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들이 나만 좋아해

대화 해(5)

장소를 옮겨보자

"반갑다고 해야겠지?"

"별로 안 반가워보이는데."

"나를 더 달가워할 생각은 없나봐?"

"질문형으로 말돌리면 간다."

"모처럼 왔으니 용건을 말해줬으면 하는데."

"그냥 찾아왔다. 계획은 없어."

"그거 반가워하기 어려운걸."

그야 조금 곤란하시겠지. 난데없이 천장으로 등장한 방문자니까. 무슨 상황인지 관심없지만 대충 멀끔하게 차려입은 인원 몇몇이 긴 탁자에 둘러앉아있는 모양새였다. 딱히 상석은 구분하지 않을 목적인지 양 끝은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난 그 비워둔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있고.

누군가 불만을 표하려는 낌새를 보이긴했다만 윤소현과 눈이마주치고는 순순히 다물었다. 뒷방 늙은이 시늉은 다하면서 여전히 실세라는 걸 증명하는 꼴이나 마찬가지. 피식 웃어버리고나서 튕기듯 바닥으로 딛고 서서 그대로 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윤소현이 일어서 동행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게 둘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리를 벗어나버렸고, 붙잡는 이는 없었다. 있으면 본인이 제일 곤란해졌을걸?

"짓궂은데."

"10층계까지 올라서 은퇴한 사람 붙잡고 늘어지는게 추한거야. 독립시키지 못하는것도 네 지도력이다."

"뼈아프군."

그래. 이 지독한 통제광아. 놓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놓을 줄도 알아야지. 언제까지 그놈의 큰 그림에 빠져살거냐. 더이상 책임지지도 않고 자유롭겠다더니. 탑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강박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래서야 기생종이 되지않고 눌러앉기가 가능한건지. 오히려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현상유지는 좋지 않다던건 본인이잖아.

"그래. 은퇴선언 이후 새로움은 있었나?"

"의외로. 금방 생기더군."

"딱히 좋은 일은 아니었나보네."

"기생종이 된 자가 여럿 발생했어."

"얼씨구. 그래서 계속 뒷배놀이하신거구만?"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독립할 수 없는거지."

"그래서 계속 의지대리인할거냐?"

"나도 역할에 의존하게되는 부작용이 있다."

"알긴했군?"

"아무래도."

"그래 잘나셨다."

"칭찬으로받지."

맥이려고 하는 말이지? 눈썹을 까딱이며 돌아보자 눈을 깜빡이며 순진무구한 시늉한다. 입꼬리까지 미묘하게 당기며.

"또 하면 얼굴쳐버린다."

"관대해졌네."

"유감인가본데."

"변화를 반가워한거였어."

"새로운 세상이 넘쳐서 좋겠군."

"소중하지."

"그래서. 생각나는건 있나?"

"그럴리가."

"거짓말."

"마찬가지아닌가?"

아무래도 둘 다 아무생각 없이 그냥 움직이는 경우가 없는 족속이긴했다. 저 머릿속에도 내 머릿속에도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있다는 뜻. 아마도 둘 다 명상같은건 재능이 없을거다. 장화가 강제하지 않는 한. 시답잖은 소리나 반복해봐야 걸론없이 맴돌테니 그냥 앞서걸었다. 소원대로 먼저 찾아와줬으니 멋대로 구는 정도로 불만을 표하진 않을거다. 애초에 이끌어가는 것도 요구사항이었잖아? 왠지 순순히 따라주는 모양새가 된 것 같아 다소 꼬운 기분이 들어 발을 멈추고 돌아보니 표정변화없이 마주본다. 할 말이 있냐는 듯 살짝 기울이는 반응에 인상쓰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하니 별 말 없이 따르는 기척이 느껴진다. 의문 표하지 않기로한건지 괜한 자극하지 않으려고 닥치고있는건지. 정확한 의중따윈 구태여 캐낼 생각이 없으니 마저 이동했다. '새서울'을 벗어나 한참을 걷다보니 허허벌판이다. 어둑하진 않더라도 황량함으로 우중충한 벌판. 띄엄띄엄 별자리처럼 자리한 몇몇 구역들이 저멀리 보인다. 접시 위에 얹어진 형태의 공간이다보니 멀다고 하여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지않는다. '탑'이 생긴이래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풍경같은건 없지만. 가끔 옛 영화 따위에서나 탑이 없던 시절의 풍경을 보면서 그런게 있구나 알 뿐이지.

"오! 외지인이신가! 들어오시게! 혹시 비무에 관심은 있는가? '계단' 앞에선 누구나 환영한다네!"

방향전환 한 번 없이 일직선으로 쭉 걸어 마주한 구역은 승천탑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 쪽에서 올라온 이들이 정착했나보군. 호객행위하듯 떠벌이는 키작은 대머리는 직접 무술을 겨룰 생각은 없는 생각인지 자기소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있다. 별다른 대답없이 계속 걸어들어가니 곧 떨어져나갔다. 각 구역간 교류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이 왔다며 요란피웠다간 제대로 소란을 피워줬을테니 적당히 떠나간 건 현명한 결정이었다.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돌아보니 시야에 들어온 윤소현이 어딘가를 바라보고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식후경이냐?"

"동의한다면."

"무난한 선택이지."

사사건건 어깃장 놓을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 곧 식당으로 들어섰다. 차림은 외관과 잘 맞았다. 중화식이 아니라 정말 중식. 드물게 볼 수 있는 영화 유물 중 은근히 많은 수를 차지하는 무협영화에서 보던 그 요리들이 있었다. 비록 향신료와 과채를 구하기 어려워 다채로운 맛을 구현하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의지를 실현하는 공간이라고 해도 모르는 맛과 향을 상상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

"근데, 이것도 딱히 새로운 세상은 아니지 않아?"

"아무래도. 서울과 유사한 구역 주변에 있는 구역은 또 지구출신들이 모였나 보더군. 아예 다른 세계를 보려면 꽤 멀리 가야하는 모양이야."

"너는 못 가겠네."

"글쎄? 아주 영원히 못 갈 일은 아니라고 봐."

"그게 지금은 아니라는게 앞으로도 문제가 될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봐?"

"출발하자는 뜻이야?"

"좋아. 가보자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10층계에 이른지 족히 백 일은 더 지나고나서야 지구출신 구역을 떠나기로 했다. 그나마 대강 아는 세계였고, 비슷한 경험을 한 자들이 모인 장소를 벗어나는 길. 회귀자인 윤소현조차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향해. 어찌보면 지구출신인 자들이 10층계를 뒤엎어버리는 바람에 얼마나 오래지났을지 모르는 평온이 무너지고 띄엄띄엄 뿔뿔이 흩어져 사는 지금의 모습이 된거나 마찬가지니 원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뭐 어떤가. 구태여 그 사실을 먼저 밝히며 10층계 기생지기들을 다 죽이고 이전의 평화를 깬 장본인이라고 밝히고 다닐 것 도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최종목적지였던 방향을 선택했는지 그들의 걸음은 '불꽃'의 제단 쪽으로 향했다. 지구 출신 구역은 미완바벨에서 10층계로 진입하는 방향쪽 한켠을 차지하고있었으니 다른 구역도 아마 진입해온 세계에서 진입하는 방향일 것이다. 그들 중 가장 중앙을 향한 이들은 누구일까?

대강의 답은 둘 다 짐작하고있을 것이다. 아마 같은 생각이겠지. 바로 탑이 시작한 세계, 스킬과 던전이 존재하고 탐험가들이 찾아드는 세계말이다. 탑의 형태가 원래부터 있었는지 세계를 확장하면서 탑의 형태를 띄었는지까지는 알 수도 없고 그닥 중요한 관심사도 아니다. 다만 '층계'는 여기저기 다양한 세계를 침범하며 흡수한 세계가 탑의 일부가 된건지는 약간 궁금하긴 하네. 불멸자같은 기생종이 점령한 층계역시 그들이 원래 탑 안의 주민이었는지 외부에서 들어왔다가 늘어붙으면서 그렇게 된건지 아무도 모를테니. 기생지기놈들 중에는 아는 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죽였으니 물어볼 일은 없다. 아마도 가장 원본에 가까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으니 물어볼 필요도 없지.

이제와서 언급하기도 어색한 일이지만 기생지기들과 전면전을 하면서 10층계 주민의 대부분은 죽었다. 불꽃의 힘으로 염원을 태워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온 자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기생지기놈들을 신에 가까운 절대자로 모시고 살아왔기 때문에 기생지기에게 당한 자들이 되살아나지 못할거라는 밑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부차적 피해를 고려하지않는 범위공격에 '죽었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목격자들도 굳게 믿었으니 부정할 수 없이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거다. 윤소현의 방식으로 생각하자면 죽으면 끝나는 삶이야말로 탑에서 해방되는 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기생지기에게 당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믿음은 그들이 그동안 지켜봐온 삶의 방식도 영항을 끼쳤을 터였다. 간혹 별자리에서 떨어지는 낙성좌들. 그들은 10층계에 도달한 모험가치곤 무력하게 대응했다. 기생지기들이 처치할 때 까지 무력한 민간인행세를 해왔다. 그리고 기생지기들은 일상적으로 낙성좌를 처치해왔고. 그러니 기생지기들의 무력은 절대적이다. 그들에게 당하면 확실히 죽는다는 믿음이 무한대로 강화되었겠지.

사족이었지만. 그런 이유로 주민이 확연히 줄어들은 10층계 생존자들 중 원본의 마을에 사는 이들 규모 역시 작았다. 한 때 10층계를 논밭으로 채우고 시장을 세우던 규모에 비하면 형편없을 정도로. 그러나 그간 누적해온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그래도 지금의 골목과는 비교해도 될 법 했다. 사실, 정말로 이들이 탑이 시작된 원본세계 출신이 맞는지, 가장 오래된 세계라고해서 10층계에 도달한 수도 가장 많았을지는 알 길이 없긴하다. 그래서 어쩌겠는가. 어차피 검증 할 방법은 없고 모든건 추측인데. 틀려서 뭐 달라질 것도 없고 손해볼 것도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되는 일이다.

"감상은?"

"그리 새롭지는 않네."

"기계문명이 없는 세계였나보지. 그렇다면 뭐가 발달했을지 볼까?"

"'스킬'이 있는 세계니 다른게 발달했을지도 모르지."

"회로공방같은거 말이지?"

윤소현은 내 마지막 질문에 끄덕이며 눈을 마주쳐온다. 앞장서라는 의미다. 오늘의 '데이트'는 내가 이끄는거다 이거지. 한 번 인 삶을 살며 머뭇거려 본 적은 없다.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세계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을 비웃으며 중앙구역으로 들어섰다. 대충 드는 김상은 숲속의 유적 이라는 느낌이었다. 나무가 우거지고 불규칙하게 길이 있으며, 유적이나 초소, 아영지의 흔적이 드문드문 보이는. 규모가 작다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동네공원정도 크기라는 뜻이 아니다. '서울탑'과 같은 하나의 도시는 족히 들어갈 크기는 된다. 인간의 무의식이 차지하는 면적은 생각보다 넓다. 의식하지 않고 떠올리는 공간은 무한히 확장하니까. 그러니 10층계에서 하나의 구역을 구성했지. 길을 잃고 헤메기는 충분했다. 정말로 길을 잃지는 않지만 딱히 목적지를 어디로 둘지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내겐 '추적'이 있기때문에 드문드문 보이는 인간의 흔적을 따라가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 모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숲길산책이 지루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속도를 높히는 짓은 하지 않았다. 10층계는 현재 정체된 구간이며, 얼마나 막연한 시간을 보낼지 모르니 지루함을 견딜 줄 알아야한다. 시간낭비야말로 작금의 처지에서 오히려 최고로 중요한 자산이자 유용한 행위라는 뜻이다. 그렇게 죽도록 서둘렀던 지난 시간이 다 우스워진 지금을 미리 알았다면 등정을 더 평화적으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하나하나가 다 다른 세계이니 윤소현은 좋아했을테지. 이런 지루한 세계에서의 생존자들은 아래층계와 또 다른 모습을 보였을 수 있다. 그 역시 10층계에 도달해서야 찾아낸 세계로 취급할게 뻔하고. 그래. 세계. 그렇게 집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게 회귀자의 삶이겠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으로 시간을 때우다보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외지인에게 호의적일지, 기생지기 사냥의 날에 지구 출신의 사냥꾼이 제단으로 돌격하던 모습을 본 목격자일지 모르니 우선은 기척을 숨기고 시야 밖으로 돌았다. 수목사이로 보인 인형은 고전적인 옷차림에 가죽으로된 주머니를 사선으로 매고있었다. 벨트위치의 허리 뒤켠으로 두 뼘이 채 안 되는 길이의 단도가 손잡이를 아래로 향해있는게 전형적인 군인이나 사냥꾼식 패용법이었다. 사람 혹은 사람이 아닌 것 둘 중 하나 이상과의 전투가 능숙하다는 의미다. 단순한 채집활동을 나온 모양인지 가방에 열매를 담는 중으로 보였다. 지금은 이곳을 점령하거나 침투하는 목적이 아니니 일부러 기척을 내고 접근했다. 상대방은 여유롭게 일어나며 뒤돌아 시선을 마주쳐왔다. 딱히 예민하게 경계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손이 자연스럽게 칼손잡이쪽을 향하고있었다. 어차피 접근전 유형의 인간에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고, 뭔가 다른 수작을 부린대도 내겐 '스킬차단'이 있으며 도구를 활용하는 수법은 그 누구보다 우위라고 확신하기때문에 아무런 전투태세도 갖추지 않고 적당히 멈춰섰다. 상대방 역시 일부러 전투자세를 취하지 않은 채 말을 걸어왔다. 윤소현은 따라나오지 않고 대기했는데, 왕년 거미의 기척을 알아챈 눈치는 아니었다.

"누구요?"

"외지인."

"관광객인가?"

"비슷해."

"혼자왔소?"

"아마도."

대답에 성의는 그닥 담겨있지 않았어도 적대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상체에 힘을 빼는게 보였다. 다만 완전히 안심하지 않았다고 시위하듯 살짝 뒤로 빠져있는 한 손은 여전히 내리지 않은채. 마냥 서서 수다나 나눌 생각은 없다는 듯 가방을 고쳐매고 숲 안 쪽으로 향했다. 서로 돌발적인 접근에 충분히 대응 할 수 있는 간격을 유지한 채 말없이 걸었다. 귀찮게 친교를 나누려드는 성격이 아닌건 내게 나쁘지 않았다. 대충 식사시간이 되어간다 싶을 즈음까지 걷다보니 인간이 모여사는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과 조명의 흔적. 곧이어 등장한 마을은 목책이 둘러쳐있는 주거지를 둘러싸고 넓게 펼쳐진 밭이 있는 형태였다.

“채집활동을 하고 있더니, 생산활동을 생활양식으로 삼이 이들이 많은 모양이지?”

“생존하기 위한 순환을 잊지 않고 사는건 중요한 일이라오. 기계문명이 발달한 도시사회 출신인가보오. 다들 주변의 자원들을 당연히 여기는 풍조가 있었지.”

가볍게 감상을 던져보니 역으로 분석해왔다. 내용만 보면 단순한 감상인지 비꼬는건지 알 수 없겠지만 어투가 시비조는 아니었다. 단순히 꼰대기질이 조금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로는. 밭 사이 길을 거닐며 대화를 이어갔다.

“기술문명보단 ‘스킬’이나 ‘마법’이 발달한 사회인가본데, 기계문명 풍조에는 반감을 가지는 편인가?”

“아니, 이미 차량 따위를 받아들인 이들도 있다오. 그저 나는 아직은 기존의 생활양식과 의식의 세계를 바꾸지 않을 뿐이지. 너무 급격한 변화는 피로를 유발하고 또 권태가 가까워지지 않겠소. 지루한 내일이 무한히 이어지는 세계에서 자신을 유지하려면 다양성을 아껴둘 필요도 있으니.”

“장기전을 염두에 둔다. 과연 중앙구역 주민은 다르군. 여기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겠지?”

“10층계를 말하는거라면 그렇다오. 별지기들 중 나와 동시대 출신이 있을 정도니까.”

“별지기라고 불러주네? 그들도 기생종으로 밝혀졌다는 소식은 모든 10층계에 알려진게 아니었나?”

“오랜시간 수호자로서 안주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어쩌겠소, 그들이 왜 탑의 일부가 되었는지 알 수 밖에 없는 시간을 같이보냈으니 아무래도 적대감보다는 연민이 크다오.”

“반감을 살 수 있는 소재였네. 낯선 곳의 이방인으로서 더이상 말을 얹지 않도록 할테니 이제 들여보내주겠어?”

“물론 손님으로 맞을 생각이오. 다만, 숨은 손님을 들여보낼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거만 알아주시오.”

“뭐야, 알고있었잖아?”

“이 자가 이곳의 지도자로 보인다.”

본인도 들켰다는걸 알고있었는지 금새 지근거리로 다가온 윤소현이 대신 대답했다. 질문과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숨은일행이 모습을 드러내자 걸어오는 동안 뿐 아니라 밭길을 다 지나서도 목책 입구만 보던 그가 드디어 고개를 돌려왔다.

“윤소현이라고 한다.”

“유페투스라오.”

“묘리.”

경계심을 표현하듯 백금군주의 말투로 윤소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뒤따라 안내한 자가 이름을 밝히고 시선을 내게 옮겼다. 구태여 자기소개까지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싶지도 않으니 적당히 이름 만 답해줬다. 작게 끄덕인 그는 목책의 문을 일정한 박자로 두들긴 다음 천천히 열었다.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열릴만한 문은 아니었지만 10층계에서 마을을 운영할 수준이라면 가능할 법 했다.

“덧붙이자면 지도자는 아니오. 그저 각자의 자리 중 하나를 맡았을 뿐이지. 이 마을 내 인물들은 각자의 소규모 무리가 하나 둘 이자리에 당도하여 정착한거지 조직을 갖춰 몰려든 이들이 아니니까. 그래서 직함도 딱히 없소.”

“겸손이군.”

윤소현의 감상에 동의했다. 일단 거미로서 은신한 윤소현을 감지하는 실력자인데다가 다른 마을 구성원들이 보내는 시선은 명백히 동경이 담겨있으니까. 나나 윤소현에게 닿는 시선은 다양했다. 단순한 호기심부터 다소 진한 경계심까지. 그 때문인지 유페투스라는 자에게 보내는 호의적 감정에 비해 딱히 인사하거나 말을 걸어오는 자는 없었다. 나야 그쪽이 편했지만.

“인사하지 않는걸 유감으로 느끼지 않으면 좋겠구려. 제일 먼저 마을로 들인 자가 안내를 마칠때까지 너무 많은자들이 접촉하지 않는 규칙이 있소. 상호간 부담을 덜고 과잉충돌을 방지하는 방법이지.”

“안내는 어디까지지?”

“우선 머물 곳을 소개하고 간단한 면담을 가지오. 갈등요소는 최소한으로 줄여야하니까 이곳의 소개와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자리니 부담갖지 마시게.”

“짧으면 좋겠는데.”

“묘리.”

“불편한자리가 되지 않도록 하겠소.”

짧은 대화이후 농막 수준의 작은 단층집에 닿았다. 유페투스는 문 옆 명판에 뭔가 끼적인 다음 안으로 들였다. 손님이 있다는 표시겠지.

“무기는 가급적 안에 두고나가주면 좋겠소. 반대로 마을 내에서 시비가 붙으면 이걸 불어주시오.”

나무로 된 작은 피리로 경비담당을 부르는 듯 했다. 무기를 두고나가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렸다. 한 명은 주머니의 동전을 던지면 이 마을을 뒤집을 수도 있고 한 명은 주먹만 쥐어도 송곳을 무한정 꺼낼 수 있는 자들인데 따로 몸에 지닌걸 뺀다고 딱히 비무장이 되진 않는다. 상징적인 의미로 몇 개 두고나가는 정도의 연막이야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 몇 마디 잔소리가 지나고 유페투스먼저 나갔다.

“멀리나온 보람이 있나?”

“아직은 모르겠어. 새롭긴하네.”

첫 감상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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