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합작, 밴드au 이과조
첫 번째
시작은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진부하기 짝이 없다.
자그마한 소문이 비탈길 구르는 눈덩이가 그러듯 입에서 입으로 옮길 때마다 불어나 점차 거대하게 변하는 게 이야기인 것처럼, 누군가의 권유에 별 생각없이 그러겠노라 한 게 지금은 온갖 신화가 따라붙을 정도로 알려진 이 밴드의 시작이니,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고 사라진 밴드가 얼마나 많은지 세보면 이들의 처음이 얼마나 시시한 일인지 쉬이 알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만들겠다면 평범한 시대라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동아리 경력으로 노래 좀 부를 줄 아는 잠뜰과 피아노 악보를 읽고 마음에 드는 소절 하나 지어낼 수 있는 각별, 사달을 만들어놓고 정말 걸리니 도망친 전 리더까지.
이건 고작 셋에서 꼴랑 둘이 되어버린 무명의 밴드가 어영부영 살아남아 이름을 가진 동시에 여섯까지 늘어난, 그들만의 완전을 찾기 전 이야기다.
“와, 오빠 우리 어쩌냐.”
“뭘 어쩌긴 어째. 진짜 엿된 거지.”
너 어디 아는 반동분자 있니? 허탈한 웃음, 힘없이 무릎 위로 퍼진 손에서 공허하게 서로를 마주 보는 눈과 헛소리에 무어라 대꾸해보지만 말 대신 퍼석하게 마른 이불 같은 한숨만 입술을 넘어선다.
극도로 효율만 추구하는 이 세계에서 감상을 부르는 예술 활동은 그저 그런 범죄를 넘어 쿠데타와 동일한 선상이다. 반항기를 들어서 이건 부조리하지 않나 싶은 청소년과 청년 여럿이 암만 이의를 제기해도 이미 그런 생각이 통념으로 자리잡힌 세상은 꿈쩍하지 않았고, 아무리 좋아하는 걸 빼앗긴들 그게 목숨을 걸 정도로 반항이 필요하다 생각치 않아 나름대로 잘 숨기며 살던 둘이 이런 상황에 놓인 이유. 아니! 만든 거 걸렸다고 튈 거면 우리는 왜 부르고, 애초에 왜 만들었는데. 아, 골 아파.
그런 이유다.
눈두덩이 위 눈썹뼈를 손바닥 맨아래 볼록한 부분으로 문지르면서 중얼거리던 잠뜰이 지난주 속보 신문지로 똘똘 말아 가린 소형 마이크 손잡이를 꽉 쥐자 테이프 붙지 않은 면이 덜렁거리며 이번 블랙리스트 체포 현황을 드러났다. 그걸 보자마자 우리도 당장 내일이면 여기에 한줄씩 나오게 생겼다고 각별이 멀어진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깜빡거리는 잠뜰의 휴대전화 화면으로 덕개라는 이름이 작게 떠올랐다 사라진다.
“잠깐만. 덕개한테 문자 왔는데… 애가 어디 아픈가.”
“왜. 감기라도 걸렸대? 개도 안 걸리는 여름감기인가.”
“아니. 지낼 곳 없으면 자기 집 오라는데”
“애가 미쳤거나, 진짜 아프거나. 전화 좀 해봐라야.”
혼자서는 미약하나 함께하면 몇 배의 가능성을 만든다며 조직 결성 자체를 중대한 범죄로 비추는 때.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아남기를 강제하고, 거기에 순응한 모두가 정부와 규칙이라는 구심점 하나로 똘똘 뭉쳐 매달리는 생활. 밑받침도, 중심으로서 엮어주는 효과도 확실하니 살기 좋은 시기라면 시기긴 했다. 거기에 어긋나는 건 피곤하다며 부러 주변과 똑같은 말을 하던 잠뜰이 동네 도서관 속 구식 컴퓨터를 붙잡고 종일 사는, 아는 오빠 중 가장 이상한 각별을 붙잡고 밖으로 나와 노기가 똘똘 뭉친 목소리로 오로지 한 목표만 가지고 찍어내는 양산형 삐라 같은 절대다수의 정의라며 분개한 사건이 아니라면 그도 철제 조형틀 속에 안락한 보금자리를 틀고 살았을 테고, 각별 또한 그랬으리라.
분노가 잦아들면서 서러움만 남았는지 매미 소리에 묻힐 울음을 훌쩍이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잠뜰이 말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의 약점을 쥔 공범이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공공장소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책상을 두드려 박자를 만든 순간을 찍어 올린 누군가 덕분에, 그리고 마침 같이 있으면서 동조하지는 않아도 모른 척 함께 즐기던 자신을 위해 종신형을 떠안고 사라졌음을 고하자마자 드물게 집중하고 듣더니 서툴게 위로라도 해야겠다 싶었는지 마찬가지로 누군가 안다면 큰일날 비밀스러운 죄를 고백한 각별 덕분이다. 두 사람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악기는 오로지 장식으로만 존재해야하기에 만일 제 기능이, 울림통이 존재하면 그 자리에서 서로를 고발하거나 체포당해도 할 말 없는 곳이 곧 그들의 고향이므로.
로봇은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니 애초에 모든 불씨인 감정과 비이성적인 생각을 제거하자며 과거 인간의 정의를 하나씩 잘라낸 세계지만 그럼에도 상위층은 재물도, 감정도 풍부하게 즐기는 모순과 부조리가 깔깔한 안개처럼 하위층 계급에만 만연하게 깔린 걸 더는 모른 척 동조할 수 없다고, 그날 이후로 편안한 공간에서 내려와 각별과 공범이 되길 자처한 잠뜰은 단칸방 집을 산 각별이 바닥부터 뜯어 불법개조해 만든 지하실에 몰래 숨긴 전자 피아노로 사장된 노래를 부르거나 매끈한 플라스틱 건반을 누르면서 손이 닿는대로 숨결에 음악을 새기는 대역 범죄를 즐기기 시작했다.
각별이라고 처음부터 그런 일을 승낙한 건 아니지만 상처 입고 결심한 어린 영혼을, 그것도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도움도 주고 받은 동생을 외면할 정도로 매몰차지 못해 행동 빠른 고집쟁이 여동생의 행보에 그대로 휩쓸린 거지만, 좋아하는 게 비슷해선지 얼마 못 가 체념하고 즐기더라.
허나 인간은 깊게 좋아하는 걸 좋든 싫든 함께 나누고 싶어하기 마련이므로 이목을 피해 단 둘이서만 불법 낭만을 즐기던 두 사람이 밴드 결성에 관심을 가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수배 전단이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올라오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친 주범자를 잡아도 문제, 잡는 방법도 문제라 달리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새벽 이슬과 차가운 빗속에서 래핑한 키보드와 마이크, 유선 스피커를 안고 덕개의 자취집으로 달려온 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커튼을 치고, 이중으로 문을 잠그면서 현관문 렌즈 구멍에 종이 테이프나 포스트잇 붙이라는 잠뜰의 말에 허겁지겁 붙이며 큰 한숨 한 번 내쉰 덕개를 신발장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뻔히 바라본다.
“폰으로 영상 구경하다 누나랑 형이 광고 전단으로 뜬 거 보고 진짜 놀란 거 아냐고. 형이야 언젠가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누나는 무슨 일이야. 누가 배신하고 꼰질렀어? 누군진 몰라도 진짜 못 됐다. 누나가 알 정도면 어느 정도 보장된 사람인데 작정한 거 아냐 이거. 근데 왜 둘 다 신발만 벗고 그러고 서 있어? 힘들텐데 가서 앉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둔탁하게 유리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 겹 걸러 희미하게 들린다.
무게를 먹고 떨어지는 드라이아이스의 희뿌연 연기처럼 바닥부터 차곡하게 채우는 침묵과 전등 불을 잡아먹고 강렬하게 점멸하며 시야를 가리는 번개와 15초 느리게 울리는 먹먹한 천둥 소리, 뒤집어 쓴 모자 때문에 빛 한 점 없이 어둑하게 죽은 눈동자 두 쌍에 쫄아 왜 그러고 가만히 있냐는 의문 섞인 질문을 들어도 지그시 보기만 하던 둘은 결국 서로를 힐끔거리며 피로에 절은 얼굴을 한 번씩 문지르더니 이내 각자의 짐을 좁은 거실 한 쪽에 내려두고 참았던 숨을 푹 내쉬며 물에 젖어 찝찝한 겉옷을 벗었다. 덕개야, 옷걸이 있냐. 연기 같은 긴장이 사르르 흩어지는 한 마디와 함께.
아까 왜 그러고 있던 거예요.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네. 허름한 소파에 기대 앉아 얇은 여름 반팔 하나로 덮은 가슴 위를 쓸어내린 덕개에게 우스갯소리로 뒤꽁무니 불 붙은 개처럼 안절부절 못하길래 고발한 줄 알았다며 지나가듯 말하다 주먹 대신 욕을 주워먹은 각별이 어깨를 으쓱이며 잠뜰을 보고, 그제야 그게 혼자만의 생각이 아님을 깨달은 산만한 덩치의 갓 스물은 비좁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과장스럽게 우는 척을 한다. 누구한테 배운 거냐 물으면 너요. 이 늙은이야. 하고 평소처럼 딴지 거는 톤으로 말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덕개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때가 되었다며 혼자 진지한 척하던 각별의 소개로 얼굴만 트고 지낸 인연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몇 번 말도 하고, 공통점인 각별이 직접 데려오기도 해서 어렴풋 이야기 나눌 사이는 되지만 그리 친근하지 않던 두 사람이 터울을 건너고 친해진 건 잠뜰이 갓 대학교를 들어갈 무렵. 서로 터울 없이 지내게 된 계기와 까다로운 잠뜰이 덕개를 마음에 들어한 다채로운 사건이 쌓아올린 젠가 탑처럼 많지만, 그건 언젠가 다시 이야기 하자.
시시덕거리며 별 걸 다 배웠다고 복슬거리는 연갈색 머리를 눌러 막내의 시선부터 덮어버린 각별이 문득 턱을 당겨 바닥에 주저앉은 잠뜰을 본다. 소리 없이 벙긋거리는 입. 바로 옆자리, 손 뻗으면 닿을 자리에 걸어둔 겉옷에서 한 방울씩 느리게 고인 빗물이 툭툭. 저리 치우라는 막내의 분주함이 없다면 한없이 고즈넉한 공간에서, 가만히 까만 눈동자와 소리의 흔적을 번갈아보던 그가 선택한 건 따라 벙긋거리는 대신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 젓는 일이었다. 어쩌려고 그러냐. 단호한 선택에 각별이 제 손등 덮은 후덥지근한 손을 애써 무시하고 벙긋벙긋 소리 없는 말을 걸어도 눈길 한 번 주거나 짧은 대답도 없던 잠뜰은 쫓기기 시작한 이래 쓰기 시작한 공기계만 만지면서 그새 무더기로 쏟아진 실속 없는 신문과 속보를 살피기만 할뿐이다. 드디어 풀려난 덕개가 엉덩이 끌고 다가와 저거 왜 저러냐며 친근하게 궁시렁거릴 때까지.
“덕개야.”
“응. 누나, 뭐 필요한 거 있어?”
“우린 네가 불러서 온 게 아냐.”
왜냐면 넌 우리랑 어젯밤에 싸워서 손절당한 사람이거든.
뜬금 없는 이야기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대꾸할 새도 없이, 주머니에서 요란하게 떨어진 누군가의 휴대폰 위로 무수한 글씨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덕개도 잠뜰과 각별도 쓴 적 없는 말과 문장이 그럴싸한 감정을 담고서, 점멸하는 불빛과 함께. 누가 했을지 아주 뻔했고 싸운 상황 설정은 또 누가 정했을지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으리라. 겁나 싸우고 화가 난 내가 널 털러 오빠랑 같이 온 거지, 쉬고 간 게 아니야. 우당탕 의자 쓰러지는 소리와 현관문 앞 거실을 일정하게 채운 발자국 모양 물자국, 끼긱거리며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거실 1인용 식탁, 박박 찢겨 바닥에 흩뿌려진 달력 쪼가리. 무뢰배가 오고 간 모양새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사람을 얼떨떨한 얼굴로 보면서 용케 치우기 귀찮은 짓만 한다는 말 하나만 하고 뒷말은 입술을 꾹 물어 겨우 참아낸 덕개는 익숙한 표정으로 난장판에 바닥만 훑어보는 잠뜰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그건 일어난 일이야. 네가 어떻게 할 수도 없어.”
떼어내는 손은 조심스럽지만 뒤로 밀어내는 힘은 단호하기 그지없다. 이제 우리를 기다릴 필요 없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젖은 겉옷 소매를 잡아 빼고, 각별이 안쪽에 가져온 신발을 신은 잠뜰은 자신없이 웅얼거리며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입술을 한 번 감쳐물더니 그대로 복슬한 정수리를 눌러 흐트러뜨렸다. 잘 있어라, 임마. 그새 스피커와 마이크 등 자질구레한 물건을 챙긴 각별도 동참해 가뜩이나 동그랗게 퍼진 머리가 솜사탕처럼 부푼 건 두 말할 것도 없다. 잠뜰이 몰래 올게.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와 기약을 걸어두지만, 그게 언제냐는 귓속말에 대답이 없는 건 그도 똑같더라.
그래도 다시 만날 수는 있는 거야. 우리? 의구심과 무언가를 느낀 느린 목소리에 답 대신 언젠가 선물로 받았다며 이 집까지 들고 온 누군가 덕에 그 자리에서 만든 실 팔찌 두 개가 동시에 올라와 설렁설렁 흔들리고, 점멸하는 번개가 깜빡거린 탓에 색을 잃었다 돌아온 주황색 팔찌가 콰르릉거리는 천둥소리와 습기를 집어먹어 눅눅하기 그지없다.
후회하지 않아?
갑자기? 게다가 되게 늦은 질문인 거 알지.
거……. 미안하다.
됐어. 후회할 거면 시작도 안 했으니까. 오빠야말로 후회 안 해?
안 하겠니. 눈 감고 뜰 때마다 하지.
그런 사람이 여기까지 어떻게 따라왔대.
네가 쉴 곳이랑 밥 구해오잖아. 아녔음 진작 도망 갔지.
어이 없네 진짜.
도시에서 멀찍이 떨어진 변두리 외곽에 철거도 안 되고 버려진 오두막이 늘 도망자의 피난처가 되는 클리셰에는 전부 이유가 있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늘어져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성가시게 휘감기는 거미줄 뭉치와 조금만 푸닥거려도 날아와 코와 목구멍부터 간지럽히는 먼지, 인적이 드물다 못해 인기척이라는 게 존재하질 않아 누구 하나 죽어도 발견보다 삭아서 흙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겠다는 진심 섞인 모씨의 한 마디까지. 며칠을 숨죽이고 있어도 도시에서 지낼 적에 환청 들릴 정도로 울리던 사이렌이 고작 거리로 사라지는 게 말이 되는 거냐며 투덜거리는 걸 맞장구치던 잠뜰은 각별을 도와 이제까지 지고 다니던 짐을 기어이 풀었다. 몇 번이고 버릴까 고민하다 결국 옆구리에 끼고 도망치던 것.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 도피처라며 수척해진 얼굴로 단언한 그는 나무지팡이에 기대어 기다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열심히 수긍하는 공범자를 한심하고 측은하게 바라본다. 이제껏 머물만하다 싶으면 불안하다고 빨리 도망치자던 원인이 푹 퍼져서 끌려다닌 몰골로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여기서 걸리면 그냥 잡혀서 죽을란다. 키보드는 집 정리부터 하고 풀겠다며 나무지팡이에 다 해진 옷을 걸레로 만들어 달아놓고 지금까지 바닥 닦던 각별이 끙끙거리며 허리를 잡고 흘리는 소리에 괜히 불길한 소리 한다고 타박 먼저 하던 잠뜰이 지저분하고 쿰쿰한 공간의 끝과 끝을 눈으로 재보더니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이지만 눌러붙은 얼룩을 마주치면 박박 닦고, 쓰레기가 있으면 밖으로 죄 몰아낸 다음 밀었는데도 지저분한 공간이 도무지 끝나지 않은 탓이다. 고작 방 두 개에 대학생 자취방처럼 가구 몇 개 놓으면 꽉 찰 조그마한 크기인데도 지저분함은 넓은 방 저리가라다. 벽부터 거미줄 주렁주렁 달린 천장에 이끼가 덕지덕지 들어찬 틈새는 또 어쩌나 싶어서 퍼진 한숨을 내쉰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더니 손바닥에 시뻘겋게 눌린 자국이 생길 정도로 꽉 잡은 수제 마대 자루를 바닥으로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갔다.
“청소, 너무! 지루해!”
“아오, 귀청 따가워. 진짜 고랜 줄”
“여기 아무도 없는 거 오빠도 알면서 그런다. 누가 듣기는. 그나저나 먼지 때문에 목 아프네.”
남이 대신 걱정할 짓만 골라하던 사람은 이럴 때만 조심스럽게 굴고, 매사가 철두철미해 동년배보다 어른스럽단 이야기만 듣는 사람은 이럴 때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펄쩍거리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덜미를 잡히기 일쑤다. 콜록거리면서도 쫓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시원하다며, 지치고 고단해 날뛰지 못하는 각별 대신 연못 속 개구리처럼 밤하늘 아래를 휘젓는 잠뜰과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지침 반 막막함 반, 그리고 정체모를 예감 반으로 뒤섞인 한숨을 내쉬고 지켜보던 각별은 진짜 줄 대신 허밍으로 고삐를 잡으려는지 자기 허벅지를 툭툭 건드리며 박자부터 타기 시작했고, 과장되게 깔깔거리던 웃음이 잦아들 무렵에야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부터 번쩍 든 무명 밴드의 보컬은 그제서야 제자리에 장대처럼 가만히 선 채 퍼즐 끼워맞추듯 허밍에 맞는 화음부터 골라 집어넣는다.
상상 속 드럼이 스틱을 세 번 두드리며 시작을 알리자마자 하얀 북피리를 때리고, 뒤를 이은 잠뜰이 어설픈 손짓으로 보이지 않는 품의 기타줄을 뜯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가 중후하게 깔려서 있는 줄도 모를 베이스에 묻혀 그럴싸한 노래 한 곡이 두 사람 머릿속에서 징징거리며 최소한의 음정과 박자를 갖추고 나타난다. 발장구부터 허벅지와 바닥 때리는 소리, 다른 높낮이로 깔린 콧노래가 피아노 건반과 배경음악처럼 들릴 즈음, 흔히 인디 밴드에서 할법한 록이나 블루스보다 조금 더 톡톡 튀는 음을 담은 목소리가 전주를 뚫고 나왔다.
일반적인 밴드 음악에도, 대중 음악에도 속하지 않을 독특한 노래. 곡 취향부터 가치까지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달라서 박자 잡을 때부터 투닥거리는 두 사람이 여직 팀을 꾸려 도망까지 함께 하는 이유가 오로지 이것 때문이라고, 이런 상황까지 와서도 툭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이유가 오로지 그뿐이라고 솔직히 말한다면 대부분은 이해 못하리라. 당사자도 이해 못하겠다고 투덜대는 판에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새빨갛게 지는 노을과 사람 그림자 속에 들어가 길게 또아리 튼 땅거미가 그림처럼 박힌 폐허에서 마주 보는 눈이 말간 감정을 장작 삼아 붉게 타오른다. 때맞춘 반항심, 그걸 잊을 정도로 몰입한 즐거움과 분위기에 심취해 점차 거세지는 목소리가 두 사람을 무대로 이끌었다. 황량한 벌판에 바람이라는 마이크를 달고, 다 말라죽은 잡초를 객 삼아서.
무수한 무기물 관객 사이에서 원초의 음악을 연주하던 둘이 문득 시선을 맞추고 슬금슬금 말아쥔 주먹을 부딪친 건 그들의 자작곡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때였다. 우린 벽을 박차고 반대로 갈 거야. 수영선수처럼. 장벽을 발로 밀어내고 나아갈 거야. 출발선이 결승선이 되는 기적을 보여줄게. 마라토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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