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TMNT/2044 형제들] 편도행 티켓 / Happy birthday
거기에는 맏이의 등껍질이 있다.
** 투비로그에 23.04.21에 올렸던 글을 이전하며 조금 다듬어 옮겨왔습니다.
* 2044 타임라인 날조하는 글 2개.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글입니다. 때문에, 두 글에서 라프는 이미 사망한 후입니다.
* 더무비 파기된 스토리보드의 내용이 일부 섞여있습니다(기지 내 등껍질...하아...)
* 두번째 글 Happy birthday 는 김트라볼타 @pizzzaa23 님의 아이디어 : 어느 날 돌연 자기가 라프의 나이를 넘어섰다는 걸 깨달은 막내를 차용했습니다. 사용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3년 4월 22일 기점으로 Happy birthday 뒷이야기(도니+레오)를 업로드 했습니다.
편도행 티켓
크랭의 침략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사랑하는 도시, 고향이기도 한 땅은 황폐해졌고 인류는 빠른 속도로 그 숫자가 줄어들었다. 처음 그들과 맞대응했던 매드독은 침략형 외계생명체 크랭의 뭔가 알 수 없는 술수에 당해 하마토 가의 인법을 봉인 당했으며, 그리 오래지 않아 그들의 맏이를 잃었다. 인명구조 중의 일이었더랬다. 악어거북의 등껍질만 유해로 돌아온 앞에서 형제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하므로 얻었던 그 힘은 이제 영영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예감을 쓰게 삼켜야 했다. 맏이가 먼저 열어젖혔던 문은 그의 숨이 다 한 것으로 영원히 닫혔을 거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부재의 증명이기도 했으니.
남은 형제들은 강해져야만 했고, 그때마다 몇 번이고 맏이의 T-워드의 순간마다 뺀들거렸던 자신을 반성했다. 훈련과 노력이야말로 위기의 순간에 동료와 더불어 가장 믿음직한 자산이 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자의 분야를 갈고 닦았다. 더 이상 팀으로 뭉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이끌어야만 했으며, 인류 최후의 보루가 된 기지에서 때때로 얼굴을 마주치고 프라이빗 통신으로 어쩌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정도로 갈급한 평안을 누리는 몇 해였다.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것은 레오나르도였다. 언제나 실전에서 위험이 닥쳐야 종이 한 장 차이로 성큼 계단을 오르곤 했던 팀의 리더는 상시 위기 상황인 이 사태에 맞서 자신의 검이 가진 의무를 알았고,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맏이와 비슷한 언동을 보였다가 남은 형제들에게 배시시 혀를 빼물고 웃기도 했다. 자리가 사람 만든다더니 진짜더라? 그게 아니라는 건 형제 모두가 알았으나, 이번만큼은 다 같이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마스터 레오나르도!
밖에선 함성이 들리고, 불안한 기대와 절박한 희망은 언제나 발뒤꿈치에 달라붙어 있으니, 그럴 수밖엔 없다. 그러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다.
도나텔로는 지금껏 늘 하던 것을 했다. 그는 이미 예전부터 독학으로 레어의 거의 모든 시설과 시스템을 쌓아 올린 자였고, 과거 미스틱 무기들이 있던 창고에서도 굳이 남이 만든 새것을 고르지 않았듯이, 그냥 다시금 맨바닥에서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가며 요새를 쌓았다. 이번에는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기대와 호응을 좋아하며 유쾌한 녀석으로 불리기를 즐겨 마지않던 차남은 인류 전체의 희망을 떠안고 시시각각 내려앉는 확률 속에서 침잠한다. 스위치를 내린다. 그를 중심으로 했던 작은 원은 이제 거대해졌고, 그는 구심점이다. 그나마 남은 인류의 사령관이 그들의 친애하는 에이프릴 오닐이었으므로 간신히 숨통 트일 틈이 있는 것은 몇 안 남은 행운이다.
가장 안쪽 껍질에서만 열리는 옛날의 어떠한 흔적을 기존의 매드독은 잘 알았고, 그들은 매번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선두에는 당연하게도 미켈란젤로가 있다. 더는 여유롭게 닥터 필링스 코스튬을 꺼낼 여력은 없지만, 그는 종종 익살맞게 둥근 안경테를 올리는 시늉을 했고, 기지의 아이들과 곧잘 그런 식으로 뒤엉켜 놀아주기도 했다. 몸이 날래고 민첩하지만 검을 잡거나 맨주먹으로 싸우는 훈련은 딱 기본만 했던 막내는 미스틱 파워와 연결이 끊어진 동안 아주 잠시나마 전선과는 멀어졌던 적이 있었다. 단순한 기본기만 가지고는 호모 사피엔스 종보다 전선에 서는 이득을 찾기가 어려웠으니까. 반사신경이나 민첩성, 몸의 내구성이야 낫다지만 그것만으론 크랭을 맞서기 힘들다. 막내는 한때 낙담했지만(심지어 그의 전선이탈을 고한 것은 도나텔로였고 사령관 에이프릴이 그것을 허가했다), 그의 방식으로 싸워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장 먼저 그가 부활시킨 것은 생일 축하를 위시한 기념일이었고, 쉽게 증발하곤 하는 마음의 여린 갈피를 발굴해 다시금 키워냈다. 그렇게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마이키는 인간, 요괴, 돌연변이―각각 저마다의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을 단일한 조직으로 묶어주었다. 어떻게 배치하더라도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하던 건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에이프릴이 그 결과를 보고 남이 보거나 말거나 팀의 막내를 마구 끌어안고 폴짝폴짝 뛰던 일은 가끔씩 회자하곤 한다. 그날 이후였을 거다. 마이키의 마법이 완전히 각성한 것은. 미스틱 무기를 주로 쓰고 있을 때는 내재한 잠재력만이 설핏설핏 보였으나, 이제 그의 손이 텅 비자 차오른 힘이었다.
그렇게 전선에 복귀한 마이키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게릴라전을 이끌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 그 어떤 물적자원도 없이 낼 수 있는 힘은 효율이 좋았고, 뭣보다 게릴라부대에 편입된 이들의 마음 상태가 호전된 것이 제일이었다.
그리고 임무를 맡았다는 것은 죽음을 바로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는 뜻이기도 하다.
― 여기는, , 본부, 들려? 갇혔,
노이즈가 심하게 낀 통신이 본부로 날아들었고, 식별코드는 발신자가 미켈란젤로라는 것을 알린다. 에이프릴은 이제 몇 년이 지난 기일의 때를 연상하고 심장이 쿵 짓눌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침착하게 백업을 나갈 조는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커맨더로서 명령해놓고 방금의 통신을 프라이빗 모드로 돌렸다. 그리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HQ에서 터틀즈에게. 마이키가 갇혔어.”
통신기 너머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국지전이 벌어진 곳에 출동한 레오 쪽은 아예 숨소리가 사라져서, 크랭의 철판을 긁는 듯한 기분 나쁜 단말마만 흐리게 들려온다. 지금도 기지 어딘가, 어쩌면 랩, 그것도 아니면 무기고 정비 중일 도니 쪽은 소음 하나 없다. 늘상 타자 두드리는 소리나 공구 만지는 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것과는 정반대다.
통신기에선 마이키가 계속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났다. 거의 다 깨진 음질에서 건질 수 있는 말이라곤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계속 들었다. 만약 이게 마지막이라면, 을 각오한 것인지 갑자기 도나텔로 쪽의 음성 감지에 무서운 속도로 타이핑하는 소리가 난다. 위치라도 찾아서 시신이라도 건지겠다는 의지다.
― 도니, 찾으면 알려줘. 내가 갈게.
그걸 깨달은 레오는 퍽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고, 에이프릴은 재빨리 기지 내 상황을 조립한다. 여기서 만약 우리의 막내가 없어진다면, 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책임자란 눈물과 애도가 뒤로 밀리기 마련이라, 언제나 너무 많이 죽어가고 있으므로, 그들은 지금 해야만 하는 일에 정신을 돌린다.
그런데, 갑자기 사령실 너머에 우렁찬 환호성이 들렸고 동시에,
― 여기는 마이키! 헤헤, 다 같이 돌아왔답니다!
― 뭐? (비명이 너무 높았는지 잠시 노이즈캔슬링이 됐다) 어떻게, 이게, 말이, ...안젤로, 너 이따 랩 와. 꼭, 무조건, 절대로 와. 알겠어?
― 마이키!! 야! 너 형 놀라게 하고, 어?(곧, 훌쩍이는 소리 잠깐. 이내 얼른 정리하자는 힘찬 목소리가 조금 멀리서 들렸다) …금방 갈게. 이 마스터가 힘내면 여긴 금방이지!
“무사히 돌아온 거라면 기쁜데, 지금 보고하러 와줄래, 마이키?”
― 예얍~.
놀랍게도 마이키가 전원 생환을 알려왔다. 깨끗해진 통신 품질과 인트라넷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알림을 보면 꿈은 아닌 듯했다. 크랭과의 전투가 이어짐에 따라 묘하게 웃음기가 버석해졌던 미들즈 두 사람의 반응도 근래 본 것 중에서 가장 생생하다.
에이프릴이 게릴라 조의 리더인 마이키에게서 공적으로 받아야 할 보고를 다 들었을 즈음에, 레오가 귀환했다. 환호성이 더 커졌다. 마스터 레오나르도! 마스터! 오호호, 내가 그리웠어, 팀? 좋은 날이지? 더 즐거워하자구! 그는 굳이 찬물을 끼얹지도 않고, 이 축제의 분위기에 흠뻑 빠지게 말을 얹었다. 그야 그렇다. 오늘은 지극히 드물게도 아무도 죽지 않은 날이니까.
잃은 줄만 알았던 모두가, 다쳤을지언정 숨이 붙어서 돌아왔기에 기뻐하던 사람들에게 국지전이나마 크랭을 누르고 온 영웅의 귀환은 더더욱 열광할 거리밖엔 되지 않았고, 그가 이 행운을 드높이고 있다면 당연히 온몸으로 기뻐할 수밖엔 없다. 그러니 늘 몸을 막 쓰고 돌아오는 레오에게 심술궂은 악담을 돌려주기 일쑤인 의무실 멤버들마저 기쁜 비명과 함께 그의 등을 퍽퍽 때려주고 있지 않나.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도나텔로는 관계자외 출입금지가 붙어있어 늘 인적이 없는 메인 랩 복도에서 서늘한 눈으로 내려본다. 도중 아래에서 잘 만들어진 시시덕대는 얼굴을 한 형제와 시선이 마주쳤으나, 곧 슬며시 지나간다. 영웅, 그래, 영웅이라. 도니는 조만간 여기로 올라올 막내와 저 머저리를 위해 출입 권한을 조정하러 랩실에 들어갔다.
최소 하나의 책임자가 기지 일을 돌봐야 하기도 했고, 오늘 잃을 뻔했던 이가 막내였다는 점도 참작해 에이프릴은 자리를 비웠다(대신 그는 형제들이 볼 일 다 보고, 도니와 지휘봉을 교대한 후 남은 시간을 마이키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붕대와 깁스를 둘둘 감은 막내에다 여느 때처럼 묻은 피를 물로 대강 씻고 와서 은은하게 쇳내가 나는 형제의 꼬락서니를 마주한 도니는 인사 대신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환기팬이 왱왱 거칠게 돌아가는 소리에 두 형제는 헤헤 웃는다.
“그래서, 안젤로. 뭐였어. 증언을 종합해보니까, 문을 열었다고?”
“어, 마법적인 포탈? 응, 그런 거.”
“워후-, 아니지, 마이키, 그거 나랑 캐릭터 겹치는 거 아냐?”
“입 다물어, 레오.”
도나텔로가 층을 내려오지도 않고 어떻게 저런 정보를 아는가는 별로 놀라운 것도 없어서, 레오도 마이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저희 할 말이나 아무렇게 주워섬겼다. 레오는 곧 도니의 눈짓을 받고 번개처럼 빠르게, 마이키의 팔에 감긴 붕대를 쓱 풀었다. 곧 두 형의 눈초리가 가늘게 뜨이고, 막내는 드물게도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미스틱 파워처럼 황금의 색으로 갈라진 피부. 레오는 별말 없이 동생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어 도니의 앞에 놓고, 도니는 고글을 내려 그것을 살피더니 랩 구석 방향의 어떤 기계를 향해 턱짓했다.
“검사하자. 당장.”
장장 한 시간 동안, 마이키는 무슨 탈의실 같은 느낌의 원통형 기계 안에서 도나텔로의 지시에 맞추어 마법을 쓰거나, 포탈을 열었을 때를 재현(이건 딱 1초였다)했다. 그 말은 마이키의 기대가 깨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막내는 도중에 레오가 기다리다 질려서 저를 끄집어내고, 그냥 가족끼리의 빅-허그나 하며 시시덕거릴 줄 알았더랬다. 놀랍게도 레오는 차남을 뜯어말리지 않고 이 모든 기다림을 가만히 인내했다.
싸우는 것보다 이게 더 지쳤다며 털레털레 나오자, 마이키는 유례없이 굳은 표정의 도나텔로와 그 기세에 눌린 레오나르도를 마주했다. 퍼플은 막 테스터기에서 나온 막내와 쭈삣대는 동갑의 형제를 나란히 세워놓고는, 그들의 맏형이 설교할 때 으레 취하던 포즈로 또박또박 말했다. 경고와 걱정 모든 게 뒤섞인 말을.
잘 들어, 미켈란젤로. 네 그 마법적인(오, 젠장, 내가 이런 말을 진지하게 발음하는 날이 올 줄이야) 포탈은 물리법칙을 찢어놓을 수 있어. 넌 오늘 공간을 넘었고, 내 계측에 의하면, 원한다면 시간도 뛰어넘을 수 있겠지. 아니아니아니, 내 말 안 끝났어, 이 멍청이들아. 시간이든 공간이든 더 멀리 갈수록 마이키의 포탈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는 줄어들 거고, 그 포탈을 여는 대가는―마이키, 너 자신이야.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웃지 마! 웃지 말라고, 뭘 잘했다고, 아니, 물론 살아 돌아온 건 잘했어. 정말 잘했지! 지금 그걸 화내는 게 아니야. 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싫은데, 난 마이키 너마저 신격화돼서 압사당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오호호, 그래, 돈돈의 말랑타임이야? 난―”
“닥쳐, 나르도. 닥쳐. 제발. 내가 널 어릿광대로 세우는 결정에 찬동한 점을 비난할 거면 얼마든지 비난해도 좋은데, 그건 거시적인 관점에서지 나 개인의 찬동이 아니야. 그러니까 비난해도 나는 타격 입지 않아. 알겠어?”
과하게 무거워진 분위기에 옛날에 늘 그랬듯이 레오가 우스갯소리로 타파하고자 입을 열었지만, 곧장 도니의 속사포에 막혔다. 그들의 차남은 흥분하거나 본인이 인지 못해도 감정적으로 격해지면 말이 많아지곤 했으므로, 레오는 얌전히 꼬리를 내리기로 한다. 그는 이미 도나텔로가 사람들이 저를 마스터라면서 칭송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개인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돼. 그렇지만 지금, 사람들은 희망의 물증 없이는 일어날 수 없어. 그러니까, 레오, 모두를 위해서야. 이건 내 결정이 아니라고. 커맨더와 수뇌가 사람들의 첫 ‘마스터’ 발언을 묵인했던 날, 제 앞에서 씹어뱉듯이 던진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역시, 사람들의 영웅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 사방에서 옥죄이는 압박을 상시 느끼고 있으므로, 마이키는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했다.
형제들의 감정 상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막내는 이번에도, 그 형식이 어떠하건 간에 단어와 단어를 엮어 만든 문장 근저에 깔린 걱정을, 다정함을 먼저 주웠다. 마이키는 입을 한 일 자로 꾹 다문 둘째 형을 꽉 안았다. 멈칫한 어깨는 그래도 마이키를 밀치지 않고, 여전히 신신당부한다.
“지금부턴 완전-개인-도나텔로의 의견인데, 지금 인류의 정서 상태와 스트레스 반응척도를 감안 하면, 마이키 네가 과거로 딱 한 명만 갈 수 있는 포탈을 열 수 있다는 걸 알자마자 그걸 시행하자고 할 거야. 그러니까 넌 이번에 그 포탈을 극적으로 열었고, 열흘만 앓아누운 걸로 하자. 내 랩에 메디베이 설치할 정도다, 하면 다들 믿겠지. 여하튼 넌 절대로, 그게 시간까지 열 수 있는 포탈이란 걸 들키지 말고, 앞으로도 공간 찢는 것도 안 돼. 네가 죽을지도 모를 때만, 그때만 써. 알겠어? 오늘 같은 때 말야.”
형제의 가족애-넘치는-모먼트를 괜히 뿌듯하게 바라만 보던 레오에게 화살이 넘어가는 것도 금방이었다.
“레오,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이제 마이키의 비밀을 아는 유이한 사람이고(에이프릴한텐 나중에 내가 따로 말할 거야), 우리 중 그 비상 탈출 버튼의 유혹을 가장 많이 받을 게 너라는 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 당연한데, 그 유혹에 절대 지지마. 그 편도행 티켓은 우리 막내 목숨이 값이야. 알겠어? 정말 모든 희망이 다 타서, 아무것도 없을 때. 그때나 쓰는 거야. 안젤로, 너도, 혹시 우리 중 누가 포탈 열라고 말하더라도 잘 생각하고서 해야 해. 넌 당사자니까 더더욱 그럴 권리가 있어.”
가벼운 태도로 받아칠까 했던 레오는 목숨값까지 입에 담은, 동갑의 손위 형제를 보고 으쓱하고선, 그냥 끌어안기에 동참했다. 너 지금 진지하게 안 들었지 어찌고 하는 잔소리에 그냥 웃으면서. 틀린 점을 정정하기보다는 그게 나을 것도 같았다.
‘과거를 바꾸러 내가 갈 수는 없잖아. 엄두도 못 낼 걸.’
자신이 갔다가 만약 또다시 일을 망친다면, 그때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거다. 라프가 사라진 이래, 더는 최선의 결말을 꿈꾸지 못해도 차선의―그들이 알던 옛 세상으로 돌리는 것―결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원동력마저 도박에 걸 정도의 강심장이 저는 못 되었다.
그래서, 사방에서 크랭의 괴성이 들려오는 가운데, 먹먹한 시야를 애써 유지하면서도 레오나르도는 말했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그리고 끝내주는 마법 전사도 있지. 마이키, 타임 게이트웨이, 그게 필요해.”
“그러려면 내 힘을 다 써야 해.”
“알아. 하지만 이게 우리의 마지막 기회야. 유일한 기회지.”
유일한 기회. 목숨을 대가로 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마이키가 땅에 내려앉아 부드러운 동작으로 원을 그린다. 편도행 티켓. 보내는 사람은 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과거에는 우리 모두가 있지. 레오는 괜히 실실 웃었다. 아무도 빠지지 않은 모두가 있다면, 실패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레오나르도는 케이시에게 바톤을 넘긴다.
“케이시, 세상을 구하면 한 가지 해줄래?―한 쪽 먹어봐Grab a slice.”
Happy birthday
김트라볼타 @pizzzaa23 님의 아이디어 : 어느 날 돌연 자기가 라프의 나이를 넘어섰다는 걸 깨달은 막내를 차용했습니다. 사용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류 최후의 보루를 담당한 기지 어느 벽 한 면에는 악어거북의 등껍질이 걸려있다. 이 기지에 사는 누구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라파엘 하마토. 현존하는 레지스탕스가 완전히 꾸려지기 이전에 활동하던 매드독-하마토 일가의 맏이이며 누구보다 인명구조에 앞장섰던 자.
생전의 그를 아는 사람은 이제 열 손가락에 채 들지 않는다. 그가 구했던 사람들은 다시금 크랭에 맞서기 위해 일어났고, 스러졌으며, 그들의 친인척, 형제자매, 친구가 남아 말로 이야기를 전했을 뿐이다. 혹 그런 구전이 끊기더라도, 여기 하마토 일가의 이들이 살아있는 한(대체로 그건 인류 최후의 보루와 동일한 의미였다), 라프에 대한 이야기는 마스터 레오나르도건 마에스트로 미켈란젤로-마이키건 심지어는 커맨더 에이프릴이나 수뇌부의 도나텔로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냥 먼저 이야기해주냐 마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들 모두가 라프의 화제를 피하지 않는다.
파멸이 찾아온 이래, 기념일, 특히나 생일을 챙기는 문화는 절멸된 줄 알았더니 잠시간 전선에서 물러났던 마이키가 그걸 복구해냈고(레오가 웃으면서 인류학 박사님이라고 놀렸다), 막내는 하마토 일가의 생일이 오면 반드시 라프의 등껍질이 보이는 자리에서 가족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인류를 이끄는 자들이 그러했을진대, 하루하루를 헤아리는 것이 괴로웠던 사람들은 저마다 아날로그 식으로 달력을 걸고 사랑하는 이들의 생일이나 기념일 따위를 기록해놓고, 잊지 않고 축하했다. 이 작은 불빛이 걸음마다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으로 마이키가 시작한 일은 작게나마 위안이 됐더랬다.
그리하여, 이제, 곧 자정(도나텔로가 원자시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궤멸한 세계에서도 확실한 시각을 알았다). 미켈란젤로 마이키가 스물둘이 된다. 스물두 살. 마이키는 그 이상한 어감을 입 안에서 녹지 않는 사탕을 물듯이 굴려본다. 앞자리가 바뀐 직후 2년간은 하도 정신이 없어서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모르는 사이에 틴즈를 벗어났었다는 생경함을 곱씹으며, 마이키는 시계의 초침이 다시금 0을 가리키는 순간에 맞추어 달력 D-day에 엑스 자를 그었다. 그리고 섬광처럼 달리는 어떤 생각.
‘그러니까, 내가, 라프보다 나이가 많아.’
그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당연했다. 라프는 스물이 되기 전에 죽었다. 아마 그가 열여덟쯤의 일일 것이다. 생일이 지났다면 열아홉이었을 수도 있겠다. 날짜와 달력, 시계를 복구한 것은 레지스탕스를 꾸리면서부터니까. 라프가 떠난 지도 벌써 6년이 지났고, 그들의 맏형은 이미 막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서 영원히 멈췄다. 하마토 가의 맏이는 영원히 스무 살을, 그 이후를 맞이하지 못한다.
그걸 깨닫기가 무섭게 마이키는 멀미와도 같은 현기증을 느끼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건 마치 썩은 통조림을 깠을 때처럼 매우 역하고, 어지러운, 안 좋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도니가 논리적으로 전혀 말도 안 되는 것을 마주쳤을 때 토할 것처럼 굴었던 것은 과장이 아니라 진짜였을 지도 모른다고, 지독한 오심감을 느끼면서 마이키는 숨을 헐떡였다.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마음을 가라앉힐.
마이키는 기지 복도로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개방한 마법적인 힘은 때때로 그를 땅 위에서 띄우기도 했는데, 정신이 흐트러진 지금은 스위치가 꺼지는 쪽으로 기운 모양이다. 아직은 좀 미숙해 평정심이 깨진다면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힘이기도 하고, 자칫하면 요란해지므로 지금으로선 차라리 반가운 소식이다. 무게를 싣지 않고 소리도 없이 스텔스 모드로 걷는 그는 이 평안한 밤을 깨고 싶지 않다. 심지어 해가 뜨면 기지에는 작은 파티가 열릴 것도 알고 있으니까 더더욱. 그 자신이 심어낸 낱알 같은 일상으로 가기 전에, 이―알 수 없는 감정과 충분히 마주쳐야 했다. 오래도록 밖을 나온 적이 없는 닥터 필링스의 진단으로도 그러하다.
최소 조명도 없이 깜깜한 복도는 장애물이 안 된다. 본디 전사로 예비 될 뻔했던 신체는 암순응 따위 순식간이었으니. 그렇지만 마이키는 굳이, 마지막 모퉁이에서 숨을 고르며 어둠이 더더욱 모든 윤곽을 띄워내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한 걸음 걸어 나가면,
거기에는 맏이의 등껍질이 있다.
그 난장판 속에서 도니가 위치를 찾아냈더랬다. 위치추적 장치를 등껍질 쪽에다 심었노라고. 충격과 비탄으로 마디마디가 끊어진 고백을 뱉던 순간은 선명하다. 나는 몰라도, 너희들 등껍질은 튼튼하니까, 절대, 부서지지 않을 곳에다, 그래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위치를 듣기가 무섭게 레오가 언어가 안 된 절규를 지르며 잔해를 엎어뜨렸고, 그렇게 찾았다.
울컥 뭔가 목울대를 치밀어 올라와 마이키가 다시금 입을 틀어막는데,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번엔 울음이 아니라 비명이 나올 뻔했다. 게다가 하필 라프의 앞이어서, 어릴 때의 습관으로 든든한 등껍질에 확 올라탈 뻔하기까지 했다. 어깨를 두드린 손은 이내 그를 붙잡았고, 마이키는 상대를 확인하지도 않고 냅다 주먹부터 날리려고 자세를 취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쉬이-. 진정해, 마이키. 우리야.”
“…내가 이건 좋은 계획이 아니라고 했지, 레오.”
레오나르도와 도나텔로가 거기 있다. 하나는 저를 과하게 놀라게 했다는 게 머쓱한 듯했고, 다른 하나는 여느 때처럼 뚱한 얼굴을 하고서 사고를 친 형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오늘 온종일 산발적인 국지전 모두에 불려갔던 셋째 형과 어제오늘 할 것 없이 연중 과로 중인 둘째 형이 왜 이 야심한 시각에 여기 서 있는가. 놀란 얼굴 그대로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레오가 앞뒤 정황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머쓱하면 아무 말이나 주워섬겨대는 블루의 오랜 버릇이기도 하다.
“아니, 너 생일이고, 그래서 형들이 생일 축하 좀 해주려고 했지. 근데? 가보니까 우리 막내가 없네? 보니까 저어기 스텔스 모드(이때 그는 최대한 발음기호에 맞추어 조용하게 발음했다. 그야, 그의 맏이가 단어의 뜻과는 정반대로 크게 외쳐댄 적이 많으니)로 살금살금 걷고 있네? 그러면 오랜만에 서프라이즈나 해볼까! 했어.”
“…난 말렸어.”
“야, 적극적으로 안 말렸잖아. 그건 동의한 거 아냐, 돈돈? 내빼다니 매정해~.”
“뭐래.”
투닥거리는 대화의 온도와 질감은 어쩐지 그 옛날, 하수도 밑 레어에서 지내던 시절을 방불케 했다. 아주 안온하고 따스했던 나날들. 다정한 빛깔의 주황색 등이 켜진 것만 같이, 마이키는 결국 빵끗 웃었다. 블루와 퍼플의 촌극은 여전히 이어지다가, 막내의 웃음을 보고서 겨우 마무리된다.
“일단 서프라이즈는 달성했잖아? 목표 절반 달성. 자, 하이-쓰리.”
“하아, 이 골칫덩이를 어쩌냐. 나르도, 그건 본론이 아니잖아. 우리가 뭘 하러 나왔나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래?”
“앗차, 방향 수정 고마워, 도니.”
그리고서,
생일 축하해.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목소리가 합쳐져 축하를 건넨다.
비하인드
‘마스터’라고 불리게 된 이래, 레오나르도는 간혹 도나텔로의 메인 랩실에 도망쳐오는 일이 생겼다. 본인은 자기가 이 랩의 엄중한 보안을 뚫고 올 정도로 쩔어주는 닌자라며 낄낄거렸고, 사람들에게 형제를 먹이로 던져줬다는 부채감이 있는 도니는 굳이 제가 레오에 대해서만 보안을 아주 조금 내려두었음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어차피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별다른 바가 없는 탓도 있다. 촐싹거리면서 짜증 나게 굴며 들어온 것에 비해, 블루는 늘 랩 구석에서 무슨 화분 마냥 멍때리기 일쑤였으니. 도나텔로의 뛰어난 관찰안에 의하면, 레오는 수다쟁이big mouth이긴 해도 그게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이 형제는 저와 마찬가지로 꽤 회의적인 구석이 있다. 그걸 인정하고 표면화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어쨌건 도니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답지 않게 계속 떠들고 있다 보면 한두 번은 침잠해야 할 때가 있고, 그 피난처로 저의 안락하고 조용한 랩을 찾았다는 게 결론이다.
“도니, 오늘 몇 년도 며칠이야?”
그래서 레오가 말을 꺼냈을 때, 도니는 반응이 늦을 수밖엔 없었다. 아니, 누가 산세베리아 화분이 말을 걸 거라고 생각하나. 헛걸 들었나보다, 하지.
“오-호, 이건 내가 유령이라도 된 건가? 도-나-텔-로-, 내 말 안 들려? 저기요? 똑똑? 우리 위대한 천재 엔지니어님?”
도니는 저 방정맞은 입이 시동을 걸고서야 어금니를 으득 물며 의자를 휙 돌렸다.
“내 청각은 멀쩡해.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그걸 물어. XX년 XX월 XX일. 그리고 이제 곧 날짜가 바뀌지.”
“마이키 생일이네. 걔가 이제, 음―,”
“스물둘.”
거기까지 대답한 도니는, 곧, 스쳐 지나가는 어떤 생각에 이 의미 없어 보이는 문답이 레오의 의뭉스러운 화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레오는 그냥 히죽 웃어 보인다. 그 특유의 사람 열받게 하는 미소 말이다.
“일부러 그랬지, 너.”
“으흠? 뭐가.”
“우리가 작년에 그랬으니까.”
“정답. 마이키도 전선 복귀하고 이제 좀 익숙해졌을 즈음이니, 슬슬 그렇지 않을까 해서. 그러니까 올해는 형다운 일 좀 해보게. 어때?”
얘의 농간에 놀아나는 건 기분이 영 안 좋지만, 이 전선을 유지하고 조금이라도 크랭에게서 영토와 삶을 되찾고자 아락바락 버둥거려오느라 막내에게 신경을 못 쓴 건 사실이다. 아마 지난 삼 년 가까이 날짜도 잊고 일해서, 마이키가 찾아오고서야 생일이었음을 깨닫기도 했던 적도 있었고. 무엇보다 레오가 말했던 작년의 저희.
‘라프는 항상 우리보다 형이라고 생각했으니, 그건 충격이긴 했어.’
단순한 산수였음에도, 마이키의 생일 축하 이후에 찾아온 어떤 생각. 자신의 무심함. 시간의 무자비함. 빈 곳을 다시금 후벼파는 상실감까지. 막내가 그것에 오래 파묻혀있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뭘 어떻게 할 건데?”
“오호호, 역시 따라줄 거라고 믿었지.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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