쩍쩍 갈라진 목소리에 덜어내지 못한 불안이 묻어났다. 좋은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씩씩하게 메구미를 기다리고 있지. 말끄러미 고죠를 응시하던 후시구로의 머리통이 위아래로 주억였다.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고죠가 여상한 목소리로 일렀다.

“저녁엔 츠미키랑 통화하자. 지금 목소리를 들으면 츠미키도 걱정할 테니까. 만나는 건 메구미가 조금 더 기운을 차리면.”

침대 곁에 선 거울에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파리한 안색의 남자애 하나가 비췄다. 고죠를 따라 거울 쪽으로 몸을 비튼 후시구로가 거울 속 제 모습을 응시했다. 시선을 차단한 건 고죠였다. 커다란 손이 후시구로의 양어깨를 힘있게 붙잡아 돌렸다. 정오의 그림자처럼 까맣고 앙상한 남자애가 어른대던 시야에 새파란 눈동자가 가득 들어찼다. 고죠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후시구로는 그가 대답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두커니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후시구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볼 수 있을 거야. 어린애는 금방금방 나으니까.”

“…응.”

후시구로는 어린애라는 말에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드물게 고분고분한 모습이었다. 고죠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사이 빠져나가는 머리칼이 고운 모래 같았다. 부드럽게 흘러든 빛이 후시구로의 몸을 젖게 했다. 몇 번이고 걸러내 약해진 빛살은 실처럼 가늘었다. 짙은 녹색 눈동자에 몇 가닥 빛이 새어들었다. 고죠는 문득 어느 밤을 떠올렸다. 반딧불이 몇 마리가 밤을 유영하고 있었다. 마음 놓고 여흥을 즐길만한 상황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는 본래 그러한 것들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름답다던가, 감상적이라던가 하는 건 그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 걸 좋아하는 건 아마나이 리코였다. 그녀가 팔을 벌리고 웃었다. 밤의 숲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어…. 그는 떠오른 얼굴을 서둘러 지워냈다. 살날이 창창한 어린아이에게 죽은 이를 비춰보는 건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후시구로는 곧 허기를 호소했다. 풍족하지 못한 유년기를 보낸 후시구로에게도 한 달 가까이 굶어본 경험은 생경한 것일 터였다. 주저사 무리에게 감금되었던 열흘을 제외하고서라도 의식이 없던 보름 후시구로의 몸에 들어간 영양분은 수액이 전부였다. 지금 당장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를 먹기는 해야 했다. 환자식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던 고죠는 이에이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 사람의 치료보다 죽은 사람의 해부에 익숙한 그녀가 무언가를 알까 싶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에이리는 환자식과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었다. 막 일어난 참이니 첫 식사는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부드러운 것으로. 야채나 고기가 들어간 죽은 며칠 뒤에. 지금 당장은 아무 간도 하지 않은 오카유를…. 고죠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앉은 후시구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적으로 지금 후시구로가 먹을 수 있는 건 물과 곱게 간 쌀이 다였다. 고죠는 떨떠름한 눈으로 레시피를 확인했다. 살며 크게 다친 적도, 중병을 앓은 적도 없는 그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메뉴였다. 며칠을 굶었는데 준다는 음식이 고작 물에 불린 쌀이라니. 그가 환자였다면 당장 병원을 탈출했을 것이다. 고죠는 침대에 얌전히 앉은 후시구로를 넘겨보며 아이가 편식이 심하지 않다는데 감사했다.

식사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본래도 후시구로는 말수가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 먼저 입을 연 건 고죠였다. 답답한 분위기를 타개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만에 하나를 대비하려는 목적이 컸다. 몸에 남은 저주가 없다는 건 수차례 확인했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저주는 곧장 나타나는 것보다 특정 조건하에 발현하는 것이 많았다. 인간이 만든 저주라면 더 그랬다.

후시구로의 안전을 위해 고전으로 돌아온 고죠는 휘하의 식솔을 보내 그가 반파한 주저사의 본거지를 확인케 했다. 남은 흔적은 없었다. 고죠는 파견한 주술사로부터 사진 몇 장을 전달받았다. 후시구로를 납치한 주저사들은 그들이 머물던 본거지 일대를 모조리 불태워 증거를 인멸했다. 회백색 잿더미에서는 시체는커녕 시체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주저사들이 어디에서 후시구로에 관한 정보를 얻었는지, 고죠 사토루가 자리를 비우는 때를 어떻게 맞출 수 있었는지, 무엇하나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대로라면 같은 일이 언제 다시 일어난대도 이상할 게 없다.

후시구로가 느릿느릿 움직이던 수저를 멈추고 인상을 썼다. 아차, 밥 먹을 때 물어보는 게 아니었는데. 때늦은 깨달음에 고죠가 덩달아 움직임을 멈췄다. 굳이 지금 대답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후시구로가 입술을 떼었다.

“잘… 모르겠어.”

“응?”

“기억이 안 나.”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고죠는 후시구로를 가만 응시했다. 초연하던 눈동자에 희미한 파문이 일었다. 잠시 침묵을 지킨 고죠는 천천히 있었던 일을 확인했다. 후시구로가 놀라지 않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후시구로는 느릿느릿 기억을 되짚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젓거나 침묵을 지켰다. 후시구로의 기억은 주저사에게 붙들려 그들의 은신처로 이동하는 시점에서 끊겨 있었다. 주력을 봉인 당하고 결박된 채 빛이 닿지 않는 방에 갇혀 저주를 뒤집어쓴 여드레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왜? 떠오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스산한 기척이 목덜미를 스쳤다.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한 게 이상할 만큼 강렬한 존재감이었다. 거대한 저주가 후시구로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고죠는 딱딱하게 몸을 굳힌 채 저주를 응시했다. 그를 두려워한 주저사 무리가 후시구로의 머리에 손을 댔던가. 일순 떠오른 가정은 곧장 폐기했다. 후시구로의 몸을 휘감은 저주가 그를 비웃는 듯했다. 그런 건 네 희망 사항일 뿐이지. 쩍 벌린 아가리는 일곱 살 어린애 하나쯤 단숨에 삼킬 수 있으리만치 거대했으나 후시구로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옥견을 부리는 식신술사로써 활동 중인 여타 주술사보다 저주의 기척에 예민한 아이인데도 그랬다. 그사이 위협적으로 꿈틀대던 저주는 후시구로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고죠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저주는 그의 눈앞에서 꼼꼼하게 후시구로를 먹어 치우고, 소화 시켰다. 이제 막 병석에서 일어난 아이의 몸에 저주가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차마 다 할 수 없어 삼켰던 문장이 목구멍을 타고 역류했다. 그건 고죠 사토루의 소망이었다. 차라리 잊으면 좋겠어. 다 잊어버려 메구미. 다음엔, 다시는…. 매스꺼운 기억의 뒤로 이에이리의 충고가 떠올랐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상처라면 내버려 둬. 주술에 의지하게 하지 마.

“사토루?”

후시구로 메구미가 고죠 사토루의 저울에서 보낸 닷새는, 그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나? 답할 수 있는 이가 사라진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괜찮아?”

괜찮다는 단어가 목구멍에 걸렸다.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괜찮아.’ 후시구로 메구미는 그를 위로하지 않는다.

‘사토루가 잘못한 게 아니야.’ 더는 그를 용서하지도 않는다. 후시구로 메구미를 저주한 건 고죠 사토루 자신이었다. 그의 소망을 닮은 저주가 후시구로 메구미를 좀먹어 들어간다.

고죠의 시선이 수저를 쥔 후시구로의 손에 가 멈췄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얼기설기 남아있었다. 후시구로 자신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희미해진 상흔 위로 피가 엉긴 금줄이 잔상처럼 시야를 어지럽혔다. 힘겹게 시선을 든 고죠가 후시구로를 마주했다. 맑은 녹색 눈동자는 그림자 아래 무감히 가라앉아있던 찰나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축축하던 공기, 가는 어깨에 겹겹이 쌓인 저주는 꼭 진흙 같았다. 늪에 빠진 것처럼 침잠하는 후시구로를 건져내던 순간을 기억한다. 작은 몸에서는 젖은 흙냄새가 났다. 희미한 숨소리가 시든 잎처럼 퍼석했다. 고삼가의 상전술식 어쩌고 하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약해진 어린애. 젠인의 자랑이라는 소환술을 쓸 수 없을 만큼 비틀리고 부어 볼품없어진 손이 서툴게 고죠의 등을 쓸었다. 꼭, 그가 죄악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아는 듯이.

위로받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사실은 네가 무척 소중하다고, 내가 그걸 몰랐다고, 너무 늦게 알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던가. 하릴없는 바람이 주변을 맴돌다 부스러졌다. 깊게 팬 균열 아래 입을 벌리고 있던 고죠 사토루는 절벽에 매달린 후시구로를 낚아채 집어삼켰다. 절벽을 오를 틈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후시구로가 잃은 기억의 편린이 그의 위장에 녹아 사라졌다. 속이 더부룩했다.

“…그럼.”

고죠는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리며 눈을 접었다. 괜찮다는 단어는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더딘 대답에 의아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던 후시구로는 제 몫의 식사를 계속했다. 고죠는 어색하지 않게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샌드위치에서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고죠는 기계적으로 빵을 씹었다.

식사를 마친 후시구로를 재운 뒤, 고죠는 화장실에 처박혀 한참이나 속을 게웠다. 반쯤 소화된 샌드위치 몇 덩이가 쏟아지다 말았다. 억지로 뒤집은 속에 눈앞이 흐렸다. 호흡을 멈춘 그는 재차 혓바닥을 누르고, 목구멍을 들쑤셨다. 쏟아지는 건 말간 위액과 생리적인 눈물 몇 방울이 전부였음에도. 그렇게 하면 삼킨 것을 토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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