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무를 위해

첫 번째 의뢰

줄리엣 클락>마리안느 밀러

1.

“그런데 실례지만 밀러라면, 그, 당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드립니다... 밀러 론 컴퍼니... 그쪽과 관련이 있어?”

“아, 그래! 이거지. 나를 모르는 게 말이 안 된다니까. 그 컴퍼니가 내 밀러야! 너도 도와줄 게 있으면 말하고.“

중요한 것만 기억한다고 한 당신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를 기억한다고 말했던 당신이다. 혹시 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알려주겠다고 하던 나이다…. 날것의 해결 방법을 선호하는 가문에서 자란 쪽과, 되도록이면 “평화”로운 해결 방법을 선호하나, 그 안에는 칼날을 숨겨 신중히 기회를 노리던 쪽.

고해하겠다: 태워먹은 속눈썹 한 쪽보다는 조금 무거운 비밀이다.

4.

“솔직히 말할까…. 내가 알아야 해? 나는 순수 혈통 뒤나 쫓아다니는 지금의 네가 아─주 불만인데도.“

“정답은, "변한 것 없다"야! 그냥 네가 한번 봐줬으면 했거든.”

나는 여전히 가끔 자기 주장이 약하고 자주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못하며 여전히, 아닌 척 성질이 나빠서, 당신을 꽉 붙들고서는 도저히 놓지 못한다. 같은 기숙사의 누군가 성으로 부르라 해 상처를 받았다며 처음으로 붙잡고 응석을 부리던 상대인, 조심하지 않으면 조금 반해버릴 만큼 괄괄하고 사납고 머리 하나는 크던 당신을 어느새 거의 앞질러버렸음에도.

결국 그날 호그스미드에서 사주지 못했던 선물이 있다. 당신은 (별로 칭찬은 아닌 투로-그야 당신은 “착한” 여자아이들을 별로 곱게 보지는 않았으니까) 너는 착한 건지 그렇게 보이려는 건지 노력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말했으나, 매순간 당신에게 했던 것은 천성이 절반, 노력이 절반이었다. 나는 돌이켜 보자면 본능적으로 당신의 아버지를 무서워했고(빚쟁이가 뭔지 이해하지 못하기에는 교육받은 것이 많다) 당신을 무서워했으며 어쩌면 처음부터 조금 글러먹은 인간이라 위험에 속절없이 끌리고는 해서. 절교를 선언하는 당신을 밀어내지도 잡아당기지도 못하고 자리에 서서 울어버렸다. 당신이 눈물을 닦아주어도 우리는 “같은 편”이 아니다. 그러니 잘 살아, 마리- 마리안느. 어디에 있든 씩씩하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깡패로. 미련 없이 그렇게 외치고 시원하게 뒤돌아설 수 있다면… 그럼 이쪽의 이름이 마리안느 밀러였겠지. 지금까지도 연기에는 소질이 없다.

7.

“그럼 연습하지 말고 아껴둬. 마지막 순간에서 네가 우는지 확인하고 싶거든.“

“…안 울 거야, 난. 그러려고 연습하는 거니까.“

그러니 나는 쉬운 마음으로 죽지 않았는데도. 나는 당신들의 집을 짓고 싶었고, 당신들이 내 집이었고. 그러니 당신들의 편이 되는 것과 내 일신의 안정,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들을 선택한 것뿐이며, 당신과 함께 7학년의 밤을 키득거리며 지새워 만든 홍수가-우리를 거부한 세계에게 내리는 첫 번째 재앙이-고성을 천천히 집어삼키는 동안, 혼자 우리가 야영하던 대연회장 위를 날며 매순간 아팠고 두려웠고 서러웠으며 그저 나와는 달리 우아하게 퇴장하기를 택한 당신들을 붙잡고 말할 용기와 의리가 부족했을 뿐인데도. 쉽게 잊혀지느니 그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악몽이 되리라. 처음엔 위안이었으나 삶을 바쳤으니 그 또한 신념이었고 이제는 그 신념이 내 삶을 지탱해서.

?.

“최근에 여기 온 적 있어? 있으면 안내 좀 해 줘. 다 까먹었거든.”

“하지만 안내를 하려면 목적지가 필요해. 어디로 가고 싶나?”

당신은 미치지 않는 이상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아라, “우리”가 이곳에 돌아왔다. 세상은 한 편의 부조리극이니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광인이다. 평화와 화합이라는 이상은 나에게도 아스라이 멀고, 부탁했던 설계와 답례로서의 추심이 완료되어 오래된 채무는 모두 갚았음에도 우리는 곧 서로에게 질릴 만큼 지팡이를 겨눌 것이니. 당신의 체념이 이렇게 깊은 줄 몰랐다는 나에 대한 자책과, 참 여러 사람의 예상과 기대를 깨고 가장 경멸하던 이들의 곁에 서며 최악의 단절을 택한 당신에 대한 실망과. 익숙한 장소에서 느끼는 막연한 그리움 사이에서 아,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이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당신이 살아 시칠리아의 그 모순적인 학교로(그 학교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7학년의 대화를 떠올렸다 쫓겨나 갈 곳 없는 붉은 머리와 검은 머리 아이들과 혐오를 학습하는 아이들 무시해도 좋다 예술가 특유의 자의식 과잉이다),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가더라도. 아주 잠시만이라도 더. 나는 상실을 견딜 수 없어 당신들의 상실이 되기를 각오했으나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세계에 또한 내가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면으로 손을 올린다. 속삭이듯 암호를 외우면 그것이 얼굴에서 떨어진다-만약 당신이 고개를 돌린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다. 아주 잠깐 동안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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