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와 보물상자
화이트데이 조각글
1학년 봄이었다.
여자애들이 사탕 가게 앞에서 꺅꺅거린다.
무슨 날인진 나도 알아.
시이나랑 같이 리본을 묶고 조각난 메모지에 삐뚤빼뚤 편지를 쓰던 날이었으니까. 스이소우 손님들에게 사탕꾸러미를 주고 쓰담아지곤 했다. 뒤늦게 찾아온 사장님과 사탕도 먹고.
그래,
「화이트데이」.
킹교는 표정을 잔뜩 구기고 길을 걸었다.
사탕은 달콤해서 싫어.
세상엔 달콤한게 많지만,
이제 사탕은 안 먹을거야.
주머니 속 사탕과 동전이 잘그락거렸다.
뛰어다닌 탓에 멋대로 손수건 밖으로 나왔나보다.
손수건을 꺼냈다.
사탕과 동전을 잘 담았지만 미련까지 담아 곱게 접어 묶었다.
나오지마.
닿을 때마다 녹는단 말이야.
나오지마.
내 마지막 추억이란 말이야.
판도라는 상자를 덮었다.
2학년 봄이었다.
여자애들이 사탕 가게 앞에서 꺅꺅거린다.
"킨쨩. 보고갈래?"
눈길조차 안 준다고 생각했는데 본성은 못 이기는 모양이다. 반짝이는 사탕들, 귀엽게 묶인 리본, 파스텔 하트 모양 상자들은 어쩔 수 없이 킹교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에이. 줄 사람도 없는데—"
일단 웃었다.
주머니 속 사탕과 동전이 잘그락거렸다.
그 소리를 들킬까 씩씩하게 웃고 지나쳐간다.
그런데 느닺없이 네가 내 손을 가져갔다.
꼭 다문 내 손을 펼치는 게,
잠가둔 상자를 여는 것 같았고
감춰둔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자, 선물."
분홍색 사탕 하나가 손에 있다.
네가 건네준 마음상자,
네가 펼쳐준 손바닥엔
미련 아닌 다른 사랑이 있었다.
사탕은 달콤해서 싫어.
하지만 판도라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세상엔 달콤한게 많지만,
이 사탕은 괜찮을 것 같아.
3학년 봄이었다.
여자애들이 사탕 가게 앞에서 꺅꺅거린다.
그리고 금붕어 한 마리도.
사탕이 가득 담긴 진열대는 보석함 같아서 주변을 수없이 맴돌았다. 작고 반짝이는 것들이 황홀할 정도로 예뻤다. 마음을 묶는 리본도 사랑을 담는 상자도 달콤하고 다정해서 이곳에 온 이유도 잊고 녹아버렸다.
나는 이제 선배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첫걸음부터 함께한 너희도,
나에게 처음 생긴 후배들도,
이제 막 이름을 외운 새내기들도,
너희는 어여쁘고 사랑스러웠다.
주머니 속 사탕과 동전이 잘그락거렸다.
사랑은 달콤해서 싫어.
세상엔 달콤한게 많지만,
그 무엇보다 달콤해서 목이 타.
판도라는 상자를 덮었다.
대신 이제는 미련만 덩그러니 남은 상자가 아니었다.
반대쪽 주머니에도 어느새 사탕들로 가득 차 잘그락거렸다.
킹교는 손수건을 꺼냈다.
다시 사탕과 동전을 잘 담고 이번엔 미련 없이 곱게 접어 묶었다.
너와 웃었던 사탕 한 알.
네게 화냈던 사탕 한 알.
누군가를 잃었던 사탕 한 알.
넘어지고 일어서고 사탕 한 알.
말 한 마디,
눈빛 한 번,
미소 하나,
그리고 너.
소중한 보물상자가 되었다.
판도라는 사랑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너를 찾아 사랑을 건넨다.
"해피 화이트데이—! 자, 어서 사탕 받아가!"
3월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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