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금

🦁👟+🔗🎭 하 이 조합에 왜 이름이 붙은 거지...왜 넛츠가 된 거지...왜...

난향녹차 by 참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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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간다, 루카!"

"엉? 어……어! 잠깐잠깐잠깐 잠까안!"

신발을 구겨 신고 뛰쳐나가려던 알반이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한 사람처럼 멈추었다. 방만한 자세로 반쯤 누워있던 루카는 컨트롤러까지 떨어뜨리며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 아니, 쟨 뭐 ‘잠깐’ 나갔다 온다면서 저렇게 번드르르 새로 산 옷은 죄다 껴입고 나간대?

"너!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는 거 잊지 마라? 엉?"

알반이 나가려다 만 까닭은 형이 부르니까 착실하게 들어주려는 얌전한 아우의 마음가짐 때문……일 리는 없고, 그냥 겸사겸사 신발이나 제대로 신고 나가자 싶어서 문전에서 부스럭거리고 있을 뿐인 게 분명했다. 고개 들어 사람 눈 한 번 마주볼 생각도 하지 않고 심드렁하니 핀잔이나 주는 꼴이 딱 그랬다.

"루카, 엄마도 통금을 저녁 먹기 전까지로 정해준 적은 없어. 나 스무 살이야."

"스무 살이면 뭐 살인마가 널 피해가고 스토커가 너만 못 알아본다는 법칙이라도 있냐?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어두운 데 나다녀!"

물론 때는 한여름으로, 저녁 먹을 즈음이 아니라 후식으로 수박 좀 잘라 먹고 아이스 커피까지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다가 화장실만 두세 번 들락거리고 나와도 땅거미나 겨우 지고 마는 수준이다. 운동화를 깔끔하게 고쳐 신은 알반은 현관 한번 보고 천장 한번 보고 복 달아나라 한숨 한번 푹 쉬고 손사래를 치며,

“써니랑 밥 먹을 건데 뭔 일이 날라고.”

네가 정한 통금은 어쨌든 무시할 거라는 의지를 피력했다. 줄여서 ‘형이 뭔데 난리야’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루카는 알아듣지 못하고 펄쩍 뛰었다.

"걔가 제일 위험하거든?! 걔가 제일 흉흉하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냐!"

"루카……써니는 네 친구잖아."

"친구니까 더 잘 알지. 걘 진짜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너한테 위험하다고!"

"그리고 내 남자친구고."

"난 인정 못해! 너 걔네 집 갈 생각도 하지 마!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도 알아."

"알아? 왜 알아?!"

"되게 착하고 믿음직해 보여서 좋대."

"엄마!"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다고 여행 떠난 모친이 갑자기 돌아올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자식이 우리 엄마를 속였어, 중얼거리며 머리털을 다 쥐어뜯는 루카를 힐끔 돌아본 알반은 조용히 현관문을 밀었다. 걸쇠 밀리는 달그락 소리에 다시 번쩍 고개를 든 루카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남자는 다 늑대라고! 듣고 있어, 알반?! 아무도 믿으면 안 돼!"

라고 알반의 형인 루카가 루카의 남동생인 알반에게 말했다……편견에 찌든 건지 반대로 타파한 건지 알 수 없는 모순을 음미하며 슈는 불난 집에 조용히 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보았다. 학구적 호기심 때문이거든. 절대 재밌어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

"알반 옷 입은 거 봐. 바지에 구멍도 나고 장난 아니다."

유행이 돌고 돌아 주먹도 들어갈 구멍이 뻥뻥 뚫린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놈들에 비하면 알반은 그야말로 빅토리안 레이디나 다름없다는 사실 따위는 루카의 머릿속에 자리잡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괴상한 소리로 포효하며 휴대폰을 두들겨 패는 루카를 향해 웃지 않기가 정말 고역이었다.

"뭐 보내?"

"어? 어. 써니. 브리스코. 이. 새끼야. 내 동생. 집에. 일곱 시까지. 안 보내면. 진짜. 뒤진다. 아, 씨. 핸드폰은 왜 이렇게 작게 만드는 거야. 오타, 아, 젠장!"

그래서 그냥 참지 않기로 했다. 허파가 뻐근해지도록 웃느라 결승선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커다란 화면 속 슈의 캐릭터가 1위나 2위는커녕 레이스 중도포기 화면에 들어가있는 것은 대단히 진귀한 풍경이었지만, 뭐, 진작에 컨트롤러 갖다 버린 루카에 비하면 양반이니까 괜찮다.

신경도 쓰지 않을 상대에게 어차피 무시당할 문자를 연달아 보내느라 기운만 쪽 뺀 루카는 흐느적거리며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댈 뿐, 마찬가지로 게임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은 없어 보였다.

"슈우우우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부르더니 한다는 하소연이 이 모양이다.

"아니, 난 남동생이랑 여동생이 있으면 집에 빨리 오란 말은 여동생한테만 하면 될 줄 알았지. 왜 알반한테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니 근데 걔가 먼저 연락도 없이 외박하고 막 아니 들어봐 다른 놈도 아니고 십 년 넘게 본 형 친구를 만난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써니 그 자식은 아직도 쟤 앞에서 내숭 떨고 있는 건지 무슨 미친 소리만 맨날 듣고 살고 내가 이러고 사는데 답답해서 진짜 아 그래 물론 그자식 괜찮은 놈이긴 하지 그래 그건 나도 그렇게 말하고 다닌 적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거야 다른 데 가서 다른 사람 만나라는 뜻이었지 어떻게 코 찔찔 흘리고 뛰놀던 시절부터 봐 온 친구 동생을 내가 보는 앞에서 건드릴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정말 친구지만 나는 가끔 걜 이해를 못하겠고 알반 이 자식도 형이 얼마나 걱정하는데 내 속도 모르고 뒤늦은 사춘기라도 온 건지 눈도 안 마주치고 나가는 거 보면 내가 진짜 상대가 남자가 아니었으면 어디가서 애라도 업고 들어와서 엄마 뒤로 넘어가시게 할까봐 무서워서라도 더 빨리빨리 다니라고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고작 스무 살이면서 뭔 스무 살이 벼슬이라고 저번에도 엄마아빠 주말 여행 가신 틈에 말도 없이 외박하고 써니 차로 등교한다고 아침에도 들어오지도 않아서 요츠하가 작은오빠 어디갔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대답도 차마 못하겠고 제발 요츠하 너만은 멀쩡한 애인 만나서 여섯 시 되기 전에 집앞에 바래다주는 게 당연한 줄로 알고 살아야 하고 결혼 전까지 동거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하고 혹시 모르잖아 아빠가 바쁘시면 요츠하 손을 내가 잡고 입장할 수도!"

"없을걸, 아마도. 분명히.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딸 결혼하는 날에 그렇게 바쁜 일 만들 아버지는 없을걸."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나가는 하소연인지 의식의 흐름인지 하는 쭝얼거림인데도 슈는 무의식중에 하나하나 메모를 붙여가며 논박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머릿속으로. 집에 빨리 들어오란 말은 뭐, 여자애든 남자애든 가풍에 따라 할 거면 다 하고 안 할 거면 다 안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십 년 넘게 본 형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 형 만나는 것도 아닌데. 써니가 내숭을 떨고 있는지 아닌지는……그거야 뭐, 만나는 중인 알반이 제일 잘 알 게 아닌가. 걔가 눈치가 몇 단인데 말이야.

친구 동생을 친구가 보는 앞에서 건드렸다고? 진짜라면 그건 좀 문제겠지만, 요즘 루카의 과민반응을 구경……이 아니라 순수하게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자면! 진짜! 절대 재밌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지켜보자면 써니가 커피 건네주다가 손끝만 스쳐도 내 동생 건드렸다고 오도방정을 다 떨었을 거라는 데 닌텐도 계정을 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알반도 질려서 루카가 무슨 말을 하든 개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저 정도면 나름 형이라고 엄청 오냐오냐해주고 있는 거 아닌가? 나이차 많이 나는 것도 아닌 형제자매의 상호 취급이란 다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멀쩡히 경찰대 다니는 애인을 살인마나 스토커와 같은 선상에 두고 위험하다고 난리치는 형을 분리수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알반은 혈육의 도리를 다했다. 라고 같은 둘째 처지인 슈는 홀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츠하 이야기로 흘러갈 즈음이 되면 더 들을 것도 없다. 시답잖은 일로 펄펄 뛰고 포효하고 드러눕고 찡얼거리는 루카를 보는 건 재밌어서……가 절대절대 아니고! 조금 바보같아서 귀여우니까 대체로 내버려두는 편이지만, 너무 방치하면 토라질지도 모르니까 한번씩은 손을 내밀어 시무룩한 귀 뒤를 긁어줄 필요도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동생이 남자 만나러 가서 늦게 들어오는 게 너무너무 걱정된다는 거지, 요약하면."

푹 늘어져 천장만 쳐다보던 루카가 ‘내 복잡하고 섬세한 고민을 2점짜리 교양 과제처럼 뚝딱 처리하지 말아달라’고 꿍얼거리는 것도 같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친구 동생 연애 이야기(심지어 간접적이고 편파적이기까지)에 가타부타 반응해주는 대신에 슈는 끝없이 쫑알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툭, 머리를 기댔다.

컨트롤러를 소파 옆자리로 툭 던지는 소리와 루카가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고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나도 둘짼데, 루카."

"어, 엉?"

"우리 누나도 내가 남자 만나러 가서 늦게 들어오면 걱정할 텐데. 그렇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남매간에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누나가 그런 것을 걱정하기에는 슈가 너무도 슈라서……남자고 뭐고간에 FPS게임 캐릭터가 아닌 실존하는 인간 만나 연애한다고만 해도 쌍수 들고 환영 슬로건을 동네방네 걸고 먹을 거 싸들고 가서 인사해야겠다고 우기고 그렇게 놀리다가 절연할 뻔한 자매들을 떠올리며 슈는 3초 정도 아련해졌다. 그래, 이게 형제자매지. 누나는 내가 오늘 집 밖에 나간 줄도 모를걸……

걱정을 사서 하는 남자친구를 달래는 데 그런 씁쓸한 보편적 진실은 그닥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슈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내려고 했는데, 머리를 기댄 상태로 그렇게 움직이면 그냥 루카의 어깨에 뺨을 비비는 동작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 박자 뒤에야 깨달았다.

흘긋 본 루카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확인하니 노력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절로 낮아졌다.

"그래서……넌 나 일찍 보낼 거야?"

뺨과 귀를 통째로 감싸는 큰 손의 온도를 가늠하며, 너나 네 친구나 거기서 거기니까 그만 포기하란 말은 너그럽게도 꿀꺽 삼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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