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목울대

그와 그녀와 나무

그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그리고 태초의 그에게는 그녀가 있었는데, 이 사실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그가 그녀를 포기하고 나를 봤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그녀를 심었다. 보통은 씨앗을 심고 나무를 키운다면, 그는 내게 나무를 심어 씨앗으로 키우고자 했다. 가끔 나는 손과 발이 나무가 되는 꿈을 꾼다. 목각인형은 당연하게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면 그가 내 앞에서 웃고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입은 어째서 그렇게 웃느냐고 묻지 못한다. 그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런데 이게 내가 맞을까? 나는 묻지 못한다. 그가 내게 여름 새 울음소리처럼 다정하면 나는 두려워졌다. 꼭 그가 내 안에 둥지를 파고 자리를 잡을 것만 같았다. 공포감과 함께 눈을 뜨면 나는 다시 인간이다. 말랑한 피부를 가진 포유류다. 젖은 나무 냄새도, 슬픈 뿌리도, 말하지 못하는 입 구멍도 없는데 나는 두려워진다. 이건 아주 오랜 비밀이다. 나는 아득하게 두렵다. 그가 내게 심은 그녀가 두렵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되었다. 물론 그녀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닮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멀어지면 그와 가까워진다. 죽은 그와 그녀가 나를 쫓는다. 그렇게 그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신의 은혜가 모든 이에게 있을지어다. 그가 그 말을 믿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은혜란 무엇이지? 신이 내려주는 은혜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내게 그것을 생이라 말하였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렇다면 죽음은 은혜가 거두어진 것인가? 내 말에 가끔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말한 적 있다. 은혜는 생의 모든 순간에 올 수 있는데, 자신은 그것을 그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그건 사람을 살게 만드노라고. 그 말에 나는 그럼 신은 그녀가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건대 가엾었다. 죽음이 갈라놓지도 않은 사람을 그리는 치는 멍청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사실에 연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물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너는 창세기이다. 은혜를 이어줄 수 있지?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소화조차 시키지 못한 말을 자꾸 토해내 흩어보는 이유는 분명 그의 은혜를 내가 무의식중에 잇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새처럼 웃는다. 뻐꾸기시계조차 없는 방 안을 새 울음소리가 가득 메운다. 아아, 나는 그렇게 나무가 되었다. 빛이 있으라.

그가 포기한 그녀는 내 안에서 점점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와 대화도 할 수 있었다. 죽어 없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옳은가 생각해보다 대답을 이리저리 바꾸어보았다. 그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 보니 내 안의 그녀는 어느새 거의 완성된 사람이 되었다. 완벽하게 만들어지기까지 나는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개월 전부터 그녀는 내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녀의 안에서 그의 존재란 그리 크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답을 바꾸지 않은 것은 그녀가 자연히 그에 관한 이야기를 더 늘어놓기 바람이었다. 오늘에서야 나는 가장 궁금한 질문을 했다.

 

그를 사랑했나요?

 

그녀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 고개를 기울인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그러니까 사귀었겠지.

 

그 말을 들은 나는 비로소 안 것이다.

그녀는 인간이었다. 나무인 나나 새인 그와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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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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