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빚은 심장
탕 > 튜드
인간은 타인이 될 수 없다.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 자기 자신으로 죽는다. 그러나 연속성이란 허상이 아닌가? 선과 면도 결국 점의 집합이듯 삶이라는 연속체는 무수히 많은 단절을 포섭하고 있다. 예컨대 시간. 흔히는 사건. 혹은 욕망. 아르네 가예웨스프는 과거 어느 한 점을 떠올린다. 바로 그때. 아르네 가예웨스프의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뒤집혀 버렸던 바로 그날. 역시 죽여버렸어야 했다. 아니면 죽어버렸어야 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후행하는 생각의 특징이다. 더는 내가 될 수 없는 과거를 반추하고서야 할 수 있는 잡념이라는 뜻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
그리고 잡념에는 언제나 대가가 필요했다. 아니,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나 언젠가부터의 자신에게는 그러했다. 이 남자의 앞에서. 이 오만하고 야욕적인, 증오해 마지 않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르네 가예웨스프는 파르라니 눈을 떨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아니. 오랜만에 흡족한 말을 들어서 말이다…….”
황제는 서름히 미소지었다. 그가 그런 낯을 할 때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멀어진다는 뜻은 이제 살아있지 않다는 뜻이고 결국 자신이 된다는 뜻이었다. 괜찮아졌다. 삶은 괜찮을 수 없었지만 아르네는 그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아. 그가 인상을 찌푸리려고 한다. 대답해야 했다.
“다행입니다.”
아르네가 시선을 피하자 황제는 턱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시야 한 구석에는 그가 보였다. 그것이 사무쳤다. 어쩐지.
“네가 내 칭찬을 바라느냐.”
“…….”
“당치 않다는 뜻이로군. 마찬가지다. 너는 너 자신의 의지로 내 곁에 남지 않았나? 보아라. 처음 내가 네 턱을 쥐었을 때 너는 어떻게 했지?”
“…….”
“어떻게 했지?”
집요한, 이 남자는.
“거부했죠.”
황제는 다시 웃었다. 입에 칼을 물고 웃는데도 저렇게 날카로울 수는 없을 터였다.
“거부했다손 칠까. 거부의 상세를 내가 물었거늘. 그래. 너는 네 품 안에 있던 단도를 떠올렸지. 그것의 예리함을 떠올렸을 것이다. 기름 먹여가며 손수 날을 세웠던 역사도 함께 서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나의 목을 쳐다보았지. 맥이 뛰는 것이 눈으로 보일 만큼 뚫어져라. 그렇게 강렬히 나의 죽음을 원했다. 기억나느냐.”
“…….”
“기억나는 모양이군.” 황제는 우악스런 손길로 그를 끌어당겼다. 너울지는 눈빛에 아르네는 함께 흔들린다. “대답 않는 것도 흥이 나지만, 글쎄, 네가 아픈 것은 싫다지 않았느냐?”
“……예.”
그는 비로소 손을 놓았다.
“하지만 너는 더 이상 내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르네 가예웨스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황제는 그 낯을 응시한다. 꼬리가 긴 시선으로.
“네가 나를 이름으로 부를 때를 내 친히 기다리마.”
결국 아르네 가예웨스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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