𝚊𝚏𝚝𝚎𝚛

지금부터 영원히 기한없이───.

Only You - 墮落天使

「すいそう」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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墮落天使

This is gonna take a long time

And I wonder what's mine─

Can't take no more



이날 밤은 유달리 추웠다.

올해 겨울은 무척 긴 것 같다. 

“점점 날씨가 낯설어지네.”

   시린 겨울 바람이 들어온다. 밖의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갈라진 타일이 툭 떨어졌다.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져있었고, 그 잔해가 카펫과 시체더미에 파묻혀있었다. 헛맞은 총알로 허물어진 벽의 철제 뼈대가 드러났고 깨진 창문 너머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날벌레 몇 마리가 전등에 부딪혀 타들어간다. 

피가 흥건한 욕실. 

나와 토와 군, 단 둘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혼자서 일하는 것도 익숙하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그와 함께했다. 고정적이지는 않다. 자신과 달리 그가 감정에 있어 깔끔한 걸 알고 있다. 파트너 사이에 사적인 것은 없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코트를 달라고 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중얼거린다. 뭐라고 했는지는 못 들었지만 그가 코트를 벗어 내게 걸쳐준다. 일을 끝낸 직후라 피가 묻을 테지만, 어차피 그의 코트에도 묻어있지 않은가. 이 정도 응석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그와 가까이 있었다.

이 길이 길지 않고 곧 내려야 하는 것도 알지만

지금, 이 순간은 무척 따뜻했다. 




   열차가 도착하는 고무적인 소리와 함께 지하철 문이 열렸다. 서둘러 들어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린쿄 토와가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을 띈 채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이어폰을 꼈다. 토와는 사람들과 정 반대의 시간을 살아갔다. 사람들이 퇴근할 때 그의 출근이 시작된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관심도 없었다. 모두들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안은 건조하고 답답한 공기로 가득했다. 역을 지날 때마다 약간의 바람이 뺨을 스칠 뿐이었고, 예리한 바람결에 버릇처럼 활을 쏘던 손이 꿈틀거렸다. 개인의 성격이 직업에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과거엔 토와도 사람을 구하는 일을 했었다. 그 행위엔 애초부터 의미도 보람도 없었다. 발목 잡히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고 구하면 구하는대로 시끄러웠다.

그래서 하루는 구하기를 포기했다.

그냥 귀찮았다.

충동적으로 전부 쏴 죽였고 어긋났다. 

하나도 후회되지 않았다.

상쾌했다.

   토와에게 있어 지금 일의 가장 큰 장점은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누가 죽을 지 시간, 장소, 사람이 모두 결정되어있었다. 그는 보기보다 게으른 사람으로, 자신 대신 남이 모든 것을 결정해준 것이 편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하차했다. 열차표를 개찰구에 넣고 지하 통로를 걸었다. 벽면의 광고판은 비좁은 길을 더욱 압박했고, 종종 들리는 기계적인 안내음이 지루한 반복을 더했다. 출구로 가까워질수록 보기만 해도 시끄러운 야경이 넘실거렸다. 휘황찬란한 간판과 자동차의 백라이트의 색이 번잡하다. 토와는 이어폰의 볼륨을 더 높이고 잡음을 끊었다. 

그 순간 귀에 터져나오는 소리가 아닌,

다른 것에 그의 잡념이 단절되었다. 

───금붕어 한 마리.

안경에 밤거리의 빛이 난반사 된다.

만화경처럼 붉고 흰 빛이 찬란하게 부서졌다.

아니, 그보다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 

낯선 여자에게서 자신의 향기가 났다.



   필요한 조명만 켜둔 카페. 사람은 두 명인데 작탁에 앉아있다. 인격과 사고를 완전히 분리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며 오늘도 둘이 마작을 쳤다. 일이 끝나고 이곳에 오는 게 어느새 원치 않은 일상이 되었다. 좋은 원두가 있다고 블랙커피가 한 잔씩 옆에 놓여있는 것도. 어차피 앉을 사람의 절반이 비었으니 테이블에 공간도 많아 쏟을 일도 없다. 

   이쪽 일을 하면 탄약 냄새와 피 냄새를 적절히 빼야할 필요가 있고, 향수에 취미는 없었지만 토와도 직업상 하나 갖고 있었다. 그러니 단번에 알아봤다. 자신을 킹교라 소개한 여성은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향수까지 겹칠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토와 군은 에이전트랑 만난 적은 없어?”

“사람과 감정은 믿을게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토와가 옆자리 패를 집어오고 고민없이 버린다. 

앉은 자리에서도 하나를 집고 손패에 넣었다.

“하긴 곤란한 일 생기면 귀찮아지지~."

“예…. 쯔모하십쇼.”

그녀가 빠르게 패를 집어갔다. 아싸, 리치─! 

경쾌한 소리와 까만 매니큐어가 반짝였다.

“아예 혼자 하진 않네?”

“누굴 언제 어디서 죽일지 결정하기 싫습니다.”

토와가 집은 패는 동(東)이었다.

그녀의 버림 패들을 흘겨봤다. 

지금 저 여자가 모으는 건…….

고민 끝에 버렸다.

“나랑 일하는 건 괜찮고?”

   그녀가 턱을 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 자욱한 담배 연기도 저 선명한 주홍을 감추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 저 눈동자는 뚜렷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타오르는 화염을 닮아서 계속 바라보다간 시력을 잃을 것만 같았다. 매일 보는 피도 눈이 아프지 않은데, 저 색은….

선정적이다.

토와는 눈살을 찌푸렸다.

“……업무적으로 당신이 유능한 건 인정합니다.”

“그치! 오랫동안 했거든~.”

킹교가 커피 잔을 들었다.

토와도 잊고 있던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근데 그만둘까도 생각하고 있어.”

남아있는 검은 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담배도 내려놓고 잔을 지분거리고 있다.

“적성에 맞지 않습니까?”

   의외라고 생각해 그녀를 다시 쳐다봤다. 으응, 그것보단 혼자서 일하니까─ 하고 말이 길어진다. 따분한 이야기였다. 복수를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주제에 미련이 많아 빛과 어둠의 회색 경계에서 헤맸다고 했다. 

   이 일은 사람을 없애는 직업이다. 타깃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주변 사람들이 전부 없어진다. 그것이 토와에겐 메리트로 다가왔지만, 눈 앞의 여자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우린 매일 사람들과 마주친다.

우리가 만난 자는 모두 죽는다.

“세상 누구도 날 기억하지 못 하는데,

나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날 본 자는 눈을 감고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피를 뒤집어 썼는데도 투명인간이라고,

그런 말을 했다.

“죽고 죽이는 각오가 덜 되신겁니까?”

   ─리치. 토와가 천 점짜리 점수봉을 올리고 마작을 이어갔다. 그 이후로 속전속결. 말 없이 서로 패를 집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두번째 자리는 별 쓸모 없어서 안전 패만 버리면 됐다. 저쪽은 리치만 노리는 건지 계산이 빠른 건지 패 버림이 집는 동시 이뤄졌다. 

시간이 가속되어간다. 

제 물음에 답 없는 그녀의 표정을 못 봤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웃고 있었을테다.

“……론.”

   토와가 손패를 쓰러뜨리며 보여주자 금붕어가 다시 빠끔거린다. 으아, 당했네! 어디보자, 탕야오, 핑후… 거기에 일발까지! 킹교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왼손까지 동원하며 부산스럽게 점수를 계산했다. 선배한테 너무 자비 없는 거 아니야? 그렇게 내가 사준 밥이 먹고 싶었어~? 그녀의 귀걸이가 활기차게 흔들렸다. 

“당신.”

말하지 않았는가.

그녀 표정따위 못 봐도 상관없다고. 

지금 얕잡아 보나?

“론 할 수 있었죠?”

그녀가 히죽 웃고 있다.

   의자가 바닥에 끌려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토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반대 쪽으로 다가갔다. 단호하고 결연하기까지한 걸음을 보던 킹교가 커피를 홀짝인다. 딱히 말리지도 않았기에 손을 치워 패를 확인했다. 예상대로다. 대기패는 동(東). 심지어 자일색에 대삼원, 더블 역만이다.

“토와 군 질문에 답이 되었으려나?”

   어느 쪽 질문인진 몰라도 답은 충분히 되었다. 뭐라 한 소리를 쏟아내려다 미간을 짚었다. 여기선 성낸 쪽이 지는 거다. 에에, 화났어? 그녀가 의자를 뒤로 빼고 자신을 올려본다. 미안~ 그치만 토와 군 쏘긴 싫었는 걸~. 아, 나도 질문 하나 해도 돼? 괜히 실실 웃으며 손끝을 톡, 제 이마에 올린다. 있지~ 토와 군은,

날 기억할 수 있겠어?

   이곳은 커피향과 담배냄새가 배어 쓴 맛이 났다. 몇 없는 조명이 이곳의 그림자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어항에서 나는 보글보글 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금붕어가 거기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눈동자에 울긋불긋한 금붕어가 노닐고 있다. 홍채가 그리는 완만한 곡선을 따라 유영한다. 속눈썹 위로 떠오르는 새하얀 머리카락에도 금붕어가 부드럽게 헤엄치고 있었다. 

저런 눈과 머리를 누가 잊을 수 있겠나.

   자꾸 찌푸리면 주름 생긴다─. 킹교가 손가락을 꾹꾹 누르며 미간을 풀었다. 너무 당당하게 행동해서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에겐 거리감이 비정상적으로 부족하다. 얼마나 알고 지냈다고 다짜고짜 이름으로 부르는 것부터, 애초에 이쪽 세계에서 선배니 후배니 우습지도 않은가? 

그런데도 이상하게 거절이 쉽지 않다. 

킹교가 이를 보이며 싱그럽게 웃었다.

……저런 여자는 잊고 싶어도 못한다.



그 사람을 잊는 것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 것과 같고

방향을 잃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아요.

나에게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평범한 것들이 아름답게 변했어요.


 

   토와 군이 돌아간 뒤 그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보았다. 네가 보고 있는 이곳은 이런 모습이구나. 킹교는 정리해뒀던 마작패를 굳이 다시 꺼내 작탁에 와르르 쏟아부었다. 엄지와 검지로 동(東) 하나를 집어 들고는 만지작거렸다. 매끈하게 손에 착 감겼다. 다리를 한 번 꼬고 시선이 넌지시 반대편을 향했다. 립스틱이 묻은 커피잔. 담배가 쌓인 재떨이. 그리고… 검은 창에 얼굴을 비춰봤다. 

전혀 안 웃는 표정.

이건 네가 본 풍경에 없었겠지. 

   무료하고 재미없기 짝이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낡은 주크박스에 기대고 동전 하나를 집어넣었다. 번호는 1818. 주크박스 안에서 레코드들이 차르륵 지나가고 기억 하나를 집어낸다. 기계 바늘이 레코드 위에서 홀로 춤을 춘다.

   여기도 아늑하고 다정했던 시절이 있었다. 옛 노래를 들으며 허공에 이제 없는 사람을 그렸다. 나에게 전부를 줬던 사람. 금붕어는 어떤 여름을 가슴속 깊이 간직했다. 그리고 영원히 그 기억에서 헤엄치게 되었다. 쓰르라미가 땀방울에 젖고 고깃덩어리가 부패하는 한여름.

그런데도 킹교는 늘 추웠다.

   수화기를 들어 익숙한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서너번. 숫자 판을 더 누른다. 까만 매니큐어 끝이 까졌다. 제 손톱을 보며 꼬불꼬불 말려있는 전화기 선을 장난쳤다. 얼마 안 되어 삐─ 하는 신호음이 들리고 메시지를 남겼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너무 가까워지면 흥미가 사라져버리는 사람.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를 만나고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구 하나, 광고 좀 내려고요.”

살인 청부를 넣었다.

“제일 앞에요.”

결국 내 쪽 유통기한이 먼저 끝나버렸다. 



팔랑─.

   팩스에서 종이 한 장이 힘없이 떨어진다. 토와는 바닥에 손을 뻗었다. 종이에는 시간과 장소가 적혀있었다. 타깃은…? 안경을 고쳐 써도 역시 안 적혀있다. 의심스러웠지만 팩스에는 오랫동안 함께한 에이전트 번호가 적혀있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그를 믿진 않지만, 비즈니스란 원래 신뢰가 있든 없든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은가. 토와는 침대에 걸터앉아 책상 서랍 속 권총을 재조립하기 시작했다. 

   밖엔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다. 코트를 뒤집어 쓰고 재빨리 외워둔 주소로 뛰어갔다. 벽지가 전부 누렇게 뜨고 중국어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낡은 호텔. 원래 조용한 곳인지 에이전트가 준비를 해둔 건지는 몰라도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뭐든 상관없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비에 젖은 구두굽과 바닥이 찌꺽 달라붙는 소리가 쫓아왔다.

문 앞에 도착했다.

한손의 가죽 장갑을 벗고 락픽을 꺼내는데

환영이라도 하는 듯이 문이 저절로 열렸다. 

이때 돌아갔어야 했다.

   정보가 자신에게만 간 건 아닌지 이미 새까만 사내 몇 구가 걸레짝처럼 엎어져있다. 그나마 문 앞에 쓰러지지 않아서 다행이지, 열기 귀찮았을테다. 러시안 카펫 무늬와 혈흔이 난잡하게 섞여있다. 토와는 숨을 죽였다. 걸린 금액을 고려하면 쉽게만 풀릴 일은 아닐거라고 이미 염두했던 일이다. 

불이 켜진 방이 하나 있다.

권총을 두 손으로 쥐고 빛을 따라 걷는다. 

   토와는 욕실 문을 발로 차고 망막에 상이 서리기도 전 총을 겨누었다. 그는 같은 업자 중에서도 감각이 예민한 편이었다. 후각이 눈보다 빠르다. 그러니 쏘기 전에 그는 알아차렸다.

그녀가 피던 담배 냄새다.

“당신이 여기에 왜?”

토와는 인상을 구겼다.

반대로 킹교는 웃었다.

“당신이었습니까?”

아는 거라곤 팩스 번호가 1818라는 것 뿐이었다.

어서 와─. 그녀가 욕조에 걸 터 앉은 채로 배시시 눈을 접고 미소 지었다. 토와는 긴장을 놓지 않고 그녀를 읽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심심할 것 같아서 크게 걸어두었는데, 나도 아직 안 죽었나 봐~ 아. 이건 말장난. 히죽 입꼬리가 올라간다. 눈이든 입가의 미소든 움직임 한 톨도 놓치지 않았다.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보고 있다고들 하던가.

붉은 눈이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다.

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숨이 막혔다.

“있지, 유통기한이 끝나버렸어.”

   전부 의미가 없어져서—….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킹교가 일어났다. 시선과 총구는 그녀를 따라간다. 근데 내 의지가 맞을까. 장소, 시간, 나와 당신. 모든 것이 당신에게 통제되고 있었다.

   세면대에 아무렇게 비벼진 검은 담뱃재가 긴 자국을 만든다. 짧게 반복되는 하이힐 소리가 시간을 끊어내 사이를 떨어뜨린다. 이 순간이 영겁이 된다. 

“토와 군.”

한 뼘도 안 되는 거리.

붉은 잉어가 자신을 올려본다.

그 표정이,

“날 기억할 수 있겠어?”

괴로워보였다.

   시야가 하얘졌다. 킹교가 토와를 안았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백색 형광등의 빛을 받아 눈부셨다. 그 와중에도 방아쇠의 제 손가락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만 움직였다. 지금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상관있었다. 웃고 있는 것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깨에 얼굴이 묻혀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쓰담는 게 느껴졌다. 지금 무슨, 아직도 얕잡아…. 손 끝이 머리카락 사이를 부드럽게 지나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뿌리칠 순 없었다. 손이 점점 내려가 제 등을 쓸어 내렸다. 여전히 움직임 하나하나 모조리 읽어야했다. 그리고 손이 앞으로 왔다.

손을 움켜 잡고 자신을 끌어온다.

총구가 그녀의 왼쪽 가슴에 박혀있다.

손끝을 타고 오는 박동이 그녀인지 제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발이네.”

몰라도 상관없었지만,

이제 평생 무슨 표정인지 모르게되었다.

그녀가 또 웃어버렸으니까.

───론.

   언젠가 두 사람이 일을 마치고 봤던 불꽃놀이가 떠올랐다. 거울에 작고 빨간 꽃 여러 송이가 후드득 튀어오른다. 그때와 똑같은 화약냄새도 났다. 킹교가 뒤로 쓰러진다. 욕조와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발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있다. 벗겨진 하이힐 옆으로 번진 붉은 물결이 꼭 지느러미 같다. 

   밖에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바닥이 흔들렸다. 깨진 창문 너머 네온사인이 시끄럽다. 싸구려 비닐커튼도, 깜빡거리는 전등도, 울컥 빠져나오는 피도, 바닥에 떨어진 탄피도, 손에 들린 권총도 전부 시끄러워서 돌아버릴 것 같다. 

입술이 뻐끔거리는 게 보였다.

안 들린다. 

가까이 다가갔다. 

점점 날씨가 낯설어진다고 말했다. 

오늘 밤은 유달리 춥다고. 

코트 좀 달라고. 

“……당신이 좀 더 확고한 인간이었다면,

망설이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토와는 코트를 벗어 어깨에 덮어주었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자신은 과정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그녀와 가까이 있었다.

다만 그녀는 이미 떠나갔다.

그렇다면 그녀가 어서 종점에 도착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길 바랬다.

당신은 잊고 싶어도 그리 못했다.




   토와는 깨진 창문에 손을 넣었다. 옛날에 들은 대로였다. 카페 뒤쪽 창고엔 깨진 창문이 있는데 그 안쪽에 여분 열쇠가 걸려있었다. 차가운 쇠가 손끝에 닿아 챙기고 카페 문을 열었다.

안은 늘 그렇듯 깨끗했다. 이제 이 곳에 먼지가 푹푹 쌓일지 사람이 계속 지낼지 어떻게 할지는 그의 몫이었다. 토와는 기본적으로 게으른 사람이었다. 딱히 처분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그래서 일단 몸이 가는대로 제 자리로 갔다. 어느새 작탁의 벽면 의자는 자신의 지정석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비디오 캠코더 하나가 있지 않은가.

기묘한 점은 그게 눈에 익는다는 점이었다.

토와는 캠코더를 켰다.

   캠코더엔 흔들린 일상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후라이팬을 높이 띄우며 팬케이크를 뒤집는가 하면 푸른 하늘과 코스모스가 찍힌 장면들이 지나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밀크쉐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먹거나 빗 속에서 춤추는 모습도 찍혀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싱그러운 잔디밭에서 비눗방울이 떠오르고, 잔뜩 퍼올린 아이스크림 중앙에 초를 꽂고, 비싸보이는 향수를 잔뜩 뿌리고…

그리고 그 속엔 자신도 있었다.

   갑자기 화면이 억척스럽게 바뀌었다. 억지로 잘라붙인 영상이었다. 바뀐 화면은 심플하다. 테이블 위의 알약이 가득 든 유리병. 멀리서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늘 죽은 금붕어가 화면 앞으로 다가왔다. 테이블에 엎드리고 유리병만 까만 손톱으로 톡톡 건드렸다. 라벨 스티커엔 ‘金魚症候群’라 적혀있다.

그게 전부였다. 

영상이 끝난 파란 화면 위로 자신의 얼굴만 보였다.

───날 기억할 수 있겠어?

불현듯 그녀에게 났던 같은 향수 냄새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당신은 이해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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