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연한 비밀
누군가에게는 아니었지만
하스미 케이토 x 칸자키 소마
가볍게 씀
-
“칸자키, 잠깐 이리 와라.”
“무? 왜 그러시오?”
케이토의 부름에 소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손을 들어올리는 케이토의 모습에 소마가 익숙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준 뒤 케이토가 부드럽게 웃었다.
“실밥이 붙어있잖나. 조심해야지.”
“와앗, 살펴주시어서 감사하오!”
“내가 작업하던 게 붙었나 보네.”
“그런 것 같군.”
쿠로가 하품을 크게 하며 기지개를 폈다. 사무실 한켠에서 의상작업을 하는 쿠로와, 서류 작업을 하는 케이토, 그리고 그 사이에서 둘의 잔심부름을 하는 소마. 어느날과 같이 평화로운 하루였다.
하스미는 눈도 좋다니까. 안경을 껴서 그런가.
몸이 뻐근해져 왔기에 소파에 양팔을 올리고 드러누웠다. 케이토와 소마가 나누는 대화소리가 웅엉웅얼 들려왔지만, 피곤한 쿠로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다시 작업 좀 해볼까. 무거운 고개를 들어올리자 주먹만한 크기의 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예 케이토의 옆에 의자를 끌고와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케이토의 얘기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소마는 볼까지 옅게 붉히며 웃고 있었고, 케이토는 그런 소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다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케이토가 몸을 기울여서 소마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소마 또한 그에 응답하듯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서 케이토의 귓가에 소근거렸다. 칸자키는 역시 곱네. 지금 모습을 보면 그 무시무시한 일본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고 다니는 사무라이라고 아무도 못 믿을 걸. 정말 유서깊은 집안의 아가씨 같다니까. 뭐, 절반정도는 맞나? 쿠로가 둘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의 시선이 너무 과했는지 이내 케이토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부자연스럽게 의자를 돌렸다. 소마 또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서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라, 방금 손 잡고 있었던 건가.
소마의 몸으로 인해 가려진 애매한 각도였기에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둘 다 한 손만 쓰고 있었지. 음… 손을 잡고 있을 이유가 뭐지. 손에도 뭐가 붙어있었던 건가. 아니면 좀 춥나? 흐아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쿠로가 머리를 벅벅 긁고는 몸을 일으켰다. 의자를 원위치에 둔 소마가 삐걱거리며 쿠로에게 다가왔다.
“키, 키류 공! 피곤하진 않으시오?”
“엉? 조금 그래. 어후 배도 고프다. 다같이 뭐 먹으러 갈까.”
“좋은 생각이오!”
“으음. 그래, 그럴까.”
별 생각없이 어깨를 돌리는 쿠로, 어색한 웃음과 함께 양 손을 꼬옥 쥐고서 괜히 시선을 피하는 소마, 덤덤한 표정으로 안경을 추켜올리지만 귀끝이 빨개진 케이토. 쿠로는 단지 카레를 먹을까 규동을 먹을까 고민할 뿐이었다.
얘네들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뭘.
“칸자키는 어디있지?”
“음? 잠깐 마실 거 사러간 거 같은데.”
“아아, 그런가….”
쿠로의 말에도 케이토는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몇 번씩 펜을 똑딱거리고, 불안한 듯 펜을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고, 다리마저 떨었으니까. 3분에 한 번씩 시계를 확인하면서 ‘너무 늦는 거 아닌가?’ 불안감 섞인 말을 던지기를 몇 번, 결국 서류작업은 포기했는지 핸드폰 화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5분쯤 지났을까,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케이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오고 있나보군.”
“뭐야, 연락해봤어?”
“아니 아직.”
“…? 그럼 어떻게 알았는데.”
“그야….”
말을 다 잇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뭐야, 궁금하게 왜 말을 하다 말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쿠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GPS라도 확인했겠지.”
“무슨, 어떻게 알았지?!”
“진짜였냐고.”
그거 아직도 삭제 안 했어? 쿠로가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민망한지 얼굴이 벌개진 케이토가 고개를 휙 돌렸다. 정리할 타이밍을 놓치는 것 뿐이다. 킥킥 웃던 쿠로가 케이토를 향해 턱을 까딱였다.
“그래서, 어디 있었는데.”
“우리가 자주 가던 버블티 가게에 간 것 같더군. 사람이 많았는지 한참 기다린 모양이야.”
“아~ 지금 시간대면 확실히 사람 많겠지.”
쿠로의 덤덤한 반응에 긴장이 풀렸는지 케이토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GPS 신호기가 천천히 ES 건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부드럽게 웃으며 작은 점의 움직임을 바라보더니, 눈을 감고서 화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가방을 뒤적이고 있던 쿠로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빨리 오면 좋겠군.”
“목 많이 말라? 물이라도 줘?”
“…아니, 그건 아니다. 사양하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케이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쿠로가 바라보았다. 뭐… 버블티가 빨리 먹고 싶은가보지.
“쿠로 씨, 뭔가 들은 거 없으세요?”
“어엉?”
급작스러운 안즈의 물음에 쿠로가 눈을 깜빡였다. 뭘 들어? 그의 반응에 안즈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있나 싶어서 그가 바느질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안즈를 바라보았다.
“…뭔데 그래?”
“그러니까… 케이토 선배랑 소마 군이요!”
“?? 둘이 왜?”
“둘이… 조금 뭔가가 있어보이지 않나요?!”
“???”
뭔가가 뭔데? 쿠로의 얼굴에 무수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계속 붙어있잖아요!”
“그야 같은 유닛이니까.”
“없으면 불안해하고….”
“뭐, 하스미가 좀 극성이긴 하지.”
“평생을 약속한다거나!”
“걔네들 단어선택이 좀 무겁긴 하지.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지금같은 21세기에 주종관계를 맺고 있는 거 자체가 오류 아니냐고….”
걔네들은 원래 그랬어 뭘 새삼스레 그러나 했다. 흥미가 떨어진 쿠로가 다시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무렇지 않은 쿠로의 모습에 안즈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비장하게 몸을 숙였다.
“…저번에 탕비실에서 둘이 몰래 뭔가하고 있었다구요!”
“…? 뭘 했는데?”
“그 그건 저도 잘 모르지만…. 여튼 수상해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제가 탕비실 문을 열려고 하니까 누군가 문에 기대고 있는지 안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가지고 똑똑 두드렸더니 안에서 사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1분쯤 뒤에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케이토 선배랑 소마 군이 나왔거든요. 근데 둘 다 얼굴이 빨갰어요. 뭔가 있었다니까요!”
“뭐, 칸자키가 문고리라도 부숴서 고치고 있던 거 아냐? 사실 나도 저번에 그랬거든.”
쿠로의 말에 안즈가 입을 쩍 벌리고 그대로 멈췄다. 뭔 얘기를 하나 했다. 쿠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실을 정리했다.
“둘이서 외박하는 일도 잦았는데…?”
“우리 홍월 셋 연습 때문에 그럴 걸? 나는 나가서 연습한 김에 집에 가서 자고 그랬거든. 걔네들 딱 봐도 도련님에 쑥맥인데 설마 뭘 하겠냐고….”
“….”
안즈가 한숨을 푹 내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겠죠? 하긴,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전 또 ES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려나 기대했는데….”
“아하하. 설마. 걔네 둘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엄마 젖이나 한참 더 먹어야 할 걸 둘 다.”
킥킥 웃으며 새로운 실을 바늘에 꿰었다. 하여튼간에, 다들 이런 가십은 정말 좋아한다니까. 쿠로의 반응에도 안즈는 무언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옷감을 만지작거렸다. …아닌데 분명 뭔가 있는 거 같은데…!
그로부터 며칠 뒤, 리즈링 회식날.
케이토는 이날따라 유독 술을 많이 마셨다. 레이도, 나즈나도 자꾸만 케이토에게 술을 따라주었고, 케이토는 평소와 달리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다 받아마셨으니까. 하스미 군은 좀 마셔야 한다네 라던가, 축하주 겸 벌주야 케이토칭! 라던가의 말을 하며 따라주는 둘의 옆에서 소마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본인이 대신 마시겠소이다. 라고 소마가 속삭여도 케이토는 고개를 내젓기만 했다.
뭐야, 뭔 일이라도 있나?
그 옆에서 쿠로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기를 집어먹기만 했다. 결국 케이토는 얼굴이 빨개지고 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할 정도로 잔뜩 취해버렸고, 레이는 즐겁다는 듯이 그런 케이토를 소마에게 떠밀었다. 붉어진 그의 볼을 손등으로 식혀주며 소마가 걱정스레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지러워서 그런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케이토가 소마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괜찮아 칸자키. 뭐어… 장인어른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만….”
소마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서 그가 몸을 일으켰다. 잔뜩 흐트러졌어도 그의 눈빛은 언제나와 같이 다정했다.
“이정도 시련은, 약과지.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거지만. 우리 둘이라면 말이다. 그렇지 않나?”
잠시간 멍한 표정을 짓던 소마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소마의 눈가에 눈물이 일렁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를 마주 와락- 끌어안고서 소마가 그를 부축했다.
“우리네는 먼저 들어가보겠소이다. 즐거운 식사 되시오.”
“엉? 어어.”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고기를 씹었다. 뭔 일 있나? 케이토와 소마가 나가자마자, 조용했던 회식자리가 다시금 복작거렸다. 모르는 척 하는 것도 힘들었다. 언제 말하나 했다. 생각보다 늦었긴 했다. 잘 어울린다. 이런 칭찬들이 쏟아져내렸고, 쿠로는 여전히 따라갈 수 없었다. …뭐야, 뭔 일인데??
“키류, 받아줘라.”
다음날. 멀끔한 모습으로 출근한 케이토가 쿠로에게 작은 편지를 하나 건넸다. 오우, 이게 뭐람.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든 쿠로는, 편지지 겉면에 써진 단어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결혼합니다?”
“큼…. 그래. 너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누구랑…?”
“…? 누구겠나?”
쿠로의 반응에 케이토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키류, 설마 몰랐던 건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편지 - 청첩장 - 을 조심조심 열자, 그 안에는 ‘하스미 케이토, 칸자키 소마’ 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칸자키와 결혼한다고!?”
“…?? 그, 그래. 사귄지 오래 되기도 했고, 이제 칸자키도 성인이니까.”
“사귄지 오래 됐다고!?!”
“??? 어… 그래. 올해로 3년째군.”
“칸자키가 2학년이었을 때부터 사귀었다고?!!”
“정말로 몰랐던 건가 키류???”
연달아 경악을 토해내는 쿠로와,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케이토. 그의 뒤에서 덩달아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 소마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안즈. 이 모든 상황이 한 편의 코메디 같았다.
“아니… 나는 너희 둘이 원래 그런 이상한 관계인 줄 알았지….”
“…키류 네놈은 가끔보면 편견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헷갈리는군.”
“둘 다 일 거 같긴 해.”
“어이, 그렇게 쉽게 인정하지 마라. 이 구제불능.”
케이토가 한숨을 푹 쉬고서 소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마는 익숙하게 그의 손을 맞잡으며 다가왔다.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비밀로 해드려서 송구하오. 본인이 희망했소이다! 조금 부끄럽기에…. 허, 허나 키류 공께서는 정말로 이미 알고 계셨을 줄 알았소…! 다른 이들도 전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으셨다고 하시어….”
“…어제 회식에서 모두가 한 말이 그거였구나….”
허탈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쿠로가,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 움찔 멈췄다. 그가 케이토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에게서 급작스러이 느껴지는 살기에 케이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스미.”
“왜, 왜 그러지?”
“…그러면 칸자키랑 ‘연인다운 일’들도 했겠네?”
“음, 으음. 그랬지.”
“…어디까지?”
“………”
침을 꿀꺽 삼킬 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매서운 살기에 입만 달싹이고 있자, 쿠로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둘이 외박한 적 있다며.”
“…있지.”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케이토의 반응에 쿠로가 ‘이런 미친-’ 욕설을 내뱉고는 케이토의 멱살을 잡았다. 아, 이런. 둘의 옆에서 소마는 어제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쿠로를 말렸다.
가장 힘든 장인어른이 남아 있었군 그래….
콜록. 잡힌 멱살에 숨쉬기가 어려웠기에 기침을 토했다. 그래도 소마에게 말했듯이, 둘이라면 어떠한 시련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빨간 오니의 시련은 좀 많이 힘들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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