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블

화이트데이 (2023)

밀리블

로나OC by 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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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밀런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건넸다. 앞면과 뒷면을 확인해봐도 별다른 로고는 인쇄되어 있지 않다. 혹시나 깜빡해서 영수증을 빼지 않았나 찾아봐도 흔적조차 없다. 하긴, 사기를 치려고 했다면 그 정도로 어설플 리 없긴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종이가방 겉면을 세 번 훑어보고, 안을 빤히 들여다본 후에야 고개를 든 메이블이 새삼스럽다는 듯한 눈초리로 밀런을 흘끔거렸다.

"진짜로 준비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뭐, 안 한다고 했냐?"

밀런이 팔짱을 낀 채 투덜거렸다. 그 모습을 본 메이블이 픽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만 한다고도 안 했죠."
"원래 이런 건 서프라이즈라고."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은 남자는 화이트데이에 보답해야 한다. 사회에 당연하게 통용되는 이야기였지만, 메이블은 밀런이 직접 선물을 만들어 올 것이라는 데에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신... 요리 못하잖아요?"

메이블은 아픈 와중에도 설익은 파스타를 먹었던 날을 떠올렸다. 그거 정말 맛없었지. 결국, 메이블 자신이 다시 만들지 않았던가. 메이블은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얼굴로, 혹은 그렇게 꾸며낸 표정으로 밀런을 빤히 쳐다보았다. 밀런은 잠시 입을 다물고 흉터 난 턱을 손끝으로 긁적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디엘한테서 약간의 조언을 받았지. 아, 만드는 과정은 다 나 혼자 한 거니까 오해하지 마라."

밀런은 그것을 혼자서 만들었다는 것에 잔뜩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메이블은 내심 웃음을 꾹 참았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요?"
"절대로 나 혼자 판단 내리지 말고 레시피대로만 하라고."
"웬일로 그런 제대로 된 말을..."

다른 곳에서는 제법 손재주를 발휘하는 밀런이 요리만큼은 제대로 못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다른 것은 과정을 정확히 따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하기 쉬운 구석이 있는데, 요리는 가장 기본적인 불 조절만 잘못해도 타버리기 십상이었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짠맛이 나거나 밀가루를 잘못 써서 돌처럼 딱딱한 빵이 되거나...

"아무튼, 이번엔 진짜 완벽하게 됐다고. 당연히 시식도 해보고 멀쩡하다는 거 확인했으니까."

물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오븐이 한 번 터질 뻔한 탓에 애꿎은 룸메이트와 한바탕 난리를 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완성본이 무사히 주인에게 도착했으니 된 것 아닌가?

밀런이 대참사의 현장을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두는 동안,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메이블이 빈손을 밀런 앞에 턱 내놓았다. 밀런은 그 손바닥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이미 쿠키는 넘겨줬는데, 또 뭘 원하는 걸까?

"손 줘봐요."
"손?"

손은 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밀런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메이블의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있었다. 메이블은 종이가방 손잡이를 자신의 손목에 잠시 걸어두곤 밀런의 손을 붙잡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손등과 손바닥, 손끝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꾹꾹 눌러보는 통에 밀런은 잠시 제 숨이 느려지는 걸 느꼈다. 하얗고 작은 손이 제 손을 만지작대는 걸 느끼고 있자니 기분이 좀...

"없네."
"…뭐가."

밀런은 소리 없이 목을 가다듬었다. 메이블은 그제야 밀런의 손을 놓아주었다.

"요리에 서툰 사람은 보통 익숙하지 않은 걸 만들 때 칼에 베이거나, 화상을 입거나 하잖아요. 혹시 당신도 그런가 싶었죠."
"내가 아무리 못한대도 그런 거에 다칠 만큼 허술하진 않다."

일단 식칼 다루는 솜씨만큼은 일류였다 이 말이다. 밀런이 억울하다는 듯 말하자 메이블이 풋 웃음을 터뜨리곤 종이가방 안에서 쿠키 상자를 꺼냈다.

"뭐, 다른 걸 다 제쳐도 의외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뭐가?"
"그야, 그때 그 초콜릿은 내 사심인걸. 굳이 돌려달라 할 생각도 없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메이블의 목소리에 밀런은 잠시 멈칫거렸다. 밀런은 메이블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차피 무얼 한다해도 우리 관계는 달라지지 않을 테고…]

단정짓는 듯했던 말투였지.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그의 목소리도 비슷했을 터다. 저도 모르게 밀런의 눈썹이 살풋 찌그러졌다. 메이블 할로웨이의 초콜릿은 사심. 돌려받지 못할 거라 믿었던 마음. 그렇다면 저 손에 들린 쿠키는 대체 뭐란 말인가?

"어머, 고양이네."

메이블은 쿠키 상자를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느라 밀런의 얼굴을 살필 새가 없었다. 상자 안에는 고양이 모양 틀로 찍어낸 버터 쿠키가 들어있었다. 메이블이 싱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 하나 먹어봐도 돼요?"

순간, 밀런이 마주 웃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장난기 가득한 가벼운 미소였다.

"당연하지."

밀런은 제 목소리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들렸길 바라며 식은땀이 밴 손을 은근슬쩍 뒤로 감췄다. 지금 뭔가 아주 중대한 걸 깨달은 것 같은데, 일단 지금 당장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X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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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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