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천사
(1)
“휴가… 가고 싶다.”
아니 사실 휴가가 아니라도 좋았다. 이 회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 아민아의 머릿속에서 여러 단어가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반차, 월차, 병가, 퇴사…. 퇴사, 그중 마지막에 떠올린 단어는 사탕이라도 되는지 유독 달게 느껴져 입안에서 몇 번을 굴려보았다. 하지만 사탕의 끝이 그렇듯 퇴사라는 단어는 민아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 녹아 사라졌다.
“하아….”
좁은 화장실에 틀어박힌 지 몇 분째, 이제 더 밍기적 댈 수도 없었다. 제 자리 뒤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감시하던 사장의 짜증 거리가 추가될 테니까. 아민아는 변기에서 일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엄지를 움직여 스마트폰의 영상을 넘겼다. 세로로 된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영상을 짧고 자극적이며, 최근 유명한 구연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신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처럼 반짝거리는 파티클이 주변에 흩뿌려지며 귀여운 외모의 여자아이가 깜찍한 장식이 달린 무기를 휘두르는 영상이다. 누가 봐도 CG처럼 보이는 영상이지만 이건 그런 가상영상이 아녔다. 현실 어딘가에서 벌어진 일을 찍은 영상이지. 이미 몇 번이나 본 영상은 엄지로 밀어올려 작게 축소하고 댓글란으로 직행하니 댓글에서는 늘 그랬듯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짜 귀여움ㅠㅠ 내 여동생 하자’
‘구연사가 연예인도 아닌데 초상권 보호 안 하나요?’
‘그래봤자 국가 세금이나 파먹는 해충’
‘죽.도.록 사랑해’
ㄴ‘그럼죽어’
적어도 영상 속에 나오는 아이는 이런 ‘좋소’에서 일은 안 하겠지. 구연사가 되면 당장 퇴사한다. 그렇게 짧게 다짐한 민아는 댓글란은 더 봤다간 뇌만 더럽혀지겠다 싶어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몸을 일으켜 가볍게 기지개를 켠 후 화장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아무것도 내보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화장실에 있던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씻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물기 젖은 손을 탈탈 털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갈수록 무형의 압박이 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자신을 매섭게 바라보는 사장 때문이겠지.
“…”
민아는 못 본 척 슬쩍 시선을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만 끝내면 퇴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분명 무언가 일이 추가될 게 틀림없었다.
희망이 없는 아민아의 검은 눈이 동태처럼 변했다. 진짜, 절실하게 휴가 가고 싶다.
***
집이다.
한 시간 가까이 되는 만원 지하철에서 시달린 후 간신히 퇴근한 후 옷을 갈아입을 여력도 없이 바닥에 풀썩 드러누웠다. 사실 당장 침대에 눕고 싶은 자신과 최선을 다해 타협했다. 운동을 취미 이상으로 했었기에 그 근육을 야금야금 깎아가며 버티고 있는데, 이런 일상이 계속되면 축적된 근육 적금이 바닥나고 만다.
“아악 퇴사, 퇴사할래…!”
민아는 누운 채로 꽥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시간은 이미 늦은 저녁이였기에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내 집에서 고함조차 지르지 못하다니, 아니 내 집도 아니지 집주인 집이니까. 현실을 생각할수록 비참해지는 마음에 괜히 우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옷 갈아입고, 내일도 출근할 준비를 해야 한다. 고요한 집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핸드폰으로 공중파 프로를 켰다. 아민아의 스마트폰에선 아까 화장실에서 봤던 숏츠에 나왔던 귀여운 여자아이와 함께 있는 큰 키의 여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이점이 있다면 길거리 가로수와 비슷한 키가 되어서 고양이를 구출하고 있다는 정도일까.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점도 패닉인데 거대한 인간이 나타나서일지. 털을 바짝 세운 채 가엾은 소리를 내며 울던 고양이는 거대한 여성의 손에 쏙 들어가 고양이용 캐리어로 운송되었다.
「“이렇게, 구연사들을 개인적인 일에 이용해도 되냐는 의견과, 본인이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시민들의 의견이 대조되고 있지만 고양이의 주인은 감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와. 저런 것도 뉴스를 타? 구연사는 대단하네.”
아민아는 영혼 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자꾸만 들리는 구연사는 일반적으론 익숙하지 않을 단어지만 이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언어였다. 덩치가 커지는 걸 보면 액정 속의 여성은 아마 거인 이야기를 구연한 거겠지. 부럽다, 부러워. 아민아는 이 집의 몇 안 되는 장점인 큰 창문을 가린 커튼을 걷었다.
어둡게 물든 창밖에서 악몽을 먹는다는 맥의 이야기가 은은하게 빛나는 몸체를 이끌고 구름 꼬리를 길게 남기며 하늘을 날아가는 게 보였다. 오늘은 좀 일찍 잠든 사람이 꽤 있나 보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침대 겸 사용하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세계는 이야기가 실존하는 세계. 잘 짜인 이야기, 널리 인기를 얻은 이야기일수록 강력한 힘을 가지며 실체화되어 사회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깊게 이해할수록 강력한 힘을 갖게 되며, 그 힘을 이야기 속에서 현실로 끌어와 사용 가능한 이들을 ‘구연사’라고 부른다. 또한 강력한 구연사는 몇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인기 직종이었다. 요즘이라기엔 조금 지났지만 나름 최신 인기 직종인 너튜버가 등급 높은 구연사와 동급으로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이직처, 비전으로 손꼽히는 것만 봐도 그 인기를 알 수 있었다.
그래봤자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지만.
아민아는 스마트폰에서 흘려나오는 뉴스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아침에 나간 그대로 어질러진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잠이 밀려왔다.
***
꿈을 꿨다.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 꿈 중에서는 제법 흔한 꿈이였지만 싫지 않았다. 구름이 발 끝에 스치듯 지나가는게 기분이 좋았다. 두 팔을 번쩍 들고 즐거운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도 잠시, 곧 누군가가 부른 느낌이 들어서 어딘가로 날아가게 되었고. 사장한테 갈때랑 비슷한 느낌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꿈속에서도 상사가 있나? 천사는 어쩐지 싫은 마음에 그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팔을 휘적이자, 조금 효과가 있는지 날아가는 속도가 느려졌다. 좋아, 현실도 아닌데 상사일로 스트레스 받는건 질색이다. 이대로 그냥 날아다녀야지 그때, 누군가가 발을 잡아당겨 몸이 갑자기 아래로 쑥 가라앉는 느낌이 났다.
쿵
“악!”
아민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마루바닥에서 팔다리를 뻗은채 누워있는 자신이 느껴졌다. 벌떡 일어나 몸을 살펴보니 분명 얌전히 덮고 잤던 이불이 뱀처럼 다리에 감겨있었다.
“깜짝 놀랐네….”
한숨을 내쉬며 발목을 감은 이불을 대강 정리해 소파겸 침대에 얹어두었다.
그리곤 습관처럼 기지개를 켜고 허리를 폴더처럼 접는등, 밤 동안 굳어있던 근육을 스트레칭 했다. 커튼을 걷어놓은 창가는 아침 햇빛을 쨍하니 들여오고 있었다. 날 좋네.
…잠깐, 그런데 알람이 왜 안 울렸지?
갑자기 뒷목이 싸하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급히 폰을 들어 확인했더니 핸드폰은 방전 되어 검은 화면만을 띄우고 있었다. 미치겠네. 고개가 다급히 시계가 있는 벽으로 돌아갔다. 오전 8:37분 그리고 나의 출근 시간은… 9시. 비명이 터져나왔다. 출근하는데 지하철에서 드는 시간만 한 시간이 넘으니 완전히 지각이다. 스마트폰이 간밤 내내 뉴스를 방송하다 탈진한 탓에 늦는다는 연락도 할 수가 없다.
아민아는 다급히 행거에 걸린 옷을 꿰어 입고는 집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쩐지 달려가는 몸이 날개라도 달린 듯 가벼웠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잠을 푹 자서 그런건가.’ 하고 어림짐작만 할 뿐이었다.
땅이 발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려 지하철에 간신히 탑승했다. 구르듯 달려가다보니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따끔따끔할 정도더라, 네, 저도 압니다. 공중 도덕이 꽝이죠? 제가 원래 이러는 사람이 아닌데요. 여러분은 모르시겠죠. 압니다. 부담스러우니 시선좀 치워주시겠어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민아는 문이 사람이 꽉꽉 들어찬 입구에 바짝 붙어 서서 문이 닫히는걸 바라봤다. 왜인지 지하철에 타지 못한 사람 몇 명이 눈이 동그래져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각한 사람 처음보나.’
민망한 마음에 창문에서 시선을 돌리자, 지하철이 덜컹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한숨 돌리겠네, 급히 폰을 보조 배터리에 연결하고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제발, 켜져라... 간절히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는데 밤처럼 어둡게 물든 문 유리… 너머인가?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보인다.
아니 뭐야?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자 보이는건 검게 물들어 거울처럼 제 모습을 비추는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이였다. 일반적인 모습과 똑같다. 옷이 좀 구겨지긴 했지만. 문제는 제 머리 뒤에는 동그란 모양의 헤일로가 떠있고 등 뒤에는 사람 몇은 가볍게 감쌀수있는 날개가 비춰보인다는 정도일까.
“어, 어? 어??”
당황해서 머리랑 어께를 더듬었다. 뭐야, 아직도 꿈인가? 팔을 빼내어 머리 위를 휘저었는데 빛은 제 손에 잡히지 않고 일렁이며 저를 약 올리고 있었다. 제 뒤에 있는 사람들은 잔뜩 끼어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스마트폰의 각도를 절묘하게 움직여 제 모습을 찍고 있었다.
볼을 손톱으로 콱, 꼬집자 눈물이 날 만큼 아팠다. 그런데도 상황이 변하질 않는다. 상황도 모르고 무심하게 덜컹덜컹거리며 자신을 회사로 운송하는 지하철에, 자신을 향한 수많은 카메라, 어두운 창에 비친 괴상망측한 모습까지 모든 게 그대로였다. 찰칵, 어디선가 카메라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찍,”
지 마세요! 하는 말이 나오다 목젖에 걸려 쥐 우는 소리가 났다. 솔직히 나였어도 같은 전철에 이런 인간이 타면 신기하겠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사장한테는 뭐라고 하지? 아 제가 갑자기 뒤통수에서 빛이 나고 날개가 생겨서 출근을 못 하겠습니다! 그럼 허허 그렇군. 알겠네… 할 리가 없지!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출근은 해야 했다.
그저 얼굴만은 가려주고 너튜브든, 톡톡이든에 올리길 바라는 수밖에… 아, 이게 무슨 일이람. 울고 싶은 마음에 이를 악물고 창문만 노려보는데 곧, 다음 정거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우르르 빠지며 몸 여기저기가 부딪혔다. 생각해보니 등 쪽에 저런 날개가 자라났는데 나는 어떻게 몰랐지? 하고 멍하니 팔을 움직여 만져보려고 하는데 실체가 없는지 그대로 손이 날개 깃털 끝을 그대로 통과했다. 아, 이래서 옷을 입을 수 있었구나, 과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해 반쯤 파업한 뇌가 그거 하나만을 이해했다. 아침에 출근하는지 차에 올라타려던 몇 사람이 지하철에 끼어있는 날개 달린 사람을 보고 아멘, 주여!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 부정하고 싶었지만 인정해야겠다. 이 모습은 꼭 특정 종교에 나오는 ‘천사’같아 보인다는 걸. 사실 나도 안다.
그런데 제기랄. 나는… 무신론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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