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히메] 12월의 새벽
드라이 통상 달각 이후 / 2018. 12. 26
드라이 통상 달각 이후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기념.
째깍이는 시계 소리에 눈이 떠졌다. 드문 일이었다. 드라이는 시계를 몸에서 떼어 놓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선 늘 초침 소리가 났다.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끔찍했다. 벽에서 소리 죽여 시간을 세는 것도 아니고, 그의 가슴 부근에서 조용히 째깍이는 게 싫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심장 소리를 대신해 그가 살아 있음을 내게 알려주는 것 같아 싫었었다.
이렇게 그의 시계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회사의 게임이 새로 나와 드라이는 며칠간 지나치게 들떠 있었다. 26일 발매였다. 그는 올해의 마지막 게임은 이걸로 하겠다면서 제대로 잠도 자지 않았다. 게임이 나오면 늘 있는 일이었지만 실은 밤에 눈을 떠도 곁에 없는 게 조금 서운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다시 같이 자게 되자 그 소리에 잠을 설치게 되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커튼 너머의 세계는 아직 어두웠다. 드라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언젠가 물었을 때 그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늦은 새벽까지 게임에 몰두하다 생긴 눈 밑의 그늘만 봐도 그랬다. 잠든 그와 달리 그의 시계는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오전 4시. 애매한 시간이었다. 12월의, 오전 4시. 더 애매하다.
12월이라는 것을 드라이의 게임 발매일로 떠올렸다는 걸 깨닫고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세계에서는 12월이 시작되면 캐롤을 찾아 듣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찾기 시작했는데. 꿈 세계에는 크리스마스가 없어 그럴 일이 없었다. 그렇게 행동할 수도 없었다. 첫해에는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한 것임에도.
내가 아는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다. 슬퍼할 수도, 안타까워할 수도 없었다. 여기는 크리스마스가 없는 세계이므로. 게임을 좋아하는 그에게 ‘이벤트’의 일환으로 알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만 아는 특별한 날로 남겨 두고 싶었다. 아무도 간섭할 수 없고 나만이 축하할 수 있는 아주 아주 소중한 날. 배드 엔딩을 선언당한 이후, 나의 모든 시간은 건조기에 넣은 듯 말라비틀어졌기에 나는 예외가 필요했다. 크리스마스는 그런 존재였다. 나만이 온전히 기억하고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알리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존재를.
드라이는 여전히 꿈 없는 잠 속에 있었다. 꿈을 꾸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꿈속에서도 게임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시계는 내 잠을 깨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그러나 거슬리게 째깍였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넘긴 애매한 날짜 속 애매한 새벽의 틈. 트리도 선물도 없이 나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이 세계에서 나만 아는 크리스마스인데, 날짜가 좀 지났으면 어때. 하는 애매한 마음으로.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아무거나 이유를 좀 붙여서 드라이에게 케이크라도 만들어줄까. 정말로 애매한 마음이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