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파,파티...!
“사, 살아있는 파, 파티. 우히, 우히히...”
혼자 뭐라 중얼거리는 모습에 삭망은 어지간히 방구석 외톨이었다가 오랜만에 나온 사람인가보다 눈치챘다. 실제로 몇 천 년 정도 골방이나 마찬가지인 탈색된 세계의 주민으로 살다, ‘살았다’고 말하긴 애매하나 머물다 온 건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알아채진 못했지만. 알아서도 안되고.
연회장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 각자 좋아하는 성좌, 혹은 분장하기 편한 누군가의 모습을 꾸미고 나와있는 모습은 흡사 대재앙 이전의 코스프레 행사장과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일부 전세대의 누군가는 지금은 알고있는 자가 손꼽힐만큼 적을 옛 매체의 누군가를 가장하고 나오기까지 했으니까.
“이쪽은 밖에서 마주친 초성좌...”
삭망이 과장된 어조와 몸짓으로 주변에 소개해줬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막상 몇몇의 시선이 모이자 저도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덕분에 초성좌 코스프레라는 말의 뒷 단어가 잘려서 진실을 밝혀버린 꼴이 되어버렸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규칙의 범위 내인듯 심상세계로 튕겨나가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 다시 앞으로 나오려다 제 발을 밟고 중심이 기울어졌다. 가장 가까이 있었기에 기꺼이 받아준 삭망이 ‘절름발이가 일으켜주다니 재밌네요.’라며 농을 던졌으나 급격히 혼란스러워졌기에 받아주지 못했다. 이미 머릿속은 혼비백산을 넘어 풍비박산.
“어, 어, 그, 저. 대, 대마법사님... 아니, 잠깐. 저, 보, 볼 일 보러갈게요...”
최선의 선택은 일단 도주. 다른 생각은 하지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연회를 빠져나가는건 아니었다. 평생의 숙원이자 생전의 유일한 약속 아니던가. 탑을 올라 하늘이 열린 풍경을 맞이하면 축배와 파티를 나누자고. 불꽃놀이가 하늘을 장식하는 밤을 보내자고. 이루지 못 한 파티를 스스로 폭죽이 되어 한 순간 반짝여보기까지 했던 그 순간이 충분한 시간을 배정받은 축제가 되어 찾아오지 않았는가. 벌벌떨며 회피하는 와중에도 내, 내가 사, 살아숨쉬며 파티에 있어...! 라는 희열이 몸을 달구었다. 그러나 아직 주목받는건 영 익숙해지질 않았다. 비록 월요의 몸에 깃들었을 때 백금의 부추김에 아이보리 퀸 앞에서 허세를 떤 전적이 있다지만 그 때는 단 둘+하나와 넷의 이목을 모았을 뿐이었단 말이다.
“후읍, ... 푸후우...”
그래. 여기까지 왔다. 결국 심상세계를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 진짜 ‘파티피플’이 될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게다가 이제는 닿기만 해도 상대를 녹여버릴 위험이 있는 불안정한 신체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파티에 참석했고, 안전하게 어울릴 수 있다. 공학자들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그러나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상황과 환경에서 눈이 가장 빛나곤 한다. 그들은 탐구적인 부분에선 그 누구보다도 광적인 열의를 가질 수 있는 이들이다. 작약은 언제나 자신을 공학자라고 소개하였으며, 그 누구보다도 공학자였다. 그리고 그 걸음은 그 어느때 보다도 자신만만하고 당당하지 그지없
“저기요!”
“허윽!”
...지 못했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며 어깨를 건드리자 화들짝 놀라 물러나며 허우적거리는 팔로 자신을 가리려 버둥거렸다. 상대방은 더이상 자극하지 않으며 가만히 서 조심스러운 말투로 사과해왔다.
“아, 어... 음. 저기, 놀라게해서 미안해요. 당신 엄청나게 고퀄인데, 그 모습은 초성좌 작약인거 맞죠? 피부색까지 다 칠한거봐! 같이 사진찍어도 돼요?”
“사, 사진이요?”
문명의 발달과 기술에대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은 언제나 눈부실 정도이며 상상과 무한한 경쟁이 치열하곤 했다. 심지어 한 때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기술이라면, ‘재현’에 대한 인류문명의 집착은 상상을 넘어서기도 한다. 전수되지 않은 기술과 열악한 자원, 부족한 기술기반을 가지고도 결국은 사진기를 개발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가까이 다가오는 이의 손에 들렸다. 아직 실시간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며 결과물을 확인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카메라 렌즈 옆에 작은 금속판을 연마해 붙여 거울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재래식 ‘셀카’를 구현해낸 것이다. 탑에선 본 적 없었던 기기장치에 눈을 빛내면서도 친근하게 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움츠러드는 마음이 얽혀 시선과 몸짓이 불일치하는 기묘한 모습으로 사진에 담겼다. 결과물을 보게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쑥스러워하시네. 그런데도 초성좌를 한 거에요? 진짜 좋아하시나보다~. 아니면, 동경인가?”
“초, 초성좌... 히, 히힛.”
‘초성좌 작약과 그의 졸개들!’이라는 폭탄발언으로 시작된, 사실은 급조된 별명이었다. 덕분에 자존심 강한 단하나가 왜 쟤가 저렇게까지 칭송받는거냐며 길길이 날뛰기도 했다. 해방의 날 이후로도 ‘초성좌’라는 별명이 이어질거라고는 원인을 만든 백금군주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자신들이 둘러싸서 재잘거리는 상대가 진짜라는 건 상상도 못하는 그들이 막연한 상상과 과장된 이야기를 근거로 초성좌를 동경하고 추켜세우는 사이에서 파티의 분위기가 전염되어왔다. 작약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하늘을 향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띄워주는 이야기에 흥분해 과장된 반응으로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기도 했다. 모두가 악수를 나누고 초가 꽂힌 케이크를 나누며 서로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아이보리 퀸의 넋이 나가게 했던 횡설수설이 정말로 이루졌다.
“그래, 맞아. 여기가 탑의 정상이다. 작약.”
“네가 제일 앞에서 해를 볼 수 있게 해주마.”
‘불꽃놀이 시작시간이에요!’라는 누군가의 외침에 우르르 실내를 벗어나는 인파에 섞여 밖을 나서는 작약의 귀에 아득한 기억속의 말이 들린 듯 했다. 영주님이었다. 영주님이었나? 비록 떠오르는 해는 볼 수 없을거다. 시간제한이 있으니. 하지만 살아남아 탑을 오른 이들이 해방을 축하하며 터트리는 불꽃놀이는 볼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큰 폭발 이후 다시는 피어나지 않은 탑 안에서의 태양이자 폭죽이자 등대의 마지막 절명이었던 작약의 불꽃놀이와는 달리 각각의 색과 형태를 갖추며 수 회를 반복해 터져나가는 불꽃들이었다. 마치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처럼 하늘에 그려지고 꽃이 지듯 탄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단하나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수천번의 백호민을 지켜봐온 작약은 별다른 설명 없이 불꽃놀이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윤슬, 거묵, 열가락지, 목뚝각시, 강림아씨, ...그리고 성좌 월요와 백금군주... 점점 격렬하게 터져나가던 불꽃들 위로 청각을 부정하는 굉음과 함께 한 순간 해가 뜨는 듯 한 빛이 하늘과 땅을 밝게 칠해버렸다. 저건 불꽃놀이가 아니었다.
“태양...”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는 작약의 눈가에 물방울이 중력을 따르는 줄기로 늘어졌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스스로 태양으로 불타오른 자신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고, 이 자리에 오기를 잘했다. 이후로도 여러 불꽃이 하늘을 색색이 칠해나갔지만 단 한 발의 빛이 잠시 작약을 뒤덮었다. 그 여운에서 자각을 건져냄과 동시에 태양과는 다른 화려하고 넓은 범위의 빛그림이 하늘을 다시 메웠다. 해피앤딩이었다.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며 연달아 터져나가는 불꽃이 수많은 평행우주의 교차시점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 시간 중에는 단하나의 시간도, 작약의 시간도, 묘리, 불사자리, 무제의 시간도 있으며 또 월요의 시간도 있다. 그리고 지금 지상에 남아있는 모든 이들이 앞으로도 시간을 채워나갈 것이다.
“저기, 저기에 진짜 찐 작약이 있다니까! 너도 사진찍어! ...어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까 카메라를 들이밀었던 무리가 다른 무리를 이끌고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작약은 더이상 없었다.
“헤, 헤헷. 파티피플...”
그들이 찾는 주인공은 혼자서 생각보다 더 궁상맞은 모습으로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fin.
후기.
항상 성좌조아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트친님과 짧게 나눈 이야기에 앞뒤로 살을 붙여보았습니다. 소심하지만 적극적이고 흥미와 특기에 맞는 분야에서만큼은 눈을 빛내는 괴짜개발자이자 천재공학자 생전에는 받지 못했던 호의와 어울림을 누리는 모습이 원작에서는 도입만 보여주고 끝나버려 아쉬운 마음을 직접 해결해보았습니다. 오타쿠는 자급자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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