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천사
(2)
민아는 간신히 회사에 도착했다. 물론 빛이 나는 뒤통수와 날개는 그대로 인채로, 오는 내내 여기저기서 은근한 찰칵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계속 들리는걸 최대한 모른척 하고 왔다. 그게 본인의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아니 대체 시간이 몇 시인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화를 낼 기회를 잡아서인지 조금은 기뻐 보이는 얼굴로 화를 내던 사장이 그의 꼬라지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 틈새를 타 민아는 익숙하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뭔가 더 화를 내고 싶어 하는데 꼴이 꼴이다 보니 당황해서 말을 못 해 보였다.
“아니, 대체 그, 무슨…”
“늦었으니 바로 작업 시작해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 없도록 더 신경 쓰겠습니다.”
뭔가 화를 내려는 듯 감정을 끌어내려는 모습은 보이는데 한번 맥이 끊긴 분노가 잘 끄집어내 지지 않는지 꼬다리만 남은 치약이 짜내지는 것처럼 말이 뚝뚝 끊긴다. 그 틈을 타서 민아는 후다닥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뒤통수에서는 빛을 내고 등짝에서는 날개를 달고 하는게 ‘좋소’ 업무라니 내 꼴이 좀 웃기긴 하다. 하지만 뭐 어떡해 나는 다음 달 월세를 벌어야 한다. 월급날까진 좀 남았는걸.
좋소라 일반적인 회사보다는 사람이 적긴 하지만 2인 사업장은 아닌지라 여기저기에서 다른 일을 하던 직원 몇 명의 시선이 유독 따갑다. 파티션따위 없는 사무실이라 옆자리에 앉아있던 직원분의 시선을 차단할 무언가가 없는 게 이렇게 불편한 적…은 많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역대급이다.
어느 정도 긴 로딩 끝에 컴퓨터가 켜지면 자연스럽게 함께 켜지는 코코아톡 창에는 몇 안 되는 친구 추가된 상대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가 오는 중이었다.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 당장은 모른 척하자 모른 척, 이어 업무 메일이 온 게 있나 싶어서 인터넷 창을 켰는데. 인터넷 토픽이랑 뉴스에 뭔가 익숙한 인물의 사진이 있다. 모른 척, 모른 척… 이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는 생각과 별개로 민아의 손은 그 게시글을 누르고 있었다.
‘새로 각성한 구연사 ㅈㅉ’
뒷목을 덮지 않는 새카만 머리카락에 통 넓은 셔츠, 뒤통수에선 동그란 모양의 빛이 나고 지하철 문짝만 한 날개가 달린 사람의 사진이었다.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등을 웅크린 채 가방을 끌어안고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는 뒷모습은 이런 각도로 볼 일이 없어 그런지 낯설다. 아, 머리 뻗쳤네.
민아는 손을 뻗어 뒤통수를 꾹꾹 눌렀다.
‘헐 1등급임? 1등급 구연사는 실체화 능력 되는 사람 얼마 없지 않아?’
‘아마 보기엔 천사 같은데 천사면 아마 그럴 듯?’
‘와 뒤통수만 봐도 앞 통수 비주얼 보임’
‘민폐 ㄹㅈㄷ 누가 지하철에서 능력 쓰냐?’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면 일반인이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사진 찍으면 안 되지 않나요?’
‘지도 득달같이 보고 있으면서 진지한 척하는 수준ㅋㅋ’
아, 아무것도 못 봤어 나는.
미쳐버리겠다. 뒤로 가기 버튼을 연타한 후 메일을 확인한 후 작업툴을 띄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건 너뿐이구나, 업무에 애정이라고 할만한 게 생긴 건 난생처음이다. 이런 상황을 잊으려면 일에 집중이라도 하는 게 최고겠지.
상황에 맞지 않게 조용한 사무실 안에는 타자치는 소리만 가득했다. 하지만 모니터 왼쪽 하단에서는 메시지가 여전히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특히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하는 건 내 대각선 자리에 앉은 김 주임, 원래도 이 조그만 회사에서 뭐 할 말이 많은지 끊임없이 말을 하는 거로 인상 깊은 사람인데. 그가 현실에서 입을 열지 않는 대신 내 코톡 창을 불태우고 있었다. 잠시 이걸 답해주는 게 나을지 모른 척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어서 허공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쾅!
창문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새라도 날아와 박은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창밖에는 사람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창문 닦는 사람이 타는 기구에 탄 사람이 창문을 쿵쿵 두들기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경악할 만한데 더 무서운 건 시선이 나한테 꽂혀있다는 거다. …아니 시선이 맞나? 눈이 보이질 않아서 맞는지 모르겠다. 아민아가 아연해진 사이, 그 사람은 창문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창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뱀처럼 스며들어왔다. 아니, 아니, 여기 3층인데, 창가에 있는 물건을 짓밟으며 들어온 사람은 그대로 이쪽을 보며 외쳤다.
“천사님!”
미친 인간이다.
민아의 내면에서 상대에 대한 평가가 뭐 하는 사람이지? 라는 의문이 미친 인간이다. 로 변하는 건 몇 초면 충분했다.
“천사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실 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사무실 안에 들이닥친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얬다. 과장이 아니라 머리통부터 몸까지 전부 덮는 흰 베일을 덮고 있는데, 피부도 하얗고 옷도 햐애서 분노로 벌떡 일어나 정수리까지 새빨갛게 변한 사장과 유독 대비되어 보였다. 무슨 종교 복장이랑 드레스를 섞어놓은 것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슨 상어처럼… 압도적이다. 양팔을 벌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어디선가 유명 상어 영화의 OST가 귓가에서 들릴 정도였다. 민아가 굳어 반응하지 못한 사이 사장이 나섰다.
“당신 지금 남의 사업장에서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지 못해?!”
사장이 이렇게 든든하게 보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사장님! 민아의 마음속에서 사장의 지위가 올라갔다. 이렇게 듬직하다니, 마음속에서도 사장‘님’이라도 불러줄 수 있었다.
“당신과 할 말은 없습니다만!”
“여긴 내 건물이라고!”
“천사님만 있으면 이런 건물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럼 데리고 나가!”
취소다. 빠르게 올라갔던 지위는 이전보다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미친 인간은 허락(?)을 받자 민아에게로 달려들어서 무릎을 꿇고 뭐라 주절주절대는데, 가까이서 봐도 제정신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보이는 치아가 유독 날카로웠다.
“아아 어쩜, 상상 속의 모습보다 더 신성하십니다!”
“사, 사라이 허억, 여기가 진짜 맞, 헉!”
이어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제 앞에 미친 인간과 비슷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인간이 또 들어왔다. 새로 나타난 사람은 이상한 베일을 안 쓰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노인처럼 흰색이었고. 멀리서 봐도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가 웬만한 연예인 뺨칠 정도로 미인이었다. 처진 눈으로 어찌할 줄 몰라하는 모습이 인간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사라이? 우리 사무실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 아마 이 미친 인간을 칭하는 말이겠지. 그렇다는 건 이 인간이랑 일행이라는 뜻일 테고, 제발 눈앞의 이 인간을 끌고 나가줬으면 좋겠다.
“처, 천사ㄴ…”
“이 사이비가!”
그런 아민아의 소원을 듣지 못했는지 오히려 새로 나타난 사람의 뒤에서 뭔가가 더 솟아났다. 그리고 사라이라고 부른 미인은 그대로 밀쳐졌다. 좀 불쌍하네. 이번에 솟아난 사람은 뭔가 …천국 어쩌구 지옥이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한 번씩 스쳐 지나갔던 사람이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저, 다들 누구신지…?”
“우리의 천사님! 저희와 함께 가시죠!”
“천사가 왜 당신네 ‘우리’야? 신의 사자가 할 일을 방해하지마!”
“하! 구질구질하게 관심도 못 받아 길거리에서 노상 전도나 하는 구시대 종교의 잔재 주제에!”
“너희 사이비 교리는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알아?”
“둘 다 그만…,”
아, 싸운다.
내 앞에 무릎 꿇어 있던 사람이 몸을 일으켜 새로 난입한… 이름은 모르겠고 천국지옥씨를 상대하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까 키가 엄청 큰데? 거의 2m는 되어 보인다. 미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끼어들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지 쩔쩔매고 있다. 바로 전에까지 조용했던 사무실은 순식간에 종교들의 싸움판으로 변화했다.
진짜. 지긋지긋하다.
“저기 그만 좀 하세요!”
“천사님이 그만하시라고 하시잖습니까!”
“아니 당신한테…”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더 높아졌다.
“둘 다 그만 좀 하세요. 여긴 직장입니다! 나는 당신네의 천사가 아니라 그냥 직장인이에요!”
“…….”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고 뭐고! 궁금하지 않아요!”
“…….”
“난 당신들 같은 작자들 때문에… 종교가 지긋지긋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건물에 울렸다.
아민아의 얼굴을 멋대로 찾아와 난장을 부리는 인간들을 향한 혐오로 일그러졌다. 종교가 있는 이들은 늘 그랬다. 사이비든 아니든 그의 눈앞에 있는 이들을 똑같아 보였다.
제 감정을 못 이겨. 씩씩거리는데 어깨에 손이 턱 올려졌다.
“사장님….”
“말 잘했네 아민아씨”
와. 이 사람이 칭찬해주는 거 처음이야. 약간의 감명을 받을 때 즈음.
“나가는 김에 자네도 나가게, 다시 돌아올 필요는 없네.”
“네?”
민아는 그렇게 그대로 쫓겨났다. 출근할 때 들고 온 가방에는 몇 년간 이 좋소에서 일하며 생긴 짐들이 한가득 쑤셔넣어져 있었다. 노동청, 노동청에 고소할거야. 핸드폰에 알람이 와서 확인해보니 이번 달에서 어제까지 일했던 금액을 최저시급으로 쳐서 넣어줄 테니 귀찮게 굴지 말라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원래는 돈 주기 싫어서 그렇게 미뤄대더니. 이렇게 깔끔하게 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단 말이야?
한순간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이미 표시할 수 있는 알람의 숫자를 훌쩍 뛰어넘은 김 주임의 코톡을 더 이상 모른 척 해봤자 의미가 없겠다 싶어 확인했더니,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찍힌 영상이 가장 최근 메시지로 와있었다. 언제 이런걸 찍은거람. 재생해보니 뭐라 뭐라 분노하는 내 등 뒤에서 얌전히 접혀있는 줄만 알았던 날개가 양쪽으로 활짝 펴진 채, 머리 뒤 빛은 더 강해져 일렁거리고 있었다.
…더럽게 신성해 보인다. 아민아는 제 이마를 철썩 때렸다. 어쩐지 그 종교인들이 얌전히 나가는 것 같더니 신을 믿지 않는 자신이 보기에도 뭔가 따라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액정 너머에서 느껴졌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김 주임의 창에서 나온 후 멍하니 폰을 뜨겁게 달군 코톡 목록을 내려보는데. 찬화형(님). 이라고 적힌 대화창이 문득 눈에 띄었다. 와있는 메시지는 미리보기로도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메시지였다.
‘괜찮아?’
명찬화,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였던 친한 형. 운동을 시작할 때도, 운동을 그만둘 때도, 구직 활동 중일 때도, 지금 막 쫓겨난 회사에 합격했을 때도 언제나 곁에서 의지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 온 연락을 보니 지금까지 현실에서 도망쳤던 뇌가 잠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어떡하긴 뭐든 해야지. 우선 구연사 신고를 하고… 한 뒤에는? 운동만 하느라 대학도 안 가고 이렇다 할 스펙도 없는 내가 새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구연사로 일하자! 고 하기엔 그간 종교에 관심이 없어서-관심이 없다기보단 싫어함. 쪽에 더 가까웠다.-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몸이 변한 이유도 모르겠는데 이런 내가 구연사로 뭔가 일을 할 수는 있을까?
“하아….”
쪼그려 앉자 짐 몇 개가 바닥을 굴렀다. 떨어진 물건을 줍고 있는데 하얗고 길쭉한 손이 끼어들어 자잘한 펜 몇 개를 주워 민아에게 건넸다.
“아, 감사…”
“그,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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