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14/드림] 맡긴 것

프레이빛전

*가내 빛전 설정 있음

*암흑기사 잡퀘 Iv.80 내용 일부 포함주의


인간이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감정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것이 한낱 범부여도, 세계를 종말에서 구해 낸 용사라고 해도 똑같다. 세계를 몇 번이나 구해 낸 빛의 전사의 정신은 분명히 일반인에 비해서 견고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녀는 무척이나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잊어 왔으니까 말이다. 이제는 손에 잡히지 않은 지난 소중한 것. 잃어버린 맹우. 선함을 믿었던 리더. 그리고 별의 의지. 모든 소중한 것이 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그것이 남은 흔적만을 휘저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날이 빛의 전사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프레이~. 나 귀가했다.”

모험가의 집은 꽤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거주자의 높은 계단을 터벅터벅 비틀 올라온 다음 문을 힘차게 열고 소리치는 빛의 전사 목소리에는 취기가 얼큰하게 묻어 있었다. 모험가는 프레이 라는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신발을 척척 벗어서는 현관에 가지런히 놓고는 옷을 휙 하고 의자에 던져둔다. 그 몸짓을 보면 사실은 취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지만, 흥얼거리는 콧노래와 약간 축이 어긋나는 걸음걸이는 이미 만취했다는 것이 보였다.

“아. 삐졌어? 안 나와 줄 거야? 나 이럴헥 제대로 귀가했는데. 하?”

침실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서 비틀비틀 걸어가던 빛의 전사가 발을 삐끗하자, 그제야 조용하던 집안에서 인기척과 함께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인물이 그녀를 부축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인형은 자신에게 축 늘어지는 빛의 전사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누가 삐졌다거나 했다는 겁니까.”

“그래도. 바로 대답 안 해주고. 나. 칭찬해 줘.”

“하,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건 잘했습니다. 주인”

모험가는 자기 집에 사람을 들이는 것을 꺼렸다. 새벽이라면 집안까지는 흔쾌히 안으로 들였지만, 잠자리에 있어서는 아무나 곁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고약한 잠버릇을 가졌는지 대충 알고 있었고, 이것을 겪은 후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걱정스러워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상태로 끙끙 앓으면서 잠드는 빛의 전사를 달래는 것은 오로지 프레이의 역할일 때가 많았다.

“이런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봤자 이득이 될 일은 없겠지.”

빛의 전사의 슬픔은 오로지 프레이 혼자서 담아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슬픔이 그의 본질이었으니까. 그것을 타인에게 넘기는 것은 프레이에서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하지만, 그녀의 슬픔을 타인이 나눠 가지는 것은 그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그가 독점한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에게 이 정도의 보답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는 이제껏 세계도 멸망시킬 수 있을 만한 그녀의 모든 절망을 감내해 왔으니까.

“주인. 하. 잠들었나.”

자신에게 의지한 상태로 축 늘어진 그녀를 침대에 옮기고는 물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차가운 물수건에 깨어날 법도 하건만 그녀는 앓는 소리만 낼 뿐 일어날 기척은 없다.

“오랜만이군. 이 밤을 혼자서 주인을 독차지하는 건.”

세계를 멸망에서 구해 낸 다음부터 그녀는 종종 자기 집에 사람을 들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푸른 용기사를. 그리고 붉은 머리카락 색의 미코테 현자를. 타인이 집에 있을 때 프레이가 모습을 비추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바깥으로 내보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녀의 슬픔은 오로지 혼자서 오롯이 남았을 때만 질척이는 감정과 함께 그림자에서 나왔다.

“주인.”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며 그가 입을 연다. 이렇게 혼자서 그녀를 독식하는 것은 그녀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그의 주인은 그녀의 슬픔은 돌보지 않고 또 사람들을 위해서 걸어 나갈 것이다. 그를 또다시 외면하고 검을 휘두르게 된다면 그녀의 목숨을 그가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이 새벽에 혼자서 그녀를 독차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렁이고 마는 것이다.

“당신은 날 외면 해서는 안 돼.”

빛의 전사는 그를 외면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떠맡고 있었다. 그를 자신에게서 분리해 낸다면 그녀는 반쪽도 채 남지 않을 것이다. 힘이 없는 손을 부드럽게 쥐고는 자신의 면갑에 가져다 댄다.

“당신이 나에게 처음 맡긴 것을 당신은 되찾아 가지 않으면 안 돼. 기억해.”

그녀는 그에게 너무 소중한 것을 맡겼다. 너무 소중해서 가지고 있으면 괴로워서 그것 통째로 프레이에게 맡겨버렸다. 그 결과, 이것은 프레이만 기억하고 있고 빛의 전사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소중한 것을 만지듯 조용히 한 음절 한 음절 입에 담아본다. 이름이라는 것은 본래 사람을 지칭하기 위한 것임에도 효용을 잃어버린 그 단어는 프레이의 입에만 담긴 상태로 허공을 헤맬 뿐이었다.


*빛전은 기억상실증이 있어서 과거 일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빛전은 자신의 성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건 가족 몰살과 연관이 있다.

*프레이는 온전히 빛의 전사 이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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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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