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삶

동양풍 라네트

春雪 by 현명

#0

원판 서사의 라네트는 격전 끝에 소네트가 칼라인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칼라인이 소네트에게 졌다면 어땠을까요? 절대 온전하게 두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AU입니다.

한국풍~동양풍이라서 칼라인은 '찬' 소네트는 '시아'라고 부릅니다.

#1

'매'나라 황제의 아들, 지극히 높은 황태자 찬은 아버지에게 미움받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불로불사를 얻어 영원한 독재를 누리고자 하였으며 자신만큼 뛰어난 찬은 눈엣가시였습니다. 그가 황태자로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이 싫어 그를 의도적으로 황궁에서 소외시켰습니다. 때문에 찬은 지고한 자리에도 불구하고 늘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황제는 심약한 성정의 둘째가 그를 대신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하여 황제는 '국'나라와 벌이는 전쟁에 황태자를 출전시킵니다. 비록 국운은 다해가고 있었으나, 국에는 뛰어난 장수 '시아'가 있었습니다. 귀신도 잡는다는 시아라면 자신의 아들의 목 정도는 기꺼이 꺾어 놓을 수 있겠지요!

전장으로 가는 길에는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찬은 문득 이대로 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2

국의 장수 시아는 멸국을 직감합니다. 항복하여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자고 간언해도 지도자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시아는 환멸이 났지만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쥐었고, 수많은 적을 벤 끝에 찬을 마주했습니다. 그의 무예는 시아가 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목이 달아났겠지만, 시아는 끝내 그를 낙마시켰습니다. 살고 싶지 않은 이와 모두를 지키고 싶은 이, 그 마음의 굳건함으로 따져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리를 크게 다쳐 도망갈 수 없어진 그를 검으로 내리치려는 순간, 황태자의 원군이 나타나 시아는 도망쳐야 했습니다.

#3

부상 후유증으로 찬은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더 이상 황태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폐태자가 됩니다. 장애에는 유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제 목숨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애석했을 뿐입니다. 찬은 동생이 황태자가 되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음과 동시에, 제 아비 대신 동생이 황제가 되길 바랐습니다.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죽은 듯 지내던 찬의 귀에 들어온 소식은 '시아를 생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아는 황태자를 부상당하게 한 죄목으로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지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본인에게 의견을 묻자 찬은 일단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처분을 결정할 생각이었습니다.

#4

감옥에서 다시 만난 시아는 눈빛이 총명하고 의지가 넘쳤습니다. 다리를 다치게 한 것에는 조금 미안한 기색이었지만, 애써 티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나를 욕보이지 말고 죽여라'라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시아는 그에게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이런 부탁을 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저를 살려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찬은 고민 끝에 시아를 살리기로 합니다. 대신 자신의 곁에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진 폐태자를 모시며 모욕적인 삶을 이어가게끔 합니다. 지난하게 이어지는 삶이야말로 단번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시아는 언제나 꿋꿋하고 좌절하는 기색 하나 없었으며 모두에게 썩 상냥하게 굴었습니다. 그 맑은 눈은 빛이 꺼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찬은 시아를 좌절시키고자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자 목표를 바꾸었습니다, 찬은 시아의 손에 죽고자 했습니다. 조국의 원수이자 불명예의 근원 그 자체인 자신을 시아가 미워하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서 나를 죽이라고 종용한 순간 시아는 화를 냈습니다. 어째서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찬은 무감한 - 그러나 끝이 조금 떨리는 - 투로 답했습니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삶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렇게 꽉 쥐고 있는 거지?"

"모르겠어도 그냥 살아요! 가치를 모두 알기도 전에 죽음으로 도망치시려는 겁니까?"

#6

찬은 시아와 함께 삶을 이어갔습니다. 여전히 고통스럽고 길었습니다. 그러나 시아는 종종 삭막한 바위틈 사이에서 빛나는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찬은 기나긴 삶이 조금은 덜 괴롭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처럼 고통스러워할 사람이 없길 바랐기에, 찬은 황제의 야욕을 저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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