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선 서사 정리

그 기억들이 마치 중력처럼 내 모든 마음을 너에게로

春雪 by 현명

정세현

재벌가의 둘째아들. 남들보다 아득히 뛰어난 천재이지만 드러내지 않고 지냅니다. 누리고 싶은 것은 모두 누렸지만 완벽한 가족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도록 형이 가진 것들을 탐내는 것만큼은 금기시되었습니다. 탐욕스러운 형에게 자신의 것들을 하나둘씩 빼앗기고 부모에게 물려받을 만한 것은 비수도권의 호텔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이에 정세현은 ‘자신의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스물 중반까지 수십 명의 남자와 어울리고 또 헤어지며 방탕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호텔 경영에 뛰어들며 난봉꾼 짓거리는 그만두었으나 여전히 자신만의 남자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임원으로, 나이가 차면 차기 오너가 될 것입니다. 완벽하고 또 따분한 삶을 이어 가던 중,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 정세현은 차선우를 처음 만났습니다.
정세현은 독실한 천주교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마다 미사를 빠지지 않으며 다니는 성당에 주기적으로 거액의 후원금을 쾌척합니다. 성당에서는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훌륭한 신도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겪은 고난을 보고 처음으로 발기했으며 자신의 이상성욕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선우

아버지는 부장 판사, 어머니는 인권 변호사. 어렸을 때부터 남다를 만큼 비상했던 누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차선우의 뛰어난 가족들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었으며 어리고 외로운 차선우에게 위안이 되어준 건 집 근처의 플라네타리움 뿐이었습니다. 별을 좋아하던 어린 차선우는 뛰어난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특성화고 진학을 실패하고, 유명 대학의 법학과에 재수 후 간신히 합격했지만 동기들을 따라가지 못한 채 뒤처집니다.
대학 재학 중 차선우는 졸업생이자 젊은 나이에 검사가 된 권재하와 교제합니다.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연애 감정 같은 건 조금도 느끼지 못했지만 곁에 있고 싶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압적인 권재하와 자꾸만 어긋나 지쳐 가던 중 부모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노력을 해도 차선우는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섞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형과 헤어지고 부모와는 연락을 끊은 채 차선우는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좋아하는 별들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으며 생각을 정리한 차선우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 보기로 했습니다. 대뜸 전과한 후 졸업하여 나아간 진로는 호텔 프론트 직원이었습니다. 면접 자리에서 몹시 긴장하여 차선우는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인생을 뒤집어 놓을 남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과분한 행운

차선우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족들과 섞일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초라한 자신이 비교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이에 연인과 헤어지고 법학과에서 돌연 전과한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로이 시작하고 싶어진 차선우는 부산으로 내려가 그곳의 가장 큰 호텔에서 면접을 본다. 면접을 본 것만으로 과분한 행운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뜸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

- 정말 감사하지만…… 나를 왜?
- 저는 이분이 좋을 것 같아요. 인상도 단정하니 잘생겼고, 똑똑한 사람이라서 좋잖아요.

쓸데없는 친목은 사절!

상냥한 동료들과 그럭저럭 적성에 맞는 일을 함께하며 차선우는 뒤바뀐 삶에 빠르게 적응한다. 그러나 단 하나, 제게 반했다며 집요하게 접근해 오는 임원만큼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상사와 사적으로 엮여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이미 사랑에 상처받은 만큼 함부로 마음을 주고 싶지 않은데, 정세현은 얄궂게도 자꾸만 자신이 약해지는 부분을 파고들어 왔다.

- 사석에서는 상사 말고 그저 정세현으로 봐 주세요. 선우 씨에게 반했고, 의지가 되어 주고 싶거든요.
-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은데요. 아, 정말……

무조건적인 애정은 허상

- 제가 좋다고요? 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잖습니까.

- 그렇다면 선우 씨가 좋아하는 것들을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그 말에 차선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그와 함께했다. 플라네타리움에서 함께 별을 보고, 입맛에 맞지도 않는 식사를 함께하고, 늘 똑같은 공원을 항상 함께 걷고…… 정세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듯했다. 차선우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애석하게도 차선우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정세현의 자리가 생겨 버렸다.

- 사실은 지루하시죠? 별 보는 거 말입니다.
- 지루하진 않아요. 별을 볼 때 선우 씨 눈이 반짝거리거든요.

차선우는 점점 정세현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좋아졌다. 몇 번의 밤을 함께하며 차선우는 그에게 마음을 온통 내맡길 뻔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어 자연스럽게 모두를 이끄는 정세현을 보면 차선우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되고 싶었던 모습에 대한 동경, 결코 닿지 못할 이상에 느끼는 질투, 그리고 질투하는 자신에게 따르는 혐오감…… 그 모든 것들이 그와 정세현을 가까워지지 못하게끔 했다.

재미없는 사람

그를 흔들어 놓은 건 대뜸 부산에 법률사무소를 차린, 전 연인이었다. 권재하는 자신 때문에 서울을 뒤로하고 부산까지 왔다고 했다. 죄책감 때문에 매몰차게 밀어내지 못하는 차선우에게 권재하는 정세현의 비밀을 폭로했다.

- 그 자식이 어떤 놈인지 알아? 갈아치운 남자가 수십이 넘어. 왜, 너도 그놈과 함께하다 보니 따라서 문란해졌나?

고압적인 옛 연인과 다시 잘될 마음일랑 추호도 없었다. 과거사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딱히 의외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풍선처럼 가벼운 정세현의 마음을 붙들어 놓을 자신은 없었다. 어디서든 반짝이는 그를 사랑하면 빛 하나 없는 자신은 반드시 버림받고 또 상처받게 될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차선우는 정세현과 멀어지기로 했다.

- 세현 씨, 저는 그리 재미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상처받기 싫어서…… 당신과 더 가까워지고 싶지 않습니다.
- 재하 씨 같은 애인을 뒀던 선우가 불쌍해요. 저라면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선우를 사랑하지 않을 텐데.

길들인 것에게 지는 책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없던 정세현은 애가 탔다. 겨우 구슬려서 손에 넣었는데, 모아이 석상처럼 생긴 놈팽이 때문에 놓치다니……
그러나 공들인 노력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차선우에게는 연달아 악재가 터졌다. 전세 사기로 당장 갈 곳이 없어지고, 와중에 어머니께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자신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차선우를 품에 안으며 정세현은 조금 웃었다. 약해진 차선우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 사실은 어머니의 죽음이 슬프지 않아. 어머니에게 나는 ‘누나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었어.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를 추억하는데, 나에게만 추억할 게 없어. …… 나도 태양계의 행성이고 싶었어, 끝내 명왕성일 뿐이었지만…….
- 태양계 바깥에는 훨씬 많은 별과 행성이 있어. 나도 그중 하나야. 외톨이가 되려고 하지 마, 내가 너의 궤도를 함께 돌고 있을게.
- 넌 어떻게……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하지? 간파당하는 것 같아.

정세현의 집에 머무르며 차선우는 우연한 기회로 그의 소유물들을 마주했다. 오롯이 정세현의 소유였던 것들은 지극히 적어서, 정세현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수집해 놓는 취미가 있었다. - 다소 소름끼치게 생긴 - 박제된 개 앞에서 차선우는 두려움 대신 연민이 들었다. 정상적으로 사랑받고 또 소유했다면 이 정도의 광적인 소유욕은 없었을 것이다. 차선우는 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 사실은 널 질투했어. 너는 내가 평생토록 동경했던 모습 그 자체거든. 그런데도 지금의 너는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여.
- 나를 동정하는구나. 그래, 어떤 감정이든 좋아. 그 마음이 너를 나에게 묶어둘 수 있다면…….

태양계 바깥에서

가족들에게 어엿한 일원으로 인정받는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상관없었다. 사랑의 설렘 같은 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강렬한 이끌림도, 끓는 듯한 성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실이었다.
차선우는 자신이 속하고 싶었던 모든 궤도에서 밀려났으나 그곳에서 정세현을 만났다. 그렇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풍선처럼 가벼운 마음일지라도 중력처럼 붙들어 놓고 싶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차선우는 정세현을 사랑하기로 했다.

- 멋대로 떠나 버리지 마. 너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 선우야,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어…….

지금 나에게 너는

- 나의 장미가 소중한 이유는 장미에게 쏟은 정성 때문이야…….

- 너는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겠지만, 내가 놓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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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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