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천사

무신론 천사

(4)

“여기에 성별, 이름, 전화번호, 주소 써주시고요. 각성하신 이야기 제목이랑 이야기 속 등장인물 명 적어주세요.”

 

몰라요.

큰일이다. 빨간 색연필로 체크된 부분을 차근차근 채워가는데. ‘이야기 제목, 이야기 속 등장인물 명’에서 막혀버렸다. 모르는데 이걸 어떡하지. 일반적으로 천사하면 떠오르는 건 대표적인 게 있긴 하지만, 다른 신화에 비슷한게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리고 천사라는 건 잘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지 않아?

 

사각사각 적어 내려가던 사람이 특정 칸에서 멈춰버리자, 눈앞의 직원분이 무슨 일이 있나 싶은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져 민아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냥 아무렇게나 쓸까? 아니 그러면 나중에 곤란하지 않나?

 

“저기…”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그게. 음…”

 

만아는 마른입을 벙긋거리다가 종이를 슬쩍 밀어서 채우지 못한 란을 보여드리며 말했다.

 

“제가 이 부분을 몰라서요.”

“모르…신다고요?”

“넵.”

 

직원의 은근한 미소가 깨졌다.

뭐 하는 사람이지? 천사 헤일로와 날개를 단 채 눈앞에서 민망한 듯 몸 여기저기를 문지르는 상대는 이게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지 알고 있을까? 이야기를 아무리 밥 먹듯이 보는 활자중독자라도 구연사로 각성한다면 자신이 어떤 이야기의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눈치채기 마련이다. 마음을 울리며 공감을 통해 실제적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는 손에 꼽으니까. 특히나 눈앞에 있는 저 사람처럼 신체적인 특징이 나타난다면 더 알기 쉽다.

 

그런데 모른…다고? 순간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었는데. 이름을 아민아라고 적은 눈앞의 사람은 얼굴에 핏기가 가셔서 뭔가 변명을 해야 할 압박감이라도 느끼는지, 아니 눈을 떠보니 이렇고, 저는 사실 종교인도 아니고, 종교는 어릴 때 부모님 손에 끌려가서 겪어본 게 전부라서…. 하며 말하고 있었다. 어쩐지 오늘 출근하고 나서 내내 평화롭더라니, 이런 일이 생기려고 했나 보다.

 

“잠시만요. 제가 연락을 좀 넣고 올게요.”

“앗, 네!”

 

눈앞의 직원분이 뭔가 바쁘게 하시는데 약간의 죄책감이 든다. 서류는 다시 뺏겼고, 할 게 없어서 펜을 든 채로 손가락만 꼼질대고 있자니 할 게 없어서 핸드폰이라도 꺼내야 하나? 싶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덩치가 있는 남성분이 가벼운 세미 정장을 입고 서 계셨다.

 

“아 오셨어요. 아민아씨, 저분 따라가시겠어요?”

“아, 네네.”

 

어쩐지 오고 나서 하는 말이 아, 나 네, 밖에 없는 것 같은데, 따라가려고 일어나긴 했는데 왜 보내는 거지? 역시 이 범죄자! 하며 잡아 가두는 건…. 에이 설마. 잡아가려면 진작에 잡아갔겠지. 그렇게 마음을 기껏 가라앉히며 민아가 위축된 채로 따라가는데 앞서가던 직원분이 말을 걸어주셨다.

 

“지금 가는 건 능력 확인차 가는 겁니다.”

“네?”

 

잘 못 들었습니다?

 

“전해 들었는데, 본인 이야기가 뭔지 모르신다면서요? 그래서 우선 가지신 능력을 확인하고, 비슷한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그래도 아예 전래가 없는 건 아닌 건가? 조금 안심이 된다.

 

“원래 이런 일이 생기면 이런 방식으로 찾는 건가요?”

“하하, 사실 매뉴얼에 존재만 하던 방식인데…. 실제로 해보는 건 저희도 처음입니다.”

 

역시나. 입술이 자연스럽게 말려들어 간다. 갑작스럽게 예상에 없던 일을 해본 입장에서 느껴진다. 분명 누군가 야근을 할 것이다. 졸지에 누군가의 야근을 불러왔다는 미약한 죄책감을 안고, 민아와 직원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도착지는 굉장히 넓은 공간이었다. 불을 켜자 보이는 건 회색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공간. 한쪽 벽면은 거울로 되어있고, 꽤 내려온 것 같더니 천장도 굉장히 높다. 와, 이런 공간이 있다고? 민아가 입을 벌리고 주변을 구경하고 있을 때 직원분이 여기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가셨다. 뭐지?

 

몇 분이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내 손이 무언갈 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서 내려다봤더니 아까 전 내 인적사항을 적는데 사용되었던 펜이 주먹에 쥐어져 있었다. 아. 짐 놓고 왔다! 그 산더미 같은 짐을 두고 온 대신 공공기관의 펜을 들고 왔다니 이게 뭐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들리시나요?”

“네! 들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능력 확인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요? 벌써요?

아는 게 없어 멍하니 서있자니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입구 근처 보시면 능력 제어 방법이 담긴 팜플렛이 있을 겁니다. 그걸 읽고 있는 대로 따라 해보시면 됩니다.”

 

들어온 문 근처를 보니까 진짜 아까 위에서 직원분이 주셨던 거랑 같은 팜플렛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몇 번 펼쳐봤는지 좀 낡아 있다는 점일까. 그걸 쥐고 펼쳐보니 여러 챕터가 있는데, 몇 장을 넘겨보니 지금 나에게 너무 필요했던 내용이 있었다.

 

‘신체화 구연사의 경우.’

 

보니까 몸이 커졌거나, 작아졌거나, 벌레로 변했거나 하는 사람의 예시로 적혀있었다.

어디 보자, 우선 침착한 상태에서 자신의 육체를 관조한다. 그러면 이전의 육체와 지금 육체의 괴리감이 느껴질 텐데 그 이상을 확인하면 된다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괴리감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고 적혀있었는데 솔직히 글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걸까?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아기자기한 동물이 스위치를 만들어 껐다 켜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해보면 좀 더 쉽다고 말하고 있었다.

 

스위치라. 뭐가 좋을까? 펜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엄지와 검지가 스쳤다. 손가락이나 튕길까….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나쁘지 않게 느껴져 손가락 튕기기를 스위치로 삼기로 결정했다.

 

민아는 눈을 감았다.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 때문에 시야에 검붉은 어둠이 깔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에 닿아있는 천 재질까지 느껴질 정도로 내 몸을 느끼고자 시도했다. 그러자 머리와 등 뒤에서 이질감과 비슷한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쉽게 느껴지는데?

 

내 몸을 구성하는 무언가가 빠져나가서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수납이 가능한 장기가 돌출된 상황 같은 이상한 느낌, 이걸 스위치를 이용해 집어넣으라고 했지. 들어와라, 들어와라, 들어와!

 

손가락을 튕기자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훅, 하고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된 건가? 눈을 떠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뒤통수에서 나는 빛과 날개가 없는, 원래 내 모습이 있었다. 됐다. 됐다! 기쁜 마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잘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빨리해내셨군요. 이제 다시 켜보시겠어요?”

 

그러고 보니 이거 끄려고 온 게 아니라 능력 테스트 하러 온거였지. 기껏 돌아왔는데 그 요란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거울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솔직히 이번엔 안 나타나도 괜찮아서 좀 대충 했는데 딱! 소리가 나자 언제 사라졌냐는 듯 날개와 후광이 다시 나타나 있었다. 사라지게 하는 건 어려웠는데 나타나게 하는 건 왜 이렇게 쉬운지 모르겠다.

 

“…다루는 방식 터득이 빠르십니다.”

“빠른 건가요? 저 오전 내내 이 상태로 다녔는데.”

“빠릅니다. 구연사중에는 능력 제어를 못 해서 몇 달간 벌레로 산 구연사도 있는걸요.”

“으와악….”

 

진짜 끔찍하다. 벌레 인간의 이야기로 각성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민아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한번 느껴보니 조금 알겠다. 언제 장식처럼 매달리기만 했었냐는 듯이 팔을 들어 올리니 그쪽 날개도 따라 올라오는데, 꼭 감각이 없던 사지에 신경이 연결된 느낌이다. 조금 짜르르한 느낌이 있긴 하다. 오래 굳어 있어 저릴 때랑 비슷한 감각? 그래도 몇 번 날갯짓을 하니까 그런 감각이 옅어진다. 파닥파닥 거리고 있자니 위에서 목소리가 이어 들려온다.

 

“날개가 움직여지나요? 날아보실 수 있겠어요?”

“어… 한번 해볼게요.”

 

흡! 날개를 열심히 퍼덕거려보는데 맨 팔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다. 전혀 안 뜬다. 차라리 한발을 허공에 딛고 그 발이 떨어지기 전에 다른 발을 딛는 게 더 날기 쉽겠다. 하긴 사람 몸무게가 몇인데, 뼈가 텅텅 빈 새도 아니고 그걸 날개 한 쌍으로 견디겠냐. 날개를 파닥거리던 걸 멈추고 고개를 젓자 위에서 음, 하고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지를 못하는 천사라니 웃기시죠?

 

“그러면 뭔가 느껴지는 능력이 있으실까요?”

“글쎄요…”

 

천사가 보통 뭘 들고 있더라, 일반적인 아기천사를 생각해보면…. 활? 나는 활은 건드려본 적도 없다. 자주 든 걸로 따지자면 마우스? 잘은 모르지만, 마우스를 든 천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 같다. 펜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마우스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마우스보다 더 익숙할 봉이 떠올라 펜을 잡고 늘리는 시늉을 해봤다. 이런다고 뭐가…

 

어라?

 

손에 쥐어진 펜이 부피를 갖고 늘어난다. 엄지와 검지가 넉넉하게 맞닿은 굵기에. 점점 길게 늘어나 팔 너비를 넘어 늘어나고 늘어나다가 내 키를 훌쩍 넘은 높이로 끝났다. 은은하게 빛을 내뿜는 익숙한 굵기, 높이의 봉이 손에 쥐어졌다.

 

“아! 잘하셨습니다! 창을 든 천사라면 전투 천사겠네요.”

 

어안이 벙벙한 민아가 봉을 쥐고 흔들어보는데 탄력 있게 흔들리는 봉에서 은근한 진동이 느껴진다. 아니 이건 아무리 봐도 창이 아니라 내가 장대 높이 뛰기를 할 때 썼던 봉 같은데? 그보다 이거 실수로 들고 온 펜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이게 그냥 나온 게 아니라 펜에서 나온 건데….”

“그러면 펜이 능력을 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 모양이네요. 혹시 특별한 펜이신가요?”

“아뇨, 그냥 위에 계신 직원분 걸 잘못 가져왔는데요….”

“그러면 상관없을 겁니다. 아마 창과 모양이 비슷해서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됐을 거에요.”

 

비슷? 펜이랑 비슷해 보이진 않는데. 의아한 눈으로 봉을 올려다보다가 손으로 쥔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매끄럽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네. 그보다 이걸 어떻게 되돌려야 하나 싶어 여기저기를 건드려보았다.

늘어나게 한 행동을 반대로 하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팔을 벌려 넓게 잡은 후 손 사이를 좁히니, 줄자가 순식간에 줄어들 듯이 짧아지더니 원래 펜으로 돌아왔다. 아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처음부터 다시 껐다 키는걸 해보자는 요구가 들려왔다. 그렇게 후광을 껐다 키고, 봉을 뽑았다 넣는 행동들을 여러번 반복했는데, 처음 한 번에 성공했던 건 우연인지 다섯 번 중 두 번을 실패했다. 약간 시무룩해 있자니 이것도 잘한 거라며,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제 여기서 할 건 다 끝났다는 말에 후광과 날개를 없애고 기다리고 있자니 다시 내가 있는 장소로 직원분이 오셨다.

 

이후 안내 해주시는 대로 줄줄 따라갔더니 원래 자리로 바래다주셨다. 다행히 자리에 내 짐이 그대로 있었다. 휴, 펜을 가져가 죄송했다고 잠시 인사하고 쓰다만 서류를 다시 적으려는데

 

쾅!

 

뭐야?! 혹시 아까 그 미친 인간이 따라왔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더니 급성 황사라도 왔는지 창밖으로 모래바람이 뭉개 뭉개 일어나고 있었다. 6급이다! 하는 외침이 어디서 들려왔다. 순간 깜짝 카메라인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새하얗게 질린 표정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게 보였다. 어? 어어? 이쪽으로 달려오던 사람이 넘어지며 그 사람이 들고 있던 짐이 바닥에 쏟아져 내 쪽으로 굴러왔다. 으악, 아프겠다.

 

“괜찮으세요?”

“저는, 괜찮아요. 감, 감사합니다.”

 

안 괜찮아 보인다. 다급하게 짐을 주워 담는 손을 덜덜 떨고 있다. 저 상태로는 한 시간이 걸려도 다 못 주울 것 같길래. 내 근처에 있는걸 들고 다가가 짐을 줍는 걸 도왔다. 짐을 다 줍지 못했는데, 한 사람이 건물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몸 여기저기가 빨간색으로 물들어있는데, 피를 본 일이 너무 오래돼서 처음엔 피인 줄도 몰랐다. 그냥 사람이 빨갛다. 싶었는데 걸음마다, 그게 뚝뚝 떨어져서 피인 걸 알았다.

 

쿵.

 

멍하니 그 사람을 바라보는데 서류 작성을 도와주시던 직원분이 안쪽에서 소리를 질렀다.

 

“민간인분들 빨리 건물 안쪽. 지하로 대피하세요!”

 

분명 작은 체구로 보였는데 어디서 그런 목청이 나오는지 신기했다. 아직 짐을 다 못 주웠는데. 넘어졌던 사람이 일어서 절뚝거리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다른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면서 이동하는데 직원분이 나한테도 말을 걸었다.

 

“혹시 싸우실 수 있으세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누굴 때려본 적도 없다. 젊은 혈기는 운동에 다 써서 친구랑 쌈박질도 안 해봤다고. 그 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까 가셨던 곳으로 대피하라는 말을 들었다. 네, 네… 자리에서 짐을 챙겨서 이동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공황인가?

 

쿵. 쿵

 

사람이 사람을 부축해서 안고 들어왔다. 그 사람도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쿵. 쿵. 쿵

 

건물에 들어올 때 열고 온 문이 금이 간 채, 빨간색 손자국이 묻어있었다.

 

쿵. 쿵. 쿵. 쿵

 

민아의 귀에서 심장 소리가 울렸다. 어쩐지 머리가 아팠다. 손에는 힘이 빠져 기껏 챙긴 짐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발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했다. 직원분의 비명과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돌아오세요! 돌아오세요…

 

문밖으로 가까이 왔더니 유리 자동문 너머로 분명 내가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길이 보였다. 엉망이었다. 지하철 입구가 무너져있다. 아스팔트가 이리저리 파여있다. 그리고 한 남자가 그 가운데 삐뚜름하게 서 있었다. 분명히 6급이라고 했었다. 구연사의 능력을 가지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죄인은, -서-지 않--다.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넌 뭐야?”

 

가래가 껴 갈라지고 그르렁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