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레인을 질주하는 스프린터

1. CHILCHUCK

NOPE au

이 시리즈에는 카블칠책카블, 파르실이 묻어있어요, 제가 의도한건 우선 이렇게 두개였는데 쓰다보니 왜 라이칠책 플래그도 있는 것 같은지 모르겠네요ㅎㅎ

그리고 던전밥(~13권)과 영화 ‘놉(NOPE)’에 대해 스포가 나올 수 있습니다

13일까지만 넷플릭스에서 놉을 볼 수 있답니다… 연휴 마지막날 츄라이 츄라이


“뭐?”

“나도 끼워줘.”

“아니, 그거 말고 그 앞에 했던 말.”

“그거 잡을 수 있게 도와줄 테니 나도 끼워주라.”

잘못 들은 게 아니었잖아!

라이오스는 <칠책 전파상>에 들어오자마자 자동적으로 오른손으론 2.99달러짜리 핸드폰 충전기를 집고 왼손으론 현금 3달러를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황당무계한 제안부터 늘어놓았다. 말과 따로 노는 이 괴이한 행동은 가게에 실없이 들를 거면 뭐라도 사라는 시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르면서 꼭 저걸 사 갔어서 모르긴 몰라도 쟤네 집에 저게 오십 개는 있을 거였다. 그런 강조되고 반복되는 행동은 셈이 빠르며 비효율적인 걸 싫어하고 캘리포니아 거주민답지 않게 부정적인 성정의 칠책을 신경쇠약 직전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부업으로 생각하자고 속 편하게 맘 먹으려 애썼던 날들이 무색하게, 라이오스의 이런 행동이 한 달을 넘어가서도 지속되자 칠책은 그의 멱살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내가 졌으니 제발 그만 사라고 애원했었다.

그렇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고 나서도 라이오스는 칠책에게 부탁이 있을 때면 습관적으로 그 행동을 다시 했다. 제 딴에는 정말 뭐라도 사서 비위를 맞추는 행동일 거고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칠책 입장에서는 애꿎은 죄책감과 이불킥을 자극당하는 심정이라… 라이오스 한정으로 유독 발화점이 낮은 칠책은 그럴 때마다 바짝 약이 올라 평정을 잃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 건은 정말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회상을 억지로 멈춘 칠책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을 기다리며 서 있는 괴짜의 팔을 잡고선 자연스럽게 자신이 앉아있던 하프풋 전용 의자에 끌어 앉혔다. 약 6피트 신장의 톨맨은 이 자세가 다소 불편했지만 왠지 모르게 얌전히 쭈그려앉았다. 비로소 자신과 눈높이가 엇비슷해지자 칠책은 그와 효과적으로 눈을 맞추며 심리적 압박을 유도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칠책이 5초 내로 상황의 주도권을 끌어오는 고급 기술 중 하나였다. 시전 대상이 몇 년간 이웃으로 막역하게 지내온 친우칠책은 항상 이 사실을 인정하면 크게 자존심이 상할 것처럼 굴었다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사실 이 친우는 은근히 기가 약해서, 웬만한 상황에선 이 기술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다만 끄떡도 안 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의 ‘초자연생물에 대한 괴이한 집착’과 관련되어 있을 때였다. 바로 지금처럼…

초자연 생각을 하는 게 뻔할 라이오스의 동공이 흥분으로 확장되는 걸 코앞에서 실시간으로 관람한 칠책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저녁시간임에도 그의 눈동자가 빛나는 태양처럼 느껴졌는데, 그게 착각에 불과하단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에게 반쯤 말렸단 걸 의미하기에 칠책은 서둘러 인상을 조금 더 찌푸리며 퉁명스러운 말로 자신을 방어했다.

“하늘 위에 있는 걸 어떻게 잡아? 크기는 또 얼마나 큰지 가늠도 안 되겠던데!”

사실 가늠이 된다. 그래서 더 무섭다.

“땅으로 유인하면 되지. 짚이는 구석이 있어.”

“그 구석을 피해가면 아무도 안 다치고 끝나는 것 아닌가?”

“아니, 아마 피해서 끝낼 순 없을 거야.”

‘그것’은 이미 여기를 집으로 삼았을 테니까.


(그로부터 한 달 전)

칠책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집으로 퇴근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급전이 필요했다. 요즘 장사가 잘 돼서 가게 월세도 따박따박 낼 만하고, 가족들에게 꼬박꼬박 돈도 부치고, 그러고 나면 남는 생활비도 충분했지만, 비상시 사용할 저금도 조금쯤은 있었지만, 그러고도 또 돈이 필요했다.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한참동안 여러가지 급전 마련 방법을 궁리하다 보니 어느새 집앞이었다. 칠책은 본인 키보다 2피트 정도 큰 대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문이 열려 있는 걸 보니, 저보다 조금 먼저 들어온 동거인이 저를 맞이하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이럴 때마다 시골에 드문드문 있는 한적한 집이면 단 줄 아냐고, 문단속하라고 잔소리하고 싶었지만 지금 저는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차마 엄두가 안 났다. 뭐, 이웃집이라 해봤자 1마일 정도 거리의 토덴네인데 걔네가 뭐 훔쳐갈 애들도 아니고… 칠책은 속으로만 궁시렁거리며 얌전히 귀가하기를 택했다.

“나 왔다.”

“오셨어요? 햄버거 사놨으니까 같이 먹어요!”

“오, 햄버거”

거실에서 업무를 하는 듯한 동거인을 뒤로하고 부엌에 들어서자, 2인분의 햄버거가 들었을 종이가방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펼쳐진 우편물이… 나올 때 서재에 숨겨두고 왔었는데? 지금은 보란 듯이 식탁에 올라와 있는 종이.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생각하면, 역시 이건 동거인의 의도가 분명했다. 알아서 설명해보란 거군.

마음의 준비를 약간 한 후, 그는 동거인을 불렀다.

“카블루, 이리 와 봐.”

“다 드시고 얘기해도 되는데요?”

“어… 그냥 짧게 얘기하고 먹자. 보다시피 내가 믹벨한테 내용증명을 좀 받았는데, 그 내용은 너도 읽어서 알겠지. 내 혐의는 별 거 없고, 사실 그렇게 찔리는 것도 없어. 사실 이걸 받기는 그저께 받았는데 좀 심란해서 마음을 포함한 여러가지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가지고, 미리 말을 못했어. …미안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동족의 안위에 신경쓰기에 하프풋 이미지에 해를 끼치면 동족이라도 싫어하는 칠책은 이 동네에 딱 하나 있는 전당포가 좀 못마땅했는데, 처음엔 어린 하프풋이 코볼트 하나 거느렸다고 장물도 가리지 않고 취급하는 것이 영 불안불안했을 뿐이었다. 그걸로 귀찮은 일이 생길 뻔해서 몇 번 훼방을 놓아 막아줘도, 위험한 일을 피하게 도와줬다는 자각을 하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렇게 내용증명이나 보내오다니.

“아, 이자식은… 법대로 하면 불리한 게 누군데 지금 이런 걸…”

“…”

카블루도 영 심란한지 저녁 식사 내내 말이 없더니, 자기가 한 번 믹벨과 잘 얘기해 보겠다고 문을 나섰다. 카블루를 배웅하고 나자 갑자기 피곤해진 칠책은 외출복 차림임을 무시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일단 몸이 시키는 대로 드러눕긴 했지만, 큰 걱정거리가 있었으므로 머릿속은 팽팽 돌아갔다.

칠책은 자신이 여러 번 전파상 손님들에게 전당포 욕을 했던 일은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했기에 고소를 당하더라도 형을 살 염려는 별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걱정되는 건 따로 있었는데, 이 사건에 들어갈 돈의 액수에 관해서였다. 누가 불리하고 유리하고를 떠나, 영업방해죄의 경우 합의해도 혹시나 혐의가 인정되면 취하가 안 되기 때문에 기소유예가 최선이었다. 거기까지만 가려고 해도 변호사비가 꽤 들 것 같았다.

사실 믹벨도 장물을 그냥 받아주고 했던 거 보면 아예 합법적으로 살진 않았으리라. 이쪽을 수사하다 그쪽에도 뭔가 덜미가 잡히면, 진짜 최악의 경우 둘이서 나란히 법의 철퇴를 맞아 감방 동기가 될 수도 있고… 아, 너무 최악은 상상하지 말자. 일단은 변호사 수임료부터…

당장은 저금을 쓴다 쳐도 진행이 지지부진하게 되면 기간이 늘어지면서 엄청난 손해가 날지도 모른다. 때문에 칠책은 평소에도 돈 문제에 예민했지만, 지금은 평소보다 곱절로 민감했다. 세 딸 모두 돈을 벌고 있으니, 월세나 생활비보단 이쪽을 절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무슨 핑계로? 가장이 고소당했다고 하면 다들 걱정하겠지.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좀 그래, 차라리 보증금을 까먹으면서 월세 쪽을…

몸이 편하니 오히려 더 활성화된 상념들을 정리하면서, 칠책은 카블루가 남기고 간 말을 떠올렸다. 진짜 안 되겠으면 자기가 양어머니께 돈을 빌려 보겠다고 했지만, 엘프는 싫고 그게 애인의 엄마라면 더 껄끄러운 장년의 아저씨는 그럴 바에야 집을 팔고, 아니면 가게를 팔고,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여겼다자신의 가족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전제 하에. 아저씨의 남은 20년 중 5년을 감옥 뒷바라지하게 생긴 애인이 들으면 기함할 정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떨어지진 않았고, (미래의) 돈벼락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게 되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아주 높은 곳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속도로 하늘을 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는 무언가 있었고 구름의 빠른 형태 변화, 엄청나게 흔들리는 나무, 대단한 바람에 덩달아 울어대는 창문, 창문의 소음 사이로 들리는 초음파같은 소리 등이 그것을 증명했다. 처음엔 허리케인의 징조인 줄 알고 온갖 일기예보를 찾아보면서 두려워했으나…

약간 미심쩍어 하면서도 두려움이 끝난 건, 잠시 멈춰있는 그것을 희미한 형체나마 운좋게 확인했을 때였다. 그것은 상공에서 자유자재로 부유하는 ‘무언가’였다. 태풍도, 허리케인도 비구름도 아닌 무언가. 그리고 아마도, 공군 레이더나 위성 감시망에도 걸리지 않는…

이후로는 다른 방향의 두려움이 자라났다. 하지만 미지를 향한 두려움은 호기심과 탐욕 또한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칠책은 너무 많은 욕심은 너무 많은 리스크를 불러온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건 간결하게 두 가지였다.

1. 저걸 찍어서 제보하면 매스컴에서건 유튜브건 흥미를 끌 만한, 제대로 돈 되는 영상을 만드는 것.

2. 그러고 나면 인명피해 없이 저것이 물러나 주는 것. 그리고 우리 동네는 평소의 평화를 되찾는 것.

하지만 칠책 또한 경험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다, 이런 류의 일은 계획대로 잡음 없이 끝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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