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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眼

허 안은 올해로 11살이다. 조실부모하였고, 친척집에 몇 달 간 머물렀다.

손가락으로 창문을 만들었어.

그러면 안과 밖이 생기거든.

안은 안전해. 그러니까 들어와.

친척 집에서는 제발로 걸어나왔다. 친척 식구들은 안을 자신의 자식처럼 돌보아주었으나 안은 태어난 집에서 살고 싶었다. 모두들 안을 말렸다. 아직 11살인 안이 어떻게 혼자 산단 말인가.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안은 눈을 깜빡였다. 안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둘러싼 일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어린애답게 씩씩한 목소리로 저 혼자 살 수 있어요. 라고 외쳤고, 짐을 쌌다. 아끼는 책과 장난감을 가방에 넣었다.

안의 눈을 붉었다. 붉고 안광이 없었다. 사람들은 안의 눈을 불쾌하다 여기곤 했다. 아니, 눈만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태도. 이것까지는 부모를 잃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안의 웃음을 엿본 이후로는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종잇장같이 얇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접혔을 때 그들은 섬찟함을 느꼈다.

어느날, 안은 등교한 후 친척 집으로 하교하지 않았다. 안이 사라진 것을 안 친척들은 백방으로 안을 찾았고 안을 원래의 집에서 발견했다. 자신의 방 안에서 멀거니 벽지를 보고있는 안은 친척들의 방문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친척들은 안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어린아이의 말을 말릴 수 없었다. 안이 고등학생이 될 때가지는 매일 안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었다. 책임의 방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안의 태도는 강경했다. 어른들은 안이 포기하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안은 만족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안이 만족한 것이다. 안은 산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우리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든 안의 시작은 그 집이었다. 그 안에는 안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모여있었다. 안의 방도 있었고, 장난감도 있었고, 동화책도 있었다. 그리고…

“아저씨.”

온통 하얀 그림자도.

하얀 그림자도 그림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햇빛이 물체를 비추면 생기는 영역을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면.

안은 그것을 그림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림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림자의 주인이 자신을 백솔경이라 소개했을 뿐. 안은 허공에서 말소리가 울린 것인지 그림자가 말을 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 목소리가 남자 어른의 목소리와 비슷했기에 아저씨라 불렀다.

그림자는 어른들이 할 일을 대신해주었다. 안이 학교에 가기 전에 아침에 안을 깨우고, 안이 학교에 가면 집안을 정리하고, 안이 올 시간에 맞추어 안을 마중나갔다. 잠이 들 시간이면 안의 곁에 앉아 안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그랬기에 친척 어른들의 걱정은 타당했지만 안은 친척집을 나간 이후 한 번도 친척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림자는 안의 부모의 죽음 이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가 죽던 날에도 하얀 그림자가 있었다. 부모의 장례식장에도 하얀 그림자가 있었다. 안을 졸졸 따라다녔다. 아니면 안이 그림자를 따라다닌 것일 수도.

죽음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죽음은 하얀 그림자구나. 죽음은 나를 공격하지 않는구나. 나는 죽지 않는구나.

구태여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겠구나.

안은 웃었다. 어른들이 싫어하는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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