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Thousand Feet
탕 > 감자
루이스 리가 웃을 때면 딱 이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부르주아 새끼. 모든 자본이 그러하듯 상당히 아름다웠고 욕망 속에서 배태되었으며 딱 그만큼 피 냄새가 났다는 뜻이다. 페인트 통을 들이부은 것처럼 선명한 머리카락은 다채롭게 붉었다. 빛을 받을 때, 어둠에 잠겨 있을 때, 잠에 취해 있을 때,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싶어 몸이 달았을 때, 자기가 흉내 내는 게 뭔지도 모를 때.
“음료 준비해 드릴까요?”
고도 4만 피트에서 하는 생각이라곤 지나치게 껄끄럽고 난잡했다. 그 인간과 관련된 일들이 다 그랬다. 크리스탈 크리시는 맥주를 주문하려다 그것의 냄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불편해 물을 부탁했다. ‘네. 곧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메뉴얼에 따라 행동하는 승무원의 목소리는 웅웅 울렸다. 비상구 근처 좌석이라 더 그랬다. ‘비상시 다른 승객의 탈출을 도울 것에 동의하십니까?’ ‘예.’ ‘감사합니다. 본 좌석은…….’ 싸고 넓은 좌석에 앉기 위해서는 생명줄을 느슨히 잡는 대가가 필요했다. 설령 만일의 확률로 비행기가 불시착한들 아무 상관 없었다. 차라리 추락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동력원을 잃거나 새 떼가 엔진에 부딪히거나 날개의 부품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으로도 이 비행기는 고철덩이로 전락할 테다. 그리고 그것이 멈추면 4만 피트에서부터 시작되는 레펠 훈련이 될 테지. 안전띠 없이 진행되는 자유낙하라고 할까. 그리고. 또. 그리고…….
그러나 그 이후에 대한 상상은 불가능했다. 사실 추락의 경험이 없었다면 전제가 되는 상상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원래부터 그런 공상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런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가능의 영역에서부터 낙제였다. 크리스탈 크리시는 언제부턴가 폭력과 섹스가 아닌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했다. 그렇다 해서 다른 방법이 없지는 않을 텐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생각한다는 행위가 거북해지니 관성을 느낄 때마다 원의 안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존재를 느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 루이스가 자신을 기만하려고 여기까지 불렀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비행기에 몸을 실을 만큼.
“물 나왔습니다.”
의자 팔걸이에 달린 간이 테이블에 물컵이 놓였다. 상념에서 벗어난 크리스탈 크리시는 뻐근한 고개를 주무르며 창밖을 살폈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칠이 된 비행기의 날개가 가느다랗게 진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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