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
禪問答:수행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질문과 답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
“넌 내가 왜 계속해서 등정하는 것 같니?”
“갑자기요?”
“대답해보렴. 네가 어디에 동참하고 있는지 듣고싶구나.”
“언제부터 제가 직접 판단이란 걸 했다고… 그냥 가야 한다니까 같이 가는거죠. 약속 했잖아요. 반드시 위에 올라가겠다고.”
“내 회귀를 끝내기 위해서?”
“일단은요?
“탑 위에 올라, 세상을 가두는 거대한 던전을 무너뜨린다. 그게 다니?”
“네 뭐… 제가 그 뒤 까지 계획 할 리가 없잖아요? 사냥꾼은 ‘그냥 하는게’ 장점이라면서요?”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그 부분에서 너는 훌륭하다. 덕분에 여기까지 오기도 했고.”
“그렇죠. 새삼스럽게 제가 그 이후까지 뭘 떠올려야 한다고 말하시려는건 아니죠?”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실 줄 알았어요.”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바짝 다가와서 다시 말 할 만큼 중요한 대사였어요?”
“그렇다. 재미있기도 하고.”
“뭐가요? 읍!”
“귀엽구나.”
“아, 아니!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는거였는데요!”
“기대는 이루어질지 실패할지 알 수 없을 때 마음의 안정을 위해 다독이는 표현이다. 나는 기대하지 않아. 이루어갈 뿐이다.”
“네… 철저한 계획이요. 저는 그런걸 안하지만 목표에 도움이 되는 변수구요.”
“너는 백호민이 아니구나.”
“…지금 저 놀리는거죠.”
“반응을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구나.”
“…”
“아니, 눈치가 빠른걸 보면 틀린게 맞을 수도 있구나.”
“장, 장난! 장난인거 맞죠! 장갑은 왜 벗어요!?”
“장난이라고 생각하니?”
“평소에 하던 얘기를 그대로 다시 말한거잖아요! 제가 아무리 말을 잘 하지 못해도 들은 말 다시 하는 정도는 가능하다구요!”
“그래, 그렇구나.”
“휴…”
“네가 학습능력이 있다는 부분을 새로 알게되었다. 작은 소득이야.”
“역시 놀리는거 아녜요!?”
“글쎄, 어느 쪽일까?”
“작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 팔랑거리고 계신 장갑은 다시 끼도록 해주시면 안될까요?”
“내가 왜?”
“제가 선 채로 말라죽은걸 보고싶으세요?”
“음… 그건 조금 곤란하네.”
“곤란해주셔서 감사하네요…”
“그래. 곤란해. 네가 끼워주렴. 잘 안 들어가는구나.”
“…”
“싫으니?”
“…주세요.”
“아, 그래.”
“맨손으로 갑자기 붙잡지 말아주실래요!? 진짜 놀라거든요?”
“별거 아니란다. 손 다시 가져오렴.”
“회로가 목적이면 예고 좀 해주세요…”
“너는 움직이기 전에 예고했었니?”
“그 때는 해고했었잖아요!”
“그래, 지금도 딱히 사냥꾼 신분은 아니구나. 인정하마.”
“그것. 참. 다행이군요.”
“사냥꾼이었으면 오히려 살아남기 어려웠겠지.”
“…직접 죽였을 거란 뜻은 아니죠?”
“그럴지도.”
“애매하게 말하지 말…! 아니, 확답하지 않는게 좋겠네요.”
“현명하다.”
“…”
“다시 본론으로 가서, 내가 왜 포기하지 않을까?”
“기생종이 되어봤자 또 회귀할거 아녜요.”
“정확하다. 그렇게 추측하고 있어. 탑을 벗어나지 않으면 똑같아.”
“결국 선택지를 강요하고 있네요?”
“매력없지? 추잡하게 매달리는 주제에 강요라니 말이야.”
“갑자기 썸타는 것 처럼 말하지 말아주실래요?”
“그건 쌍방 호감일 때 쓰는 표현이란다.”
“아, 아무튼! 연애적으로 말하니까 이상하잖아요!”
“여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상하단다. 회귀만큼 이상한게 없지.”
“…”
“…”
“…더 얘기하시는거 아니었어요?”
“네가 아무 반응도 않고 기다리는건 낯설어서.”
“이 와중에 재밌어하는거예요?”
“말했잖니, 회귀자에게 세상은 전에 본 적 없는 모습 뿐이라고.”
“제 반응도 포함하는거였나구요.”
“그야 물론이지. 네가 나의 세상이란다.”
“…!!”
“갑자기 잘 익어버리는구나.”
“먹을 것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널 먹을리가 있겠니. 너는 일회용이 아니란다.”
“그래서 회귀가 가장 이상한게 뭔데요…”
“내가 포기하건, 포기하지 않건. 탑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회귀는 끝나지 않아.”
“그래서요?”
“회귀라는 억겁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탑을 등반하는 방법 외엔 없다는 뜻이지.”
“어…”
“그래. 이건 무한한 기회이며 강요야. ‘스킬’이 어디서 오는지는 몰라도, 확실한건. 누군가는 반드시 이 탑을 끝내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
“그게 누군데요?”
“모른다.”
“그렇군요.”
“누군지 알게된다면, 꼭 만나고 싶구나.”
“백금화가 몇 개 나오는지 세어보고 싶은건 아니죠?”
“그것도 재밌겠구나.”
“…”
“내가 좋은 감정을 가질리는 없지 않겠니?”
“네… 그건 그래요. 저라도 회귀에 가둔 원흉을 만나면 아주 천천히 죽이고 싶을거예요.”
“그게 누구건. 그가 원하는건 ‘이야기’다.”
“그건 또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회귀를 부여한 자가 있다고 했을 때, 내가 탑을 나간다고해서 뭘 얻겠니?”
“…글쎄…요?”
“그래. 딱히 ‘대가’가 없어. 그러니 추측하기로, 그가 원하는건 ‘이야기’야.”
“그 말은… 이 모든 과정을 보고있다는 뜻이에요?”
“그래. 아마 너와 나누는 이야기들도 그렇겠지.”
“잠깐! 그럼 비밀작전도 다 새고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럼에도 아직까지 방해받은 적은 없다. 관찰자는 탑의 편은 아니야. 그렇다고 아군도 아니지.”
“진짜 그냥 구경꾼이라는 거에요?”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못 물어본다는 뜻이죠?”
“역시 백호민이 아닌 것 같군.”
“으아아! 장난치지 마시구요!”
“네 생각은 맞을거다. 그들은 ‘이야기’를 ‘볼’ 뿐이야. 개입하지 않아. 오히려 더 나아가라고 강압적인 방법까지 써가며 권장하고 있어.”
“우리는 그냥 구경거리 취급이에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다.”
“구경거리에서도 벗어나야되는 거네요.”
“그래. 누군가의 ‘생각’에 갇혀 지내는건 적당히 해야지.”
거창한 제목에 그렇지 못한 내용물입니다.
의식적으로 '생각'이라는 단어를 안 쓰려고 무던히 노력했네요.
'생각'이라는 신화생물이 있다는 설정으로 써 내린 대화였어요.
지문없이 대화로만 묘사한다는게 참 쉬운 일은 아니었네요.
누군가의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그들의 의도대로 '이야기'가 된다는 걸 깨닫는 건
일명 '제 4의 벽'을 깨는 이야기잖아요? 엄연히 말하자면 작가는 그 '이야기'를 얻어내 수익이라는 대가를 얻지만요.
그것도 직접 '생각'으로 만들어낸거긴 하지만.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심오한 분위기로 끌어가는 백금군주의 화법을 한 껏 살려보려했습니다.
사실 심상세계의 성좌들을 언급할까 말까도 고민했는데, 방해될거 같아서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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