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
탕 > 선장
그러니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돈만 받으면 된다는 인생 모토가 수립하기까지 어느 정도 걸렸더라.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평생을 바쳐야 하지만 나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단 한 번의 실수만 있으면 족했다. 그래도 제법 양심적으로 나쁜 짓을 했다. 대충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판단하면 거기서 사기칠 금액을 설정하곤 했으니. 2000달러를 일시불로 지급할 수 있는 재력의 사람들에게 업혀 살아가는 것 정도야, 뭐. 사람을 죽이거나 강간하는 쓰레기들보다는 낫지 않나? 내가 그정도는 아니지……. 이런 싸구려 위안을 자기 방패 삼아 시민 사회 속에서 약간의 ‘기부’를 받으며 살았다.
“맞습니다.”
“예?”
“제가……사람을 차로 친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증거 영상까지 갖고 계시니.”
아뇨? 그거 짭인데요. 툭 튀어나오려는 미친 짓을 혀를 깨물어 막았다. 이게 진짜 얻어 걸렸다고? 경찰에 잡히지 않은 살인자에게 살해사실과 살해방법까지 맞춘 거라고? 내가? 왜? 차라리 로또를 살 것을.
이 순간을 기점으로, 안 그래도 적당히 꼬여 있던 인생은 전동 드릴에 감긴 것이나 다름 없었다. 미친 듯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초마다 60회 정도는 돌아가지 않았을까? 회전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6초마다 원상복구 되는 일도 없었다. 이런 제기랄!
“돈도 드리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
“이 전화를 했다는 건 비밀 유지를 약속해주시겠다는 뜻이겠고요.”
경찰한테 가서 신고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인간들 등쳐먹은 것만 빼고 익명 제보를 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체포되면 10년은 썩지 않을까? 그럼 그 사이에 돈을 들고 이 ‘Fuking U.S.A’를 뜨는 거야……. 식은땀이 비질비질 새어나오는 것과 별개로 머리는 맹렬하게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저는……좀 더 완벽한 보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계약금으로 우선 3000달러를 드리죠.”
“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계약금입니다. 이후 정기적으로 비밀 보장금으로 값을 치루고 싶군요. 어떻습니까.”
탈출구를 찾던 머리가 휙 돌아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선 삼천 달러라니? 그리고 앞으로 정기적으로 금액이 들어온다니? 그럼 새벽 3시까지 전화를 돌려가며 욕을 듣는 짓은 안 해도 될지 모른다! 돈 좀 많아보이는 인간들한테만 해도 될지도 몰라!
애프리콧 피셔는 10의 자리로 줄어든 통장의 잔고를 생각하자 이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그냥 아름답게만 들렸다. 물론 거짓 증거라는 걸 들키면 내가 살해당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그건 나에게 ‘기부’해준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사기당한 것을 알면 10배의 보복이 돌아오는 게 이 바닥의 심리고, 절대 다수에게 원한을 사느니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말이 잘 통하니 마음이 편하군요. 계좌 입금은 거래 내역이 남으니 안 됩니다. 무조건 현찰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달칵.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약간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테이블에 대충 던져뒀던 트롤리 젤리를 입에 왕창 쑤셔넣었다. Sour X2 라고 쓰여있는 만큼 엄청나게 셨다. 눈물이 핑 도는 맛을 느끼자 그제야 애프리콧 피셔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딜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 철회하는 순간 자신은 살해당할 것이다. 아주 높은 확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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