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을 만큼 너를 좋아해

현현 좀비 아포칼립스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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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아냐.

말하지 마.

너 저번에 공부 얘기 했을 때 있잖아. 걔…… 서주호랑.

말하지 말라니까.

너네 둘은 무슨, 고3 얘기 꺼내 놓고 내가 연애 얘기 꺼내니까 질색하더라.

……질색, 까진 안 했거든…….

했잖아. 이 상황에 연애 얘기가 나오냐고 그랬잖아 너. 서주호도 나한테 그런 말을 안 했는데 권소현이 다 하고 진짜. 내가 그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아냐? 공부보단 연애가 낫지, 어? 너는 안 그래?

말하지 말라고 해도 안 들을 거지? 내 말…… 내 말 듣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래도 네 말은 꽤 많이 듣지 않았어? 나.

지금, 지금 안 듣고 있잖아. 지금.

권소현.

왜!

와, 권소현이 나한테 소리도 지르고. 꼬북 많이 컸다?

…….

아무튼. 됐고 너 아냐고.

…….

어쭈. 이젠 대답도 안 한다 이거야?

뭘…… 뭘 알아. 내가. 몰라…….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지현호가 그렇게 말했을 때 권소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쇠 냄새가 맴도는 창고 안에 지독한 침묵이 깔렸다. 지현호는 폐부가 찢어지는 심정으로 웃었다. 곧 있을 실연에 대한 아픔인지 잇자국이 선명하게 난 팔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너 똑똑하잖아. 넌 알아?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녹빛 눈동자는 가라앉아 있다. 고백에 대한 기쁨, 당황, 하다못해 싫은 기색조차 없다. 난처한 표정으로 저, 지현호…… 하고 대답하는 모습이나 입을 꾹 다물고 차마 싫다는 말을 못해서 입술을 달싹거리는 모습이나, 만에 하나, 그럴 리는 없지만, 도무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뺨을 약간 붉게 물들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다가 자그맣게 나도 좋아…… 같은 말을 꺼내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적은 있지만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 애의 눈에 찬 건 절망이었다.

그래서 지현호는 어딘가 울고 싶어지는 기분으로 숨이 막힐 듯한 심정으로 마치 사랑 고백하는 낭만으로 말을 뱉었다.

권소현.

너는…… 넌…….

나 너 대신 물린 거 아니야. 너 살리려고 물린 건 맞는데, 어차피 너 죽으면 나도 못 살아. 그러니까 그냥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거보단 너 혼자 사는 거라도 좋아서 그런 거야. 어? 너 똑똑하니까, 알지? 둘 다 죽는 거보단 하나라도 사는 게 좋잖아. 알 거 아냐, 모범생.

지현호가 왼팔을 들었다가 욱신거림을 느끼며 다시 내렸다. 머뭇거렸다가 물리지 않은 오른팔로 권소현의 이마를 툭 튕겼다. 평소였다면 눈을 둥그랗게 뜨고 볼멘소리로 뭐 하는 거야…… 하고 소심하게 항변했을 권소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희미하게 말라붙은 눈물자리 위에 새 울음기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냥 권소현은 지현호를 보고 있었다. 염색이 다 빠진 검은 머리칼, 이 와중에도 기어코 웃고 있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울지 마.

이런 때까지 다정하지 말았어야지.

그런 말로 위로하려고 하지 말았어야지.

그냥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야지, 나랑 같이.

마지막으로 남은 게 너니까 그래야 하잖아, 지현호…….

난 서주호랑 달라서, 네 손에 피 묻히는 짓 안 해. 나갈 거야. 너는 나 안 좋아한다고 해도 친구라고 울 거잖아 나 죽이면.

지현호.

그러니까 권소현. 가던 길 잘 가라. 혹시 누가 덮치면 절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야구방망이로 내려쳐, 어? 최승현이 그거 괜히 너 주고 간 거 아냐. 살면 어, 그 뭐냐, 밥도 먹고 비타민도 먹고 운동도 좀 하고.

…….

그리고 연애랑 결혼……. 이건 하지 마라.

…….

어? 하지 마라. 아니 하는데, 아니, 하지 마. 나보다 잘난 놈 있을 때만 해라. 어? 지현호보다 잘난 놈 찾기 힘들걸? 알지?

…….

권소현.

…….

대답해, 권소현.

……왜…….

내가 너 좋아한다고 했지?

…….

내가 좋아하는 만큼 잘 살아.

죽어도 좋을 만큼 너를 좋아했어, 같은 말은 의미가 없어서 하지 않았다. 지현호는 그냥 씩 웃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조용히 권소현은 생각한다. 손을 한 번 뻗었다가, 숨을 들이켰다가, 한번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가, 그는 등을 돌린다. 나는 정말 멍청이야. 권소현은 다시 생각한다. 그 등을 가만히…….

가만히.

있잖아 유나야 고백을 받았어 네 말이 맞아 지현호가 나를 좋아한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대.

근데 왜 그렇게 울상이냐고 그러게…….

…….

있잖아 유나야.

고백을 받았는데 실연을 당했어.

권소현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가만히 보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신음이 들렸다. 그 애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그 애의 목소리로, 권소현 자신의 감정을 덧입혔다. 죽어도 좋을 만큼 너를 좋아해. 그것만은 확실할 거야. 그럼 있잖아 지현호.

살아도 좋을 만큼 나는 너를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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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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