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5Ds/잭+유세이+크로우] 자기보호
** 투비로그 23.02.01에 올렸던 글을 가필수정해서 이쪽으로 재업로드함(약 2천자 추가됨)
* 다그너 종료 후 시티-새틀라이트 통합이 막 이뤄지던, 아직 3쿨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시점
*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많음(거의 캐릭터 스터디를 겸하고 있음) + 논CP글이라곤 썼지만, CP 부착은 자유롭게.
* 나는,,,마사하우스 삼형제가 좋다,,,
나에게 맞는 일이 없다, 고 했던 잭의 말은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타고난 성정이 워낙 대범하다 보니 그는 이전 마사하우스에 있던 시절부터 섬세한 작업은 도무지 하지 못했더랬다. 어렸을 적 잭은 지금과 별다른 바 없이 힘쓰는 일을 주로 도맡았고 그나마도 할 수 있는 섬세한 작업이라면 도색‧도장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가 지닌 심미안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어서 가능했지, 싶었다.
아니, 자기 표출 욕구야 차치하고서 생각하더라도, 잭 아틀라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일해본 적이 없었다. 유년 시절은 마사가 보호해주던 어린이였으니 당연했고, 마사하우스에서 독립해 살았던 새틀라이트 시절엔 필요한 물건은 내기듀얼로 뭐든지 얻어왔다. 하물며 시티로 넘어갔을 적에는 그를 헤드헌팅한 고드윈 장관이 의식주를 아낌없이 최고급으로 제공해줬고, 그걸 빼더라도 듀얼만 하면 상금이 제 앞으로 떨어졌으니 평범하게 구직해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듀얼, 듀얼, 듀얼. 그것만으로 삶을 꾸려왔으니, 그 외의 일에 익숙할 리가 없다.
크로우 역시 그 점을 잘 안다. 아무렴, 그 자신도 듀얼로 먹고 살았던 전직 듀얼 갱 단원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크로우는 그런 말에 응석 부리게 할 생각이 없는 거다. 저건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라며. 자기는 뭐 집안일이며 요리나 아이들 돌보는 거에 날 때부터 익숙했나? 다 하다 보니까 늘어난 거지. 그러니까 요지는, 익숙하지 않다면 계속해서 덤비면 된다는 거다. 그래서 크로우는 뭐든 닥치는 대로 하다 보면 뭔가 하나쯤이라도 건지지 않겠느냐는 맘으로 매번 잭을 쪼아대곤 했다.
그 노력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잭이 열한 번째로 잡은 파트 타임은 꽤 괜찮은 듯했고, 실제로도 이 개월이 넘게 잘리거나 때려치우는 일은 없었다. 풀타임도 아니고 파트타임이니만큼 많은 돈을 받는 건 아니었지만, 폿포타임의 재정을 지탱하는 고정 수입원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건 가타부타 따질 것 없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으니 크로우가 그에게 뭐라 잔소리하는 일도 상당히 줄었다.
그런데 삼 개월째의 월급이 나오기 직전에 잭이 그 일자리를 때려치우고 돌아왔다. 하필이면 크로우도 그날 치 배달일이 다 끝나서 집에 있던 참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꽤 오래간만에 격돌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어릴 적부터 질리게 봐 온 유세이조차 하던 일을 멈추고 동향을 살필 정도로.
“―젠장, 머리 좀 식히게 나갔다 올게!”
결국 크로우가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한 듯 큰 소리로 악을 쓰더니, 소꿉친구 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블랙버드를 타고 뛰쳐나갔다. 모멘트 엔진이 내는 특유한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차고는 금세 조용해졌다. 정비 중이던 D휠에서 유세이가 손을 놓고 있었다 보니 평소 들리는 소음이 꺼진 탓이다. 정비는 잠시 멈췄어도 공구는 계속 매만지고 있었던 유세이가 침묵을 잠깐 지켜보다가 결국은 스패너를 내려두고서 입을 꾹 다문 저희네 맏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 가게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
잭은 대답하지 않았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다. 어차피 답을 독촉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기도 하고. 유세이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이십여 분 전에 터졌던 설전을 찬찬히 되짚어본다. 금방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잭의 태도다. 크로우가 금전적인 측면에서 그를 쪼아대면 잭은 보통 무척이나 유치한 방식(그러니까 쉽게 말해, 생떼를 부렸단 말이다)으로 응수하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굴었다. 그건 차라리 잭 아틀라스가 듀얼 중에 곧잘 보이는 결벽한 면에 가까운 태도였고, 크로우 역시 바로 그 점을 알아차렸기에 화를 내다가 말고 냅다 나가버린 걸 테다. 그렇다면 저희 막내 말마따나 머리를 식힐 시간이 서로 필요할 것이다.
고집도 화도 차차로 가라앉자, 잭 역시 유세이나 크로우가 제게서 무언가 감지했다는 걸 새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아까까진 굳게 방벽을 세우고 있던 자색 시선에 머쓱함이 섞인 걸 보면 그렇다. 셋이서 한 지붕 아래 다시 모여 살게 된 이래, 이런 머쓱해지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떨어진 시간이 길었다고는 한들 결국 함께 있었던 시간만은 못했던 게, 저희가 피만 섞이지 않았다 뿐이지 정말로 가족이라는 게 새삼스럽게 실감이 나며 영 쑥스러워지는 거다.
슬슬 입을 열어도 괜찮은 시기 같은데, 잭은 아직도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뵀다. 아무래도 이번은 영영 입을 다물 생각인가. 유세이는 기다리는 건 여기까지라는 표시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잭이 어깨를 움찔하는 게 보였다.
“…굳이 캐내진 않겠어. 그렇지만 이따 크로우가 돌아오면, 그 애한테는 제대로 설명을―,”
“…그 빌어먹을 자식이 너흴 모욕했다. 그딴 새끼에게 머리 숙일 내가 아냐. 웃기지 말라고 해. 젠장, 이 주먹으로 팰 수 없다면 차라리 지난 월급까지 그 면상에 내던지고 왔어야 했는데!”
적어도 크로우에게는 제대로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던 말이 냅다 끊겼다. 아, 하긴. 잭은 의외로 끼어들 판이 깔리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었다. 먼저 말을 하는 건 저희 중에선 단연 크로우였고. 저는 딱 중간. 필요만 하다면 판이 깔리건 말건 신경쓰지 않지만, 필요가 없다면 얼마든지 입을 다물고 있는 쪽. 그런 핀트 나간 생각이 저절로 줄줄 떠오르는 사이, 잭은 지금껏 지켜온 침묵이 무색하게 우르르 분노를 쏟아냈다. 이쪽이 훨씬 잭 아틀라스답다. 뭔가를 굳이 숨기고 품는 건, 전혀 어울리지 않지. 그는 언제나 투명하고 우직하게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좋다. 유세이는 빙그레 웃으며 눈앞에 있는 잭이 아닌, 자신의 D휠 쪽에다가 대고 말했다.
“―라는데, 크로우.”
“뭣?!”
드디어 본연의 상태로 돌아온 자수정이 빨간 D휠 위의, 기동 중이라는 표시로 빛을 내는 듀얼디스크를 발견하고 부릅떠졌다.
“우리 듀얼디스크는 내 수제였잖아? 적어도 나와 크로우는 그걸 계속 쓰고 있으니까. 통신 기능 있었던 거, 잊고 있었어?”
― 내 말이 맞지, 유세이? 저 자식은 그런 사소한 기능 따위 기억 못 할 거라고.
“이게, 무슨, 날 속여?”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말 안 할 거였잖아. 잭 넌 유독 크로우한테는 잰 체를 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이유를 듣겠다고 했어.”
― 근데 난 전해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마침 유세이가 자기 D휠을 점검하고 있었으니 이걸 써보자 한 거지. 헹, 보기 좋게 넘어갔구만.
마사하우스의 둘째는 다른 사람이 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킥킥 웃었다. 크로우 역시 그와 큰 차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을 거였다. 통신기 너머로 들린 건 목소리뿐이지만 목소리 톤이나 어조를 보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잭은 수치감인지 뭔지로 얼굴을 붉혔다. 이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들키고 싶지 않았던 상대에게 속내가 알려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통신기가 깜빡이며 목소리를 실어 날랐다.
― 뭐, 잭 너답다고는 하겠지만, 그깟 자존심이 문제야? 난 신경 안 써.
“내가 신경 써! 넌 좀 더 자신을 아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이야 괜찮아졌다곤 하지만, 난 아직도 블랙버드 딜리버리 초창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았어.”
― 내가 마커로 산 게 몇 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다간 못 배겨.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는, 무덤덤하고 무신경한 크로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잭은 갑갑한 나머지 빽 소리를 질렀다. 이래서 이 화젯거리를 저희 사이에 꺼내고 싶지 않았던 건데! 이 잭 아틀라스 혼자서 울화통이 터져 어린애처럼 빡빡 소리치는 건 영 꼴사납지 않은가! 시익시익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는 여전히 철회하지 않은 생각 하나를 다시금 곱씹는다. 시티와 새틀라이트가 진정한 의미에서 합쳐지려거든 앞으로 백 년 혹은 그 이상은 더 걸릴 거라고.
물리적으로만 통합되면 뭘 어쩌나. 사람들은 여전히 분단된 채인걸. 두 형제보다 이 년은 앞서 시티에서 살았던 잭은 이쪽 시티 사람들에게 뿌리 깊이 박혀있는 편견과 혐오를 잘 알았다. 그러니 고드윈 전 장관이 제 신분을 세탁하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던(결국 그 점이 제 영혼의 숨통을 일부 조이긴 했지만) 거 아닌가. 칼리를 비롯해 거의 대다수 사람에게 다크시그너에 관한 기억이 지워진 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어느 쪽이냐면, 저희 시그너와 깊게 연관됐던 몇몇만이 기억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차라리 그 처절한 싸움을 시티 놈들도 기억했다면 충격요법처럼 섞여 합쳐지는 일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동시에 허황된 공상이라고 일축하는 건 별개로). 요지는 영혼과 영혼을 부딪칠 정도로 격렬하지 않으면, 사고방식 같은 건 잘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는 크로우가 시티와 새틀라이트 양쪽을 전부 커버하는 운송업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토록 난색을 보였던 거다. 새틀라이트 주민이며 마커, 거기에 더해 작은 체구까지. 혐오에서 비롯한 온갖 유․무형의 폭력에 노출될 게 뻔했다. 차라리 저나 유세이처럼 덩치가 있거나 무표정해 위협적으로 보였으면 재고해보기라도 하지, 저 애는 곧잘 애교 있게 웃는 녀석이라 더 만만해 보일 거다. 남들, 특히나 시티 놈들 면전에서 무슨 취급을 받을지 쉽게 상상이 가는데 알면서도 그런 자리에 보낼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형제 중 맏이로서 가지는 책임감이다. 이 건에 관해선 크로우의 고집이 결국은 이겼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실제로 제가 걱정하던 문제가 터졌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온몸의 피가 차게 식고 뇌수가 들끓고 마는데, 당사자는 저런 식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분통이 터진다. 크로우에게 향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쓰레기 같은 언행을 보인 놈들에게. 시티-새틀라이트 통합으로 모든 법률이 엄정하게 동작한다는 점이 짜증 난다고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다. 옛날, 무법지대를 살았던 저에게 있어 힘의 논리에 따른 제재와 그 형식을 취한 분노의 표출은 오롯하게 잭 아틀라스의 독무대이며 실질적인 인과응보의 집행이었으므로.
그러거나 말거나, 마커 화제가 나오자 유세이도 말을 얹었다. 잭의 속이 터지는 방향으로.
“확실히 크로우 말에 동감해. 나도 그다지 신경 안 쓰고. 아, 그렇지만 역시 그때 크로우가 당한 건 부당했어. 그건 확실히 잘못됐지.”
― 아니, 이제 지난 일이라니까? 게다가 지금은 나도 뭐 문제 있으면 세큐리티 불러버리면 되고! 신고하면 진짜 출동해준다? 쩔더라. 저번에 마커니 뭐니 하면서 시비 털던 놈을 신고했더니, 시티 놈이 구치소에 뭐 작성하러 끌려가더라니까?
거기에 크로우가 또 태평한 소리를 추가타로 때려 박았을 적엔, 잭의 표정은 더 이상 일그러지지 않을 정도로 험악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화를 내도 들어주지 않을 상대에겐 힘만 빠지는 걸 이제는 알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불합리한 사태에서 이 녀석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릇된 대상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건 미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결국 터져 나온 건 질책보다는 탄식이다.
“정말이지, 네놈들은 어쩌다가 이런 식으로 커버린 거야…. 왜 자기 보호라는 걸 할 줄 몰라.”
― 네가 키웠냐. 날 키운 건 마사야.
“잭, 나는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어.”
장탄식에 따라붙은 말을 들은 잭은 그냥 이대로 턴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 동생들은 정말 별수가 없다. 이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돼. 그냥 한숨이나 푹푹 쉰 그는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그만 돌아와라, 크로우.”
― 엉, 가고 있는 중. 요 주변을 뱅뱅 돌고 있었을 뿐이거든.
과연, 저만치서 D휠의 엔진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기 보호에 안중이 없는 동생들을 둔 맏이의 시름만 깊어진 밤이었다.
1. 때때로 삼형제의 맏이인 모습이 드러나는 잭 아틀라스가 좋아요
2. 역시 20934801849번 생각해도 블랙버드 딜리버리 초창기에 다사다난했을 것 같은데, 크로우 본인의 친화력으로 어떻게든 해냈으려나...?라는 생각이 많음. 아오삼에서 봤던 모 팬픽에서처럼 불심검문도 당했을지 모르고 면전에서 폭언이면 다행이고 폭력 휘두르려는 사람하고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하는데...까마귀야,,,
3. CP를 떠나서 마사하우스 삼형제의 관계성에 환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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