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유료

[승화承花] 기나긴 겨울 끝에 피어나는

22.07.09 유료발

※22년 7디페(2일 토요일)에 발간했던 승화 신간입니다.

※필멸x불멸au입니다. 버려진 갓난아기 죠타로를 불멸자 카쿄인이 양육합니다.

 

 

 

 

기나긴 겨울 끝에 피어나는

 

 

 

 

 

 

 

 

 

 

 

 

 

 

 

1.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손끝에서 불을 만들고, 물건을 하늘에 띄우고, 시들어버린 꽃도 다시 피어나게 하는, 매우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소년을 두려워하고 싫어했습니다.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소년 탓을 했고, 틈만 나면 소년을 헐뜯었습니다. 소년 역시 쥐죽은 듯 지내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녔으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소년은 어느새 마을의 괴물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상한 힘을 부리면서 마을에 불운을 가져오는 괴물. 마을을 위협하는 존재는… 뿌리를 뽑아야 하는 법. 결국 소년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죽음으로 그의 제어에서 풀려난 힘들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마법’이라고 부르는 힘은 그렇게 온 세계에 깃들게 되었고, 우리의 마법은 소년이 가졌던 힘의 일부분인 셈입니다.

 

2.

 

휘몰아치는 칼바람이 매섭다. 흩날리는 눈발이 뺨을 때리고 살을 에는 추위가 날카롭다. 나뭇가지 앙상하니 시리도록 차가운 한겨울,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온 숲을 가득 메웠다. 생명력 하나 느껴지지 않는 황량한 곳에서 자신은 이곳에 살아있노라 고래고래 외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 울림은 누군가에게 가 닿은 모양이었다. 사박사박, 뽀득뽀득. 눈이 밟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이내 한 남자가 나타났다. 아주 기이해 보이는 자였다. 내딛는 맨발, 내뻗는 맨손, 아주 얇은 홑겹의 옷, 나릿나릿한 움직임. 계절감을 전혀 알 수 없는 그 모습은 어쩐지 환상 같으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붙여둔 것 마냥 이질감까지 들었다. 거센 바람에 거칠게 흔들리는 옷자락과 머리카락들만이 유일하게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기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겉모습이 아니었다. 울음소리는 이제 절박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남자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어떻게 한담. 남자는 계산을 시작했다. 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렸을 가능성, 부모를 찾을 가능성, 마을의 누군가가 아기를 거둬줄 가능성…. 남자는 곧 자신이 아기를 거두는 것이 그나마 제일 나은 선택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아기의 부모를 찾는 건 어렵고, 아기를 돌봐줄 이가 있을 지도 미지수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오고 싶다고 해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길-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지만-도 험했고 숲의 내부도 미로마냥 복잡한데다가 마물이 우글거려 위험한 곳이었다.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안아들었다. 품 안의 온기는 뜨거웠고, 그 작은 몸으로도 살고자 하여 열렬하게 뛰고 있는 심장의 열렬한 고동이 느껴졌다. 이 황량함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눈앞의 어린 숨이 꺼지도록 방관하는 매정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남자는 아이의 이름이 될 만한 것을 떠올렸다. 딱 하나 떠올랐다.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이의 이름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희미했다. 그의 목소리도, 얼굴도, 함께 했던 추억마저도 이젠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떠올릴 수가 없었다. 세는 것을 포기했을 만큼 오랜 세월을 존재해온 탓이었다. 속절없이 지워져가는 기억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하지만 남자는 똑똑히 기억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느꼈던 그 따뜻함과 편안함을, 그 소중함을. 그것만큼은 절대 잊을 수 없었고 잊지 않고자 애썼다. 내가 너를 부르면, 그러면 너는 뒤를 돌아 나를 보았지. 그리고는 웃었어. 남자가 고개를 숙여 아이의 뺨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맞닿는 온기에 아기의 울음이 조금 멎었다. 남자가 웃으며 속삭였다.

 

“안녕, 죠타로.”

나는 카쿄인, 카쿄인 노리아키랍니다. 다음 순간, 매서운 눈바람 불어오며 온통 새하얀 곳에 붉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던 모습만이 잔상처럼 남았다. 휘몰아치는 칼바람이 매섭다. 흩날리는 눈발이 뺨을 때리고 살을 에는 추위가 날카롭다. 나뭇가지 앙상하니 시리도록 차가운 한겨울, 숲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3.

 

바야흐로 마법의 시대였다. 대부분의 물리법칙과 인과법칙을 무시할 수 있는 힘. 일면에서는 기적을 만드는 힘이라고도 불렀다. 물론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 역행이나 죽은 자의 소생 등 세계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외에도 거대하고 강력한 마법일수록 그만한 자원과 섬세한 계산식이 필요하다든가, 공간 이동 마법은 이동 지점의 좌표 지정을 도와주는 텔레포 결절석이 없으면 매우 위험하다든가, 이런저런 다양하고도 크고 작은 제약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법은 역사의 분기점이었고, 마법이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에 녹아있는 힘이었다. 세계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힘. 하지만 인간만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에 퍼진 마법은 모든 생명이 다룰 수 있었고, 개중 마물들이라 불리는 것들은 인간들에게 있어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마물. 인간이 아닌 생물들의 총칭. 세계가 새로이 열린 초반에는 인간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종만을 마물이라 불렀으나, 그 분류가 복잡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탓에 인간이 아닌 생물들을 모두 마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마물의 범위는 넓었다. 성격이 온순한 종, 인간보다 약한 종도 많았지만 인간은 일단 마물이기만 하면 경계부터 하고 봤다. 오래도록 그와 갈등하며 피를 흘려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마법의 시대, 이전의 시대와는 획기적으로 다른 시대. 그 전까지 존재해왔던 세계의 법칙이 무용해지고 역전된 시대였다. 새로운 질서와 법칙이 자리 잡기까지의 그 과도기적 시기는 매일이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실제로 그 시기를 마도대전이라고 명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니 인간이 마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피에 새겨진 본능일 지도 모른다. 정말로 강한 축에 속하는 마물은 대규모 인원이 달라붙어도 상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마을이나 도시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형성되었다. 마물의 위협이 없는 곳 내지는 약한 마물들이 있는 곳, 마물을 상대하기 용이하여 영역을 넓히기 쉬운 곳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인간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다시 나타난 붉은 머리카락은 전혀 그렇지 않은 곳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땅, 마물들이 들끓어 정기적으로 토벌대가 오곤 하는 곳. 바람이 부는 소리마저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곳에서 죠타로는 칭얼거렸으나 기이하게도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어쩌다 다가온 기척도 금방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생물들은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고…. …그곳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카쿄인이 어떤 존재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카쿄인은 그것이 참으로 마음이 편했다. 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오해를 살 이유도,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적대하고 배척한다. 그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그러니 자신은 인간들 틈바구니에 있어봐야 고통만 받을 뿐이다. 그럴 바에야 고독을 벗 삼고 말지. 그들처럼 행동하는 것도 그만둔 지 오래였다. 그런 거, 그에게는 겉껍데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카쿄인은 아주 오랜만에 인간의 흉내를 내기로 했다. 당연히 죠타로 때문이다. 아기는 보호자를 보고 배우는 법이다. 자신이 그럴 듯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먼저 집이 있어야겠지. 집을 세우기에 괜찮은 곳을 찾은 카쿄인은 잠깐 생각했다. 집의 구조나 넓이 따위를 고민하던 중이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죠타로가 결국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카쿄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미안, 많이 힘들죠?”

 

공터에 집 한 채가 생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즉석에서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그것 역시 인간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은 성인 한 명이 살기에도 조금 작아보였지만 그건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집 안으로 아기를 안은 남자가 들어갔고, 뒤이어 엄청난 마법의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4.

 

집을 만든 카쿄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곳을 진짜 집처럼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었다. 내부 공간을 넓히고, 실내 온도 조절 마법은 물론이고 온갖 충격이나 사고에도 끄떡없게 해 줄 보호 마법도 걸어두고…. 자라면서 다칠 일도 많을 테니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는 마법도 걸어둘까. 방은 얼마나 필요하지?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집에서도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거야. 카쿄인은 커다란 온실정원과 널따란 지붕창까지 만들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자신은 지금, 매우,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죠타로를 거두기로 결심했을 때까지만 해도 떨떠름했으면서, 어린아이처럼 들뜨다니! 어쩐지 신이 나서는 이것도 저것도 끼워 넣다보니, 아담해 보이는 바깥모습과는 다르게 집 내부는 거대한 저택과 가까워져있었다. 이제 카쿄인에게 남은 건 육아뿐이었다. 많은 걸 알고 있는 그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육아 역시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론 정도야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오산이었다. 실전은 차원이 달랐다. 모든 아기가 그렇듯이 죠타로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 그때마다 카쿄인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죠타로가 배고파 보일 때는 먹였고, 졸려 보일 때는 재웠다. 그래도 불편해보이면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하지만 육아라는 게 그리 간단히 해결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죠타로는 울었고, 카쿄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채로 그를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래주곤 했다. 그러다 제 머리카락이 죠타로의 손에 잡혀 힘껏 당겨지기까지. 그 뿐이랴. 잘 자다가도 새벽에 울어대는 바람에 자신은 잠이 필요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앞으로가 더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왜 단번에 어른이 되는 마법은 없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으므로 헛생각에 불과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바삐 움직이고, 해야 할 일이 있고, 배울 것이 있다. 죠타로가 웃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울면 자신도 울상이 된다. 목표가 있다는 감각, 작은 것에도 일어나는 감흥. 그것은 카쿄인에게 너무나도 생경한 것들이었다. 오랜만이다 못해 낯설기까지 했다. 매일이 새롭고, 설레고, 두근거리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활기가 넘치는 생활이었다. 오래도록 공허할 뿐이었던 카쿄인에게 생긴 유의미한 변화라면, 그것은 단연코 죠타로였다. 네가 나에게 이렇게 큰 선물을 가져다주었구나. 카쿄인은 작게 웃고 말았다.

…그런 너도 나를 미워하게 될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이상하게 굴지 말라고. 지금은 내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굴지만, 너도 자라고 장성하면…. 그러다 카쿄인은 잠에서 깬 죠타로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생각할만한 건 아니었다. 고개를 저은 카쿄인은 죠타로를 안아 올렸다. 잘 잤나요? 죠타로. 죠타로는 카쿄인의 목소리와 손길에 조금씩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자다 깼는데 카쿄인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5.

 

“왜 화를 안 냈을까?”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은 흘렀고, 그만큼 죠타로도 빠르게 자랐다. 잠든 사이에도 수백 년이 지나가있곤 했지만, 새삼 시간이 이렇게까지 빨라도 되는 건가 싶었다. 죠타로가 자라면서 카쿄인은 그의 보호자이자 교육자가 되었다. 카쿄인은 죠타로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간단한 초등교육부터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고등교육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 아카데미 밖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내가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고 있는지, 이 내용이 아직 죠타로의 수준에는 너무 어려운지 걱정이 들 때도 있었지만 죠타로는 스펀지마냥 카쿄인이 가르쳐주는 것을 쏙쏙 흡수했다. 가르칠 재미가 있는 학생이었다. 죠타로 역시 카쿄인의 수업 시간을 좋아했고,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배우고 싶어 했다. 죠타로는 카쿄인에게서 낮이면 온실 정원과 바깥에서 마물들의 생태를 배웠고, 밤이면 다락방에 달린 천창으로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 얘기를 들었다. 그 중 죠타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자기 전에 있는 카쿄인의 이야기 시간이었다. 책에서 읽었던 것이어도 카쿄인이 이야기해주는 것은 훨씬 생생해서 상상하기도 쉬웠고 재밌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죠타로가 카쿄인에게 창세설화를 들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 마법의 기원과도 관련이 있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카쿄인이 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쿄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라며 굳이 내게 듣고 싶은 이유가 있냐고 했지만 죠타로는 카쿄인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카쿄인은 어쩔 수 없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죠타로의 예상대로였다. 카쿄인의 이야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마을 사람들이 소년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더 자세했고, 그래서 죠타로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뭐가요?”

“소년 말이야.”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못 살게 굴었잖아. 나라면 엄청 화났을 거야. 죠타로가 구시렁거렸다. 꺼내두었던 책을 정리하느라 일어나있던 카쿄인이 곧 죠타로의 옆에 앉았다. 푹신한 침대의 매트리스가 울렁였다.

 

“당연히 났죠. 왜 안 났겠어요? 그냥… 포기했다고나 할까.”

“왜?”

“괴물이라는데 뭐 어떡해. 그런 게 아니라고 아무리 여러 번 말해도 듣지를 않았거든.”

“외로웠을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요?”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거잖아. 한 명 정도는 믿어줄 수도 있는데.”

“…죠타로는 다정하네요. 사실 말이에요.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어요. 한 명. 딱 한 명 있었거든. 소년을 믿고 이해해준 사람이….”

 

카쿄인은 죠타로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손길임에도 죠타로는 카쿄인이 어쩐지 슬퍼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쓸쓸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카쿄인이 외로워 보였다. 카쿄인도 소년처럼 친구가 필요한 걸까? 그럼 내가 카쿄인의 친구가 될래.

 

“그런데 카쿄인은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엄청 옛날이야기 아냐?”

“글쎄… 비밀로 할게요.”

“아니면 그런 걸 잘 알고 있을 만큼 옛날 사람이라든가.”

“정답인데? 죠타로의 생각보다 훨~씬 옛날 사람입니다.”

“…몇 살인데?”

“잊어버렸어요.”

“자기 나이를 잊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기.”

“…카쿄인은 할아버지야?”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래도 카쿄인은 카쿄인이야.”

“응. 당연하죠.”

 

나는 카쿄인이에요. 언제까지고 카쿄인 노리아키일 거예요. 카쿄인의 목소리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영원히? 죠타로가 물었다. 영원히. 카쿄인이 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카쿄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잔잔했다.

 

“영원히….”

 

죠타로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자신이 모르는 카쿄인의 모습 일부를 본 것 같았다. 그것이 참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카쿄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거의 없었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무얼 하며 지냈는지, 나이는 몇인지, 왜 이런 곳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모든 것이 비밀이었다. 죠타로도 그것을 궁금해 한 적은 없었다. 그런 걸 몰라도 카쿄인은 카쿄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은 궁금해졌다. 카쿄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제 잘 시간이에요, 죠타로.”

 

카쿄인은 평소처럼 상냥하게 속삭였다. 카쿄인이 죠타로를 눕혀주었고, 곧 부드러운 베개가 죠타로의 목덜미를 감쌌다. 따뜻한 이불이 죠타로의 목 끝까지 올라와 그를 덮었다. 카쿄인의 입술이 이마에 살포시 내려앉았다가 떨어졌다.

 

“잘 자요, 죠타로.”

 

죠타로는 꿈을 꾸었다. 자신은 호호할아버지가 되어있는데 카쿄인은 그대로인 꿈이었다. 꿈속의 카쿄인이 말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카쿄인 노리아키일 거라고 했잖아요. 영원히요. 꿈에서 깨어난 죠타로는 카쿄인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이 아주 어릴 적부터 보았던 얼굴과 달라진 게 없는 그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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