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TMNT/레오 위주+도니] 남겨진 자들 그리고 묘비
* 닌자거북이 에볼루션 : 더 무비의, 타이틀 뜨기 전의 4분 사이에 나온 것을 신나게 날조대잔치했습니다.
* 서른둘의 레오나르도, 도나텔로가 등장(서른하나인 마이키는 언급 정도)
* 이건 확실히 앵스트 : 레오나르도가 꽤 자학적인 기미가 있음. 남은 형제들에게도 흔적이 보임.
* 캐릭터 사망소재 있음 : 어떻게 생각해도 미래 레오의 의수는 라프가 모티프로 보여서, 역시 그 시간선의 라프는 사망했겠지 싶어서...예...
* 그 외 날조 다수 : 오피셜로 풀린 것이 아닌 모든 설정은, 개인 팬설정입니다.
* 아니근데공식이먼저저한테흰장갑던졌다구요
* 퇴고는 미래의 내가 해주겠지
뉴욕에서 가장 높은 곳, 메트로 타워. 첨탑이 배경으로 삼은 하늘은 아까까지만 해도 맑았다가, 돌연 막이 올라가듯 기분 나쁜 분홍색과 회색을 마구잡이로 뒤섞은 괴이쩍은 빛으로 물든다. 곧이어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거대한 포탈이 출현한다. 트레일러 트럭 서너 대는 너끈히 들어갈 지름이다. 그리고 레오나르도는 이 광경을 안다. 몇 번이고 반복한 풍경은 이제 더는 볼썽사나운 “안돼!”라는 비명 대신, ‘오늘 잠은 다 잤군’ 따위의 신물 나는 감상이나 뒤적이게 했다.
물론 그 사실이, 이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하마토 가의 레오나르도가 지금 모든 생을 통틀어 저지른 것 중 최악의 짓거리였다는 사실을 희석하지도 않았고, 그로 인한 부채감을 퇴색시킨 적은 더더욱 없었다. 오히려 그건 복갑 어디에 새겨둔 것처럼 결단코 잊히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잃은 사람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니까.’
치기 어린 십 대란 어째서 막연하게 뭐든 잘 풀릴 거라고 믿는 걸까. 마치 제 삶도 세이브&로드를 반복해서 지난 실패를 없었던 셈 치고 진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고, 어떻게 그렇게 낙관할 수가 있었을까. 지금, 이제 서른 줄에 이른 레오나르도는 새파란 애송이였던 저 자신의 멍청한 짓거리를 굽어본다.
팔 년 전인지 십 년 전인지, 이제는 그다지 세어보지 않게 된 그 과거에 저와 라프는 대판 싸웠다. 크랭의 침략이 제 오만함과 방심이 불러일으킨 사태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고서, 슈레더 전 이후에 야금야금 쌓여왔던 라파엘의 분노가 간만에 제대로 터졌고, 그 당시 리더의 책임감이란 놈을 전면으로 회피 중이었던 저는 당장 벌어진 일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탓임을 알고 패닉에 빠져있던 터였다. 당연히 대화다운 대화는 없었다. 서로를 벽처럼 두고서, 자기 할 말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을 뿐이지.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라고, 일단 가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게 누구였더라. 사 년 전 돌아가신 대디였나, 그것도 아니면 언제나처럼 싸움을 중재하려고 든 막내? 어쩌면 기기에 수도 없이 뜨는 정보에 초조해진 디일 수도 있고.
“그 열쇠를 빼앗고, 나머지를 청소한다. 그러면 다 끝이잖아. 안 그래?”
“아빠도 말했잖아. 크랭 그것들이 그렇게 만만할 리가 없다니까, 레오! 제발 경각심을 가져!”
“아, 예예~. 일단 이제 공식적으로 리더는 나야. 한번 가보자고, 팀.”
닥쳐, 닥치라고. 레오나르도는 불안을 한껏 뻐김으로써 위장했던 지난날의 면상에 주먹질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렀다. 이미 수차례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꿈은 바뀌지 않았으니.
그래서 결과는 뻔했다. 주먹구구식 무계획, 거기에 분열된 가족이 이미 준비된 외계 학살 종족을 이길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지. 레오나르도는 이제 꿈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이 전방위의 장면 중 어디까지가 진짜 자신의 기억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이 보완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때는 무르익는다. 어찌저찌 타워를 올라간 저희는 그 열쇠를 앞에 두고 있고, 포탈에선 끊임없이 탁한 분홍색을 띤 젤리괴물들이 튀어나온다. 모두는 지쳤고, 완벽히 포위됐다. 그나마도 목표물이 저기에 있는 게 다행일까도 싶지만, 그렇게 낙관하기에는 포탈 너머에서 거대한 수송선이 넘실거리는 게 보인다. 저게 넘어오면 끝장이다. 그런 직감이 든다.
레오의 우측에서, 라프가 눈만 굴려 가족들을 살피고 포탈을 다시 노려보더니 외쳤다. 이를 까득 무는 소리가 난다. 악어거북의 치악력은 어마무시해서, 철근끼리 부딪치는 소리 같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레오나르도가 새삼스러운 후회를 곱씹는 동안, 꿈은 여전히 정해진 수순을 밟아 진행한다.
“퇴각! 도니, 포드!”
“뭐? 라프! 저기 열쇠가 있잖아.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퇴각? 아니, 도니, 라프 말 듣지 마. 우린 여기서 결판을 낼 거야.”
“레오! 아빠도 마이키도 다쳤어! 지금 우린 싸울 상태가 아니라고!”
여기부터 꿈은 묵음이다. 적들은 내분 중인 사냥감을 즐겁게 비웃으며 관전하고, 저들끼리 분위기를 돋우려는 듯 슬금슬금 포위망을 좁혔다. 그러면 이제 발목을 삐끗한 미켈란젤로가 목을 움츠려 반쯤 제 등껍질에 숨는다. 도나텔로는 두 형제의 싸움을 듣다 말고 독단으로 포드를 쏘았다. 어린 레오나르도가 그 모습에 분개한다. 배틀쉘에서 튀어나온,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사용된 적 없었던 포드는 막내와 스플린터를 먼저 아지트로 보내고, 도니가 다음이었다. 탁한 초록의 포드는 깨진 창문 너머로 내려가, 이른 부상으로 타워 주변에 숨어있던 에이프릴을 향했다. 레오나르도는 제 몫의 포드를 수동으로 멈추고, 검을 쥐고서 포탈로 돌진한다. 그의 등 뒤로 라파엘의 포드 역시 펼쳐지다가, 한 살 어린 동생의 막무가내 돌격을 보고서는 망설이지 않고 제 몫의 포드를 정지시켜 손에 쥔다.
꿈 밖의 레오나르도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너는 그러면 안 됐어. 목숨을 책임진다는 게 뭔지 알았으면, 네가 그래선 안 됐어. 적어도 라파엘은 슈레더 전에서 우리 형제의 목숨을 책임지고 선택한 적이 있으니까, 넌 큰형의 말을 따라야 했어.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지난 일이다.
먹이를 놓친 그들이 울부짖고, 레오나르도를 공격한다. 사방에서 뻗어온 촉수는 그가 열쇠에 접근은커녕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대로 사지가 붙들린다. 버둥거리는 그에게 크랭은 자비가 없다. 사방에서 뾰족하게 날을 세운 촉수가 날아든다. 그리고, 쾅! 붉은 미스틱 파워가 바닥에 작렬한다. 모든 크랭이 레오에게 집중한 덕에, 노마크였던 라파엘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과 천장을 이루는 석고보드가 한꺼번에 부서지며 사방이 뿌옇게 변한다. 그러나 그들이 적에게 둘러싸여 있음은 변하지 않았고, 크랭들은 다시금 칠판을 긁는 듯한 불쾌한 비명과 함께 공격한다.
그 짧은 사이, 라파엘은 레오나르도의 팔다리를 묶은 촉수를 뜯어내고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동생을 뱅글 돌려 가슴팍을 툭 친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눈을 둥그렇게 뜬 레오나르도는 곧, 무시무시한 소음에 반사적으로 싸울 태세를 갖췄으나 덩치가 배는 되는 큰형에게 저지된다. 거기까지의 흐름은 스플린터가 수천 번은 돌려보는 바람에 늘어진 비디오테이프처럼 아주아주 느렸다가, 촉수들이 악어거북의 튼튼한 등껍질을 꿰뚫고 차마 가려지지 않았던 제 오른팔을 잘라내면서 몇 배로 가속한다.
“아, 안돼! 형! 라프!”
직전, 가슴팍을 툭툭 쳤던 동작에서 가져다 댄 포드는 과연 도나텔로의 작품답게 기민한 속도로 레오를 감싸 안았다. 꿰뚫린 라파엘과 그의 오른팔을 남겨두고서. 포드가 펼쳐지는 걸 보던 큰형의 표정이 어땠더라. 온화했던 것도 같고, 그냥 평소처럼 제 억지를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찌푸린 상이었던 것도 같다. 어느 쪽이든 라프다우면서,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기억이 비어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탈출 포드는 너무 빠르게 멀어졌고, 저는 출혈로 까무러쳤으니.
덜컹덜컹. 비상탈출에 집중한 포드가 마구 흔들린다,
―라고 느꼈던 건 실제로 제가 좌우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서른둘의 레오나르도는 눈을 떴다. 습윤지대에 자리한 동굴. 대충 깎아 만든 투박한 석벽. 그리고, 도나텔로. 이제 전선보다는 후방에서 기술력을 쥐어 짜내며 남은 인류를 서포트 중인 우리의 위대한 천재. 레오는 잠이 덜 깬 채로 반사적으로 검을 쥐었고, 도니는 그런 레오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뚱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한 형제는 보이는 대로 불퉁하게 입을 연다.
“진통제?”
“어, 아니. 갑자기 왜?”
“안젤로가 너 좀 봐 달랬어.”
아, 닥터 필링스. 레오는 푸스슥 김샌다는 듯 웃었다. 미스틱 파워를 완벽히 각성한 미켈란젤로는 이제 땅을 거의 딛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의 힘은 수원지처럼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으니까. 가끔은 그게 넘쳐서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보니, 막내는 누워서 잘 수 있을 땐 확실히 자둬야 했다. 안 그러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막내의 부탁에는 여전히 약한(저 역시 그러하지만) 위대한 천재는 귀한 걸음을 행차해주셨을 것이고.
이제 레오나르도는 깼고, 악몽은 다시 기억의 아래로 기어들어 갔으니 괜찮지 않으냐고 능청을 좀 떨었는데, 도니는 더더욱 우거지상이 되더니 손을 내놓으며 명령했다.
“그럼 의수 내놔.”
그제야 레오는 도니가 뭔가 짐을 한 무더기 들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눈에 익은 공구함은 옛날, 뉴욕이 멀쩡하던 시절의 우리 집에서 흔히 보던 그것이다. 도나텔로가 오랜 파트너를 꺼내는 경우는 이제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레오는 몸을 조금 돌려서 도니가 제 팔을, 악어거북을 본떠 만들고 조인트를 붉게 칠한 그들의 묘비를 떼어가게 둔다.
그날, 라파엘의 시신과 레오나르도의 오른팔은 찾지 못했다.
도니는 옛날처럼 빠른 어조로 울퉁불퉁한 불만을 쏟아내며 이 전쟁통에 태어난 첫 작품을 확인하고 보수한다. 너 이 자식, 어차피 험하게 굴릴 거면 제때 와서 점검받으라고 했어, 안 했어. 에이프릴이 공격대에 돌리는 자원이 암만 많아도 빠듯해 죽겠는데, 부숴 먹기만 해봐. 의수 대신 네 머리를 깨줄 테니까. 겉으로 도무지 상냥할 수가 없는 형제의, 저 나름의 다정은 이 메마른 시대에는 지독하게 말랑하고 달다. 옛날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알 수밖에 없다.
라프가 태운 포드에서 피투성이의 제가 튀어나왔을 적의 일이다. 실혈로 기절했던 저는 그 10점 만점에 2점을 주면 후한 착륙 덕택에 잠시 정신을 차렸고, 남은 가족들을 보자마자 얼이 빠진 채 울기만 했다. 피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이키나, 이미 부상과 기력 소진으로 기절한 에이프릴은 도움을 줄 수가 없었고, 팔이 부러진 스플린터는 구급약이 뭐가 어디에 있는지를 빠르게 외쳤다. 그러니까 저희 중 그나마 의학지식이 있는 도니가 그 난장판을 수습했다는 말이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침묵을 입에 물고서, 아빠의 양주 컬렉션 중 독주 하나를 까서 소독약 대신으로 붓고, 가진 지혈제를 다 털고, 팔이 빈자리를 뜯어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의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실혈과 감염증으로 열이 들뜬 채, 저는 남은 팔로 도니를 붙잡고 마구 흔들며 “악어거북, 악어거북으로 해.”라고 헛소리를 했다. 도나텔로는 대답하지 않았고, 저의 기억은 거기서 한 번 끊긴다.
그리고 사흘 만에 눈을 떴을 때, 협탁에는 프로토타입 의수가 놓여있었고 레오는 그때 도나텔로의 침묵이 무언의 승낙이었음을 깨달았다. 단순히 악어거북이라고 외쳤을 뿐인데, 이 똑똑한 형제는 굳이 의수의 모양새를 제 체형이 아니고 라파엘에게 맞춰둔 거다. 조인트의 포인트 컬러는 마이키가 정했다고 했다. 빨강. 그들의 맏형이 즐겨쓰는 그 색.
이건 단순한 의수가 아니었다. 남겨진 형제 셋의 추모이고, 시신조차 남지 못한 형제의 묘비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실은 남겨진 우리가 그렇게 외치고 싶어질 뿐인, 후회로 점철된 무음의 아우성. 사실은 다 기만이고 자기만족일 텐데도. 왜냐하면, 그들의 맏이는, 라파엘은 혼자 남는 것을 참 지독히도 싫어했으니까.
때때로, 사실은 정말 자주, 달리는 걸 멈추고 혼자 있을 라프의 곁으로 콱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우울한 그림자는 저희 가족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은 이제 잘 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어깨 위에 달린 무게를 알고, 이러한 지옥 속에서라도 삶은 이어지고, 우리의 뒤에는 또 다른 십 대 아이들이 있다. 어쩌면 그냥 단순히, 맏형이 그토록 입이 닳게 말하던 영웅론을 따르는 걸지도 모른다. 아주 먼 훗날에, 드디어 겨우 만나게 된다면,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받고 싶어서.
상념은 철컥 소리와 함께, 오른팔의 감각이 연결된 것으로 끝난다.
“끝.”
“땡큐, 이제 다른 기지로 가?”
“아니, 온 김에 케이시 장비 좀 봐주고 나서.”
“흐음. 그래. 그럼 해 뜨고 보자고, 브로.”
도니는 그냥 손만 까닥 들어 보이고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레오는 괜히 이유도 없이 푸슬푸슬 웃었다. 아, 하긴 이게 얼마 만에 남은 형제가 다 모이는 건가. 전선에서 제일 먼 본부에 있는 에이프릴과 저기 서부에 있는 대디와 동부에 있는 드랙시까지 모이면 더더욱 완벽할 텐데, 그것까지 바라기엔 너무 사치였다. 레오는 다시 침대(라고 부르기엔 솔직히 열악하지만)에 벌렁 눕고 쪽잠을 청했다. 겨우 한두 시간이나 자겠지만, 다시 눈을 뜨면 형제 둘을 놓고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자그마한 행복을 품에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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