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유료

[승화承花] 마음과 마음에 대하여

21.11.08 유료발행

https://pnxl.me/z4h7ta 의 스토리로 예정해두었던 것을 다듬고 살을 붙여 유료발행합니다. 초고 수준입니다마는 공개된 부분과 스토리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며, 엔딩 부분만 조금 다릅니다. '둘은 언제 어떻게 왜 사랑을 하게 되었나'의 고민에서 시작된 글로, 개인적인 망상과 날조가 가득합니다.


 

 

 

 

마음과 마음에 대하여

 

 

 

 

 

 

 

 

 

 

 

 

 

 

 

1.

 

솔직히, 이집트까지 가는 길이 험난할 거라는 생각은 했다. 못할 수가 없었다. 쿠죠 가택 코앞-정확히 말하면 죠타로의 등굣길과 그의 학교였지만-까지 자객을 보낸 DIO다. 죠셉이 DIO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그쪽도 나름의 정보망을 갖추고 있을 게 뻔했다. 어쩌면 우리들보다 정보력이 좋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의 목표와 목적지를 간파하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일행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비행기의 추락은 정말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죠타로가 카쿄인과 조우한 이후, 그들이 이집트로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이틀도 안 됐기 때문이었다. 어느 항공사의 어느 비행기로 언제 출발하게 될지, DIO가 그것까지 알아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자객은 보란 듯이 해냈다. 하긴, 카쿄인이 발현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죠타로의 스탠드까지 어떻게 알고 있었겠는가.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물론 계획은 시시각각 어긋났다. 이번엔 바다에 불시착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또 하늘길을 쓴다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해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원이 보증된, 최소한의 선원만 태우고 이동한다면 괜찮을 줄 알았지. 어림도 없었다. 선장이 가짜였다. 어떻게 알고 껌딱지처럼 쫓아다니는 건지. 어찌 됐든 해치웠더니 기다렸다는 듯 배에서 폭발이 일어나 또 바다에서 표류. 잠시 후에 도착한 구조선도 뭔가 좀 이상하다 싶더라니, 그것 역시 적의 스탠드였다. 결코 녹록지 않은 싸움이었음에도 가벼운 부상-이라고 죠타로는 주장했다-만 입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지만, 몰아치는 적의 공격 속에서 그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몸을 갈아먹는 피로를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싱가포르의 호텔에 들어서며 들뜨게 되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푹신한 침대, 따뜻한 목욕, 맛있는 식사. 이 호텔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을 터다.

 

2.

 

“해야 하는 이야기라도 있나? 카쿄인.”

“무슨 말이야? 죠죠.”

“나와 같은 방을 쓰려는 이유가 단순히 학생은 학생끼리인 것 같지는 않아서.”

“역시 티 났어?”

“이름도 불러놓고 모르길 바랐다면 유감이군.”

 

정곡이었나. 카쿄인의 보라색 눈동자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더니, 할 말을 생각하는 듯 이리저리 움직인다. 죠타로는 그 얼굴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딱히 추궁하려던 것도, 반드시 답을 들어야 할 만큼 알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쩐지 대답을 기다리게 된다. 방황하는 눈동자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카쿄인은 제 목덜미를 매만지면서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남몰래 해야 하는 중요한 이야기라도 있는 것일까. 적 스탠드사에 대한 정보? 아니지, 그런 중요한 정보라면 이렇게까지 뜸을 들일 이유가 없다. 목을 덮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하는 피부가 붉었다. 또래인 게 덜 어색하지 않냐는 둥, 일본을 떠나온 이후 제대로 된 숙소에서 묵는 건 처음이지 않냐는 둥, 내 생각보다 너무 들뜬 것 같아서 민망하다는 둥….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음이 분명했다. 죠타로는 아무 말 없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얼른 얘기하라는 뜻이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카쿄인이 작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아, 들켜버렸네요~”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거다.”

“별거 아니야. 나는 그냥 너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거든….”

 

카쿄인이 쑥스러운지 웃었다. 죠타로는 고개를 까딱거리기만 했다. 친구라. 별 시답잖은 이유였다. 카쿄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죠타로는 사실 친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죠타로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주로 자신의 외모에만 관심 있는 시끄럽기만 한 여학생들이거나, 시비를 걸고자 하는 양아치들-자기도 만만찮은 불량아라는 사실은 무시하기로 했다-이었다. 어쩌다, 어쩌다 아주 가끔 저와 친구가 되고자 다가오는 이들도 있긴 했다. 그러나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기까지 한 죠타로의 성격 탓에 그들도 금방 나가떨어졌다. 별로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도 그들에게 마음을 줄 생각이 없었다. 입만 번지르르하게 살아서 나불나불 늘어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마음은 마음으로 통하는 법이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경 쓰였어? 호칭에 신경 안 쓰는 편일 것 같았는데.”

“아니.”

“그렇게 말해봤자, 거든? 죠-죠.”

“어이, 멋대로 오해하지 마.”

“네에~ 딱히 멋대로 오해한 건 아니니까요.”

 

대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폴나레프가 적 스탠드사의 습격을 받았다며 대책 회의를 위해 죠셉과 압둘의 방으로 집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3.

 

에보니 데빌과 싸우고 이래저래 귀찮은 일에 휘말린 폴나레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죠타로와 카쿄인에게 딱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만의 휴식은 달콤했다. 카쿄인은 푹신한 침대의 감촉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하니 더욱 노곤하여 늘어지고 만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기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카쿄인.”

“…어우, 깜짝이야. 왜 벗고 있는 거야?”

“그럼 네 녀석은 샤워를 옷을 입고 하나?”

 

죠타로가 웃통을 훌렁 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른하게 늘어져 있다 보게 되는 것이 반라의 모습이라니. 카쿄인이 놀라든 말든 어느새 다가온 죠타로가 카쿄인의 옆에 앉았다. 매트리스가 울렁였다.

 

“여기 내 침대인데요, 죠죠.”

“스트렝스와 싸울 때 어깨를 다쳤는데 혼자 하려니 불편하군. 좀 봐주겠어?”

“가벼운 부상이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니.”

“어쨌든 부상은 부상이니까.”

 

카쿄인이 연고를 받아들고는 이내 상처 부위에 발라주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카쿄인의 손길을 지켜보던 죠타로는 곧 그의 손과 팔에 여러 상처가 있음을 발견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들임이 분명했다.

 

“카쿄인. 그 상처들은 뭐지?”

“아. 다크 블루 문과 싸울 때 너를 구하려다가요.”

 

언제를 말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배로 건져 올릴 때, 바닷속으로 끌려갈 때, 회오리에 갇혀있을 때… 전부, 이 녀석이 나를 위해 제일 먼저 움직였다는 얘기군. 죠타로는 다 발랐다며 자신의 등을 툭툭 두드리는 카쿄인의 손을 잡아당겼다. 카쿄인은 그 힘에 휘청거리다 못해 그대로 고꾸라질 뻔했다. 영문을 몰라 죠타로를 올려다보니, 이젠 죠타로가 손에 연고를 들고 있었다.

 

“봐주지.”

“…괜찮은데. 그렇게 깊은 상처도 아니고.”

 

죠타로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카쿄인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죠타로에게 붙잡힌 손을 뺐다. 아니, 빼려고 했다. 죠타로가 손을 놓아주기는커녕 꽉 잡고 우악스럽게 상처들을 눌러대는 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고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 아아! 아파, 아파요!”

“괜찮다며?”

“그렇게 하면 당연히 아프지! 그러는 죠죠, 너도 가벼운 부상이랬잖아!”

 

카쿄인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것쯤 혼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죠타로는 자신의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카쿄인은 한숨을 쉬었다. 부탁한다고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진작에 그랬어야지. 죠타로가 낮게 웃었다. 그는 자신에 비하면 한참이나 얇고 가는 카쿄인의 손가락, 손목, 팔목에 연고를 찬찬히도 발라주었다.

 

4.

 

“오늘 쓰러트린 옐로 템퍼런스라는 놈 말인데.”

“나로 변신하고 있었다는 녀석 말이야?”

 

카쿄인이 기차의 객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문이 제대로 잠긴 것까지 확인한 후 시선을 돌리니 뚱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죠타로와 눈이 마주쳤다. 어째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래? 죠죠.”

“이름으로 불러봐.”

“갑자기?”

“얼른.”

“…죠타로?”

 

카쿄인의 추측이 맞았다. 죠타로는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카쿄인 때문은 아니고, 그로 둔갑했던 옐로 템퍼런스라는 놈 때문에. 죠셉과 압둘이 허밋 퍼플의 암시를 통해 카쿄인은 배신자며 DIO의 부하라는 정보를 얻은 상태였었다는 것도 들었다. 당시 죠타로는 그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어쨌든. 동료를 의심하게 하다니, 저급한 놈. 팀이 무너질 뻔했다. …역시 더 두들겨줄 걸 그랬다.

그날따라 카쿄인에게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다. 예의 바르고 고상했던 평소의 모습은 어디 가고 폭력을 휘두르며 상스러운 말투를 쓰지 않나, 체리를 혀로 굴리는 모습은 기괴할 정도-카쿄인도 비슷한 습관이 있는 줄 몰랐지만 그에 비하면 카쿄인은 아기들 장난 수준이었다-였다. 무엇보다 말투에서 오는 느낌도 달랐다. 카쿄인은 육신의 싹이 박혀 그를 공격했을 때를 제외하면 그를 비꼬거나 조롱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죠타로 선배라거나, 죠타로 군이라거나, 그런 낯간지럽고 새삼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을 붙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눈앞의 카쿄인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릴 수 있었다. 진짜 카쿄인이라면 오히려 친근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죠-타로. 왜 말이 없나요?”

 

이렇게. 그래, 이게 진짜 카쿄인이다. 가짜와는 전혀 다르다.

 

“아아, 잠시 다른 생각을.”

“뭐야, 정말.”

“그건 그렇고, 카쿄인.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으응?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며?”

“생각이 바뀌었다.”

 

이게 더 좋아. 카쿄인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그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죠타로가 만족했다는 듯이 웃었다.

 

5.

 

둘은 확실히 빠르게 가까워졌다. 함께 여행하다 보니 일행 모두와 두루두루 원만하게 어울리긴 했는데, 아무래도 또래다 보니 주변 어른들보다는 서로가 제일 편한 듯했다. 죠타로는 카쿄인이 말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색한 적은 없지만 고된 여행이 힘들긴 한 모양인지, 카쿄인은 가끔 이동 중에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그럼 죠타로는 그를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처음에는 닿자마자 흠칫 깨어나 미안하다며 사과하곤 했는데 점점 익숙해진 모양인지 이제는 잘 깨지 않았다. 그러면 죠타로는 종종 자신에게 기댄 채 곤히 잠든 카쿄인의 머리를 목 받침 삼아 잠을 청하곤 했다. 죠타로는 어쩐지 그게 퍽 마음에 들었다.

카쿄인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해주었다. 생일은 8월이고, 좋아하는 색은 녹색이고, 뭐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 말이다. 그 이외의 것들도 죠타로가 물어보면 상냥하게 답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카쿄인이 유일하게 피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었으니, 바로 DIO와 만났을 때의 이야기였다. 아주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죠타로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어쩌다 그때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카쿄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때문이었다. 본인에게도 안 좋은 기억일 것이고,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억지로 말하게 하는 취미도 없었다. 그의 가라앉은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죠타로에게 그가 충분히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스승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카쿄인에게는 능숙함이 있었다. 스탠드가 발현된 지 얼마 안 된 죠타로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실력의 차이가. 물론 죠타로도 스탠드를 나름 무리 없이 다루긴 했지만 카쿄인 앞에서 주름잡을 실력은 아니었다. 스탠드를 꺼내고 집어넣는 것도 카쿄인이 한 수 위였다. 선천적인 스탠드사라서 그런가, 무의식적으로도 스탠드를 다룰 수 있는 모양이었다. 엄청 행복하고 편안한 꿈을 꾸고 일어났더니 하이에로펀트가 방 안 가득 풀어져 있었더라는 말에 죠타로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스탠드를 보다 정확하고 심도 있게 파악하고 있는 것도 카쿄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이에로펀트의 능력을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강점은 뭐고 약점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인지, 이런저런 것들 전부. 그래서 카쿄인은 죠타로에게 스탠드의 활용에 대해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곤 했다. 스타 플래티나의 사정거리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측정을 도와준 것도, 하이에로펀트같은 원거리형 스탠드사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 같이 의논하고 검토하고 실험 대상이 되어준 것도 그였다.

 

“제법이군, 카쿄인. 그런데 너, 스모 좋아하나?”

 

그러니 카쿄인도 덩달아 스타 플래티나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하이에로펀트로 잡아주었으니 그 뒤는 네 역할이다. 그러나 카쿄인은 말하지 않는다. 죠타로를 바라볼 뿐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럼. 엄청 좋아하죠. 하지만 죠타로, 주먹으로 때리는 건 반칙이잖아요.”

 

카쿄인은 이 느낌이 좋았다. 서로를 믿고 있다는 느낌, 서로가 통하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확신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고, 짜릿했다. 그것은 죠타로도 마찬가지였다.

 

6.

 

“카쿄인.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죠타로의 등 뒤에서 카쿄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휠 오브 포춘과 싸우느라 얻은 가벼운 화상들을 살피고 있던 탓이다. 카쿄인은 샤워 후의 죠타로가 상의를 입지 않고 불쑥 나타나는 것에도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놀라는 일 없이 옆자리를 두드리며 앉으라고 하면, 죠타로는 군말 없이 앉아 카쿄인의 손길에 몸-부상들과 상처-을 맡겼다. 이제는 서로 부상을 봐주는 것이 일과의 마지막이 된 듯했다. 카쿄인의 몸 이곳저곳에도 죠타로가 붙여준 밴드들이 잔뜩이었다.

 

“너도 스탠드사라서 불편한 점이 있었나?”

“으응?”

“그러니까… 나는 스탠드가 처음 발현됐을 때 내게 악령이 붙은 줄 알았거든.”

“악령이라.”

“어이, 웃지 마.”

“네에, 네에.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뭐, 이상한 아이였지. 남들 눈에 말이야.”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담담했다. 죠타로는 카쿄인의 표정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웃고 있을 것이다. 초연한 얼굴로,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뭐….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스탠드사를 만난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너와 만나게 되었을 때는 조금 두근거렸다고 해야 할까?”

“그런 것치고 우리의 첫 만남은 영 별로였던 것 같은데.”

“…그건 좀 잊어주면 안 될까요, 죠타로.”

“그걸 어떻게 잊나? 영원히 잊지 못할 걸.”

“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짝!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등짝이 얼얼했다. 난데없이 얻어맞은 죠타로가 험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빨갛게 올라오는 손자국에 카쿄인이 씩 웃었다.

 

“자! 약 다 발랐어. 이제 자자고. 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좋아. 하지만 나도 당하고 만 못 있지. 네 녀석도 등 이리 대.”

“싫다고 한다면?”

“실력행사를 하는 수밖에.”

“아니, 스탠드는 반칙이지!”

 

7.

 

여행은 계속되었고 DIO가 보내는 자객들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안개가 자욱이 껴서 머무르게 된 호텔은 사실 환상이었고 마을 주민은 스탠드가 조종하는 시체였다든가. 폴나레프는 또 화장실과 관련해서 험한 꼴을 당한 모양이었고 죠셉은 신이 나서 놀려댔다. 죠셉이 러버즈의 인질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적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죠타로가 이런저런 수모를 겪기도 했다. 죠셉의 안전이 확보되자 성에 찰 때까지 두들겨 팼다고 하니 뭐, 그 녀석은 엔간해서는 재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들을 무찌르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은 여전히 DIO와 그가 보내는 자객들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는 얻지 못한 상태였다. 정보를 위해 살려두고 있던 엔야 할멈까지 죽임을 당한 탓이다. 그래도 그들은 꾸준히 나아갔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파키스탄에서 아랍에미리트로 향하는 배였다. 씻고 나온 죠타로는 방에 카쿄인이 없다는 걸 눈치챘다. 평소 같았으면 저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설마 적의 공격인가? 죠타로는 카쿄인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죠타로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쿄인. 여기 있었나.”

“…죠타로?”

 

그는 갑판 위에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던 카쿄인이 죠타로의 부름에 몸을 돌렸다. 그가 무사한 걸 확인한 죠타로가 미소를 지었다.

 

“미안. 찾아다녔어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 줄은 몰랐네.”

 

어느새 카쿄인의 옆에 다가와 선 죠타로가 아니라고 답했다. 둘은 말없이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았다. 달빛은 밝았고 별은 반짝였으며 바다는 잔잔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소리와 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주 평화로웠다. 죠타로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카쿄인.”

“응?”

“불안한가.”

 

다소 뜬금없이 죠타로가 물었다. 카쿄인이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알았어?”

“뻔하지.”

 

그게 뭐야. 카쿄인이 작게 웃으며 다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죠타로의 말은 사실이었다. DIO가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카쿄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집트에 가까워지면서 그의 불안도 커졌다. 이겨서 돌아갈 거라고 믿는 것과는 별개로 당장의 내일도 불확실한 것이 사실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올지 모른다. 부정적인 감정은 전파가 빠르고, 우리의 여행은 하루하루가 귀하고 빠듯하다.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았다가 모두에게 공포심이 심어진다면? 그래서 결국 일정이 차질이 빚어진다면. …절대 안 된다. 카쿄인이 택한 것은 침묵이었다. 그게 익숙하고 편했다. 죠타로에게 들켰을 줄은 몰랐지만.

 

“괜찮아. DIO를 이긴다. 방해하는 놈은 전부 쓰러트린다. 그 뿐이다.”

“그래…. 단순하지만 확실하네. 그 방법밖에는 없고.”

 

푸흐 웃은 카쿄인이 바다를 향해있던 몸을 돌렸다. 하늘과 바다를 등진 모양새로, 죠타로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죠타로.”

“음?”

“나, 너희 동네 지리를 잘 모르거든. 나중에 안내해줄래요?”

“어려울 것 없지.”

 

카쿄인은 싸움이 끝난 이후를 가정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함께 등하교하고, 서로의 도시락을 나눠 먹고,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땡땡이도 쳐보고-여기서 카쿄인은 기함하고 말았다-, 각자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가는 이야기들을. 솔직히 죠타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혼자가 좋았으니까. 아무도 자신을 방해하지 않고, 시끄러운 사람들도 없는 그런. 하지만 카쿄인의 말을 들으면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죠타로. 네 생일이 2월이랬지?”

“그런데?”

“이 여행이 끝나면 신정은 지나있겠지만… 네 생일은 축하해줘도 돼?”

“그게 허락까지 받아야 하는 일인가. 애초에 그런 것쯤은 지금 해줘도 되잖아.”

“안 돼! 그런 건 당일에 해줘야 한다고요. 낭만이라는 게, 감성이라는 게 있잖아!”

“못 살겠군.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죠타로는 알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약속은 카쿄인 나름대로 의지를 다지는 방식이라는 것을.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을 잔뜩 만들어놓는다. 그러면 그 날이 기다려져서라도 반드시 이겨서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까 이건 그만의 불안을 이기는 방법인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죠타로는 기꺼이 어울려주었다. 그렇게 약속을 만들 때마다 카쿄인은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쁘다며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어 보였으므로. 죠타로는 그 표정을 부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오래도록 보고 싶었다.

 

8.

 

밤의 사막은 추웠다. 사막의 일교차가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 직접 겪어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태양의 스탠드로 인해 엄청난 더위를 겪다가 갑자기 기온이 낮아지니 더 힘든 것 같았다. 다행히 스탠드는 큰 피해 없이 해치웠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지체된 상태였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피로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해야겠다는 죠셉의 말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밤이 되어 이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랫바닥은 눕기엔 다소 불편했으나 그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일행은 빠르게 잠들었다.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올까. 그렇게 생각한 죠타로가 일행과 조금 떨어졌을 때였다.

 

“…이제 나오지 그래. 나 혼자 뿐이다.”

 

아까부터 누군가가 그를 미행하고 있었다. 어쩐지 아까 그 녀석은 쉽게 쓰러트렸나 했더니, 다른 놈이 또 있었나. 하지만 뒤를 돌아본 죠타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미행하던 자는 다름 아닌 카쿄인이었기 때문에.

 

“카쿄인?”

 

카쿄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상처는 아까 봐주었으니 그건 아닐 테고. 또 불안해진 모양이지. 죠타로가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 손짓에 몇 번 눈을 깜빡인 카쿄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

“하고 싶은 말?”

 

그게 뭐지? 죠타로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좋아해, 죠타로.”

“그래. …뭐?”

 

잠시 망설이다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죠타로는 이게 진심으로 하는 말인 건지 장난인 건지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말하는 카쿄인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고, 그의 표정 역시 아주 평온했으므로. 마치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카쿄인은 이런 걸로 장난을 칠 인물이 아님을 죠타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죠타로에게 카쿄인이 못을 박는다.

 

“좋아한다고. 내가, 너를.”

 

죠타로도, 카쿄인도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 속에 밤공기가 무섭도록 차가웠다. 죠타로의 손에 들린 담배만 눈치 없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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