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창작 단편

#선착순으로_멘션_온_3개로_짧은_글쓰기(2017.11.12)

유리병

눈(雪)

고양이


눈이 내린다. 자유롭게 곡선을 그리며 쏟아지는 눈 송이들을 공원 벤치에 기대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땅에 닿아 녹아버리면서도 하나 둘 쌓여가는 것을 보아하니 내일이면 쌓일 것 같았다. 미소를 머금고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골치덩어리라고 하지만 나는 눈이 좋았다. 새하얀 색도, 하늘하늘 내려오는 점도, 닿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점도, 쌓이면 쌓인대로 놀 수 있다는 점도 모두. 그렇지만 무엇보다 빛을 반사시켜 하얗게 빛나는 점이 예뻐서 좋았다.

어린 나는 그 빛을 간직하고 싶었다. 처음엔 눈을 뭉쳐서 가져가봤지만 눈이 딱딱하게 변하고, 엄마한테 혼나버려서 다른 수를 찾아야했었다. 그래서 나는 조그만 유리병을 챙겨나갔었다. 알록달록한 사탕이 가득 채워져있었던 유리병을. 나에게 달콤한 행복을 가져다주던 유리병이라면 반짝이는 행복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뚜껑을 열고 내리는 눈을 한참 받다가 작은 손으로 쌓인 눈을 그러모아 담기도 했다. 어느덧 유리병 가득 쌓인 눈을 보고 뿌듯해하며 집으로 가져와 소중히 머리 맡에 놔두고 잠들었다. 물론 그 눈은 자고 일어나니 모두 녹아있었다.

당연한 일인데 어린 맘에 어찌나 서럽던지. 어린 나는 꺼이 꺼이 울며 또 유리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었다. 이번에는 사라지게 두지 않을 거야. 붉어진 눈가를 북북 문지르며 또 다시 눈을 유리병에 담았다. 그렇게 반절쯤 채웠을까.

"야옹-"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려보아도 보이는 건 하양, 하양, 하양.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 소리는 다시금 들려왔다.

"미야옹-"

"뭐지?"

유리병을 소중히 품에 안아들고 천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새하앴던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새겨졌다. 벤치 뒤, 이름 모를 작은 나무 뒤에 쌓인 눈이라고 하기엔 하얀 뭔가가 동그랗게 말려있었다.

"냐아용!"

"고양이!"

소중한 유리병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살금살금 그 작은 존재에게 다가갔다. 하얀 눈이 닿을 때마다 그 하얀 몸이 떨리고 있었다.

"추운 거야?"

나는 허겁지겁 목도리를 풀고 고양이 주변에 돌돌 말아주었다. 어설프기 그지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 따뜻해졌는데 고양이가 살짝 내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귀여워! 이렇게 가까이서 고양이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지라 목에 바로 닿는 찬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헤실헤실 웃었다.

몇 십분이었을까, 몇 시간이었을까.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떠들어댔다. 너 집 어디니? 내 목도리 너 줄게. 가져가. 많이 추우니까 감기 조심해. 고양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리 만무하지만 이따금씩 길게 우는 것이 꼭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새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가는 가운데 눈처럼 하얀 고양이와 함께 있었다.

"야옹-"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눈처럼 하얀 그때 그 고양이가 발 언저리에서 느리게 걸으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안녕, 하양아."

쪼그려 앉아 손을 내밀어보니 기다렸다는듯이 뺨을 부벼댄다. 부드러운 감촉에 헤실헤실 웃으며 물과 사료를 꺼냈다. 미야옹-하고 우는 소리가 기분탓인지 더 기운차게 들렸다.

그 날부터 지금까지 눈이 오길 기다리듯이 하얀 고양이를 기다리고 있다. 억지로 유리병에 담지 않아도 되고, 잠들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이 하얀 빛이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해주길 바란다.

카테고리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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