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백업

BLUR

흐려진 경계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 폴리아모리 3인 드림입니다………)

(창작 지휘관 캐릭터가 들어가있습니다.)

태양빛이 푸른 바다에 내리쬐어, 부서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였다. 이렇게 넓은 물 위에서 빛이 반짝이는 경험을 가까이서 할 수는 없었기에, 이 모습에 대해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아니, 그 말 이외에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그곳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 건, 소위 걸레짝이라는 속된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기저기 옷이 찢기고, 더럽혀져있는 청년의 구두였다. 이미 꽤 고된 여행과 전투를 했던지 붉은 혈액이 굳어, 너저분하게 얼룩진 구두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경쾌한 타격음이 그의 귀를 씻겼다.

치열했던 전투의 끝에 그가, 그들이 밟게 된 마지막 장소는 이곳이었다. 그것을 피부를 통해, 가슴을 통해 느끼게 된 청년은 고개를 돌려, 그와 함께 온 구조체들 쪽으로 손을 흔들어보이곤 다시 바다를 향해 몸을 숙여, 손으로 물을 떠냈다.

"물이 맑고, 퍼니싱 농도도 적은 것 같고... 이런 곳을 찾은 게 이제야 겨우 두번째인 건 조금 아쉽지만... 아마 여기라면 잠깐 쉬었다가 가도 될 것 같은데. 괜찮은 장소를 찾아서 다행이지?"

홀로 중얼거리며 바라보는 투명한 물이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혼자서는 외로웠다. 외로우면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마치 아까의 혼잣말이 말을 걸려고 했던 제스처였다는 듯, 구조체들 쪽으로 몸을 향하였다.

그 의도를 아는 건지, 사나운 인상의 회색 머리 남성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잔뜩 침식체들을 헤집어놓고, 손은 상처입어서 피가 나면서도 계속 앞서나가는데다가 여기저기 쏘다니고. 네 멋대로 움직이는 꼴을 보니 말대로 괜찮은 모양이긴 한가보군."

"우리야 뭐 구조체지만, 지휘... ...인 클라우스는 인간이니까! 아무리 신체가 퍼니싱에 강하다고 해도 쉽게 다치는데다가, 소대의 중심이야. ...지금은 비록 소대조차 아닌 조라고 해도! 일단 넌 소중하고 중요하단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 정도는 알고있어. 모를리가. 나는 일단 지휘관의 직위라는 걸 알고, 또...너희가 나보다 훨씬 강한 존재니까, 당연한 걱정이라는 것도 알...고..."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의 앎을 표현하던 그는 문득, 바다를 경계로 둘과 자신이 갈라져있다는 것을 깨닫고 목소리를 줄여갔다. 이런 경계에 평상시라면 신경쓰지 않고, 말꼬리를 늘리지도 않았겠지만 오늘따라 무언가를 고민하듯 눈동자를 굴렸다.

고민이 끝났는지, 말수가 줄었던 그는 곧, 갑작스럽게 말이 줄은 것에 의문을 표하는 둘에게, 아까까지 제스처를 취하던 손을 정중하지만 편안하게 내밀며 웃어보였다.

"...손 잡을래?"

"끌어당길 걸 누가 모를줄 알고. 정비받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러니 거절하지."

"그렇다면...가만히 있겠다 한다면?"

"..."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그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에,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비슷한 바다에서, 클라우스 자신이 먼저 그에게 손을 잡아도 되냐고 요청했었던... 그런 기억이.

그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웃는 듯 당황한 듯,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하다가, 언뜻 한 손에 천천히 올라오는 무게감에 살짝 눈을 크게 떴다.

따뜻한 온도가 느껴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무게가 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포개어진 손의 골격을 하나하나 느끼려는 듯 손가락을 움직이고, 손을 더듬다가 곧 고쳐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그 행위를 하고 있는 둘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은 알기 어렵게끔 조용히 깍지를 꼈다. 아마 이런 가볍고 당돌한 손잡기는, 카무이겠지. 마음속으로 그리 생각한 그는 믿음을 가지고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으음, 그래도. 봐, 카무이는 벌써 손 잡고 이쪽으로 넘어왔는걸?"

"뭐?"

"지휘관이 손을 계속 내밀고 있는데 무시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 물론 나는 무시가 아니라 언제 잡아야할지 조금 고민했던 거지만!"

그 믿음은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금발의 구조체는 이미 지휘관의 다 헤진 장갑 때문에 속살이 드러나는 손과 자신의 코팅이 벗겨져 쇠로 된 뼈대가 훤히 드러나보이는 손을 꼭 마주잡은 채로, 언제나처럼 밝은 표정으로 일렁이는 바다를 밟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둘 사이에 경계는 없었다는 듯이 서로 신체는 다르지만 똑같이 너덜너덜한 상태로, 그 둘을 어이없게 바라보는 표정으로 서있는 카무에게 시선을 두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연신 기울였다.

두 명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곤란했던지, 살짝 고개를 돌려 시선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에, 멀뚱한 표정으로 서있던 클라우스는 그에게 웃어보이며 회상이라도 하듯이 눈을 감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픽 내었다.

"무시 안 했어. 그리고 넌 뭘 그렇게 실실 웃어?"

"아니, 정말 옛날과 변함없구나 싶어서. 난 분명 옛날부터 직접 본 건 아닐텐데."

"..."

그런데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과거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아닐텐데,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리 느껴져.

뭐가 그리도 좋은지 분명하게 들뜬 어조로, 경계 너머에 있을지라도 들을 수는 있을 정도로 작게 읊조리며 고개를 들어, 곁에서 단단히 손을 맞잡고 있던 구조체를 살짝 올려다보며, 살짝 기대고 연인에게 속삭이듯 다정히 물어왔다.

"어때, 카무이가 보기에는? 난 카무하고는 너보다 오랫동안 있어본 건 아니니까,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 것 같네. 변한 것 같아?"

"음~... 글쎄. 확실히 예전보다는 덜 괴팍해졌어."

"지금 앞에서 대놓고"

"하지만!"

곧 화내기라도 하려는 듯 표정이 안 좋아지는 카무를 보던 카무이는, 마치 끝까지 들어보라는 듯 빠르게 말을 끊으며 손사래를 치듯 한 팔을 들어 손을 휘휘 젓고, 그 손을 가볍게 클라우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분명히 아직 카무는 카무 그대로야. 봐, 날 대하는 것도 똑같고. ...클라우스는 변하지 않는 게 좋은 거지?"

그 질문에 조금 생각할 필요성을 느꼈던지, 연신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현함과 동시에, 자신이 대답하고자 하는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매뉴얼에 적힌 대로, 틀에 박힌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의 진심을 축약해서 전할 수 있는 그런 대답을.

"...변하지 않은 것도 좋고, 변한 것도 좋지만... 글쎄. 둘 다 어느 쪽이 좋거나 싫다고 말하기는 애매해. 하지만 역시 그런 것보단..."

"변하기 전이거나 후거나, 일단 '그 존재'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던가? 아마 카무의 표정을 살펴보던 그는, 미간이 미묘하게 찡그려지는 걸 보자마자 비슷한 말을 했던 건 맞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번에 전해진 건 정말로 진심처럼 느껴졌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강물 흘러가듯 지나간 소리였다면, 이번에는 정말 그의 마음에 와닿는... 그런...

"...하아..."

"...미안, 마음에 안 드는 답이었어? 내 진심이었는데."

"나는 마음에 들었는데. 아마 카무도 마음에 들었는데 일부러 저렇게 반응하는 거 아닐까?"

...보통이었다면 전혀 아니라고 단칼에 잘라버렸을테지만, 이상하게 한숨을 지은 후에 눈만 감고 조용히 듣던 카무가 입을 연 건 한참 뒤였다. 그 말은 분명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과도 같았으면서, 특히 클라우스에게는 하나의 청신호이자 강이 흐르고 흘러, 새로운 바다를 만난 연대기를 직접 관람하게 된 것과 맞먹는 기쁨, 그리고 벅차오름을 가져다주는 말이 되었다.

"손."

"응?"

"손 내밀어."

"...잡고 그쪽으로 넘어가게."

그 말을 끝내자마자, 다시 파도가 다가와 카무의 발목을 감싸고 다시 흩어졌다.

그를 유도하는 듯한 파도의 움직임에 의해 일시적으로 지워졌던 모래와 물의 경계가, 다시 명확하게 생기게 될 때 즈음에 환하게 웃는 클라우스의 손을 단단히 잡은 카무는 그 경계를 완전히 넘어서, 바다에 발을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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