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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금랑] 금랑님을 지키는 요새 (202.09.17)

퇴고X

Snapdragon by 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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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타워 위원장의 호출에 승재는 투덜거리면서 입구에 들어섰다. 익숙한 얼굴의 트레이너가 반갑게 승재에게 다가와 안내를 자처했다. 직원 카드를 찍자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멈추지 않고 단숨에 최상층까지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승재는 가라르 출신이 아니지?"

최근 잦은 위원장의 호출에 피곤한듯 하품을 하며 승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챔피언 학대야. 최근 밤낮으로 단델이 하던 일을 떠맡은 승재는 이런걸 10년이나 해낸 단델을 존경해야할지 아니면 위원장이 된 그에게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부려야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 위원장이 자신을 많이 배려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몸이 힘드니 그런 고마움보다는 당장 캠핑을 하며 자신의 포켓몬들과 힐링이나 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드세어졌다.

"그럼 얘기가 길어질 수도 있겠네."

"그러고보니 오늘은 무슨 일인가요? 이번에야말로 쓸데없는 일이면 단델씨에게 난동부리기 쓸 거에요."

금랑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으니 도와달란게 시작이었던가. 승재에게 패하고 슛시티 스타디움 공개 프러포즈 계획이 물건너갔다며 당당하게 부탁하더랬다. 처음엔 승재도 미안함에 열심히 도와주었으나 결과적으로 잘 된 두 사람을 보며 다시 잘 생각해보니 배틀에서 이기고 수 많은 관중들 앞에서 프러포즈하는 짓을 저질렀다간 오히려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내가 단델씨를 이긴건 신의 뜻이 아닐까. 단델씨가 금랑님에게 살해당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쓴거지.'

그뿐이던가 결혼준비한다고 바쁜 위원장을 대신해 승재는 열심히 굴렀다. 다시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분명 자신에게 패한게 열받아서 소소하게 복수하고 있는건 아닐까? 가라르의 가슴, 아니 마음이 넓은 남자라지만 배틀타워에서 승재에게 패할때 진심으로 주먹을 부들거리던 모습을 보고 단델의 평가가 제법 야박해진 참이다.

그 이후에도 종종 단델에게 불려가는데 다섯 번 중 한 번은 금랑님의 주접을 듣고 터덜터덜 배틀타워를 빠져나와야했다. 호브의 형님만 아니었어도 진즉 난동부리기를 썼을거다. 그렇다. 승재는 어디까지나 천사같은 호브의 얼굴을 떠올리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한계점이란게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너클시티는 금랑님을 지키는 요새니까 단델님에겐 힘들겠지."

띵. 연신 나오는 하품을 참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리던 승재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른 동시에 최상층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갈 수 있지? 그럼 부탁할게, 챔피언!" 승재는 대답도 듣지 못하고 등에 밀려 엘리베이터에 내려야했다.

"잠깐, 대체 뭘 부탁한다는거예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선글라스 너머로 피곤에 찌든 눈동자가 승재를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위원장님의 목숨!"

-

승재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도착해 익숙한 쇼파에 앉았다. 단델이 손님용 테이블에 올려진 3단 디저트 스탠드에서 쇼콜라 케익 조각을 접시에 담아 홍차와 함께 건네주는걸 받았다. 처음 가라르에 왔을땐 매일 홍차만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오늘은 케이크에 고급 과자까지 준비해둔 걸 보니 이야기가 길어지려나보다. 그러나 단델은 맞은편에서 연신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만 꼬물거리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용건이 아니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들어봐, 승재!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고보니 위원장님의 목숨이랑 연관되어있다고 했던가. 그럼 역시 큰 일인거겠지? 저렇게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는걸 보니 여간 큰 일이 아닌가보다. 승재는 혹시라도 이야기를 듣고 놀라 컵을 깨트릴까봐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사실은... 단델은 수염이 난 꺼끌한 턱을 매만지며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금랑이랑 싸웠어."

"뭐라고요?"

"그러니까 부부싸움을…"

승재는 컵을 미리 테이블에 내려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내용물을 단델에게 부어버리는 상상을 하고야 말았다. 상상으로 끝나서 다행이야. 홍차는 뜨거웠으므로 위원장이 화상을 입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승재는 난동부리기를 쓰려고했다. 어디한번 배틀타워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몸을 구를 생각이었다. 승재도 다치고 단델도 다치고 여기저기 쌓여있는 서류는 눈꽃처럼 휘날릴 예정이었다. 그 전에 뜨거운 홍차는 위험하니까 다 마시자. 그리고 조각 케익은 바닥에 떨어지기엔 너무 맛이 좋았다. 

"금랑에게 사과 해야해." 예상은 했지만 잘 못한쪽은 단델씨인가보다. "그런데 금랑이 너클시티에서 나오질 않아!"

"나더러 어쩌라는건지…." 승재가 차를 마시며 흘리듯이 중얼거렸다. 승재는 이제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친구의 형님에게, 가라르의 영웅에게, 상사이자 위원장님에게 이런 태도라니 정말 불손하게 짝이 없었지만 이제 정말로 될대로 돼라 세라 상태였다. 당장 난동부린 뒤에 혼란에 빠져야만했다. 이 무거운 눈두덩이를 붙일 방법은 그 뿐이었다.

"지금쯤 너클시티 주민들이라면 우리가 싸운걸 모르는 사람들이 없겠지. 아마 난 살해당할거야."

"너무 오버하시네요."

"너클시티는 금랑을 지키는 요새인걸!"

그러고보니 아까 자신을 데려다준 직원도 같은 소리를 했었지. 금랑님은 너클시티의 수문장이자 수석관장이니 너클시티를 지키는 용이 분명하다. 그런데 너클시티가 금랑님을 지키는 요새라고?

"너클시티는 금랑님의 홈 그라운드란 이야기인가요? 그치만 단델씨 인기를 생각하면 아무리 너클시티 주민들이라도 살인까지는..."

"그러고보니 승재는 나이가 어린것도 있지만 가라르에 이주한지 얼마 안됐으니 모를만도 한가."

단델은 자연스럽게 승재가 마시고 있던 잔에 홍차를 다시 채워주었다. 이 인간이!

"얘기가 길어지겠네."

편안하게 의자에 몸을 기댄 단델과 달리 승재는 이를 갈며 뜨거운 홍차를 식히기 위해 애를 썼다.

* * *

이야기의 시작은 혜성처럼 나타난 금랑이 스타디움 관객과 단델을 휘어잡았던 그 날로 돌아간다. 

단델이 챔피언으로 등극한 이래 에이스 포켓몬인 리자몽을 거다이맥스 시킨 첫 트레이너였으니 반응이 뜨겁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는 금랑의 패배로 끝났지만 인터뷰에서 다음에는 반드시 리벤지하겠다는 그 소년의 미소는 가라르의 새로운 이슈를 가져다주었다. 무적의 단델, 그런 별명을 가지고 지쳐가던 단델 또한 금랑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랑. 금랑. 그의 이름이 가라르에 퍼진 순간이다. 

"나님 내년에는 도전하지 못할거야."

세 번째 챌린지, 세 번째 도전. 그리고 공식적인 세 번째 패배에 금랑은 마주잡은 손을 떼기 전에 그리 말했다. 결국 너도 포기하는거야? 열기가 식지 않아 달아오른 숨을 고르던 단델이 입을 떼기 전 금랑이 으르렁 거렸다.

"기다리고 있어! 반드시 네 목을 받으러 올테니까!"

그래서 단델은 기다리기로 했다. 그말대로 금랑은 다음해 챌린지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래도 단델은 기다렸다. 다시 찾아온 챌린지. 혹시라도 금랑이 체육관을 도전하지 않을까 신경쓰여 뉴스나 SNS를 찾아봤지만 그의 이름은 들려오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했으면서. 내 목을 받으러 오겠다고 했으면서. 단델은 지루한 표정을 애써 감추고 시범경기에 나가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호명과 환성이 터지는 동시에 단델은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챔피언답게,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며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퍼포먼스를 위해 리자몽포즈를 하고 천천히 대전상대를 눈에 담았다. 거기엔 금랑이 있었다.

[무적의 챔피언의 상대는! 놀랍게도 너클짐에 새로운 관장이 된 금랑선수입니다!]

어둡게 먹구름이 끼어있던 하늘에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금랑을 비추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옆에 로즈나 올리브가 있었더라면 분명 지적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단델! 약속대로 네 목을 받으러 왔다!"

어쩜 저리도 반짝이고 빛나는걸까.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금랑은 그 해 전략을 바꾸고 날씨를 배틀에 이용하는 전법을 구사했다. 너는 정말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그래서 시범경기라는 것도 잊고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부딪혔다. 덕분에 시작부터 경기장의 열기가 굉장했다. 물론 시범경기에 힘을 너무 뺐다고 나중에 지적당하긴 했지만. 단델은 그 날 인터뷰에서 금랑을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칭했다.

여기까지가 서두인 이야기였고(승재의 입술이 비틀렸다.) 본론은 지금부터다. 

금랑이 취임한 너클짐이 가라르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너클시티에 자리잡고 있었던게 어쩌면 문제라면 문제일까. 가라르 사람들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정도로 너클시티 주민들은 자존심과 자부심이 굉장히 드높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이에 너클시티 출신은 다른 곳으로 이사도 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금랑은 단델에게 연패하고 있었으며 누군가 악의적으로 금랑이 너클시티 출신이 아닌 고아라는 사실을 SNS에서 떠들어대었다. 사실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당시엔 이에 대한 불만을 가진자가 한 둘이 아니었단거다. 게다가 관장이라지만 아직 한참 어린 금랑을 보호해줄 만한 어른도 없었다. 전대 너클짐 관장은 이미 인수인계를 끝마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유독 너클짐에선 생각보다 흔히 있는 일이다).  

너클시티에 제법 오래 산 사람들은 말그대로 고상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러니 굳이 SNS에서 평판이 나쁜 금랑에게 날달걀을 던지기 위해 찾아가는 짓따윈 하지 않는다. 다만 안티에게 그런 꼴을 당한 금랑을 보고도 괜찮냐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으며 마치 없는 사람인척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더러는 금랑때문에 너클시티의 평판이 떨어졌다고 혀를 차기는 했다. 

금랑의 인성논란이나 더러는 가짜인게 뻔히 보이는 터무니없는 뜬소문까지 떠돌고 있었지만 너클짐에서는 위원회에 아무런 조치를 부탁하지 않았다. 그정도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면 너클시티의 관장직은 하지 못한다. 되려 트레이너들이 위원회에 그렇게 못박기까지했다.

물론 단델은 그런 금랑을 도와주고 싶어서 로즈 몰래(리자몽의 도움을 받아) 찾아간적이 있었지만 금랑은 괜찮다며 친절히 아머까오 택시까지 불러 돌려보냈다.

"챔피언은 마음이 자애롭군요. 라이벌을 위해 손수 행차하다니요."

"갑자기 웬 헛소리입니까?"

"들어봐, 두송. 내가 저번에 너클짐을 찾다가 길을 잃어서 도움을 받았을때 저 말을 들었는데…어쩐지 기분이 나빠서."

"너클시티 언어를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뭐 대충 해석하자면, 여기서 노닥거릴정도로 여유있다니 챔피언은 한가해서 좋겠다 정도로 알아들으세요. 물론 이것도 많이 순화한겁니다."

본격적인 챌린지 전 안전 및 준비를 위해 관장들끼리 모이기 위해 만난 스타디움 대기실에서 들은 두송의 대답에 단델이 입술을 깨물던 그 때 대기실 문이 활짝 열렸다. 같은 챌린저 시절 소니아와 함께 라이벌로 싸웠던, 현 바우마을 물타입 관장인 야청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당황한 아킬이 최대한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야청을 불러세웠다.

"야청님, 여기는 남자 대기실이에요."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야청이 자신의 스마트 로토무를 내밀었다. 거기엔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일드 에리어의 상황을 비추고 있었고, 무수히 많은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가서 도저히 눈이 못따라 갈 지경이었다. 

"이건?"

"어느 조난자의 와일드 에리어 실시간 라이브 방송. 그리고 지금 여기 없는 금랑이 조난자를 발견했는데 날씨 상황이 안좋아서 지금 피신중이야."

"그거 큰 일이네요!"

"아냐! 진짜 큰 일은 그게 아니야!"

아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야청의 안색이 파래졌다. 단델은 야청의 어깨를 쥐고 금랑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혹시 다친건지 캐물었다. 야청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아킬이 단델을 팔로 밀어내며 떨어뜨렸다.

"이 조난자는 금랑의 안티로 유명해. 아마 금랑이 구조하러 온 걸 보고 방송도 일부러 킨 거 같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단델은 곧바로 자신의 스마트 로토무를 꺼내 금랑에게 연락을 했다. 신호음은 가지만 끝내 금랑은 받지 않았다.

"이미 나도 해봤어! 그런데 연결이 안돼!" 

단델이 몬스터볼을 챙기고 곧장 나가려는걸 두송이 막아섰다. 단델은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두송을 노려보았다. 

"저리 비켜."

"저기가 어딘 줄 알고 이 날씨에 길치인 당신이 잘도 찾아가겠군요."

"그래도 가야해. 여기서 낭비할 시간 없어."

"유감이지만 죽으러 가는 챔피언을 막아야하는 제 입장도 있어서요."

두송은 허리춤에 찬 몬스터볼에 손을 댔다. 대기실은 배틀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지만 그런걸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단델의 눈은 한마디로 맛이 갔다. 당시의 두송은 그리 얘기했다. 이대로 단델을 내보냈다간 금랑을 찾는 인력이 단델쪽으로 눈을 돌릴게 뻔히 보였다. 

"제가 상부에 보고 하고 올게요!" 아킬이 급히 밖으로 나간 뒤 야청이 소리쳤다. "둘 다 조용히 해!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야청이 볼륨을 키웠다.

[죄송해요, 금랑님. 제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단델은 자신의 스마트 로토무로 영상을 찾을 생각도 못하고 야청 근처로 다가가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목소리가 들리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반응들이 더욱 격해졌다. 

[괜찮아. 나님만 믿어. 너를 반드시 안전하게 데려다줄테니까!]

-

와일드 에리어의 비바람은 그칠 줄 몰랐다. 역시 신은 자신의 편이다. 왜냐하면 SNS의 대스타, 그 유명한 금랑님이 직접 행차했는걸! 

그동안 그 힘든 와일드 에리어를 돌아다니며 안전을 위해서 배치된 요원들의 눈을 피해 금랑의 순찰 구역까지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모했는가. 이 날씨라면 다른 구조대가 오는데는 시간이 걸리테니 작전을 실행하려면 지금밖에 없었다. 준비해둔 스마트 로토무를 금랑에게 들키지 않게 촬영모드로 돌리고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했던것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금랑이 이 상황에 라이브 방송을 확인할 일은 없을테니 당분간은 안심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뜨겁고 금랑의 팬들까지 같이 접속한걸보면 신고가 들어갔을 수 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은 금랑의 안티팬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진짜로 금랑을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금랑의 질 나쁜 소문들을 퍼트리는 건 어디까지나 유희거리였다. 어쨌거나 금랑에 대한 글을 쓰면 조회수나 덧글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계속 금랑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살을 덧붙이다보니 이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리. 이정도로 많은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분명 금랑에겐 무언가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다. 물론 고아지만 챔피언의 인정을 받는 그 금랑이, 너클시티의 짐리더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이 배가 아파서 그런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뭐 아주 조금 그런 이유도 있긴 할거다.

아무튼 이런 터무니 없는 짓을 저질러버렸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오늘 운이 좋다면 경찰서에서 훈방조치로 끝날지도 모르고, 혹은 상황에 따라 감옥에 갈 지도 모르지만 금랑의 평판도 지옥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줄 생각이니 아쉬울 게 없다.

"죄송해요, 금랑님. 제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괜찮아. 나님만 믿어. 너를 반드시 안전하게 데려다줄테니까!"

가끔 금랑의 포케스타에서 봤던 미끄메라랑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는데 생각보다 그 얼굴이 굉장히 예뻤다. 신은 어찌 이리 불공평할까. 저 얼굴에 그런 스펙이라니 정말 불공평하다. 그러니까 역시 금랑이 나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금랑이 나쁜거다.

부상은 개뻥이다. 다리를 다친척 일부러 금랑의 부축을 받아 동굴까지 오기 위한 말그대로 속임수. 이걸로 날씨가 좀 더 좋아지더라도 곧바로 구조대가 발견할 위험이 적어지며, 금랑도 부상당한 나를 두고 함부로 행동 할 수 없게된다. 

"날씨가 이래선 어차피 당장 구조될 수 없으니까 금랑님 이야기라도 들려주세요!"

"나님의 이야기?"

"네! 저는 금랑님의 팬이거든요. 금랑님의 영상도 다 갖고있고 굿즈도 샀어요. 금랑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지금 무서운 이 상황이 좀 안심될 거 같아요."

열렬한 안티팬도 팬이라면 팬이지? 게다가 나중에 더 비싼 값으로 되팔아야하므로 굿즈도 열심히 모은것도 사실이고. 금랑의 굿즈는 프리미엄이 잘 붙어서 제법 쏠쏠한 값어치를 해댔다. 지금 다시 없을 관심을 받고 있으니 그를 이용해서 뽕을 좀 뽑아야겠지.

"나님은 딱히 말해줄 게 없는데."

"뭐든 좋아요! 아, 그러고보니 금랑님이 고아라는 소문이 돌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금랑은 그 물음에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웃으면서 맞다고 대답해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순순히 대답해주는거 아니야? 지금껏 기자들이 금랑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때 금랑은 언제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라, 그럼 내가 처음인가? 

"지금껏 공식적으로 인정하신적은 없으시잖아요."

"딱히 비밀은 아니었어. 부끄러운것도 아니고. 그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 할 이유가 없으니까 안했던거 뿐이야."

금랑은 별거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너무 시시하게 인정해버린건 아쉬웠지만 질문거리라면 이미 몇 개 더 생각해둔 참이라 상관 없었다. 금랑이 밖의 빗줄기에 눈을 돌린틈에 라이브 방송을 확인해보니 빠르게 오르내리는 글자들이 겨우 눈에 들어왔다. 그럴 줄 알았다던가, 금랑의 태생을 비꼬는 험한 말들이 오갔다. 게다가 너클시티는 전부는 아니었어도 대부분의 관장들이 너클주민 출신이다. 이걸 꼬집어서 금랑이 너클짐의 관장으로써 자격이 없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오가고 있었다. 애초에 금랑의 안티들이 모여있는 사이트에 링크를 제일 먼저 달아두었기에 많은 안티팬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맞장구를 쳤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금랑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그 업적을 내가 이뤄냈다고 생각하니 몸이 일순 오싹해졌다. 

"저런 힘드셨겠어요."

"나님 단델과의 배틀도 즐겁고, 너클짐 업무도 익숙해지니까 점점 재미있어서 그다지 힘들지 않아."

"하지만! 너클시티 사람들은 금랑님을 미워하잖아요."

"나님을?" 

"어? 모르고 계셨어요?"

금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진짜로 모르겠는가? 분명 다 알면서도 일부러 숨기는게 틀림없다. 그 자존심 높은 귀족동네 인간들이 금랑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있을리가 만무하다. 그것도 어디서 굴러먹다 온줄도 모르는 저런 녀석에게! 전에 너클시티에서 일어난 안티팬의 영상을 보면 너클시티 사람들은 마치 금랑이 없는 존재마냥 투명인간 취급하지 않았던가. 금랑에게서 너클시티 사람들의 흉을 내뱉게 해야했다. 그 영상이 퍼지기라도하면 금랑의 입지는 확실하게 좁아진다. 자신들의 명성에 먹칠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가만있겠는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관장이 너클시티나 너클주민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퍼져도 자신의 승리였다. 그래, 분명 속내는 죽을만큼 그들을 미워하고 있을게 뻔하다. 

"여기는 저희 밖에 없으니까 솔직해지셔도 돼요!"

마치 작은 포켓몬마냥 애써 불쌍하고 무해한 표정을 짓기 위해서 애를 썼다. 여기선 금랑을 안심시키고 속내를 내뱉게하는게 우선이니까. 

"알다시피 금랑님 평판이 조금, 아니 많이 나쁘잖아요? 물론 저는 그런건 믿지 않지만! 게다가 너클시티 사람들이 금랑님을 괴롭히는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걸요. 저는 금랑님이 걱정이에요. "

물론 그 인간들이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겠지. 예전에 너클이 고향인 사람을 만난적이 있는데 은근슬쩍 사람 속내 긁으며 까내리는게 보통이 아니었던게 떠올랐다.

나는 알고있다,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자 금랑은 손을 입술 근처로 가져다대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이 잘 풀린다. 너무 잘 풀린다. 금랑의 단 한마디, 사실은 너클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괴로웠다 그 한마디면 모든게 끝난다. 이대로 금랑을 매장시킬 수 있어! 미리 맞춰둔 신호로 눈치껏 로토무에게 볼륨을 올리도록 지시했다.

"역시 하나도 힘들지 않아. 나님 너클시티를 사랑하니까. 그곳엔 나님을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은걸. 너클짐 트레이너들도 부족한 이 몸을 믿고 따라와주고 있어."

"전에 테러 영상 봤어요! 너클주민들이 금랑님을 무시하고 지나가는걸!"

"그건 그 사람들의 배려야. 나님이 민망하지 않게 해주려고 다들 일부러 평소처럼 행동해주는거지. 알다시피 너클시티는 조용하잖아? 호들갑떠는 사람들도 잘 없고. 게다가 나님은 그런 일에 꽤 익숙한 편이니까."

"그래도 분명 서운한게 한 두가지 정도는 있지 않겠어요?"

서운한점? 금랑은 다시 고민하듯 이번에는 팔짱을 끼고 무언가 떠올리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저렇게 고민하는건 챔피언 단델의 버릇이던가. 라이벌이라더니 저런 점까지 닮아가는건가. 아니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너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서운한건 있겠지! 하나도 없을리가 없잖아! 네가 어? 성인군자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 너클시티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지만 알다시피 여기서 사는건 여러가지 제약이 많아. 역사가 길고 유물이 많기 때문이지. 그런데도 그곳을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인걸. 나님은 그 사람들이 지켜낸 아름다운 도시도,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에 빠져서 여기 관장이 됐는걸. 이 곳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다고 생각해서 관장이 된거야. 그러니 불만도 서운한 점도 없어. 모두 나님이 선택한거니까 후회하지 않아."

웃기지마. 웃기지마. 웃기지마! 네가 뭐 대단한 줄 알아? 세상에 불만 하나 없이 모든걸 감싸안고 사랑한다고? 네가 그렇게 대단해? 너는 그냥 실력은 제법 좋지만 그저 챔피언에 눈에 띈 운이 좋은 녀석일뿐이야. 실상은 그저 고아에 널 좋아하는 사람들따위 없고 널 지켜줄 사람들도 없고 그리고, 그리고…

"그래도 금랑님 테러도 자주 당하시고, 그리고 안티도 많잖아요."

"나님 너무 바쁜사람이라 안티를 신경 쓸 틈이 없어서."

금랑이 다시 미끄메라마냥 후냐하게 웃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이게 다 진심이라고? 지금까지 우리를, 나를 신경도 안썼다고? 네가 감히? 감히 넘볼 수 없는 무적의 챔피언 단델님이라면 인정할 수 있지만 금랑 너는 아니야. 단델님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라지만 너는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니잖아. 그저 나와 같잖아. 그래야하잖아.

"이정도 빗줄기라면 금방 사람이 올거야. 아까 여기 위치로 구조신호를 보내뒀거든. 일단 가까운 너클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간단한 신상조회랑 설문이 있지만 어렵진 않을거야."

금랑이 이야기하는걸 건성으로 들으며 실시간 반응을 확인해보았다. 아직 금랑을 욕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아까보다 반응이 시시했다. 금랑의 팬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자료를 위원회에 넘길거라고 경고를 하며 안티들과 싸우고 있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금랑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더 많아진거 같다.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 하지만 괜찮아. 금랑이 나를 믿지 못하고 진심을 말하지 못할거란것 정도는 이미 예상했으니까. 이럴줄 알고 플랜2도 생각해뒀잖아. 과연 언제까지 멋진척을 할 수 있을까. 다치고 아프고 죽을 거 같은 공포에서도 가능할까? 사람의 본성이란건 결국 끌어내면 그만인거다. 물론 그런짓을 했다간 감옥에 가는건 피할 수 없으니 되도록이면 쓰지 않으려고 했건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전부 네 탓이잖아. 자업자득이다.

일부러 내 얼굴은 나오지 않게 찍고 있었지만 이 방법을 쓰면 당연히 얼굴이 노출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고 방송을 끌 수는 없다. 그래서 영상 화면을 꺼버리고 소리만 나가도록 설정을 바꿨다. 사람들은 갑자기 나오지 않는 화면에 당황했다. 실시간 덧글들을 읽으며 코웃음을 쳤다.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 너희는 감히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간단하다. 금랑을 찌를거다. 이 칼로. 물론 죽일 마음은 없다. 진짜로 살인을 하겠다는게 아니야. 적당한 부상을 입히고 적당히 겁주고 적당히 본래 그 추잡한 성정을 드러내게 만들 셈이다. 곧 구조대도 올테니까 죽지는 않을거야. 그래, 죽이진 않아.

괜찮아, 신은 내 편이야. 다 잘 될거야.

-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막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와일드 에리어 관계자에게 경과 보고를 하는지 금랑은 스마트 로토무를 확인하느라 등이 비어있었다. 적당히 사람이 죽지 않으면서 내가 도망칠 시간을 벌려면 어깨나 등 쪽을 찌르는게 좋겠지. 어차피 금방 잡힐거라는건 알지만 미리 타 지방행 티켓도 끊어놓았다. 당장은 여론이 금랑편에 설 확률이 높으니 일단 숨었다가 이번 일이 시들해지면 그 때 다시 돌아와 자수할 생각이었다. 그래, 금랑이, 빌어먹게 눈치만 빠른 꼬맹이가 그 때 뒤를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당황해서 내지르는 칼을 억지로 막으려고 들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거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칼을 자신에게 찌른거처럼 보였다. 그래, 금랑이 괜히 막으려다가 더 크게 다친거야. 내가 나쁜게 아냐. 

금랑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어 주르륵 주저 앉았다. 칼은 복부를 빗겨가 옆구리쪽을 크게 스쳤는지 옷이 빨갛게 물들었다. 너무, 너무 쉽게 찔리는 그 감각이 너무나 무서웠다. 

"이렇게 쉽게 칼이 들어갈 줄은 몰랐어. 정말이야! 난 한번도 이렇게 쉬울 거라고 생각못했어.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리다못해 모든게 엉망이 될 거라고 정말 몰랐어. 진짜로 죽이려던게 아니야!"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손이 떨리고 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쿵, 쿵, 쿵 심장이 울린다. 무서워. 만약 구조대가 늦게 도착하면 어떡해하지. 저기 피를 흘리고 있는 금랑님이 만약 죽어버리면 어떡해하지? 살인자가 되는거야? 쿵. 

"이봐! 야생 포켓몬이 오고 있어, 당장, 도망쳐."

금랑이, 아니 금랑님이 피가 새어나오는 옆구리를 움켜잡고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그럼 방금 그 소리가 포켓몬의 소리라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시선이 닿았다. 있다. 저기에 있다. 어쩌지, 구조대는 언제오는거지? 구조대가 오기는 할까? 슬쩍 허리춤에 찬 몬스터볼 손을 가져다댔다. 쿵. 쿵. 쿵.

"한 마리가 아니야. 배틀로는 안돼."

금랑님의 안색이 더 안좋아졌다. 금랑님은 힘겹게 몬스터 볼 두 개를 꺼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건 두랄루돈과 플라이곤이었다. 둘은 나오자마자 금랑님의 곁에서 울었고 금랑님은 그런 두 포켓몬을 떨리는 팔을 들어올려 쓰다듬어주었다. 

"잘 들어, 플라이곤. 평소처럼 하는거야. 나님이 없어도 긴장할 게 전혀 없어. 너는 그 누구보다 우수한 포켓몬이니까."

플라이곤은 고개를 저으며 금랑의 품에 안기려했지만 금랑이 신음을 흘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했다. 그 옆에서 그는 계속 괜찮아, 할 수 있다며 플라이곤을 위로했다.

"두랄루돈."

비교적 침착하게 옆을 지키고 있던 두랄루돈은 고개를 끄덕이고 쿵, 쿵 근처로 다가왔다. 동굴이라 그런지 그 발걸음이 더 크게 울려댔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분명 자신의 주인을 해치려고한 나를 공격하려는걸거야. 두려운 나머지 아까 떨어뜨린 칼을 겨우 손에 쥐고 마구 휘둘러댔다.  

"오지마!"

"괜찮아. 나님의 에이스는 사람을 해치지 않아."

그말대로 두랄루돈은 근처로 다가와 크게 입을 벌리고 손에 쥐고 있던 칼을 그대로 물어 깨트려버렸다. 금랑님의 피가 묻어있던 칼은 조각마냥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걸로, 증거는 없어졌네. 플라이곤도 안정되었으니, 헉, 어서 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자신을 찌른 증거를 일부러 없앴다고? 그렇게까지해서 나를 보내준다고? 나를? 내가 당신을 찔렀는데 그래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상황에서 나를 보내준다고? 자신을 희생해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야? 

"약속했잖아. 반드시, 안전하게 데려다준다고. 용은, 거짓말 안 해."

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두랄루돈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동굴 안쪽에서 화답하듯 괴성이 퍼졌다. 더 가까이 왔어.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플라이곤은 평소 배틀영상에서 나왔던 표정을 짓고 얼른 타라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플라이곤의 발톱에 잡혀서 가는 것보단 등에 타는게 덜 무서울거라며 금랑님은 다시한번 실 없이 웃었다. 점차 말하는 것조차 지쳐보였다.

"사람을, 사람을 불러올게요!"

금랑님의 에이스 포켓몬은 마치 제 주인을 지키려는 것처럼 어두운 동굴 안쪽에서 노랗게 빛나는 무수히 많은 눈들을 노려보았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

"금랑이 있는 곳을 알겠어!"

단델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화면을 쳐다보더니 두송이 있는 문 방향이 아닌 창문쪽으로 갔다. 먼저 리자몽을 꺼내고 단델은 손쉽게 창틀을 뛰어넘어 리자몽 위에 올라탔다. 그 누구도 말릴 틈 없이 리자몽은 단델을 태우고 와일드 에리어 방향으로 날았다. 

새까만 화면에 그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단델은 집중했다. 아주 작은 힌트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당장 네게 날아갈텐데. 그 때 날카로운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울려퍼지던 그 발 소리를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금랑이랑 같이 캠핑에 갔을 때 금랑이 알려준 동굴이었다. 금랑이 첫번째 챌린저 시절 와일드 에리어에서 길을 잃고 험난한 날씨를 피해 그 동굴에 피신해 있었을 때 거기서 두랄루돈을 만났다고 즐겁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와일드 에리어에 있을 땐 혹시 자신 같은 요구조자가 있을 지 모른다고 캠핑 때도 잊지않고 확인을 한다고 그래야 안심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단델은 그 때 리자몽을 타고 함께 그 곳에 갔었다. 거기서 두랄루돈의 친구들을 소개받기도 했다. 그러니 괜찮다. 그들은 금랑과 자신에게 꽤나 호의적이었으니까.

손을 떨고있는 단델을 흘깃 쳐다본 리자몽은 크게 한 번 울부짖고 더 크게 날개를 움직였다. 

"금랑!" 

와일드 에리어의 날씨는 언제나 변덕스럽다. 아까 전 영상에서 봤던 풍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개었다. 단델은 리자몽의 등에서 내려와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와일드 에리어에 올 때 마다 초보 트레이너들이 다치지 않도록 항상 자리를 지키는 관계자와 비상시를 대비해 항시 대기하고있는 의료반이다. 단델 또한 챌린저 시절이나 캠핑 때 자주 얼굴을 보아서 기억하고 있다.

"단델님?"

그는 단델을 여기서 볼 줄 몰랐는지 실로 놀란 기색이었다. 단델은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바닥에는 흐릿하게 핏 자국이 있었고 깨진 유리조각 같은게 흩어져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금랑은 없었다. 단델은 다짜고짜 응급반에게 다가가 물었다. 

"금랑! 금랑은 어딨어요?"

"금랑님이라면 간단한 응급조치 후 가장 가까운 너클대학 부속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진 단델을 보아하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온 게 분명했기에 트레이너는 단델을 격려하며 금랑님이라면 괜찮다고 대답해주었다. 이어 데려다드릴까요,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단델은 다시 리자몽을 불렀다.

너클병원 앞에는 기자들이 모여있었다. 단델은 입구쪽으로 가지 못하고 일부러 뒤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마치 단델이 이미 올 줄 알았다는 듯 올리브가 기다리고 있었다. 

"금랑은 괜찮아요?"

"간단히 봉합하고 현재는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습니다."

올리브의 대답이 끝나자 1인실에 도착했다. 단델이 문을 열기도 전 로즈위원장이 먼저 문 밖으로 나왔다. 그는 몹시 재밌다는듯 웃고있는 얼굴이었다. 올리브는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 로즈를 불렀다. 

"금랑군은 안정이 필요하니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챔피언." 

로즈는 단델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고 웃는 얼굴로 나갔다. 단델은 로즈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금랑에게 달려갔다. 금랑은 단델이 올 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전화 못 받아서 미안. 무음이었거든."

"일부러 안받은거야?"

금랑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설마. 단델은 생각하기 싫은 가정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 녀석이 안티라는 거 알고있었어?"

"응. 촬영하고 있다는것도."

"언제부터?"

"처음부터."

단델은 로즈가 금랑을 몰아붙이지 말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를 뿌득 갈았다. 금랑은 알고 있었다. 요구조자가 사실은 자신의 안티였고,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걸 알면서도 일부러 단델의 연락을 무시했다. 단델은 금랑을 잘 알았다.

"일부러 다쳤구나."

"일부러 급소를 피했고, 지혈도 제대로 했어." 

금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투로 덤덤하게 말했다. 그보다는 이걸 좀 보라며 금랑은 스마트폰을 단델에게 내밀었다.

실시간으로 달리던 라이브 방송은 그가 동굴을 빠져나간 시점에서 이미 끊어졌다. 그러나 거기있던 시청자의 수는 한 둘이 아니었고 그들이 찍어둔 캡쳐나 녹화영상이 발빠르게 퍼진채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과연, 병원 앞에 몰려있던 기자들도, 단델보다 발빠르게 나선 로즈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신 기사에는 요구조자로 위장하고 금랑을 해친 트레이너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 영상 자체가 증거물이니까 칼은 필요 없었고, 나님은 그 동굴이 두랄루돈들이 살고있는 곳인걸 이미 알고있어서 위험하지 않았어. 영상으로만 봤을땐 나님은 안티마저 보듬어주고 먼저 요구조자를 챙겨준 책임감 있는 트레이너로 비춰졌겠지."

"네가 다쳤잖아."

"전부 예상범위라니까. 그보다 기사 덧글을 봐."

단델은 순순히 시키는대로 여러 기사 중 하나를 클릭했다. 단델이 새로고침할 때마다 덧글의 숫자는 빠르게 변했다. 거기엔 금랑의 상태가 어떤지, 많이 다치진 않았는지, 금랑의 용서와 상관없이 범인의 엄벌을 원하는 목소리가 한가득했다. 평소 안티들이 금랑을 조롱하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나님이 생각한것보다 방송 스케일이 컸나봐. 예상보다 훨씬 호의적이라고."

하지만 단델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단델은 잘 알고있다. 몇 년 째 챔피언을 하고 있다보면 가십거리가 되는건 일쑤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반응을 하고 언제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는지 아주 잘 알고있다. 지금, 아주 잠깐은 금랑에게 호의적이겠지만 언제 또 사람들이 돌변할지 모른다. 관심이란 그런거다. 일순 반짝인 작은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 호기심에 누군가는 천천히 갉아먹혀 죽어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들 모른체하곤 했다.

"표정 풀어. 나님이 노린건 그런 지나가는 관심이 아니니까. 한 달 뒤에 너클시티에 놀러와. 그럼 알 수 있을거야."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금랑이 정말로 괜찮은지 한참을 걱정하던 단델은 다른 관장들이 금랑을 병문안 오고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약속대로 정확히 한 달 뒤 단델은 너클시티에 방문했다. 너클시티에 도착하면 리자몽의 도움을 받지 말고 너클짐까지 찾아오라고 말했던 금랑의 말에 단델은 도착하자마자 리자몽을 몬스터볼에 넣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단델이 몇 걸음 내걷지 않았을때 누군가 단델을 불렀다. 슛시티와 달리 너클시티는 단델을 흘깃 쳐다보는 사람들은 많아도 일부러 말을 거는 일은 잘 없는 곳이었다.

"단델님! 금랑님을 만나러 가시나요?" 

단델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대는 웃으면서 반대편을 가리켰다. 단델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단델을 알아본 사람들이 먼저 아는척을하며 금랑의 안부를 물으며 대신 전해달라며 다양한 먹거리들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전에 단델이 왔을때보다 모두의 표정이 온화했다. 

"이제서야 제대로 인정받은셈이지. 원래 여기가 좀 그래. 확실히 너클사람이라고 인정해줄때까진 좀 박하게 군달까. 특히 타지에서 온 사람한테 경계심이 엄청 심하거든. 동경만으로 살려고 왔다가 1년도 못 버티고 떠나는 곳이니까."

시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너클짐까지 도착한 단델은 과일바구니나 쇼핑백이 쌓인 테이블에 아까 받은 선물들을 내려놓았다. 

"이 몸이 너클시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 모두 깨달은거지! 인품까지 포함해서!"

금랑은 웃으며 단델에게 자신이 받은 팬레터들을 자랑했다. 게다가 평소 금랑이 순찰을 위해서 너클시티를 돌 때 지금껏 모르는 사람인척 무시하던 사람들이 금랑이 보이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주었고, 혹시라도 어디 다친것처럼 보이면 어떤 녀석이 그랬냐고 되려 더 분개하더라고 말해주었다. 평소에 소란스러운걸 달가워하지 않는 너클주민들도 금랑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정도로 솔직해져 있었다.

* * *

"내가 그 해 리그에서 금랑을 이긴 뒤 너클시티에 찾아갔었는데…"

"잠깐만요!"

승재는 스탠드에서 꺼낸 두 번째 조각케이크까지 깨끗하게 해치우고 끊이지 않던 단델의 말을 잘라낼 수 있었다. 마지막 한 모금의 홍차까지 마셨으니 더이상 거리낄게 없었다. 너무 오래 앉아있었더니 좀이 쑤실 거 같아 재빠르게 말을 가로챘다.

"저 이제 알겠어요! 그 사건 이후 너클시티에서 금랑님 안티행각을 벌였다간 꼬렛도 구구도 모르게 호된 꼴을 당해서 금랑님을 지키는 요새라 불리는거죠?"

"틀려. 내가 리그에서 금랑에게 이긴 후 너클주민들에 의해 너클짐으론 찾아가지도 못했다. 금랑의 후드자락조차 보질 못했지. 그 사실이 가라르 전 지역에 퍼져서 이후 너클시티는 금랑을 지키는 요새라고 불렸었지. '그' 챔피언에게조차 가차없다고 말이야."

단델은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으스댔다. 승재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슬쩍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테이블을 짚었다.

"그럼 아까 저한테 이야기해준 저 기나긴 서사는요?"

"내가 금랑에게 반한 순간이랑 그냥 금랑이 이렇게 똑똑하고 지혜롭다는걸 자랑하고 싶었다!"

"그럼 저를 부른 이유는?"

"혼자 갔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너클주민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겠어? 운이 좋으면 법원으로 데려갈테고 운이 나쁘면 정말 꼬렛도 구구도 모르게 어딘가에 묻어지겠지. 유독 너클주민들은 내게만 박하단 말이지. 결혼식 때 금랑을 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살해협박까지 받았었고. 게다가 금랑은 아이랑 챔피언에게 약하거든. 너랑 같이 가면 분명 용서받을 수 있어. 아, 그러고보니 금랑이 왜 아이랑 챔피언에게 약한지 얘기해주지 않았군! 이런 이야기가 길어지겠어!"

단델이 웃으면서 홍차를 더 가져오겠다며 자리에 일어선 순간 승재의 비명과 함께 배틀타워 상층부가 일순 흔들림을 느꼈다고 직원들은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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