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힐

릭힐] 마법사x기사

(미완)제국au 블랙배저_전력_60분

남자는 고민했다. 이걸 어쩔까?


남자는 익숙한 번화가를 지나 골목길에 들어선 후 조금은 허름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정보상의 집, 혹은 정보길드라 불리는 이곳은 낮은 곳에 사는 시궁창의 쥐새끼들과 고고한척 날아다니는 철새같은 것들이 낮말과 밤말을 모아 가져오면 그것이 필요한 자들이 찾아와 돈을 주고 사는 가게였다.

마법사가 된 이후 이러한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뜸해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지도 않은 남자는 여전히 뒷골목을 가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하고는 했다.

제 아버지가 한때 주름잡았던 곳. 제 어린시절의 요람이자, 혹은 얼룩같은 곳.

가족을 잃은 그가 몇번이나 죽을 뻔 하고, 아버지의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신분을 세탁해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곳.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마음 속, 한 구석의 얼룩은 남자를 때때로 이곳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청년을 만났다.

환하게 빛나는 금안. 금안을 가진 자들이 정보길드를 찾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계수의 자식 중에는 제 실력이 아닌 업둥이로 시험을 통과한 이들도 존재하고, 금전적 이득을 위해 귀한 신목을 자른 후 도망자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뒷세계로 흘러든 이들도 적지 않으니.

하지만 청년은 그런 이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뒷골목에서 더러운 짓을 하며 얻은 구정물같은 정보를 팔러 온 시궁창의 쥐들과도.

고고한척 하는 이들의 곁에서 아부하다 운좋게 주워온 음습한 정보를 팔러 온 철새들과도.

혹은 그 정보들이 필요해서 찾아온 승냥이따위들과도 다른….

이곳에 있으면 안될 분위기가 촌뜨기같은 청년에게서 풍겼다.

“꼬마야, 왜 이런 곳에 있어~?..”

그래서였다. 이런 장소에서, 답지 않게, 처음보는 이에게 말을 걸고 친절을 배풀려 한 것은.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보는 애송이가 뭐가 그렇게 특별해 보였다고 정보길드에서 개인의뢰를 받아? 아무리 길드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어도, 그걸 사용하는건 다른 의미인데.

그가 ‘작은 소르디’라 불리던 이름을 버리게 된 후로 새로 만든 정보길드 자격은 그거 옛 신분과 현재의 신분이 다름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지표같은 것이었다. 그걸 처음 보는 애송이를 위해 사용하다니. 남자는 생각했다. 드디어 내가 미친 건가?

하지만 가족같은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몰살당했다며 그들이 무슨 이유로 죽어야만 했는지, 누군가 의뢰한 거라면 의뢰인이 누군지 알고 싶다고 하는 금안의 청년에게서, 남자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남자의 사연은 개인적으론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정보길드를 찾아오는 이들에겐 그리 드문 사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전이라고.’

신전같은 곳을 습격해 신관들을 한명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다? 분명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이상하게도 공통점이라고는 ‘몰살’이라는 키워드 밖엔 없는 사건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몰살당한 사건을 떠올렸다.

그리고 남자는 아주 예민한 성정을 가진 탓에 감이 뛰어난 편이었다.

“뭐, 시간때우기 삼아 하기 나쁘지 않은 의뢰기도 하고~…”

남자는 청년을 떠올렸다.

단정한 외양에 순박하고 올곧은 눈을 하고있던 청년.

‘의뢰비를 떼어먹을 성격으론 안 보였지.’

그래도 혹시라도 연락이 끊길까 싶어, 제 오랜 친구들에게 청년을 부탁해 놓았다.

스스로의 실력으로 세계수의 자식이 된것이 분명한 청년은 검사로서 재능도 실력도 뛰어나 보였던 터라, 기사인 제 친구가 웬일인지 눈을 크게 뜨며 무슨일로 기사단에 들어올 인재를 물어왔냐고 묻기도 했으니 잘 챙길 것이었다. 상인인 친구는 청년이 도망 못가도록 막아줄 터이고.

‘기사가 된다고 해도 한동안 말단일 녹봉으로 얼마 만에 마법사를 고용한 정보원으로 의뢰비를 갚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후, 남자는 청년이 가족과도 같은 신관들을 잃었다는 쿠르트아 지역의 신전 터를 방문하고 청년에게 의뢰비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는 것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릭…, 이번달 월급 나왔는데요.”

“너, 그거 갚을 필요없다고 몇번을 말해…?”

“아니, 가까운 사이일 수록 정보거래에 돈계산은 명확해야한다고…. 정보길드원들에겐 피보다 중요한 철칙이라면서요….”

차마 그 철칙보다 네가 더 중요해졌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꺼내지 못한 남자는 지우지 못한 짜증을 시선에 담아낸 채 청년, 힐데베르트를 바라보았다.

“난 내가 애인이랑 동거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의뢰인을 모시고 사는 거였나봐~?…”

월세를 받을 걸 그랬나? 남자의, 연인의 말에 힐데베르트는 새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 릭, 그게 아니라—”

“어쩌지. 난 나와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이랑 돈거래는 안하고 싶은데.”

“…….”

남자는 같은 침대, 라는 말을 하며 힐데베르트의 어깨쪽을 손으로 더듬었다 옷으로 가려진 쇄골부위에는 어젯밤 남인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을 터였다.

그것을 알고 있을 청년에게 연인이라는, 사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빌미로 협박하자 머리카락 색 만큼 허옇게 떴던 안색이 새빨개져 어쩔줄 모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거의 다 왔네. 그렇게 생각한 리카르도 소르디는 힐데베르트와 눈을 마주치며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래도 갚을거야?”

여기서 갚는다고 하면 더는 침대를 같이 쓰지 못하는 사이가 되는거다. 잘 생각해라. 라는 뜻이 담긴 연인의 말에 힐데베르트는 어깨가 축 쳐진채 정해진 답변을 꺼내왔다.

“…아니요….”

만족한 대답을 들은 남자의 녹안에 웃음기가 스며들고, 그 눈꼬리가 기분좋게 휘어졌다.


리카르도 소르디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청년, 힐데베르트 탈레브가 의뢰한 쿠르트아 지역의 신전의 몰살사건은, 남자-리카르도 소르디의 가족이 몰살당한 사건과 비슷한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그 흔적을 더듬던 남자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청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병상련이었을까. 모든 것을 잃고 발 딛을 곳 없이, 복수만을 끝내고 정처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청년을 붙든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같이 살자는 말을 꺼내게 되었다.

기사가 된 힐데베르트에게 기사단의 숙소라는 주거지가 존재함에도. 어쩐지, 그를 곁에 두고 싶어서. 그와 가까워 지고 싶어서.


남자와 청년은 아마 같은 복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복수에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서로의 손을 잡은 둘은 외롭지 않았고, 남자도, 청년도 안정되어갔다.


마법사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곧 지복을 받게되고, 소드마스터가 된 그의 연인도 지복을 받게되어 둘은 영원을 맹세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염이 심각해진 제국을 떠나 지구로 향한 그들은 동족들끼리 전쟁을 하게 되었고, 힐데베르트는 생사가 불명해진체 행방이 묘연해지게 되었다.

리카르도 소르디는 그렇게 연인을 수십년간 보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남자는 고민했다. 이걸 어쩔까?

“안녕~, 힐데.”

“…누구…?”

“…기억을 잃었다고는 들었지만, 날 못알아 보다니, 역시 서운한데….”

이 녀석을 어떻게 할까? 수십년간 자신을 기다리게 한 연인을 내려다보며 남자는 생각했다.

의뢰비니 뭐니 하는 돈 같은건 상관 없었지만, …수십년을 기다리게 한 대가는 치루게 해도 되잖아. 그렇지?

힐데베르트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녹안이 짙은 색을 띄며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여기서 자릅니다ㅠㅠㅠㅠ

기회가 되면 다음에 이어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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