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1 갑부에게는 푼돈

울다하 달 회랑 ( 9.4 , 11.4 )

다육이 by 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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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외의 모든 설정은 어느정도 날조임

신문 호외를 뿌리며 하루를 벌어먹던 주느비에브에게는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아버지가 있었다.

술독에 빠져살던 아버지는 어느날부터 돌아오지 않았고 소녀는 길거리에서 객사했거니 싶어 아버지의 골동품을 모두 처분하려 했다.

누가 알았을까, 진흙과 먼지가 가득 쌓인 골동품 속에서 벨라흐디아 시절의 귀한 유물이 가득 숨어있다는 것을.

주느비에브는 평소 자신의 신문을 잘 사 주시던 누누주바 선생님께 푼돈을 꾸어 그것들을 모두 동방의 경매에 붙였다. 그리고 애물단지를 모두 처분한 그날, 주느비에브의 손에는 에랄리그 묘당 꽤 깊은 곳에 묻힐 수 있는 돈이 떨어졌다.

“나는 이제 부자야!”

호외를 팔던 소녀에게 큰 돈이 생겼다는 소식은 날개달린듯 빈민가에 퍼졌다. 안면이라도 있는 빈민들은 소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웃어보였다.

그것이 익숙해질 정도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주느비에브는 최근 새로 고른 애인과 함께 투기장을 찾았다.

“아가씨. 혹시 이걸 떨어트리지 않으셨습니까?”

붉은 머리 검투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주느비에브는 울다하의 사골리 사막의 열기보다 뜨거운 것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감히 서민이 나한테 말을 걸다니?"

...분노인가?

"아... 죄송합니다.“

주느비에브는 못된 말을 입 밖에 내고서야 멍청하게 깨달았다.

안타깝게도 첫사랑이었다.

***

“즐겁니?”

주느비에브가 투기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소를 닮은 마물이 다리를 절며 검투사에게 뿔을 휘두르고 있다. 검투사 역시 아래가 반쯤 부서진 방패를 든 채로 몸을 굴리며 마물의 공격을 피했다.

“예. 저 화려한 전투를 보십쇼. 아가씨도 좋아하시죠? 자주 이 곳에 오시지 않습니까.”

그날 애인 자리에서 쫒아내었던 놈이 자꾸만 따라다닌다. 그녀가 투기장의 입구인 검술사 길드 앞에 늘 방문하는걸 알고는 항상 미리 자리를 잡아두었다.

콩고물 하나도 떨어질 일 없다고 윽박질러보았지만 오히려 승패를 골라 돈을 거는 내기도박까지 소개해주며 느물거렸다.

주느비에브는 결국 껌딱지 쫓아내기를 포기하고 몸을 기울여 난간에 기대었다. 검투사가 이길 것 같다. 베팅 금액이 꽤 컸으니 배당금도 쏠쏠할 터. 하지만 그녀는 이 싸움에 영 관심이 없었다.

이 경기가 끝나면 곧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싸움이 시작된다. 정확히는 보고 싶은 검투사의 경기가 시작된다.

“이런 피 튀는 싸움이 즐겁다니. 이해할 수 없네.”

와아아아!

그녀의 예상대로 검투사는 마물의 뿔을 잘라내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진행자가 과장된 몸짓으로 다음 선수를 소개했다.

“떠오르는 신예! 붉은 갈기의 사자!”

이명에 걸맞게 타오르는 붉은 머리, 보통의 남자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키. 그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모든 경기를 관람하고 응원했다.

내기 도박이 시작되었다. 승패 비율은 반반. 주느비에브는 방금 도박으로 번 돈을 전부 승리에 투자했다. 냉정한 분별보다는 사심에 치우친 판단이었다.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뭐.’

“어이쿠야. 아가씨는 그 쪽에 거십니까? 그럼 저는 이쪽에 걸어볼까요.”

야유와 응원이 뒤섞인 소음 사이에서 인간과 마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약간 긴 머리를 거칠게 넘긴 붉은 갈기의 사자가 낮고 우렁찬 기합과 함께 먼저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마물의 뿔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 하지만 마물은 잠시 주춤거릴뿐 남은 한 쪽의 뿔을 들이대며 달려들었다. 붉은 갈기의 사자는 피하지 않고 방패를 들어올린채 하체에 힘을 주었다.

“피해!”

주느비에브는 땀에 젖은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소리쳤다. 하지만 전투에 열광한 군중의 목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흡!”

마물의 뿔은 방패의 틈을 비집고 뚫고 들어와 빈 어깨를 스쳤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그 앞을 막아선 남자 역시 짧은 발자국만을 남긴채 버티며 반대 손으로 마물의 목을 노렸다.

마물의 주먹과 남자의 칼이 거의 동시에 상대에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뿔이 방패에 박혀버린 마물은 칼을 피하지 못했고 남자는 방패를 버리고 몸을 돌리며 마물의 목 깊숙한 곳까지 칼을 쑤셔 넣었다. 마물의 주먹은 허공을 휘둘렀고 그 주먹을 따라 온 몸이 휘청거렸다. 칼을 뽑아내자 피가 분수처럼 검투장의 바닥에 흩뿌려졌고 붉은 갈기의 사자의 위명에 맞게 남자 역시 피를 잔뜩 뒤집어썼다.

잠깐의 정적 후 진행자가 즐거운 목소리로 승리를 선언한다.

이제껏 본 전투 중 가장 빠르고 화려하며 무모했다. 주느비에브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륵 주저앉았다. 그래서 당당하게 칼을 들어 올린 남자가 그녀의 작고 둥근 정수리를 힐긋 쳐다보는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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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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