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NT

[RotTMNT/조각모음] After The Movie

* 투비로그에서 이사온 글

* 더 무비 이후를 가정한 조각글 모음집

* 내용이 내용인만큼, 2044에 대해 개인적인 팬피셜이 듬뿍입니다. 원작에서 못봤어/원작자가 이런 말도 했나? 싶은 건 다 팬피셜

* 필요한 캡션은 각각에 써둘 예정

* 시시때때로 추가될 수 있음

 


1. 미스터 라파엘

* 4형제+케이시

* 케이시는 실제로 생전 라프를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함

대 크랭 전의 상처가 거의 다 아물고, 다중평행우주가설 어쩌고에 의거해 케이시 존스가 이 시간선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을 즈음엔, 케이시는 이미 매드독의 면면과 꽤 친해져 있었다. 꼬박꼬박 커맨더라고 부르던 에이프릴과 가장 먼저 말을 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키와는 조금의 허물도 없이 친구처럼 굴었다. 도니에게 마냥 존경심 100%를 날리던 것도 그럭저럭 줄었으며(도니는 이걸 친해져서 좋다고 해야 할지, 무조건 존경받는 기회를 아쉽게 날렸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레오나르도 사부와 이곳의 레오를 완전히 분리해서 가끔은 그걸로 한 방 먹이기도 했다.

그런데 두 달이 넘도록, 케이시는 라프를 어려워했다. 그건 둘만 남겨질 것 같다 싶으면 냉큼 도망가는 식으로 나타났고, 덩치가 커서 그렇지 마음이 섬세하기론 팀의 상위권을 달리는 빅맨은 무척이나 시무룩했다.

사실 까탈스럽기론 제일가는 도나텔로와도 스스럼없이 굴면서, 라파엘을 어려워하는 건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라프가 오죽 마음이 꺾였으면 마이키가 저녁 형제 회의를 소집해서 의견까지 물었겠는가. 결국 마이키는 레오와 도니의 힘까지 빌려서 <둘이 친해지길 바라-회>를 개최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갑자기 하수도 공용 다용도실에서 라프와 마주한 케이시는 펄쩍 뛰더니, 곧 귀엽게 윙크하는 마이키를 보고 사태를 파악한 후, 저를 여기로 속여서 데리고 온 미들즈를 배신당했다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드라마틱한 반응을 보면서 라프는 뒷목을 긁적이다가 어먼 데를 보면서 말을 걸었다.

“그, 케이시? 내가 좀 험상궂게 생겨서 무서울 수는 있는데―,”

“예?! 아뇨! 무섭다거나 그런 거는 절대로 아니에요! 그, 어, 어, 라파엘 씨Mr. Raphael!!”

라파엘 씨. 하수도는 대체로 소리를 잘 반향을 일으켜 울렸고, 케이시의 당황한 목소리와 여러모로 놀라운 그 칭호는 침묵한 매드독들 덕에 더더욱 몇 중의 메아리를 울리며 차차로 가라앉았다.

족히 20초는 더 될 시간이 20분은 되는 듯했다. 케이시는 눈만 데록데록 굴렸다. 레오나 마이키가 이 어색한 공기를 깨 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였나. 모두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그 어색한 호칭을 들은 당사자인 라프마저, 자기를 미스터라고 부르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주저앉아서 거의 울다시피 하며 웃었다. 레오와 마이키는 아예 폐의 공기를 다 퍼낼 작정으로 웃다가 숨을 꺽꺽거리면서 바닥에 눌어붙었고, 도니 또한 끽끽 웃으면서 헛손질이 심한 채로 자기 패널을 조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의 영상을 비디오 클립으로 만들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이게 그렇게 웃길 일인가! 나한텐 정말 진지한 다큐멘터리인데, 왜 저들한테는 개그지? 아주 거칠고 터프한 미래에서 온 소년은 당황해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빽 소리를 지른다.

“아니, 그치만, 전 살아있는 라파엘 씨를 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갑자기 정적. 눈물까지 찔끔 흘려가며 웃어대던 그들이 이번엔 주먹만하게 커진 눈을 하고 눈을 깜빡였다. 케이시는 그 충격받은 표정들을 보고서 아차했다. 자신의 시간 선에서 그들 전부가 죽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해서, 죽음의 순서를.

제가 “사부를 또 잃을 순 없어요!”라고 말했던 건 때문에, 죽었다는 걸 인지는 했어도 그런 식의 죽음의 타임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몰랐을 거다. 아마도 넷이서 같은 순간을 맞이하면서 저를 지금으로 보냈다고 생각했겠지. 지난 두세 달 여기에 적응하면서 본 바에 의하면 그렇다.

곧, 이들 중 정보에 가장 엄격한 차남이 표정을 정리하며 묻는다.

“방금 그 말은 넘겨짚을 수가 없겠는데. 말해. 전부. 만약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심적 피해가 막심할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내가 취조실 하나를 열어줄 수도 있으니 고르도록 해.”

취조실? 우리 그런 것도 있었어, 도니? 상담실의 잘못 아냐? 다른 세 명이서 조잘조잘 조용히 되묻는 걸 들으면서 케이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각오를 다졌다. 이 시간선에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내면에 입은 상처는 털어놓고 보듬고 일어나야 한다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다독일 줄 아는 미켈란젤로가 그리 말했었다. 닥터 필링스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나, 화법과 태도는 그가 마에스트로에게서 봤던 대로였고 케이시는 두 마이키에게 힘을 입어 나름의 용기를 냈다.

 

*

이야기가 다 끝났을 즈음에, 레오는 문자 그대로 퍼렇게 질려있었다. 원래 나비효과라는 게 어디까지 커질지 모르는 법이라곤 하지만, 그 한 번의 실수가 단순한 파멸이다못해, 가족의 죽음까지 이끌었다는 게 충격인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바로 그 미래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고 그저 운이 좋아 비꼈음에 새삼스럽게 마음이 서늘해졌거나. 크랭 전 이후 레오의 불안정함을 모두가 알았기에, 그가 반사적으로 형제들의 팔을 붙들거나 하는 일 따위를 그냥 두었다.

의외로 멀쩡하게 구는 건, 먼저 죽었다는 당사자(이 표현이 맞기는 하는가? 케이시는 잠깐 갸웃했다)인 라프와 도니였다. 오히려 라프는 본인이 지키고 죽었다는 점에 만족한 표정을 짓는 바람에 레오가 도중에 말을 끊고서 “그 표정 금지야, 라파엘 하마토!”하고 풀네임까지 소리치게 만들었고, 도니는 미래의 나도 당연히 도나텔로이니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라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그냥 레오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나마도 분위기를 읽은 마이키가 얌전히 입을 다물어줘서 망정이지, 막내마저도 저 흐름에 동참했다면 레오는 그냥 집을 나갔을 거다.

“―오, 거기의 내가 정말 정말 정말 큰 일을 해냈잖아! 좋아, 꼭 따라잡을 거야!”

전언 철회. 레오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2. 로또 당첨 번호

부제 : 미래의 퍼킹어썸지니어스한 자신이 넘겨준 겁나 쩔어주는 식물 영양제 배합법(in 케이시 장비의 블랙박스 모듈)

* 도나텔로 단독

* 도니가 TRUE-PASSION 원예가라는 건 놀랍게도 공식

케이시가 온몸에 둘둘 감고 있는 것은 미래(이제는 그랬을 수도 있었던 미래지만)의 자신이 만든 테크놀로지였다. 애초에 케이시가 아직 수상한 소년으로 취급받았던 때에도 도니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박혀있는 그것을 매우-아주-꼭 뜯어보고 싶었고, 모든 것이 안정되기가 무섭게 케이시에게서 장비를 강탈했다.

터틀 탱크에서 반 진담 반 농담으로 미래의 자신이라면 로또 번호를 넘겨줬을 거라곤 했어도, 케이시에게서 들은 미래상을 보아하니 그런 건 물 건너간 셈이라 도나텔로는 순수하게 미래의 자신이 어디까지 기술력을 갈고닦았는지가 궁금했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지. 그게 새로운 장비 개발로 이어져, 파멸로 가는 미래를 또 한 번 막아줄지.

크랭의 테크노드롬에 접속한 적이 있는 도니는 케이시의 장비에 걸려있는 몇몇 보안이 단순히 코딩의 문제가 아님을 마주했다. 그건 생물학과 섞은 시스템이었는데, 크랭 좀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각했을 때, 항바이러스 기제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는 암호화와 검증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당연히 온갖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 도나텔로가 생각했을 법한 해답이다. 스스로가 뿌듯하긴 한데, 정말 더럽게 복잡해서 열받긴 한다. 여하튼 이 암호화된 것을 풀어내는 키를 발견하는 데에만 일주일은 꽉꽉 채워서 썼다. 간신히 케이시의 장비에 심겨있는 모듈을 분리해낼 수 있었을 때, 도니는 마시던 커피를 던져버릴 정도로 환호했었고―,

그렇게 빠르게 기뻐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래, 이건 수평보정 기능인 거고, 그다음은 악력 감지 센서. 얘는 아까 센서에 연동해서 출력 조절하는 것 같고―, 아니 이건 뭐야.”

암호화된 부분을 풀면, 원래 제가 코딩하던 대로 주석도 깔끔하게 달아둔 완벽한 논리의 고리가 나온다. 지금의 자신이 손을 댈 수 있는 것과 따라잡아야 할 것을 구분 지어가는데, 도니는 갑작스레 논리 구성 바깥에 존재한 어느 모듈을 발견했다. 모듈과 펑션콜을 어떻게 짜 맞추어 봐도 그 블랙박스는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만일 하나를 위한 기기 자폭 및 사용자 탈출 모듈이 꼭꼭 숨겨져 있는 것도 찾았으니, 같은 기능을 가진 것도 아닐 터다.

그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뜨인다. 전쟁 한복판에 있는 미래 버전의 도나텔로 하마토가 실제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듈을 굳이 메모리를 소모해가면서까지 넣어두었다고? 비록 이게 kb단위의 지극히 적은 메모리라지만, 중요한 것은 효율을 완벽히 무시한 설계라는 점이다. 용량 단위로 보아, 이것은 아마 코드보다는 단어열. 미래의 자신이 저에게 남긴 단어열이라. 한때 폐기했던 로또 번호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좋아, 어디 해보자고.”

도니는 기세 좋게 블랙박스 해체에 덤벼들었다.

그리고,

“이런 미치도록-빌어 처먹게-천재적인 fXXking-awesome-genius 미래의 나새끼 같으니라고!!”

결국 키보드를 내리쳤다. 이게 남은 인류를 이끈 자의 테크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풀었다 싶으면 에러가 뜨고, 좀 해볼 만하다 싶으면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 크랭도 이 정도의 락이 걸려있으면 그냥 때려치울 거다! 솔직히 걔들은 그냥 바이오-메카닉-테크라는 우리한테 없는 기술을 쓰는 거지, 그거 자체는 걍 누가 접속해도 뚫어버리는 거 아니었나(물론,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도니는 씩씩거리면서 이제 천 번째에 접어드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 어떤 에러 코드도 없이, 모듈이 열렸다. 이렇게 사람을 애먹여놓고 보여줄 게 뭔가 한번 보자, 하면서 도나텔로는 그 모듈을 띄웠고,

“하, 하하하―.”

다른 미래를 쟁취했을 도나텔로 하마토에게.

미안하게도 우리가-상호-협의하지는-않았지만-시공-연속체-이론에-의거해서-체결된-사항인 로또 당첨 번호를 줄 수는 없지만, 그것만큼이나 실용적인 걸 넘겨주지. 이 메마른 시대에도 인류를 먹고 살게 해 준 귀한 식물 영양제의 배합법이다. 원한다면 특허라도 내. 그 정도면 로또 당첨 번호 대신은 충분히 된다고 판단한다.

(이 부분은 10ml 단위의 소량 배합법과 10L 단위의 대용량 배합법이 적혀있다.)

그리고 극히 낮은 확률로, 이것을 열어본 크랭이 있다면―네 그 빌어먹을 DNA 패턴 정보를 인식한 이게 터질 거니까 지옥으로 떨어져.

도나텔로는 차마 제 지식으로는 명명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쳐서, 한참 동안 허탈하게 웃었다. 케이시에게서 들었던 내용을 전부 종합해보면, 미래의 도나텔로는 그의 남은 형제 둘이 언젠가는 타임 게이트웨이를 열어서 케이시를 보낼 거라고 예측했던 거겠지. 졌다, 완전히 졌다. 파멸을 알고서도 그 미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을 미래의―어른인 자신을 이기려면 정말로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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