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천사

무신론 천사

(3)

민아가 고개를 들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연예인 뺨칠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 미인이었다. 성별을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선이 고운 턱 밑으로 돌출된 목울대가 보인다.

 

“어,”

“죄, 죄송합니다, 불쾌하셨죠?”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이더니 뭐라고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 사라이-그 미친인간을 말하는 거겠지.-가 나쁜 애는 아닌데 종교에 충실해서 그랬다. 천사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을 거다. 라고 하는데 직장에서 방금 잘린 입장에서는 그 말이 곱게 들리진 않았다. 민아가 한숨을 내뱉자. 앞에 있던 남자는 몸을 떨더니 죄송하다며 몇 번을 사과하며 몸을 일으키려다 비틀거리며 다시 주저앉았다. 뭐지? 어디 불편한가?

 

“죄송, 정말 죄송합…”

“아니 죄송하다고 뭐 내가 다시 취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잡고 일어나세요.”

“가으, 감, 사합니다.”

 

짐도 다 주웠고, 먼저 몸을 일으키고 나서 기껏 손을 내밀어줬음에도 눈앞의 사람은 황송해서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태도로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외모가 보통이 아니다 보니 보통사람이었으면 그 모습에 귀엽다며 탄성을 내질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 처지에서는 귀찮기만 해서 그냥 내가 잡고 끌어당겼다.

 

비틀, 하며 딸려온 몸은… 뭐지? 가볍네. 몇 번 휘청거리다가 삐뚜름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일어선 채 고개를 숙인다. 확실히 다리가 불편한가 보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아까 사라이라고 불린 미친 인간도 키가 컸는데 이 사람도 일어서니 키가 제법 크다. 나도 작은 편은 아닌데 나보다 눈높이가 살짝 높다.

 

“혹시 이거 끄는 법 알아요?”

 

민아가 자신의 뒤통수를 가리키며 말하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고개를 붕붕 휘저었다. 긴 머리카락이 자기 뺨을 때릴 정도로 격한 부정의 몸짓,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이 커져 있었다. 곤란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리카락을 북북 헤집으며 걸어가자 안절부절못하던 사람은 민아의 뒤를 절뚝거리며 따라왔다. …신경 쓰인다.

 

“저기 왜 따라오세요?”

“천사님이시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어디 갔는지도 모를 당신 일행 따라가세요. 그 샤라웃이던가 하는.”

“사라이…. 에요.”

 

일부러 틀리게 말했더니 우물쭈물하며 말해온다. 내 알반가. 몰라, 어차피 잘린 거 집에나 갈까. 아니 그러고 보니 회사에는 어떻게 찾아온 거야? 내 모습이 워낙 요란하니 그냥 보고 따라온 거야? 그럼 이대로 집에 가면 그대로 내 집까지 따라오는 거 아냐? 절대 싫다.

 

이걸 어쩌면 좋냐…

손에 쥐고 있던 민아의 뜨끈뜨끈한 폰에 새로운 진동이 왔다. -찬화형(님)- 살았다. 뭔가 뒤에서 좀 더 말을 거는 것 같은데 일으켜 준 거로 난 할 일 다 했다. 묵직한 짐을 한 손으로 감싸 가슴에 품고 다리를 재빨리 움직여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벗어나며 전화를 받았다.

 

-“야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걱정이 담긴 말을 귀로 듣는 건 오늘 들어 처음이라 체육인답지 못하게 눈물샘 근육 조절에 실패할 것 같아, 부러 너스레를 떨면서 답했다.

 

“와, 나 아직도 뒤통수에서 빛나오고 있어. 밤에 손전등 없어도 될 듯.”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잖아. 어떻게, 지금 회사에 있어? 전화 괜찮은 거 맞아?”-

“아~ 괜찮아 방금 잘려서 길바닥. 집 가려고”

-“너 지금도 그런 모습인데 …괜찮겠어?”-

 

음, 내가 걱정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주는군. 민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더는 안 따라오는지 근방에 하얀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미행하는 걸 수도 있긴 하겠지만 난 그런 거 눈치챌 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떡할래? 내가 차 끌고 갈까?”-

“아니 거기서 여기까지 한참인데 뭘 와. 매일 강아지 돌보느라 바쁜 사람이. 나 어른이야. 알아서 할 수 있어!”

-“이런 건 어른이랑 별개…”-

“끊는다! 음, …걱정해줘서 고마워.”

 

더이상 전화를 했다간 명찬화가 진짜로 차를 끌고 올까 봐 겁나서 민아는 급하게 통화를 끊었다. 하여튼 사람이 오지랖이 넓어서는… 훌륭한 멀티캐스팅 기능이 탑재된 육체 덕분에 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지하철 입구까지 걸어온 상태였다. 일단 구연사 각성 신고를 하러 가야겠지. 다른 나라에는 미각성 구연사가 꽤 있다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싶을 정도라서. 이미 이렇게 유명해진 이상 무조건 신고를 해야 한다.

 

예전에는 구연사 관리청에서만 신고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주민센터에서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내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구연사 관리청으로 직접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거기 가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음, 그게 좋겠다. 민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목적지도 정해졌으니 이동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민아는 지하로 이어진 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사람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이 모습으로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하나?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더럽게 파랗네. 높은 하늘에선 하늘과 비슷한 색의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땅에 더 가까운 낮은 하늘에서는 뚱뚱하게 살찐 새 몇 마리가 단거리 비행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날개도 있는데 못 날아가려나.

 

…진짜 날 수 있을지도? 혹시나 한 기대감에 민아는 제 자리에서 슬쩍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을 몇 번 구르더니 제 자리에서 뛰어보았다.

 

폴짝!

 

“흡!”

 

오, 이대로 뜨나? 원래 점프력이 좋은 편이라 꽤 높게 솟아오른 몸이 잠시 붕 떴다가… 그대로 다시 착지했다.

날지도 못해? 온갖 사람들의 어그로나 다 끌면서! 쓸모없는 날개 같으니! 내려오는데 조금 오래 걸린 것 같기도 하긴 한데…. 고작 그 정도 시간이라면 한창때에 그만큼은 얼마든지 떠 있을 수 있었다. 손에 잡히기만 했어도 이놈의 깃털을 북북 뽑아버렸을 텐데! 그래 여기서 더 관심 끌일 있나.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자. 이제 현실 도피도 할 만큼 했으니 진짜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에 지하철에 대한 껄끄러움이 조금 잊혀졌다. 민아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 지하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어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운이 좋네~ 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민아에게는 그 정도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열차에는 자리가 넉넉히 남아 있어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엉덩이를 단단한 의자에 걸치자 미뤄두었던 생각이 밀려들어 왔다.

 

‘그러고 보니 천사…는 정말 뭐 하는 존재지?’

 

일반적으로 구연사라는 존재는 특정 이야기에 ‘과몰입’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창작된 이야기든 실제 있던 역사든, 역사를 각색한 이야기든 상관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자신만의 해석이 더해진 상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능력을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민아의 경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런 모습인 상태라 ‘자신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구연사.’라는 지구상에서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민아는 핸드폰을 들어 천사에 대해 검색해 보려다. 수많은 알람으로 인해 바닥을 기고 있는 폰의 전력을 보고 짐을 뒤져 보조 배터리를 꺼내 다시 연결했다. 잠깐 꺼놓는 게 낫겠다. 구연사 관리청까지는 꽤 남았고, 그 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하루종일 현실 도피만 하나 싶지만. 누구나 이런 일을 겪으면 도망치고 싶을 거다.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민아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였다.

 

***

 

-이번 역은 한국 구연사 관리청 앞, 한국 구연사 관리청 앞입니다.-

 

낭랑하고 인간미 없는 목소리가 민아의 목적지에 다가왔음을 알렸다. 헉, 눈을 오래 감고 있다 보면 잠기게 되는 특유의 조금 몽롱한 상태에서 금세 정신이 깨어났다. 정신 각성인가 집중인가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녹음한 목소리는 역시 달라.

 

손을 모아 얼굴을 문지르곤 몸을 일으켜 나왔다. 계단, 에스컬레이터, 계단. 그렇게 몇 번을 위로 올라오니 민아의 눈앞에는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

…사실 그렇게 거대한 건 아니고 적당히 공공기관 정도 크기인데, 하지만 내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괜히 위축된다. 저 건물 안에서 이놈 미등록을 한 채로 도심을 활보해? 너는 6급이다! 하고 나를 끌고 들어가 가둬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망상과 불안감도 함께 엄습한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이러는 것보단 낫겠지, 특이하게도 이 근처에 오니까 날 보고 신기한 표정을 짓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쪽을 슬쩍 보긴 하지만 피곤한 낯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저 익숙한 직장인의 낯에 어쩐지 안심이 된다. 용기를 내어 건물 안으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갔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인터넷에 뜨게 된 것도 고의가 아니에요. 정말 무해합니다.

 

어깨를 한껏 옹송그린 채 조심조심 걸어 들어가던 민아의 앞을, 제복을 입을 사람이 나서 길을 가로막았다.

 

“저…”

“네엑?!”

 

뭐지? 나 잡혀가나?! 6급인가?!

 

“신규 각성 구연사신가요? 그러면 여기서 번호표 뽑으시면 됩니다.”

“전 억울, 아 아… 감사합니다!”

 

민아는 반사적으로 억울함을 성토하려다가 적확한 안내에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어떻게 안 거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으신가? 신규, 라는 버튼을 누르자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얇고 까슬한 번호표가 손에 쥐어졌다. 적힌 숫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14번 고객님!”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손에 든 종이를 확인해보니 내 번호가 14번이었다.

 

“네! 갑니다!”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누가 자기 번호 불렀다고 대답하냐, 긴장 제대로 했네. 민망함에 달아오른 귓바퀴를 문지르며 종종걸음으로 투명한 칸으로 상담 직원과 좌석이 나눠진 자리로 다가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이것 때문에…. 구연사 신고하려고요.”

 

손으로 제 등 뒤를 가리키며 말하자 은은하게 영혼이 없는 웃는 낯으로 민아를 대하던 직원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 제어가 안되시나 봐요? 그건 이거 확인하시면 되고요.”

“넵!”

 

각 좌석마다 팜플렛이 여러 개 있었는데. 직원이 그중 하나를 능숙하게 뽑아서 건네준다. ‘나와 내 주변을 안전하게. 구연사의 능력 제어 방법!’. 와 이런 게 다 있네.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 그걸 받아 홀린 듯 펼쳐보려고 할 때. 투명 창 너머에서 직원의 이어 들려오는 말에 팜플렛을 잠시 내려놓고 허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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