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별 전야[離別 前夜] (22.12.23 재업)
히츠가야 X 우노하나 논cp
탁, 타닥.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죽을 날이 결정된 이답지 않게, 여느 때와 같이 고상한 얼굴로 우아하게 꽃을 정리하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는 작은 체구, 좁은 보폭. 순보를 사용할 새도 없던 건지 들려오는 다급한 호흡, 그리고 함께 실려 오는 겨울의 향기.
아아, 그 아이로구나.
만해를 잃었음에도 선명한 얼음의 향을 맡은 우노하나 레츠는 언제나와 같던 얼굴에 살풋 진심 어린 미소를 올린 뒤 문으로 다가갔다. 문 바로 앞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는 것을 느리게 듣다가, 문 너머의 이가 손을 들기 전에 문을 열었다. 최근 17개월 새에 부쩍 변화가 없어졌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우노하나, 대장.”
바다를 담은 청록빛 눈동자가 물기 어려 반짝였다. 최근 가르마가 바뀐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헝클어져 있었다. 얼마나 다급하게 뛰어왔으면, 여인은 아직도 진정하지 못한 아이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회도 특유의 옥빛이 감돌고, 아이의 거칠기 그지없던 숨소리가 점차 차분해졌다.
그것까지 확인하고, 여인은 짐짓 엄한 얼굴을 지어냈다.
“안되지요, 히츠가야 대장. 대장이잖습니까. 대원들에게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압니다. 본 이는 아마 없을 거예요… 있다 하더라도, 4번대의 대원들이나 당신 뿐일 겁니다.”
“그런가요. 잊지 않은 듯싶어서 다행입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단조로운 목소리. 여인의 여상한 얼굴을 확인한 아이의 얼굴에 짤막한 의문이 스쳤다. 그 명령이 진실인가를 물어보기 위한 것인가, 여인은 대수롭지 않게 짐작했다. 아이에게 그런 걸 말해주기는 꽤 어려울 테지만, 아이도 이제 알 것은 알고 있으니까.
잠시의 의문이 지나간 얼굴은 차가웠다. 아마 제가 알고 있는 쿄라쿠 슌스이라는 인물을 떠올렸을 터이다.
“몸 상태는 어떤가요?”
“…저야, 괜찮지요. 당신께서 치료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걸 물은 것이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최근 참술을 더 신경 써서 단련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혼자서, 집무실 안 편의 작은 수련실에서.”
“…어떻게,”
“10번대의 대원 한 명이, 대장님께서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부하로서 어찌 포기하겠냐고. 어서 낫게 해달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고 떠났답니다.”
잔잔한 목소리에 아이의 귓가가 미약하게 붉어졌다. 어떤 녀석인지, 물론 열심인 부분은 자랑스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마츠모토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
만해를 빼앗겼다는 부끄러움,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차가운 열정. 우노하나 레츠는 떨리는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이리도 자라서,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얼마 전 더욱 견고해졌던 영압은 만해가 사라졌음에도 그 몸에 남아 있었으니.
“뿌듯해하셔도 됩니다. 부하가 존경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렇죠. 부끄럽지만… 은근히 뿌듯하네요.”
아이는 오물오물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음이 분명했다.
하나 굳이 그 사실을 아이와 있을 때 제 입으로 상기시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아이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우노하나는 여상히 아이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익숙하게 그 손길을 받아들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아이가 느리게 우노하나를 바라보았다.
바다빛의 청록색 눈에 새까만 눈이 담겼다.
마침내, 아이는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우노하나 대장. …이전처럼 부르셔도 좋으니,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당신과는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불러주세요.”
“예, 토시로.”
“…쿄라쿠에게 들었습니다. 당신께서, 자라키를 성장시킬 예정이라고.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당신의 아이니까… 알아야 할 것 같다고.”
“…”
“…사실인가요.”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는 서두를 열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이리 급해서는, 다 자란 줄만 알았더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온화함이 묻은 검은 눈은 그 빛이 사그라질 예정임에도 여전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답지 않게 흔들리던 푸른 눈은 마치 사그라질 것이 제 빛인 것처럼 그 속에 격랑을 치고 있었다.
눈과 같이 흔들리는 아이의 손을, 우노하나는 따스하게 잡았다. 아이의 체온은 차가웠다.
“맞아요.”
“…!”
“그리 떨지 말아요, 아가. 이것이 희생이라 생각하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검은 눈이 물기 어린 푸른 눈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새하얀 속눈썹이 자르르 떨리다가 그 시선을 피하고, 우노하나는 아이의 손을 더 힘주어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내가 먼 옛날 했던 일을 주워 담는 일일 뿐이죠.”
“…그런,”
“이걸 설명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터인데― 개인 수련을 하지 못해도 괜찮으십니까?”
“네. …전부 들을 생각으로 왔습니다.”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제 어리광으로 뜻을 접어줄 분은 아니시잖아요.”
아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게 어리광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잠시 사소한 과거를 떠올리고는, 우노하나는 표정에 큰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자리로 옮겨서 앉혀주고, 시작할게요, 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천년도 더 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의 얼굴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살인귀였던 때의 이야기엔 눈을 크게 떴고, 호정에 들어와 충동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엔 안도한 듯 살포시 미소 지었고, 자라키 켄파치와 겨뤄서 졌다는 이야기엔 크게 충격받은 듯 다소곳이 앉아서 떨리는 손으로 제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그리도 충격인가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다시 한번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자 아이는 버릇처럼 이어서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께서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총대장님 외엔 해본 적 없어요, 속삭이듯 어눌하고 작은 고백에 우노하나는 살짝 눈을 키웠다가 소리 내서 웃음을 머금었다. 이리도 귀여운 아이를, 더는 볼 수 없다니.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와, 다시 그를 만났을 때의 결심과, 며칠 전 쿄라쿠 슌스이와의 대화까지 모두 말하고― 우노하나는 아이를 살폈다. 어쩌면, 아무리 다 컸다고 할지라도 아이에겐 아직 감당하기 벅찬 이야기였을 수도 있었다. 얼마 전 이사네도 힘겹게 받아들였는데, 이사네보다도 어린 아이에겐. 우노하나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아이는 느리게 제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우노하나의 손을 잡아 왔다. 차가운 체온이 한결 따스해진 것이 느껴졌다.
“토시로.”
“…”
“…아가?”
“…전,”
할 말을 고르듯, 떨리는 눈을 하고선 잡은 손을 더 힘주어 잡은 아이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새하얀 속눈썹 아래 푸른 바다를 담은 눈 속에서 치던 파도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여전히 물기는 어렸지만, 차고 오른 물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걱정보단 한결 담담했다.
“'어른'의 보호와… 희생으로,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
“아이젠 소스케와 현세에서 겨뤘을 적을 기억하십니까? 전 트레스 에스파다인 티아 하리벨과 싸웠었습니다. …그때, 녀석은 말했죠. 세상은 큰 희생 위에 지어졌다고. 누구나 희생을 딛고 서 있다고.”
“……”
“당신께서 희생해 자라키 켄파치를 깨워낸다면… 그는 분명 큰 전력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퀸시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자라키 켄파치를 감당할 수는 없겠죠. 당신보다 강한 퀸시는 거의 없을 것이고, 그런 녀석들도 당신보다 강해진 자라키를 쉽사리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요.”
말을 내뱉고 숨을 고르면서, 흔들리던 목소리는 단단해지고 확고해졌다. 말하면서 제 머릿속도 정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윽고 파도가 가라앉은 청량한 푸른색이 고개를 들었다. 빛에 따라 반짝이는 하얀 머리카락도, 오묘한 푸른빛이 죄다 섞여 있는 푸른 눈도. 이별을 각오한 아이의 모습은 눈부셨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곧았다. 물기 어린 눈은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실로 다 자란 아이를, 우노하나는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아이는 애처롭게 웃었다.
“그럼 이 정령정은 무사할 것이고… 제가 제 한 몸 어떻게든 지켜내기만 한다면, 당신께서 제 미래를 지켜준 것이 될 터입니다. 아이로서 어른에게 보호받아 성장하는 순리대로 말이에요.”
“…”
“…다시는 못 뵌다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슬프고. 사무치고… 언제나 그리워하겠지만.”
“……토시로.”
“당신께서 구해주신 목숨을 당신께서 보고 계시다 믿고 지키면서, 먼 미래의 재회를 기다리겠습니다.”
강건한 영압이 고요히 흘렀다. 단단한 마음이 부스러질 듯 아스라한 미소에 배어 나왔다.
푸른색, 녹색, 청록색. 바다와 녹음의 빛이 겹친 견고한 눈에 어린 물기가 잦아들었다. 아직 작은 몸으로, 누구보다도 어른스러운 낯을 띄운 아이가 잡았던 손을 놓았다.
“혹시 이리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네.”
“어머니.”
예상했던, 혹은 그런데도 예상하지 못했던 호칭에 우노하나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그마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무슨 감정인지 모를 벅차오르는 눈으로. 아이는, 10번대의 대장 히츠가야 토시로는 잠시 멈췄던 입을 떼어냈다.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노하나는 올곧고 애정어린 바다빛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이젠 너무나도 자라버려서.
우노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히츠가야의 곁에 다가갔다. 대장이 된 이후론 해준 적 없지만, 떨리는 손으로 히츠가야의 얼굴을 잡았다가 아직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아 품에 가까이 데려왔다. 자라지 않아 높은 목소리가 당황한 듯 더 높게 들려왔다.
“…어, 아니, 우노하나 대장,”
“…어머니로 괜찮아요, 토시로.”
“…어머니.”
“이리 자라주어서, 내 쪽이 더 고마워요. …정말 잘 자랐어요.”
따스한 체온이 차가운 몸을 감쌌다. 히츠가야는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우노하나를 마주 안았다.
마음이 다 자랐다고 한들, 아직 몸이 어린 만큼 아이의 마음도 남아 있기에.
꼭 껴안은 시간이 오래될수록, 서로를 생각하고 앞날을 그려주는 마음이 강해진다.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감정이, 곧 다가올 이별에 대한 씁쓸한 감정이 겹친다.
우노하나는 느리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입을 열었다.
“검을 알려줄게요. 때가 오기 전까지. …내가 없어지더라도, 당신이라면 잘 이어 나갈 수 있을 테니.”
“…!”
“아직 당신의 체격으로는 제대로 써먹을 수 없겠지만… 몸이 힘에 맞춰 더 자라고, 힘이 더 강해진다면. 충분히 쓸만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제 힘이 당신을 지킨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덜할 뿐이랍니다. 그럼, 이쪽으로.”
우노하나는 안았던 팔을 풀어 히츠가야를 대장실 안뜰의 평야로 이끌었다.
부디 그대가 살아남기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렸을 말을, 전하지 않고 삼켜내면서.
블리치를.. 히츠 원픽으로서
최근에 블리치를 다시 보았는데 느낀 궁금증
'...우키타케랑 쿄라쿠에게도 그냥 성으로 부르는 우리 히츠.. 우노하나 대장님은...??'
네에.
그리고 DDR에서 우노하나의 '졸속행정' 발언. 루키아 때도 이런 말씀 안 하셨고 이치고 힘 주자고 했을 때도 이정도까진 안 하셨고. 대개 총대장 말 조용히 따라주는데 그거!!
거기다가 어른 시로가 호프눙을 검술로 딱 두동강내는 것까지 해서
완성된 날조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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