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소마 단편

잿빛 향훈

사람에게 좋은 향기가 나는 걸까, 좋아하는 사람의 향기가 좋은 걸까.

하스미 케이토 x 칸자키 소마

가볍게 씀….

-

조용한 다실 안. 소마가 천천히 찻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방 안에 은은한 녹차향기가 점점 퍼져나갔기에 소마의 입가에도 스르륵 웃음이 번져갔다. 가장 좋아하는 찻잎이었다. 찻잔에 조심스레 차를 따르고서 들어올렸다. 눈을 감고 향을 음미했다. 코끝을 간질이는 향이 기분 좋았다.

“칸자키, 오래 기다렸나?”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턱에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며 들어오는 케이토의 모습이 보였다. 소마의 입가에 아까와는 또 다른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움과 행복이 묻어있는, 순수한 웃음. 익숙하게 소마의 건너편에 털썩 앉고서 케이토가 조금은 머쓱하게 웃었다.

“갑자기 잔업이 생겨서, 예정보다 늦어버렸군.”

“후후, 괜찮소이다. 지금 딱 알맞은 온도로 물이 식어서, 외려 적기에 오신 거요.”

소마가 배시시 웃고서 들고 있던 잔을 케이토의 앞에 내려두었다. 케이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는 잔을 들어올렸다. 소마와 마찬가지로 향을 음미한 뒤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입가에도 덩달아 웃음이 피어올랐다.

“향이 좋군.”

덤덤하게 읊조린 칭찬의 말에 소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볼을 옅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애꿎은 주전자만 만지작거리며 눈을 굴렸다. 익숙한 소마의 반응에 케이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자신의 모든 말에 저리도 솔직하게 기뻐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덩달아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기에,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주전자를 감싸쥐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소마가 갑자기 퍼특 고개를 들었다. 눈을 반짝이며 케이토의 옆으로 엉금엉금 다가왔기에, 케이토가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이지 칸자키?”

“하스미 공, 안아주시오!”

“음?”

“『하구』 해주시오!”

묘하게 뿌듯한 표정으로 소마가 활짝 양 팔을 벌렸다. 하구…. Hug를 말하는 거겠지.

“…음, 급하게 오느라 땀을 좀 흘렸다만. 괜찮은 건가?”

“괜찮소이다! 외려 더 좋소!!”

“구제불능이다.”

예상한 대답에 살풋 웃음을 흘리고는, 케이토가 익숙하게 허리를 끌어안아주었다. 케이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서 소마가 행복한 듯 웃었다. 그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에게서 나는 향냄새가 좋았다. 케이토의 향이 좋았다. 이 방 안을 가득 채운 녹차향보다.

그래, 소마는 그의 향을 정말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그에게 포옹을 요구하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달라고 팔을 활짝 벌리며 올려다보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주는 그의 표정도 좋았다. 자신보다 조금 더 따뜻한 그의 체온도 좋았고, 귓가에서 속삭여주는 그의 나직한 목소리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의 향을 잔뜩 맡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았다.

향냄새가 섞인 그의 따뜻한 체향은, 다른 사람들과 꽤나 쉽게 구별됐다. 적어도 소마에게는.

평범한 오후. 소마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휴게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소마를 향한 느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하던 소마의 코끝에 익숙한 향이 스쳤다.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발걸음 소리가 소마의 등 뒤에 멈추자, 소마가 눈을 감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하스미 공, 오셨소이까?”

“…그래.”

조금도 동요없이 자신을 환영하는 소마의 모습에 케이토가 멈칫했다. 헛웃음을 짓고는 소마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을 끌어와서 손등에 볼을 부비며, 소마가 웃음과 함께 그를 올려다보았다. 부드럽게 그를 내려다보며 케이토가 물었다.

“매번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차리는 건가 칸자키?”

“음, 으음… 무사의 감이오!”

“무사의 감?”

케이토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소마를 내려다보았다. 의심이 담긴 그의 눈빛에 소마가 시선을 데굴 굴렸다. 케이토가 그의 손을 괜히 다시 얽어잡았다.

“정말인가?”

“무, 무뭇….”

손가락이 소마의 볼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심장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너무 다정했고, 따뜻했다. 나그네의 코트를 벗기는 태양처럼. 결국 소마가 눈을 질끈 감고서 실토하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 하스미 공에게서 나는 향기가 있기에….”

“…나에게서 나는 향기?”

“그렇소이다! 뭐랄까, 절간에서 쓰이는 향 냄새도 있고, 평소 쓰시는 것들의 향도 있고… 따뜻하고 포근한 향이오!”

“흐음….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군.”

케이토가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잡고 있던 소마의 팔을 풀고서, 그가 무릎을 굽혀 소마의 목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레 가까워진 그의 거리에 소마가 그대로 굳었다. 소마의 목에 고개를 파묻고서 케이토가 숨을 들이쉬었다. 완전히 굳어버린 소마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변해갔다.

“하, 하스미 공…?”

“음…. 그렇군.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겠어 칸자키.”

“에엑?!”

“네녀석한테는 시원한 향이 나는군. 차향도 나고.”

“하스, 하스미 공?!”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하기 어렵다만… 계속 맡고 싶어져.”

소마의 얼굴은 이제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완전히 붉었다. 차마 밀어낼 생각도 못하고 어버버- 그를 받아들였다. 사실, 거부하기에는 너무 좋기도 하고. 소마의 반응에 케이토가 피식 웃고는 몸을 들어올렸다. 하스미 공이 먼저 포옹을? 과한 행복에 여전히 굳어있는 소마를 그대로 둔 채 케이토가 소파를 따라 걸어갔다. 소마의 옆에 앉은 뒤, 여전히 공중에 멈춰 있는 소마의 손을 잡고서 제게 끌어왔다.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좋은 향이다, 칸자키.”

“가, 감사하오….”

직설적인 칭찬에 부끄러워진 소마가 시선을 피했다. 괜히 손 끝을 꼼지락거리고만 있자, 케이토가 양 팔을 벌렸다. 익숙한 그 모습에 소마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의기양양한 표정의 케이토와 눈이 마주쳤다.

“허그다, 칸자키.”

“…!”

소마의 눈이 커졌다. 심장이 간질거렸다. 바보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소마가 그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이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케이토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소파 위에 포개진 상태로 서로를 끌어안고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둘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소마가 케이토의 볼을 붙잡고서 꾸욱- 입을 맞췄다. 못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케이토가 그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둘의 입술이 몇 번 더 맞닿는가 싶더니, 긴 입맞춤으로 이어졌다. 서로의 향과 온기가 너무도 짙어서, 마치 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혼미했고 갈증이 짙었다. 계속 닿고 싶다는 열망이 아닌 떨어지기 싫다는 욕망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서로의 향이 끊어질 줄 모르고 계속해서 섞였다.

케이토가 자연스레 양 팔을 벌렸고, 소마는 활짝 웃으면서 그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소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케이토가 익숙하게 그의 체향을 찾았다. 소마 또한 그의 목덜미에서 기쁘다는 듯 코를 씰룩였다. 소마의 머리카락을 괜히 손으로 쓸어내리며 케이토가 속삭였다.

“비누를 바꾼 건가?”

“와앗, 어찌 아셨소?”

“조금 다른 향이 나서. 이것도 좋군.”

“후후, 칭찬 감사하오!!”

제 변화를 바로 알아차린 케이토였기에 소마가 기쁜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런 소마를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던 케이토가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조금은 따뜻해진 뺨이 귀여웠다. 다음에는 같이 가게에 가볼까. 그런 얘기를 속삭이는 둘을, 쿠로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멀리서 바라보았다.

“…비누 바뀐 것까지 알아차리는 거, 좀 징그럽지 않냐….”

팔에 돋은 소름을 문지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둘이 좋다면 뭐…. 근데 내가 볼 때는 이상해. 흐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셋이 다같이 대화할 때만 그러지 마라. 나 빼고 대화해줘. 둘을 멀리서 보며, 괜히 제 몸의 향기를 맡아보는 쿠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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