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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절망 앞에서 그들은 행동하나니 6

After CCA · 섬광의 하사웨이

某日 by 銘


환경오염이 가져온 기후 변화에도 다바오는 여전히 일 년 내내 안정된 날씨를 자랑했다. 지구 온난화로 과거보다 평균 기온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태양이 내리쬐는 낮이 이전보다 조금 더 더워졌을 뿐, 아름다운 남국은 변함없이 어스노이드의 휴양지이자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남자에게는 다바오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거리 곳곳에 묻어 있는 고유의 문화 양식을 감상할 여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메가라니카를 떠나 다바오에 도착한 지 오늘로써 사흘째. 그들은 이 사흘 동안 다바오 시내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정보를 모으는 데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리디 마세나스가 발 빠르게 마련한 다바오 교외의 저택은 메가라니카의 주요 인원들이 그대로 옮겨와 임시 기지를 꾸린 상태였다. 하여간에 연방 의원님이란,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원하는 건 뭐든지 얻을 수 있는 특권층을 고발하는 르포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다니까. 성질대로 까칠하게 빈정거리기는 했지만 자원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임을 잘 알았기 때문에 카이도 그 이상의 말을 얹지는 않았다.

연방 고관들의 별장이란 외부의 방해 없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외진 곳에 넓은 부지를 두고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 덕에 비밀스러운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시내와 저택을 수시로 오가는 새로운 무리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의심을 받기가 쉬웠다. 게다가 다바오는 헌터들의 활동도 활발한 편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새 주인의 이사를 준비하는 인테리어 업자와 관리인, 경비원 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도 그들은 최대한 행동을 조심했다. 신분상 활동의 제약이 없는 카이가 가장 활발하게 시내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고, 남은 사람들은 진네만의 지휘 아래에 메가라니카와 가란시엘에서 가져온 감시 장비를 운용하거나 조를 짜서 시민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그렇게 사흘 동안 활동한 결과, 저택의 인원들은 그야말로 다바오의 일 처리에 혀를 내두르는 중이었다. 같은 관구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식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이곳 다바오의 기지에서는 딱히 경계를 강화하거나 부대를 집결, 이동시키는 등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사 경찰 기구와 연방군 공군 기지까지 있는 곳인데도 이렇게나 방비가 느슨하다니,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마프티가 재등장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관구 전체에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상시 대기로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샤아 뿐만은 아니었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실전을 몸소 경험했던 모든 인물들이 동일한 어조로 지휘관의 안이함을 규탄하고 있었다. 카이는 취재 수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였다.

"브라이트 이후에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실전 경험 없이 후방에서 정보나 만지던 인력이었다던데 오죽하겠어? 마프티도 죽였고, 몇 개월 간 잠잠했고, 실전을 지휘할 사람이 아니라 혹시 모를 반연방 사상을 가진 장병들을 효과적으로 색출하고 정신교육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뭐 그런 거였겠지."

"도청 내용대로라면 다바오는 마프티가 오세아니아를 떠났다고 판단하는 것 같더군. 오늘 자정을 기점으로 긴급 수색을 종료하고 감시 범위도 평시 수준으로 전환하라는 통신이 나갔네."

"뭐? 아직 2주도 안 됐는데 벌써?"

"이쪽 해역과 공역뿐만 아니라 오세아니아 인근에서도 수상하다고 판단할 움직임이 없었던 모양이야. 하사웨이 노아가 살아있을 당시의 마프티는 이것보다 더 빈번한 활동을 보였으니 후속 공격을 하려면 벌써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잠잠한 것을 보면 공격 목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추측한다, 이쪽의 관할을 벗어났다, 그런 이야기였다."

"나 원 참. 자기들이 책임지지 않을 일에만 발 빠르구만. 이거 아무로가 정말로 덮치기라도 하면 볼 만하겠어."

아무로의 이름에 샤아가 천천히 상황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레이더 탐지 결과와 위성 화면, 미노프스키 입자의 분포도 등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마련된 모니터였다. 정보 값만 보아서는 이 속에 정말로 아무로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케네스 슬렉이 정말로 아무로를 돕고 있는 것인지, 아무로가 노리는 곳이 다바오가 맞는지, 당장 술라웨시해에서 움직이는 저 선박 표시가 정말로 조업을 하는 어선인지 마프티의 위장 선박인지 이 화면만으로 어느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확률의 영역이었다. 가장 가능성 높은 해석 값에 현재를 거는 일종의 도박. 하지만 샤아는 눈앞에 보여지는 이 무수한 데이터 안에 명백하게 그가 존재한다고 느꼈다. 아무로 레이는 이 근처에 있다. 예측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위성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뭐, 위성이 없는 덕에 우리도 수송선인 척 들키지 않고 지구로 내려온 거긴 하지만 이런 때는 역시 좀 아쉽단 말이야."

확증이 될 만한 게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안심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취재 수첩을 안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카이가 말하자 샤아가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바오가 아무로의 다음 목표일 것이라 예측한 건 자네였네만. 우리는 자네의 논리에 따랐어."

"그래, 그래서 나도 조마조마하다고. 혹시나 그게 아니라면 쪽팔리잖아? 아무로를 따라잡기도 더 벅찰 테고. 이래 봬도 나는 겁이 많은 인간이라 신중론자란 말이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다바오에 내려온 이후로 나도 아무로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으니까."

"네가 그런 말을 다 하다니 의외인데. 뭐 뉴타입끼리의 그런 찌릿한 거라도 있었냐?"

"글쎄. 어떨까."

샤아는 입꼬리만 올려 형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카이나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확신은 뉴타입으로서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끈끈한, 그와 아무로 사이의 어떤 감정적 연결고리가 주는 끌어당김에 가까웠다. 10년 전쯤이라면 이런 감각 따위 절대로 믿지 않았을 테지만……. 샤아의 푸른 눈이 진지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로 레이가 바다에 숨어 다바오를 노린다는 것을 확신한 이상, 이제 샤아 아즈나블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것이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오전 1시였다. 응접실에 설치한 임시 상황실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각 방과 상황실을 연결해 둔 전화가 다급하게 울렸다. 다바오 만에서 전투 농도의 미노프스키 입자가 관측되었다는 통지가 오자마자 샤아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입은 파일럿 슈트에서 감회를 느낄 새도 없이 그는 부지 한쪽의 격납고로 달려갔다. 저택 주인의 옛 직업을 핑계로 마련해 둔 격납고에는 경비행기가 아니라 모빌슈트와 베이스 자바가 들어 있었다. 타쿠야를 필두로 한 정비반 사람들이 급히 자리를 비켜주며 발진을 준비했다. 우주가 아닌 지구의 대기에서 기체를 운용하는 것은 가란시엘의 정비반에게도 처음이었지만 지금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퍼레이터가 카운트다운하는 것을 들으며 샤아는 다소 긴장된 손길로 조종간을 쥐었다. 12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시뮬레이션 기기로 감각을 다시 끌어올렸으니 전투 자체는 무리 없게 소화할 자신이 있었지만, 아무로와 다시금 전장에서 맞붙는다는 사실에는 그로서도 어쩔 수 없이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로. 샤아는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영원한 숙적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소리내어 불러 보았다.

"2, 1, 0!"

그 사이 카운트다운이 전부 떨어졌다. 발진! 샤아가 조종간을 잡아당기자 각력을 잔뜩 받은 모빌슈트가 하늘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다바오 공항의 남태평양 관구 공군 기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일년전쟁 이후 마련된 군의 모빌슈트전 교본에 의하면 미노프스키 입자의 살포 이후 모빌슈트가 해당 공역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사이에는 십수 분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미노프스키 입자를 먼저 살포해서 레이더와 통신을 틀어막은 후에야 모빌슈트가 움직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미노프스키 입자가 살포되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굉음과 함께 하얀 기체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가공할 만한 속도에 관제탑은 물론이고 파일럿들마저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애들레이드 사태를 직접 경험했었던 일부 인물들은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아찔함을 느낄 정도였다. 모빌슈트의 출격을 지시하는 외침이 들렸으나 수색이 종료되며 마음이 느슨해진 장병들이 케네스가 지휘하던 때처럼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태도는 하얀 기체가 다바오 공항을 제집처럼 편안하게 휘젓고 다닐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음속을 넘는 속도로 쇄도해 온 기체는 일반적인 모빌슈트는 대기 상에서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움직임으로 급감속하며 몇몇 건물에 순식간에 미사일을 퍼부었다. 무기고와 정비 에어리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자 탑재되어 있던 무기들이 유폭하며 주변 지역까지 연쇄적으로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음속의 충격파와 무기의 폭발로 기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하얀 기체는 모빌슈트가 보관되어 있는 격납고를 노렸다. 격납고 두세 곳에 2차 폭격이 떨어졌을 때였다. 폭심지와 다소의 거리가 있던 격납고에서 모빌슈트 몇 기가 발진했다. 그 가운데에 페넬로페는 없었다. 반지구연방 조직의 활동이 잠잠해지자 굳이 지구권에 신형기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윗선의 판단 하에 브라이트 노아의 임기 만료와 함께 우주로 재배치되었기 때문이었다.

호각이 될 만한 기체가 없다는 것은 이쪽의 건담에게도 상당히 다행인 일이었다. 애들레이드에서의 경험을 살려 케네스가 짠 이 기습 작전은 미노프스키 플라이트를 탑재한 건담의 특성상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렵지 않은 일을 더 쉽게 끝낼 수 있다는 건 작전을 직접 수행하는 파일럿에게도 부담을 덜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페넬로페가 없는 것을 확인한 아무로의 기체는 시간과 무장이 허락하는 대로 격납고를 조금 더 공격한 후 기지를 벗어나며 자신을 뒤쫓는 연방의 모빌슈트와 교전을 시작했다.

제2차 네오지온 항쟁 이후 이렇다 할 실전이 없었던 연방군 파일럿들의 실력은 아무로에게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다. 사십이 넘은 지금은 동체 시력이며 반사 신경이며 아무로도 모든 것이 예전 같진 않았지만 경험과 실력이 부족한 젊은 파일럿들을 상대하는 건 생각보다 손쉬웠다. 아직 도심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러 격추 가능성이 있는 행동은 피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팔이나 다리를 한둘씩 잃고 후퇴한 것은 연방군 쪽이었다.

뒤쫓아 오던 연방 모빌슈트를 전부 떨쳐낸 아무로가 약속된 합류 지점을 향해 비행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오른쪽 카메라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추격하는 기체가 있다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무로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확대한 영상 속에 이쪽으로 접근하는 구스타프 칼 1기가 보였다. 아무로가 미간을 찌푸렸다. 실력을 자만하며 전공에 눈이 먼 파일럿인가, 아니면 이런 신형기와도 전투를 할 만한 진짜 에이스인가. 아무로는 기체를 돌려 상대에게 한 번 위협 사격을 가했다. 상대 기체가 빔을 피하며 마주 사격하는 것을 보고 아무로는 본격적인 교전을 준비했다. 육지를 벗어나 해상에 접어든 시점이었으니 그에게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제게 달려드는 기체와 몇 차례 사격을 주고받은 시점에서 아무로는 이 모빌슈트의 파일럿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범용성을 추구한 양산기로서는 애너하임의 기술력을 쏟아부은 신형 건담과 교전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이 구스타프 칼은 능숙하게 기동하며 날카롭고 위험한 공격을 몇 번이나 가해 왔다. 누가 봐도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훈련이 잘 된 파일럿인 게 분명했다. 연방군에 아직 이런 인물이 남아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잠시였다. 건담의 기동성 덕에 빔 라이플로 상대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빔 사벨을 뽑아 들고 쇄도하는 기체를 보며 아무로는 이 움직임이 아주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교전한 파일럿 중 이런 기동을 하는 이는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무로가 재빨리 자신의 빔 사벨을 꺼내어 방어하자 접촉된 기체 면을 통해 음파가 흘러 들어왔다.

"아무로!"

역시나 샤아의 목소리였다. 그만두게, 아무로! 이런 행동은 자네가 할 것이 아니야! 샤아가 다짜고짜 말을 토해냈다. 그 말을 듣자 아무로의 가슴 속에 억울함과 답답함이 섞인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아무로는 대답 대신 모빌슈트의 다리를 들어 샤아의 기체를 거세게 밀쳐냈다. 아무로! 샤아가 다급히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노이즈에 섞여 멀어졌다. 이번에는 아무로가 빔 사벨을 휘둘렀다. 샤아가 마찬가지로 공격을 막아내자 아무로가 버럭 소리쳤다.

"비켜라, 샤아! 왜 막아서는 것이지?! 너는 내 행동을 이해하고 있을 텐데!"

"그래, 이해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자네를 막는 거다!"

"뭐라고?!"

"이게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한 것은 자네였다. 인류에게 아직 절망하지 않았던 것도,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따뜻한 빛을 보라고 했던 것도 자네였어. 나에게 희망을 말했던 게 다름 아닌 자네 아닌가! 그런데 왜 자네는 이런 선택을 하는 건가!"

"그래, 절망하지 않았지. 나는 너와 달리 인류의 따뜻함을 믿었고 미래를 믿었다. 우리가 그랬듯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랬는데 지금 눈앞에 닥친 것은 뭐냐! 하사웨이가 죽었다, 샤아.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아이가 죽었단 말이다! 이것이 인간의 따뜻함을 믿은 대가이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의 죽음은 자네의 잘못이 아닐세! 자네가 이럴 필요는 없어, 아무로!"

"나는 더 이상 후대가 죽어 나가는 걸 볼 수 없어! 이건 내 선에서 끊어야 한다."

"아무로!"

아무로가 다시 한번 샤아를 밀쳐냈다. 그 뒤로 번쩍거리는 빛을 내며 빔 사벨이 몇 번 더 맞부딪혔고 라이플에서 뿜어져 나온 빔 공격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렀으나 더 이상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명백한 적대감, 상대를 격추해야만 한다는 의무감, 마치 12년 전의 마지막 전투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미사일과 탄환이 터져나가는 소리만이 바다를 울렸다.

아무로와 마찬가지로 샤아 역시 12년의 공백이 없는 일인 것처럼 분투했으나 기체의 확연한 성능 차를 이겨내기엔 다소 부족했다. 오른팔이 완전히 날아가고 무릎 하나를 잃은 구스타프 칼의 앞에 하얀 건담이 사신 같은 자태로 서 있었다. 비행용 날개 반절을 잃고 오른쪽 다리에는 빔이 스치고 지나간 자국이 크게 남았지만 너덜너덜한 구스타프 칼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모습이었다. 샤아는 정면의 카메라를 노려보며 소강 상태를 틈타 기체의 상황을 점검했다. 성능 차를 극복하기 위해 더 치열한 전투를 벌인 만큼 무장도 에너지도 연료도 거의 바닥난 상태인 것을 보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도 나는 아무로를 이기지 못하는군. 샤아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무로의 건담이 들고 있던 빔 사벨을 집어넣더니 외부 스피커로 음성을 내보냈다.

"오늘은 격추하지 않겠다. 대신 집으로 돌아가, 샤아. 나는 네가 내 싸움에 발을 들이는 걸 원치 않는다."

아무로가 진심으로 화났을 때에나 내뱉던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막겠다고 한다면……. 아무리 너라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경고했다. 돌아가, 샤아. 얼음장 같은 말을 남기고 건담은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궤적을 보며 남겨진 샤아는 이 싸움이 절대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착잡한 한숨이 콕피트 안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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