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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절망 앞에서 그들은 행동하나니 4

After CCA · 섬광의 하사웨이

某日 by 銘


…하.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터졌다. 하! 하하하하! 집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던 케네스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아무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구연방 수뇌부를 무너뜨리겠다고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압니까, 대위? 신랄한 목소리가 아무로를 비웃었다. 상대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중년의 영웅은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하는 말입니다. 고요하고 침착한 목소리에 케네스가 비뚜름하게 웃으며 팔걸이에 올린 손으로 턱을 괴었다.

“제가 대위의 그 계획을 도울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고 이런 말을 꺼내시는 겁니까? 애들레이드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긴 했으나 저도 상층부에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언제든지 대위가 이런 계획을 꾸미고 있다고 일러바칠 수가 있단 뜻입니다. 게다가 저는 아시다시피 마프티의 체포를 지휘한 사람이었고요. 테러리스트를 잡은 사람에게 와서 테러를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명성과 다르게 전황을 보는 눈이 밝진 않으시군요, 대위.”

객관적으로도 케네스의 말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방군 고관이었던 이에게 이렇게 찾아와 연방을 뒤엎는 걸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로 레이는 이곳으로 찾아왔다. 암표를 사용했기에 제대로 남아 있지도 않을 퇴역 후의 기록을 어떻게든 탐색하고 더듬어서. 대체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는 거지? 케네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아무로를 살폈다. 그가 자신을 적대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아무로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물으신다면……. 확실히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네요. 하지만 저도 군에는 꽤 오래 몸을 담았습니다. 책임을 지고 퇴역하겠다고 먼저 사표를 내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런 공을 세운 직후라면 더더욱이 말입니다. 저는 그걸 믿었습니다. 그리고 세간의 표현대로라면…… 일종의 뉴타입적 감도 있었고요.”

“대위는 설득을 잘 못하시는군요.”

케네스의 비꼼에 아무로가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곧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남자인데도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꼭 쑥쓰러움 많은 10대 소년 같았다. 역시 그렇지요? 이런 건 보통 다른 사람들이나 브라이트의 몫이었기 때문에……. 저도 압니다. 아무로가 겸연쩍게 고백했다. 언변도 좋지 않고, 정치를 잘 하는 부류는 아니죠. 그래서 제가 꿈꿨던 것도 결국엔 물거품이 된 것이겠고요. 아쉬움이 짙게 담긴 목소리가 혼잣말처럼 흘러나왔다.

케네스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무로 레이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적군에게 ‘악마’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전장을 무자비하게 휘젓고 다니던 파일럿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름의 강인함도 현명함도 있었지만 그 내면은 너무도 여렸고 너무도 순수했다. 분명히 절망했으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남자였다. 아니, 그 가느다란 희망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기로 결정한 게 틀림없겠지. 그와 닮았어. 케네스는 생각했다.

“대위께선 무엇을 꿈꾸셨습니까?”

'그'를 떠올린 케네스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묻자 아무로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돌아왔다. 들어오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호박색으로 빛나는 눈이 희미한 자조의 빛을 띠었다. 연방을 개혁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안에 남아… 위로 올라가려고 했었죠. 아시다시피 책임질 사람이 생기면서 끝까지 추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만. 허벅지 위에서 두 손을 맞잡은 아무로가 흔들리는 시선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하사웨이의 소식을 듣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내가 샤아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살아있음을 알리고 론도 벨로 되돌아갔다면 결말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마프티가 생겨나더라도 최소한 시점이 더 이후이거나 하사웨이가 관여할 기회가 없지 않았을까. 그 아이는 이런 일에서 멀어져 그냥 하고싶은 걸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졌어요. 그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케네스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괴로움과 후회의 빛이 역력히 묻어나는 눈이었다. 준장님. 아무로가 반쯤 목 막힌 소리로 케네스를 불렀다.

"저는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케네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그저 아무로를 마주 보기만 할 뿐이었다. 자학과 후회만 가득하던 아무로의 눈에 점점 초조함과 긴장의 빛이 떠오를 무렵, 케네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기기, 들어와도 돼. 언제부터 서 있었던 것인지 쟁반을 든 금발의 여성이 복도에서 응접실 안쪽으로 사뿐히 걸어 들어왔다. 아무로가 막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손님맞이용의 단정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그새 화장도 살짝 한 모양인지 입술이 붉었다. 쟁반을 내려놓고 각자의 앞에 차를 따른 기기가 자리에 앉자 케네스가 그녀를 소개했다.

"기기 안달루시아입니다. 하사웨이와도 인연이 있던 사람이죠."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아무로가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기기도 살짝 웃으며 인사에 답했다. 안녕하세요, 대위님. 천진하면서도 요염한 목소리였다. 케네스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기는 행운의 여신입니다. 기기 덕분에 마프티의 공격을 받고도 저희 파일럿이 살아 돌아왔고, 공항을 공격했던 마프티의 조직원들도 성공적으로 잡을 수 있었거든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랄까요."

아무로는 케네스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의아함과 어색함을 담은 시선이 기기와 케네스에게 번갈아 향했다. 역시 정국을 보는 눈이 밝진 못하시군. 아니면 그저 이런 식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고. 케네스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하지만 본인도 알고 있겠지만 아무로 레이가 할 일은 이런 게 아니니까. 슬쩍 돌아보니 기기가 다 안다는 얼굴로 샐쭉 웃으며 케네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 오랜만에 진심으로 미소를 지은 케네스가 아무로에게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당신을 돕겠다는 의미입니다, 대위.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요."

하사웨이 노아. 널 위해서.


"과연. 라플라스 사변 이후 그 기체가 인위적으로 숨겨졌을 것이라 예상은 했다만 그런 일이 있었군."

눈앞에 잠들어 있는 하얀 기체를 올려다보며 샤아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예, 그래서 아쉽게도. 뒤쪽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타시게 될 기체는 이쪽에서 최선을 다해 정비해 두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직도 군 제식은 거의가 애너하임이고, 애너하임제 기체라면 익숙하니까요.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동년배의 청년이 덧붙였다. 고맙네. 감사 인사를 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샤아가 이번에는 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흘끔 돌아보았다.

"그보다 자네는 미네바 님과 인연이 있으면서도 미리 이야기하질 않다니."

"지금 너와 손 잡은 것도 불쾌한데 네오지온 잔당 놈들과 또 행동을 같이 해야겠냐?"

카이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즉각 쏘아붙이자 이제는 훌쩍 자란 미네바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당사자 앞에서 내뱉기엔 다소 예의없는 발언이었지만 그녀는 카이의 말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미네바의 태도에 카이는 뒤쪽을 곁눈질하며 재차 투덜거렸다.

"지온의 공주님이 전쟁 방지를 위해 애써온 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아무로만 아니었으면 이쪽과는 다시 만날 일도 없었어."

"이해합니다. 저희도 설마하니 카이 시덴과 샤아 아즈나블이 같이 움직이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게다가 그 목적이 연방을 뒤엎으려는 아무로 레이를 막기 위해서라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이야기였습니다."

그걸 몰랐을 때에는 두 분을 부탁하는 나나이 소장의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습니다만……. 아무로의 이야기를 들은 샤아의 얼굴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집을 떠난지도 벌써 상당한 시일이 흘렀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아무로 레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에 있어서는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 카이 시덴마저도 아무로의 움직임이라고 판단할 만한 정보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라니,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샤아의 초조함도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중이었다.

물론 카이도 샤아도 이런 치밀함이 아무로 혼자만의 능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로 레이는 정해진 작전을 수행하고 도그파이트를 벌이는 일선 파일럿이지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원이나 전략을 짜는 지휘관은 아니었으니까. 아무로에게 조력자가 있다. 카이와 샤아는 별다른 토론 없이도 그 점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러나 아무로를 돕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브라이트나 미라이가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카이가 은근슬쩍 떠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아무로가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모양이었다. 샤아는 거기에서 큰 벽에 하나 부딪히고 말았다. 연방 영웅으로서의 아무로 레이는 크나큰 명성이 있었지만 인간 아무로 레이는 상당히 인간관계가 협소했다. 게다가 내향적인 성격까지 고려한다면 그가 과거의 샤아 아즈나블처럼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선동했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아무로는 가까운 지인들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이의 도움을 받고 있다. 추측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12년을 함께 지냈어도 나는 여전히 아무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군. 샤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저희는 다음 수송선을 맞을 준비를 하러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미네바는 샤아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한 번 얹곤 버나지와 함께 격납고를 빠져나갔다. 아무로라는 무거운 주제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물러나 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샤아는 그녀의 다정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이는 평소와 같은 가벼운 목소리로 앞으로 '수송선'에 실려오게 될 물건을 언급했다.

"그보다 마세나스 가의 도련님도 생각보다 수완이 좋은걸. 연방에 정식으로 협력하는 것도 아닌 제3의 세력에게 군용 기체를 하나 떡하니 수배해서 보내준다니 말이야. 아버지의 눈을 피했든 허락을 받았든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제법 놀랐어. 요청을 받자마자 흔쾌히 응한 것도 그렇고."

"아무로의 최종 목표가 다카르 연방의회일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라도 협력하고 싶어지지 않겠나. 연방은 항상 아무로를 두려워해 왔으니."

"뭐, 마세나스 도련님이라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는 법이지. 샤아는 큰 흥미는 없는 목소리로 말을 받으며 순백의 기체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기본적인 연방군 제식을 따른 모빌슈트 형태라는 것 외에는 어디에도 닮은 점이 없는데도 눈앞의 건담을 볼 때마다 아무로의 마지막 기체가 떠올랐다. 사자비를 이기고 액시즈를 밀어내겠다고 선언했으며 대기권의 마찰까지 견뎌냈지만 끝에는 누구도 손에 넣을 수 없도록 자폭해 영영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 하얀 기체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 파일럿과 겹쳐졌다. 거듭해서 올라오는 불안감에 샤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샤아의 옆 모습을 흘긋대던 카이가 갑자기 그를 불렀다. 이봐, 샤아. 다시 눈을 뜬 샤아가 느릿하게 카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너는 뭐냐?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면서. 네가 아무로를 막으려 하는 진짜 이유는 뭐냔 말이다."

또 그 이야기인가. 샤아의 떨떠름한 반응에 카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샤아가 광저우에서 합류한 이래 스위트워터와 메가라니카를 오가는 동안 카이는 계속해서 그의 진의를 캐내려 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아직도 샤아 아즈나블의 순수한 의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지만, 아주 조금 정도는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저널리스트의 탐구심도 섞여 있었다. 대체 무엇이 샤아 아즈나블을 이렇게 바꿔놓은 것인가. 그걸 알기 전까지 카이 시덴은 샤아 아즈나블을 조금도 믿을 생각이 없었다. 뭐, 알게 되더라도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지온의 아들내미를 믿는 건 또 다른 문제였지만. 카이가 생각보다 더 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짧게 한숨을 내쉰 샤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연방은 뉴타입을 위험 분자로 생각하며 끊임없이 핍박해 왔네. 효율적인 전쟁 도구로 여겼고 자신들이 완전하게 컨트롤하길 원했지. 그들은 모든 인간들이 뉴타입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아. 지금 보게, 그 어느 공식적인 곳에서 뉴타입이라는 개념을 가르치던가. 전쟁 세대를 통해 세간에 구전설화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이지. 그런 상황에서 아무로가 이렇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연방의 편견을 더 강화시킬 뿐이네. 뉴타입을 탄생시킨… 그리고 탄생시키기 쉬운 환경에 있는 스페이스노이드를 향한 핍박과 차별만 더 심화되겠지. 그리고 뉴타입 얘기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상대는 아무로 아닌가. 연방의 영웅, 기적을 일으킨 자……. 그런 아무로가 마프티의 뒤를 이어 연방에 반기를 들었네. 세상에 이만한 대의명분이 어디 있겠나. 제2의 일년전쟁이 벌어지는 건 일도 아니야. 자네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나?"

​"당연히 그건 아니지. 그걸 원치 않기 때문에 아무로를 막겠다고 나선 거니까. 하지만, 샤아."

카이의 날카로운 눈이 샤아에게 똑바로 꽂혔다.

"그건 네가 사람들을 설득할 때 써 먹는 적당히 번지르르한 이야기일 뿐이잖아. 네가 말한 건 전부 가짜다. 나는 그딴 걸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정말 자네는 포기를 모르는군."

"저널리스트의 귀감이라고 해 두지."

조금 질렸다는 목소리로 카이를 나무라던 샤아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다시금 순백의 기체에게로 향했다. 눈앞의 무언가가 아니라 그 너머의 아렴풋하고 그리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자네를 납득시키기 위해 그 외의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면……. 샤아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냥 동거인을 위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덧붙여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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