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DM

거대한 절망 앞에서 그들은 행동하나니 8

After CCA · 섬광의 하사웨이

某日 by 銘

다바오 사건 이후 연방군에는 비상이 걸렸다. 마프티가 돌아왔다는 소식도 더 이상 감출 길이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 건과 달리 다바오는 도심 한복판이었고 지구연방의 주요 거점인 홍콩이나 베이징과도 가까웠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졌다. 안팎에서 쏟아지는 여론의 압박에 연방군은 마지못해 마프티의 부활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지구권이 다시 한번 크게 들썩였다. 처형되었다던 마프티 나비유 에린이 실제로는 처형되지 않고 무사히 탈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뒤를 이었다. 그리고 연방군은 이런 소문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즉각적이고 꼼꼼하게 대응했다. 참관한 의사와 지휘관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사망 증명서와 함께 현장에 있던 군인들의 일관적인 증언을 공개했으며, 간신히 안정을 되찾은 지구권의 안보를 위협하는 유언비어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즉각 막을 수는 없었지만 대형 언론사 하나를 본보기 삼아 운영상의 꼬투리를 잡고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으로서 겉으로나마 헛된 이야기를 잠재웠다.

그런 연방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프티는 남태평양을 떠나 타 지역의 주요 연방 시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군 기지, 연구시설, 군수공장, 의회, 공관,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지구연방과 연방군의 관할 하에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타깃이 되었다. 연방 관료들의 암살에만 치중하던 이전의 마프티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무능하고 썩어빠진 연방의 수뇌부도 이것이 명백한 게릴라전의 양상을 띤 마프티와의 '전쟁'임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동안 마프티에게서는 그 어떠한 성명도 선전포고도 나오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탄압받던 서민들에게 불을 지폈다. 사람들은 한데 모여 마프티의 진의를 추측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으레 그랬듯 이를 강경하게 진압했으나 이전 같았으면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쉽게 움츠러들었을 이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목소리를 얻은 이들은 소리를 지르다가 병을 던지고 돌을 던졌으며, 그 다음에는 횃불을 들고 몽둥이를 들었다. 이미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던 존재, 더 잃을 것도 없었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연방이 두려워하던 그대로, 마프티가 그들의 상징이 되었다.

언론 통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나 소식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해서 있었던 일이 없는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마프티에게 동조하는 하류층 어스노이드의 불만이 커질수록 지구권의 긴장감은 높아져만 갔다. 콜로니도 마찬가지였다. 연방은 마프티의 소식이 콜로니까지 퍼져 나가 또 다시 스페이스노이드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했다. 하류층 어스노이드보다 더한 불씨를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스페이스노이드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진짜' 전쟁이 일촉즉발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시작된다면 어느 한쪽이 철저히 패배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사이 샤아와 아무로는 두세 번 더 부딪혔다. 다바오의 사건이 끝난 후 샤아는 마프티가 태평양을 건너 북미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 예측했다. 북미는 연방의 주요 세력지였다. 구세기부터 세계 질서를 좌우해 온 강대국이 있던 대륙인 데다 과거 연방정부의 수도였던 뉴 야크를 비롯해 주요 도시도 많았고, 대규모 연방 시설도 가장 많이 자리 잡은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병력도 많이 배치된 곳을 정말로 노리겠냐며 헛걸음이 되지는 않을까 미네바가 우려하기도 했으나 진네만은 샤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전면전을 벌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북미는 땅이 넓은 만큼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곳도 많습니다. 황무지나 협곡 사이에 비밀 기지라도 두고 게릴라전을 벌이면 잡기가 쉽지 않죠. 마프티는 구세기의 중동 무장 조직과 유사한 방식으로 움직일 겁니다. 샤아는 그랜드 캐니언 어딘가에 마프티의 비밀 기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아무로가 조만간 미국 서해안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다바오 사건으로 아무로를 돕는 것이 확실해진 케네스 슬렉이 이 정도 예측이야 바로 간파하고 마프티의 움직임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도 있지 않겠느냔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샤아는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사웨이 노아의 죽음 이후 모처럼 탄력을 받은 마프티가 민심까지 얻은 이상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과연 예측은 틀리지 않아, 마프티의 타깃이 될 만한 적당한 시설 근처에 잠복한 샤아가 작전을 수행하러 오는 아무로와 맞붙는 식으로 몇 번의 교전을 벌인 뒤였다. 게릴라 활동을 대놓고 방해하며 견제한 적도 있었고 기습 폭격을 마치고 퇴각하는 것을 노려 공격하기도 했다. 아무로도 샤아도 연방군의 눈에 띄면 곤란한 입장이었고 밤을 틈타 몰래 움직이는 상황이었기에 승부가 날 정도로 오래 맞붙지는 못했으나 접전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서로에게 향하는 궤적이 더 날카로워지기만 한다는 것을 둘 다 모르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하얀 건담을 끈질기게 방해하고 나서는 구스타프 칼의 존재는 마프티 내에도 금방 알려졌다. 처음에는 연방의 파일럿인 줄 알았으나 단독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제3의 세력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었다. 문제는 그 제3의 세력이 과연 누구냐는 것이었다. 케네스는 그때까지도 아무 말도 않은 채 아무로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샤아 아즈나블이다."

마침내 아무로가 한숨과 함께 내어놓은 대답에 함교가 발칵 뒤집혔다. 얼마 전에 처음 교전하면서 알았다. 직접 대화까지 했으니 샤아가 맞아. 예상 못 한 이름의 등장에 함교의 인원들은 당황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샤아 아즈나블은 샤아의 반란 때 죽은 게 아니었나요? 샤아가 살아 있었다는 걸 아무로 씨는 알고 있었습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로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더니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같이 살았으니까."

"같이 살았다고요?"

"나와 샤아는 그날 함께 살아남았어. 그 뒤로는 쭉 같이 지냈고."

"같이 지냈다니…….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샤아 아즈나블이 이쪽을 방해하러 나타날 거란 걸 아무로 씨는 알고 있었습니까?"

"그건 아니야. 이건 나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샤아야말로 연방을 적대하던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왜 아무로 씨를 막는 거죠? 샤아의 주장은 우리가 행동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미헷샤가 약간 격앙된 어조로 내뱉은 말을 들은 아무로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일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번거롭게 됐네. 안 그래도 연방이 마프티를 완전히 소탕하려고 우주에서 군대를 불러들인다는 소문이 파다한 마당에 붉은 혜성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케네스가 입을 열었다.

"샤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연방에만 집중하자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까지 샤아가 격추한 멧사가 몇 기인지나 알아?"

"샤아가 단독 행동을 하는 걸 확인했잖아? 써먹을 수 있는 기체가 하나밖에 없을 수도 있고, 활동할 수 있는 파일럿이 샤아 아즈나블 하나밖에 없다는 뜻일 수도 있지. 지금까지는 우리를 끈질기게 쫓아다녔지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규모라면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고작 한 명뿐인 작은 부대에 병력을 분산할 필요 없어. 마프티는 마프티대로 할 것을 하면 돼. 어차피 샤아 혼자서는 이 거대한 움직임을 못 막아."

그리고 샤아 아즈나블이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로 씨가 잘 상대해 줄 테고. 안 그런가, 대위? 케네스가 능글대는 목소리로 화살을 돌리자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아무로에게 쏠렸다. 시선을 받은 아무로는 표정 없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미 샤아에게 돌아가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샤아는 아직도 여기 있어. 이렇게 된 이상 샤아를 그냥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 녀석을 책임지는 입장에서라도."

"정리 됐지? 그럼 우리는 샤아 건은 던져두고 일람이 말한 대로 연방과의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인지나 좀 더 의논하자고."

케네스가 비뚜름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문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군 일부가 지구로 강하했다. 매년 가을마다 다카르에서 열리는 연방 의회 본회의를 경비하고 마프티를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부활한 마프티의 위협이 점점 커지는 이때 이번 차수 본회의를 미루거나 아예 취소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다수 있었지만 결정권을 지닌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마프티의 위협이 커졌기 때문에 더더욱 본회의 개최를 강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프티의 테러를 우려해 연방 운영의 가장 핵심인 본회의를 미룬다면 지구연방 전체가 반연방세력을 두려워하며 꼬리를 내렸다는 것을 생중계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이는 연방의 위신에도 큰 해를 끼치며 더 나아가 콜로니에까지도 반연방 기조가 널리 퍼질 빌미를 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럴 때일수록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합니다! 지구연방은 지온이라는 큰 적도 몇 번이나 막아냈습니다. 고작 이런 테러리스트 따위에 기죽지 않는다는 걸 전 우주에 보여줘야 한단 말입니다. 다카르 본회의는 예정대로 개최 준비에 들어갔다.

다카르 본회의 때문에 불려 들어온 우주군은 연방군의 제일선 정예부대가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콜로니로 재배치되었던 페넬로페도 있었으며 작전 지원 요청을 받은 론도 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작전의 가장 큰 핵심이 바로 론도 벨이었다. 브라이트의 퇴역 이후 론도 벨은 그 부관이 이어받았다. 론도 벨 그 자체나 다름없던 브라이트 노아의 존재가 사라지긴 했으나 그가 십 년 넘게 잘 닦아 놓은 기반은 어디 가지 않아, 그들은 현재의 지구연방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구석이기도 했다.

론도 벨이 본회의장을 경비할 것이란 뉴스를 본 케네스는 혀를 한 번 찼다. 안 그래도 본회의 개최가 확정된 이후 마프티 조직원을 색출하고 소탕하려는 연방의 움직임이 더욱 강도를 높여 가고 있었는데 잘 훈련되고 조직력 높은 정예 부대까지 더해지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밀을 빼내기도 힘들고 사전 정보를 취득하기도 힘든 상대였다. 최근에는 공항과 항구마다 신분 검사도 철저해졌고 번화가에서는 길 가던 행인에의 불심검문도 일상이었다. 기존에도 불법 거주민을 색출하기 위해 이루어지던 일이었지만 그때보다 더욱 강제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물자 보급과 인력 충원도 평소보다 더 먼 단계를 돌아가야 했다. 본격적인 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이후 마프티 조직원과 협력자의 수는 빠르게 늘었지만 그만큼 통제가 쉽지 않아 어디에 스파이가 섞여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크왁 살바 역시 같은 점을 우려하고 있었으나 핵심 조직원 대다수가 아무로를 중심으로 한 제일선에 나와 있는 현재 상황상 조직 관리가 쉽지 않았다. 기기가 케네스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연락원으로서 각국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적극적인 움직임이 분명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녀도 어디까지나 정보원으로서 훈련받진 못한 민간인이었으니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연방이 본회의를 강행한다는 것마저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분명 연방 고관들은 관성적이고 게으르며 상황 판단이 둔했다. 하지만 애들레이드 사태를 경험하고 나서도 그때와 똑같이 알려진 장소에서 회의를 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건 만용을 부리거나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걸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분명 꿍꿍이가 있어. 케네스가 이마를 찌푸렸다. 안일하고 멍청하지만 자기 보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교활하고 약은 조직이기에 오히려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지구연방 외의 골칫거리도 문제였다. 샤아 아즈나블. 케네스가 낮게 읊조렸다. 십억이 넘는 인구를 단숨에 숙청하겠다고 제 혈통도 아버지의 사상도 아무렇지 않게 써먹는 남자다. 그리고 그런 냉혹함에 더불어 뛰어난 전술가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마프티의 일로 몇 번이나 부딪히면서 케네스는 샤아의 전술적 안목이 생각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했다. 남들 앞에서야 동요를 막기 위해 일단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쪽 역시 제대로 붙게 된다면 아주 귀찮아질 상대였다.

케네스는 고개를 돌려 벽에 난 작은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 너머로 메카닉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무로 레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아무로 레이를 철저하게 준비시키는 수밖에 없겠군.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저 남자이니까. 케네스가 휙,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커플링
#샤아무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