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에 빈 소원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은, 한 사람의 생명이 스러지는 순간이다.
“별똥별에 무슨 소원을 빌었어?”
별이 잔뜩 떨어진다던 날, 동네 뒷산에서 그가 내게 물은 말이였다. 별빛에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물었지만,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원을 안 빌었으니까.’
별똥별에 소원을 비는 대신, 나는 그 별의 앞길이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소원을 빈 거려나.’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들어보았고, 그 중 몇몇은 그 설화를 믿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 별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자는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그게 사실이라면, 한 명쯤은 소원 대신 평온한 앞길을 빌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러나 이 말을 입 밖으로 내기엔 내 앞의 인물이 너무 부담스럽게 기대하고 있었다. 마치 ‘너랑 계속 함께 하는 것이 내 소원이다.’와 같은 간질거리는 말이라도 바라는 것일까.
“나는 내가 네 옆에 끝까지 있는 걸 빌었는데, 너는?”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간질거리는 말을 기대한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런 말은 듣는 것도 어색한데, 입으로 내뱉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소원은 이야기하면 안 이루어진다던데, 너 큰일났다.”
이게 내 대답이였고, 내 최선이였다. 그는 뭐가 그렇게도 좋은 것인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도 속 없이 헤실거릴 뿐이였다. 그 물렁한 낯짝과, 별이 쏟아지는 분위기에 나도 실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별들이 한바탕 쏟아지던 그때가 거짓말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리는 조용했다. 간간히 부는 새벽바람이 꽤 차갑다는 생각이 들 뿐이였다. 모두가 잠든 시각, 거리에는 우리 둘의 걷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다 왔네. 조심히 들어가고.”
“너도 조심히 들어가-!”
몇 분이나 걸린다고 조심히 들어가라 하는 건지, 웃음이 나왔다. 그 짧은 사이에 넘어질 뻔한 게 몇 번인지. 계단 올라가다가 안 넘어지면 다행이지.
“내일 보자.”
별 다를 거 없는 작별 인사였다. 내일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 * *
“오늘도 안 나왔어요...? 네, 감사합니다.”
별이 떨어진 지고 몇 달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뭘하고 있는거야.”
이쯤 되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날 혼자 나가서 영상통화로 보여줬어야 했다고, 그 날씨에 밖에 몇 시간 동안 있게 한 내 잘못이라는, 그런 생각.
‘솔직히 틀린 말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렇게 맑게 웃었는데,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건 이렇게나 다르다면서 좋아했었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흘러갔다.
‘네가 있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네가 이렇게 큰 존재였었나.’
언제나 구석에서 미소짓고 있었던 아이, 그게 바로 너였다. 잘 나서지도 않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으려 언제나 노력하던 아이, 비를 맞는 동물에게 우산을 양보하고는 독한 감기에 걸리던 아이가 너였다.
‘보고 싶다.’
한 번 흘러넘친 감정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의 집으로 찾아가고 싶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이야기해달라고, 그게 아니라면 많이 아픈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 순간, 주머니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폰을 열었더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클릭하자 보이는 문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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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연락이 올 리가. 괜한 짓이였다. 혹시나 내가 그때 말을 잘못한 게 있었을까. 소원에 대답을 해주기는커녕 반박만 해서 화가 난 건 아닐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확실히 이야기 해주면 좋을텐데.’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도저히 용서를 못할 정도라면, 차라리 나를 멀리하지. 그러면 이렇게까지 걱정도 안 되었을 텐데.
“하아...”
* * *
그날 저녁, 나는 그와 그날밤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정신을 놓고 걷다보니 그의 집 앞이였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는 건가.’
몇 년동안 여기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가던 게 일상이였으니, 당연할 만도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문 앞까지만 가볼까.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니까.’
책상 위에 잔뜩 쌓여있는 그의 짐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여 나보고 전달해달라고 하기도 했으니, 적당한 명분도 있었다.
“저기, 계세요?”
익숙한 집 문을 두드렸다.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나무 시트지를 붙인 문은 그와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문 테두리를 따라 자란 식물. 금빛 숫자로 적힌 호수. 그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잡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문이 열렸다.
“오랜만이구나. 잠시 들어오지 않겠니?”
오랜만에 뵙는 그의 부모님이었다. 눈 밑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묘하게 여위신 것도 같았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모르겠네. 그날, 아가랑 나간 이후로 통 보질 못해서...”
“네,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걔는 병원에 있는 건가요?”
눈동자에 잠시 놀람과 당황이 스쳐 지나갔다. 작게 ‘아직 전달되지 않았구나.’라고 이야기하신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다음에 들은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였기 때문에.
“...뭐라고요? 다시, 다시 한번만...”
“별이, 되었단다. 그날 밤은 아니고, 며칠 전에...”
역시 내 탓이 맞았다. 내가 데리고 나간 것 때문에.
“네 탓이 아니라고 전해 달라더구나. 본인도, 행복했다고.”
괜히 소원을 이야기하면 안 이루어진다는 말 같은걸 해서...!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의 부모님이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위로해주시고 계신 것도, 전부 나 때문이다. 나보다 더 속이 엉망이실텐데, 위로해드리지는 못할망정 위로를 받고 있다니.
“...가, 가볼게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는 볼 수 있길 바랄게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어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나는 멍하니 발을 옮겼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독한 적막이 이것이 사실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그가 보였다.
‘짜잔~ 너랑 나! 키도 똑같이 그렸다? 나중에 보면 엄청 작아져 있겠지?’
벌써 다 지워져가는 담장의 낙서에서의 모습으로, 너는 멈춰 있겠구나. 내 시간만이, 흘러 가겠구나.
‘이거 봐! 제비꽃~ 여기 나중에 민들레도 핀다? 겨울에도 꽃 피어 있는 것 같던데, 작은 화단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야!’
아스팔트 사이에 난 조그마한 틈에서 자란 꽃을 참 좋아했었다. 그 작은 것에도 그리 밝게 웃던 아이였는데.
‘야, 나 없어도 넌 재밌게 오래 살고 와야한다? 그래서 세상 얘기 들려주고! 알았지?’
언젠가 이 말을 한 적도 있었지. 죽음이 가까운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기도 한다던데, 너도 그랬던 걸까.
* * *
하늘이 유달리 어두웠다. 구름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달빛 조금은 비추었었는데. 그와 별을 보았었던 그 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텅 빈 하늘 사이로 작지만, 밝은 별이 긴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밝고, 부드러운 빛이 그를 닮은 별이였다.
‘그러고 보니... 별똥별이 떨어질 때, 누군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나를 신경쓰기라도 한 걸까, 사망처리가 된 지는 며칠이 지났을 텐데, 이제야 그의 별은 떨어졌다. 연약하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그처럼 작은 별은 떨어질 때도 오래동안 밤하늘을 수놓았다.
“야, 거기는 편하냐? 아프진 않고?”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별똥별은 더욱 밝은 빛을 냈다.
“네가 네 몫까지 재밌게 살다 오라고 했으니까, 재밌게 살다갈게. 거기서 보고 있어라.”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 슬퍼하면 편하게 가지도 못할테니까, 한 사람 몫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나는 별을 보며 평소처럼 미소지었다.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이 눈으로 새어나왔지만, 그것 정도는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진짜 잘 살아볼테니까, 너도 거기서 잘 지내라. 흰머리로 왔다고 놀리지나 말고.’
“아, 마지막으로 소원 하나만 들어주고 가라.”
처음으로 나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었다.
‘다음 생에는 건강한 너랑 친구부터 시작하게 해줘.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게 해주고.’
앞으로도, 나는 몇 번이고 같은 소원을 빌 것이다. 그와 다시 만날 날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소원은 말하면 안 이루어진다던데. 아, 이미 이루어진 건 상관 없나. 너랑 친구하게 해달라고 빌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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