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글

별처럼 빛나는 것

더 이상 밤하늘에서 별을 찾을 수 없다면


Cézame Trailers - Virtual Road

도시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별에
이별을 고한 것이 이미 까마득한 옛날

별이 떨어지네요,
이제는 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직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떨굴 별 하나쯤은 품고 있지 않았던가.

  과학과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설, 괴담, 그리고 소문은 여전히 세상을 떠돈다. 어느 뒷골목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살인마,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감정과 말을 빼앗는다는 마음 잃은 영혼, 그리고 존재할 리 없는 구원의 신과 같은 존재. 네온사인과 황금빛 기술, 찬란한 과학이 축복같은 억압을 내린 이 세상의 이성이 무색하게도 종교와 같이 유랑하는 전설은 젖어버린 슬럼가의 길 아래 지하도를 떠돈다. 그런 전설 중, 최근 슬럼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이야기는 금빛과 은빛으로 빛나는 꼬리 아홉 달린 신성한 크리쳐가 지금의 썩고 썩은 세상을 불태우고 새로운 세상을 불러올 것이다, 라는 사이비같은 전설일 것이다. 이런 세상에 '신성'이라는 단어라니. 신조차도 진절머리를 칠 빛의 도시에 떨어질 신성은 없을 것일텐데.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떠한 논리에 의한 것이던가? 분명 근거도, 인과도, 실체도 없는 뜬소리일지라도 누군가의 작은 소망들과 제멋대로 믿어버린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는 힘을 얻어가는 것이니까.

  급박한 숨소리와 찰박이는 소리가 슬럼가의 지하도를 울렸다. 이미 온 몸에 난 크고 작은 상처들 때문에 배여나온 핏덩이가 털에 온통 엉켜 있었고, 발톱 하나는 아예 빠져 그 쪽 발은 딛지도 못했다. 온전치 않은 몸으로 이 곳까지 온 것도 놀라울 일이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뒤에서는 고함 소리와 군화 소리가 울려퍼졌고 간간히 들리는 총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귀신처럼 따라붙고 있었으니까. 이를 악물며 일어나 보지만,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무언가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아, 정말, 쓰레기같이......!"

  으르릉대며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본 그녀는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욕지거리를 뱉어낼 수가 없었다. 반쯤 썩어버린 시체는 뼈가 드러나 있었고, 걸려 넘어진 발에는 그 썩어버린 살점이 조금 붙어 있었으니.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리며 주저앉은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되는 대로 지하도의 더러운 물에 자신의 발을 털었다.

  "알파, 목표물의 위치를 파악했다. 진입하겠다."

  비명을 질렀으면 안 됐어. 그녀는 코 앞까지 다가온 추적자들에 몸도 추스리지 못하고 다친 발을 끌며 서둘러 지하도를 가로질러야만 했다. 차라리 지하도가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갔어야 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눈에 띌 수 밖에 없다는 걸 그 오랜 시간 고통받으며 깨달은 덕분에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숨을 곳도 없는 지하도를 누군가한테 쫓기며 통과하는 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고, 이렇게 온통 젖어버려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자신의 꼬리들을 끌고 어딘가를 달리는 건 더욱 익숙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 거추장스러운 걸 전부 떼버렸어야 했을까? 어차피 고통받아야 한다면, 일찌감치......

  안 돼.

  ......그럴 순 없었다.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될 것이 아니었으니까. 걸음을 멈추고, 꼬리의 단말기 하나를 켰다. 네트워크 추적이 걱정되어 일부러 끄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미 들킨 마당에 네트워크 추적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홀로그램 키보드와 화면이 흙에 가려 난잡히 올라온다. 마지막 액세스 포인트는......

root@system.midas.co.ls:/sys/kernel/security$ _

  마이더스 인더스트리의 보안 시스템. 아직도 연결이 유지되고 있었나? 회사 내부 인트라넷 연결이 가능한 네트워크 단말기가 이 주변에도 있었다니. 다시 한 번 귀 옆으로 스친 총알에 어쩔 수 없이 천천히나마 걸음을 옮기며 한쪽 앞발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root@system.midas.co.ls:/sys/kernel/security$ sudo ./set_alert.sh 75 "Main_System"
[sudo] password for root:
Authorization complete.
04-11 01:05:23 | INFO | main_system.alert | alarm_format=None, diverse_alert_groups=-1, diverse_beam_strength=0.5, ...

  "제발, 제발. 빨리 좀 해......"

  작게 되뇌였다. 일 분 일 초가 억겁의 시간 같았다. 군화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몇 발인가가 다시 머리 옆을 스쳐가고, 충격에 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이제 군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
04-11 01:06:38 | INFO | Alert set on Main_System.
Install beam......
Done.
root@system.midas.co.ls:/sys/kernel/security$ _

  쾅. 폭발음과 함께 지축이 울리며 수 백 미터 위쪽에서 울렸을 온갖 사이렌 소리가 이 지하도까지 울려 퍼진다. 알람음에 추적자들의 무전기는 연신 당황스러운 교신을 쏟아낸다. 잠시나마 총소리가 멈췄다.

  "......지원은 불가하다. 최우선 목표물 확보하지 못함."
  "(치직) .......메인 시스템, 폭......(치직)...... 귀환......"
  "우선 사항 변경 확인. 알파, 마이더스 메인 룸으로 목표지 변경."

  몇 번의 교신 끝에 군화 소리가 멀어져간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홀로그램을 끄고 한참동안 숨을 죽이며 벽 뒤에서 살짝 훔쳐보아도 아무런 인영(人影)은 보이지 않는다. 파하, 하고 급히 숨을 몰아쉰다.

  아직이야.

  그래, 아직 네트워크 로그를 채 지우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다시 추적당할 것이 뻔했다. 내려놓았던 단말기의 홀로그램을 다시 올린다. 초록색 홀로그램에 눈이 찢어질듯이 아파 왔다.

root@system.midas.co.ls:/sys/kernel/security$ rm -rf /sys/log/*
[sudo] password for root:
Authorization complete.

  ......그리고 엿 좀 먹어보라지.

root@system.midas.co.ls:/sys/kernel/security$ rm -rf /*
[sudo] password for root:
Authorization complete.
System down......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어느 새 뒤에서 울리던 온갖 사이렌 소리와 폭발음이 멈췄다. 아마 올라가면 그 건물에는 불조차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단말기를 끄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한 발자국 딛을 때마다 눈 앞이 흐려졌다. 

  정신 차려.

  이대로면, 그들이......

  이렇게 끝낼 거야?

  닥쳐, 제발. 두어 번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핏덩이가 길 위에 튀어 작은 별자리를 만든다. 하, 나도 제정신이 아니지. 이런 때에 겨우 별자리 생각이 나다니.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를 악물며 걸음을 옮겼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팔랐고, 올라온 지상에는 한밤중임에도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이 행인을 유혹하듯 빛났다. 한 밤 중의 네온사인에 유혹당한 듯 길가에는 몇몇 노숙자들이 다 죽은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본다. 

  "......헉, 큽......"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그녀에게 수상한 눈빛을 던지는 노숙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두렵다는 눈빛이 아니라, 다리를 절고 있는 먹잇감을 보는 하이에나의 눈빛들. 차라리 온통 흙과 피투성이가 되어 본래의 모습이 가려진 건 다행이었지만, 분명 저 중 하나는 장기나 의족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 뻔했다. 그녀는 마주 쏘아보며 최대한 괜찮은 척 골목의 구석으로 향했다. 

  온통 쓰레기들과 오물이 가득했지만 인기척이나 불빛은 들어오지 않는 슬럼가의 구석. 누군가의 시체조차 쓰레기가 되어 구르는 이 곳에서 정신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 날 회사 이사진 파티를 간 탓일까? 끊었던 술을 마실 생각을 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를 따라간 것이 잘못이었을까?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가는 과거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원망스러웠다. 후회하는 건 나 뿐 만이 아니겠지. 하지만 감기는 눈꺼풀은, 쓰러지는 몸은 후회만큼 무거웠다. 정신을 잃고는, 빗물로 진창이 된 바닥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따듯한 불빛, 달그락대는 그릇의 소리와, 아이들 웃음 소리. 꿈일까? 벌써 나는 회사로 다시 잡혀 와, 전뇌화를 당하고 만 걸까? 내 몸은? 내 몸은 어디로 갔지?

  천천히 앞발을 쥐어 본다. 바늘과도 같이 찌르는 통증이 온 몸에 퍼져 그만 신음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몸은 남아 있다. 적어도 앞발만큼이라도.

  "고마워하라고. 나 아니었으면 아가씨 몸 어딘가는 암시장을 나돌고 있었을 테니까."

  중성적인 중후한 목소리가 아직도 멍한 귀를 맴돈다. 옆으로 누군가 지나가는 기척이 나,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웅크린다.

  "어머, 움직이지 마. 피 다시 나겠어."

  큰 앞발이 그녀를 그러잡는다. 놀란 듯 크게 움찔거렸지만, 그조차도 심한 통증에 작게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는다.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거구의 누군가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발톱을 빼어들고 자기방어라도 해 보려는 순간, 옆에서 작은 아이들이 꺄르륵대며 튀어나온다.

  "언니, 언니 깼어?"
  "언니 꼬리 예뻐! 언니!"

  이제 다섯 살이나 됐을까 싶은 작은 아이들이 그녀의 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웠는지 베다스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는 동안, 거구의 중년 여성은 아이들을 붙잡는다.

  "다쳤잖아, 나가 있어."
  "이잉."

  아이들을 문 밖에 내려놓고 문을 닫은 후, 점잖게 나이 든 여성이 그녀의 팔을 쥐었다. 다시 한 번 그녀가 흠칫 하며 뒷걸음질치지만, 쥐어 잡은 앞발은 한없이 따듯했다.

  "이름이 뭐야? 이런 곳에까지 버려지다니, 운도 없이 살았구만."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다. 아무 말 없이 쭈뼛거리고 있자, 다시 한 번 조용히 되뇌인다.

  "에스밀라라고 불러. 나도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라 오늘 하루만 재워주고 내쫓을 테니, 갈 곳이라도 정해 두고."

  하루라도 재워준다니, 이런 슬럼가에서 호사를 넘어 굉장한 대접이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직도 경계를 풀지 못하는 그녀의 눈빛에 에스밀라는 픽 웃더니 방을 나서며 푹 쉬라는 말을 놓고 떠났다. 아직 밖은 밝았지만, 지평선 끝에서는 해가 점차 지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그야 물론, 정신을 잃고 나서 지금 깰 수 있었던 것도 거의 기적같은 일이니. 혹시나 해서 몸을 둘러 보았지만 없어진 곳은 커녕 대부분의 상처에 반창고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온전히 깨끗한 것은 아니지만, 몸에 묻은 흙이나 오물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제 몸이 온전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작디 작은 방, 옆에서 달그락대는 그릇 소리와 웅성대는 소리를 보아 하니 식당에 딸린 작은 방 같았다. 침대는 단 하나 뿐이었지만 충분히 넓었고, 요즘답지 않게 전자기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요즘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층민의 삶이었을까. 그녀에겐 오히려 이 쪽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조금 둘러보려고 해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 탓에 겨우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 위의 사진을 들어올렸을 때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어야만 했다. 일을 끝냈는지, 에스밀라가 다시 들어온다.

  "그러다 일찍 죽어, 당신."

  방 옆에 걸린 수건에 앞발을 닦으며 작게 뇌까린다. 그녀가 당황한 듯 들고 있던 사진을 황급히 놓았다.

  "미-미안해요. 그냥, 이런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래, 그렇겠지. 여긴 당신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니까."

  에스밀라의 말에 그녀의 몸이 굳는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에스밀라는 호탕하게 웃었다.

  "왜, 내가 또 어디에 팔아넘기기라도 할까봐? 그럴 생각이었으면 벌써 그랬어. 괜히 없는 약값 털어 고쳐놓은 게 아니란 말이지."

  그도 그랬다. 해코지를 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 없었겠지. 엉거주춤 서 있다가,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베다스에요."
  "그래, 베다스."

  에스밀라는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당신이겠지, 마이더스의 꼬리 아홉 달린 크리쳐. 금빛과 은빛의......"
  "......."
  "......누구보다도 우리는, 이 빛도 겨우 드는 곳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솔깃한 이야기야. 항상 의문이 들었지. 그 전설의 존재가 불태워야 할 그 세상과 함께하다니."
  "저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베다스는 몸을 떨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정말? 에스밀라가 천천히 베다스를 쓰다듬었다.

  "아가씨는 별과 같아. 요즘 세상에 별을 볼 수 있지는 않지만 모두가 저 위에 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주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천천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에스밀라는 누구보다도 확신에 차 있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자신이 별과 같이 세상을 불태울 능력이 있었다면 이렇게 고통받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런 전설과 자신은 너무나도 동떨어진 존재였다. 그저 약한 꼭두각시, 자신을 잃은......

  "당장 뭘 해 달라는 건 아냐. 물론 아니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이고 어떤 사람인 것은 중요하지 않아. 다만, 그냥......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마. 아가씨는 아직 죽기 이른 것 같으니까."

  에스밀라는 그녀를 천천히 껴안는다. 왜일까, 분명 나는 누군가 몸에 닿는 걸 지극히도 싫어했을 터인데, 이 품 속이...... 너무나도 슬프고 따듯했다.


  해가 뜬 적이 없었다는 듯, 어둠은 너무나도 금방 도시를 덮어버렸다. 벌써 복구가 된 것인지, 지직거리던 소리가 다시 사이렌 소리로 바뀌었다. 베다스는 에스밀라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집을 나왔고, 베다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적자들은 에스밀라의 집을 찾았다. 당연하게도, 에스밀라는 베다스의 행방은 커녕 존재조차 모르겠다고, 혹시 광고에 나오던 그 아이를 찾냐고 되물었고 추적자들은 또 다시 허탕을 쳤다는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꼬리 아홉 달린 크리쳐는 거리를 걷다 되돌아본 도시에 되뇌였다.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을 불태우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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