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왕국

[드라히메] 트럼프 카드와 키스의 상관관계

2019. 01. 28

기억의 조각 by 匿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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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가챠 4성 실장 이벤트 <사랑앓이와 행복의 복숭아> 한국판 등장 기념



둘은 늘 그랬듯 크로포드 성 가장 깊숙한 방에 있었다. 드라이는 썩 외출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메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했고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으며 게임에 열중한 드라이의 옆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둘은 언제나 드라이의 방에 있었다. 가끔 그가 좋아하는 꽃밭에 가기도 했으나 정말 가끔이었다. 오늘도 드라이는 게임기와 다투고 있었다. 공무를 보거나 유메와 다정한 시간을 보낼 때를 제외하고는 온종일 게임을 하는데도 그에게는 해야 할 게임이 늘 남아 있었다.

 디리링, 하는 효과음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났다. 드라이가 바닥에 게임기를 내려두는 소리였다. 츠바이에게 추천받은 학술서를 읽던 유메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화면 속 GAME OVER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일까. 유메는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보기만 했다.

“재미없어."

“네?”

 그가 내뱉은 말은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유메가 그를 반지에서 깨우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게임을 해버린 탓이었다. 그는 항상 새 게임을 찾아 헤맸지만 어떤 것도 그를 즐겁게 해주진 못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다고 했다. 모든 게 시시하다고 했다. 그러나 유메와 함께 하는 건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그것을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고 정의 내렸다. 이 세상과 조금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그를, 어느 순간 유메는 특별하게 여기게 되었다.

 반사적으로 흘러나온 대답과 상관없이 드라이는 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몇 가지 작은 물건들이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자연스러운 손길이었다. 처음 열었던 서랍에서 찾는 것이 없었는지 한숨과 함께 서랍이 시끄럽게 닫힌다. 유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런 짓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포장도 아직 벗겨지지 않은 트럼프 카드 한 패가 그 손에 있었다.

“게임 하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시시하다고 하면서도 게임을 할 때면 드라이는 늘 즐거운 얼굴을 했다. 마치 지금처럼. 유메는 읽던 책을 완전히 덮어 두고 그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드라이가 게임을 권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걸 그녀는 너무 잘 알았다. 트럼프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추측하기도 어려웠다.

 “뭘 하고 싶어요?”

 “도둑 잡기.”

 “좋아요.”

 드라이는 답을 듣고 즐거운 듯 소리를 흘려보내며 웃었다. 유메는 어딘가 비틀려 있는 웃음이, 그 비틀린 정도만큼 귀엽다고 생각했다. 예상외로 너무 단순한 대답이 조금 어이없긴 했지만. 그는 서랍에 긴 시간 머무르는 동안 포장지 위로 쌓인 먼지를 바람까지 불어가며 털어 냈다. 후, 후, 하는 소리가 났다. 유메는 그런 행위들을 지켜보았다.

 “하는 법은 알고 있나?”

 “원래 있던 곳에서도 있었어요, 도둑 잡기 정도는.”

  “다행이군.”

 그렇게 두 사람은 게임을 시작했다. 패를 나눠주는 드라이의 손길이 어쩐지 어설펐다. 그럴 리가 없는데. 유메가 아는 한 드라이는 게임에 있어서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지고 싶을 때가 아니면 절대 패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게임의 승패를 손에 쥐고 있는 완전한 승자였다. 그래서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는 동작들이, 이 순간 너무나도 낯설었다.

 “멍하니 있지 마.”

 어느새 둘의 앞에는 뒤집힌 카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본 적 있는 귀여운 동물 같은 것이 카드 뒷면에서 사랑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유메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밀어 넣었다. 드라이가 좋아하는 게임의 마스코트였다. 새 인형이 나올 때마다 드라이는 그것을 샀다. 나중에 그의 게임기에 매달리게 되는 조그만 크기부터 방 한 켠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크기까지 전부. 어울리지 않게 그는 콜라보 후드를 입고 있기도 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면 귀를 만져 보고 싶은 충동에 손을 꼭 쥐고 있었던 기억도 났다. 정말 좋아하는구나. 드라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알아갈 때마다 그의 말처럼 ‘호감도’를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아 유메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들뜨곤 했다.

 “그렇게 있지 말라니까.”

 어이가 없는지 드라이는 한숨을 뱉어냈다. 그는 이미 제 패를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그러나 다행히 싫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가만가만 그가 나눠준 패를 손에 쥐고 유메는 패배를 확신하고 말았다. 드라이, 절대 못 이길 거야…. 귀엽게 꾸미긴 했으나 틀림없는 광대가 패의 가운데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유메가 카드를 확인한 것을 본 드라이도 그렇게 웃었다. 즐겁고 무서운 게임이 시작됐다.


 두 사람의 게임은 조용히 이어졌다. 시작할 때는 유메의 것이었던 조커가 드라이에게 옮겨 가기도 하였으나 금세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가 조커를 뽑아 들었을 때 속으로 기뻐했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곧 다음 차례에서 자신이 조커를 되찾아 오게 되자 역시 드라이구나, 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지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패를 섞을 때 보였던 어설픈 모습이 카드를 뽑아갈 때도 종종 섞여 나오는 건 도통 무시할 수가 없었다.

 유메는 드라이에게 패를 내밀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고작 두 장의 카드만이 남아 있었다. 조커와 스페이드 3. 드라이에게는 뭐가 있을까. 그의 이름을 닮은 카드일까. 아니면 다른 걸까. 3이 적힌 무언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세 음절의 이름. 언젠가 배웠던 외국어 숫자 3. 그런 사소한 것들이 머리를 채웠다. 이름의 주인은 뚫어져라 자신의 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던 방에 카드끼리 스치는 소리가 마침내 울렸다.

 “나의 승리다.”

 “졌네요.”

 드라이가 스페이드 3과 하트 3을 내려놓으며 승리를 선언했다. 이 게임의 승자도 그였다.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유메도 귀여운 조커를 뒤집었다. 얼룩덜룩한 카드 더미 속에서 드라이가 마지막으로 버린 두 장의 카드가 유독 눈에 띄었다. 3과 3. 그리고 드라이. 지나치게 깨끗한, 손때 묻지 않은 카드. 어딘가 어설펐던 손길. 게임의 패배보다 그것들이 줄곧 마음에 걸렸다. 드라이는 카드를 정리하고 있다. 그 손길은 여전히, 미묘하게, 어딘가가, 너무나도, 어설펐다. 상을 바라지 않는 태도까지도 그랬다. 둘은 많은 게임을 했고 그는 이길 때면 어김없이 상을 졸랐다. 아주 작은 상이라도 드라이는 늘 보상을 원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드라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카드를 정리하는 소리와 섞였다. 드라이는 계속 트럼프 카드를 어루만지고 있다. 기분 탓인지 볼이 조금 붉어 보였다. 추측의 바스러진 조각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혹시 사람이랑 카드놀이 한 적 없어요?”

 그는 멈추지 않고 카드를 정리했다. 그에게 있어 트럼프 게임 자체가 처음은 아닐 것이다. 규칙을 능숙하게 파악하고 있거니와 게임기로도 이런 종류의 게임은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왠지 실제 카드를 다루는 손길이 그치고는 지나치게 어설펐다. 지금까지 지켜본 그는 방에서 늘 혼자 게임을 했다. 언젠가 외롭지 않나요, 라고 물었을 때 다른 사람은 방해만 된다고, 그는 답했었다. 그러면서도 드라이는 자신과의 게임은 좋아한다고 말했다. 자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알고 싶었다.

 “저기, 드라이.”

 카드를 만지는 손은 멈췄으나 드라이는 아직 말이 없다.

 “너 정도가 아니면, 같이 게임 같은 거 안 하니까, 당연하잖아.”

 “…”

 “네가 아닌 사람이랑은 얼굴 보고 게임 하고 싶지도 않고.”

 그가 머리를 멋쩍게 긁적였다. 다정한 말을 들으며 유메는 그 이름처럼 날카로운 시간의 나라들을 떠올렸다. 나라 간의 다툼에서 좀 더 우위에 서기 위해 서로 차기 왕이 될, 혹은 왕이 될 자격이 있는 왕자들을 제거하려 하는 가혹한 나라. 암살에 직접 뛰어들지 않는다 해도 국내 정세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곳도 있었다. 놀이 상대도 제대로 된 친구도 하나 없이 그가 게임으로 짜인 시간의 길만을 걸어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길의 한복판에서 드라이는 유메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가 살아온 얼어붙은 길에는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유메는 애써 빙판에서 눈을 돌렸다. 바닥에 둘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유메가 떠나면 아무도 남지 않을 길이었다. 차마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드라이.”

 “왜.”

 어떤 말을 하기 위해 그 이름을 꺼낸 게 아니었다. 그냥 부르고 싶었다. 어딘가가 건조하고, 말라 갈라진 것 같은 그 이름을. 이름의 주인이 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숨조차 닿을 거리에, 있었다. 두 가지 옅고 진한 색의 머리카락이 눈앞을 채웠다. 그리고 유메는 손을 뻗었다.

 “게임, 또 할까요.”

 끌어안은 몸은 차가웠다. 자기보다 훨씬 큰 몸이 왠지 작게 느껴졌다.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싫어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안고 싶었다. 닿아 있고 싶었다. 언뜻 보이는 바닥에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트럼프 카드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거리에서도 조커는 눈에 띄게 반짝였다.

 “그럴까.”

 “앞으로 계속, 해요. 트럼프 카드가 다 망가질 때까지.”

 보이지 않는 얼굴과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그는 답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유메는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포장조차 뜯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했던 카드가 다 망가질 때까지. 박이 벗겨지고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 후에도 새로운 카드를 사서 계속. 앞으로 아주 긴 시간을 둘이서.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내버려 둘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말로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놓아 버리면 얼어붙은 길에서 혼자 얼어버릴 것 같아서.

 “이래서 네가 아니면 같이 있기 싫은 거야.”

 “…”

 “정말, 어디까지 호감도 올릴 셈인건지.”

 어느새 그는 유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럼 트럼프 말고 다른 게임을 할까.”

 그녀의 볼을 감싸 오는 손은 유독 차가웠다. 그에 반해 유메는 볼도 손도 따뜻해 닿기만 해도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지금 그의 손은 물론이거니와 마음마저 녹아 내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망설임 없이 차가운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멀어진다. 사랑스러운, 이성을 마비시키는 차가움이었다. 드라이를 두고 갈 수 없다는 마음이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확실하게 변해간다. 유메는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풍경 너머로 그가 깊게 입을 맞춰 왔다. 새로운 게임의, 스테이지가 열리고 있었다.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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