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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말드의 바람은 차갑다.
단순히 그것의 기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푸르게 얼어붙은 땅에서 내달리는 바람은 맞닿는 이를 할퀴는 냉기가 있었다.
물비늘은 뺨을 벨 듯 휘몰아치는 바람을 느꼈다. 어둡게 내려앉은 밤의 그림자 사이로 눈발이 북풍을 탄 채 내달렸다. ‘재해’가 가져온 것도, ‘종말’이 가져온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암전. 삶과 죽음의 흐름, 낮과 밤의 순환과 같이.
사람들은 언제나 순환과 내세를 묶어 이야기했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죽음이 가져오는 안식을 믿은 적 없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이다. 모든 것의 끝이고, 피할 수 없는 종말이었다.
죽음 이후에 이어지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저의 삶과 별개의 것이며,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거든 그것은 지금 당장 저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그것은 그의 고향이 그에게 남긴 낙인이거나 삶을 삶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동앗줄과 같았다.
사람들은 다시 말한다. 겨울이 그 무엇보다 차가운 이유는 따스한 봄을 맞이하기 위함이라고. 어둔 밤의 끝에는 동트는 새벽에 찾아오며, 죽음 뒤에는 새 삶이 이어지고, 그러므로,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한다고.
물비늘은 의문한다. 그렇다면 나는, 얼어붙은 땅에서 난 나는 영영 절망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방인이었기에.
그렇다면 너는, 어둠 속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둠으로 죽은 너는 다시 태어나서야 아침을 볼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 또한 돌아오지 않았다. 죽은 자는 답하지 못하기에.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힘을 들었을 때, 그는 연기가 올라오는 총구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희망으로 하여금 절망을 물리치라 하였을 때, 그는 스스로의 생을 떠올렸다.
참으로 어려운 삶이다. 그는 내내 도망쳐왔기에 더더욱 그랬다. 살아남기에도, 저 어딘가에 있는 소녀가 시험하여 증명하기에도.
물비늘은 손에 쥔 꽃을 바라보았다. 이 꽃이 도달할 어딘가에는 그의 의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꽃을 옥죄던 손의 힘을 풀었고, 흰 백합은 그보다 흰 바람을 타고 멀리 나아갔다. 그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멀리, 멀리, 아무도 보지 못할 어딘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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