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마스코트 탈출조건

24.05.12 빵준전력 "마법소년"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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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님의 <마법소년 탈출조건> 제목 패러디. 내용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정말로)

허락은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내용일 줄은 몰랐겠지!

DO NOT BLOCK ME

우리가 사는 지구를 제1지구라 가정하고, 그들이 사는 곳을 제3지구라 명명해 보자. 둘 사이에 어느 정도 간극이 있냐 하면, 제1지구 1호선에서 취객과 스님이 철권을 할 때 제3지구에서는 로브를 쓴 미소녀 마법사가 지팡이를 입에 물고 폭죽 쏘는 진상을 양으로 바꿔버렸다.

그렇다. 마법. Magic. 눈속임이 아니라 대자연의 힘을 빌어 물과 불을 쏘는 그것. 제1지구가 화석연료로 지구를 혹사하고 있을 때 제3지구는 마법으로 자연을 쪽쪽 빨아먹었다. 견디다 못한 제1지구의 관리자와 제3지구 관리자가 극적 타결을 한다.

이쪽 지구 잉여 마력을 넘겨줄 테니 너희가 환경 문제 좀 해결해 주라. 콜? 콜!

그렇게 환경파괴로 우주멸망 급속열차를 탔던 제1지구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린다(제동 걸린 게 이 정도니 제발 환경을 소중히 여기자 지구인들아).

그럼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무슨 수로 제1지구의 환경을 지켰느냐. 탐욕이라는 악귀에 씐 (혹시 씐 듯한) 사람을 때려 잡...이 아니라 퇴마...도 아니고 신비하고 기적 같은 마법으로 구제했다. 사람...이 아니라 악귀를 때려잡는 게 환경 문제 해결에 무슨 상관이 있냐 하면....... 작게는 쓰레기 유기하는 놈부터 크게는 아마존 밀림을 불태운 사업가까지, 대상의 스펙트럼이 넓었다는 이야기만 해두겠다.

다만 이 인적자원 교류에는 제한이 걸린다. 제1지구 관리자의 제안... 이라지만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너무 강한 힘이 작용하면 세계의 법칙이 흔들릴 수 있어 위험하니 파워밸런스를 맞춰달라는 취지였다. 활약할 무대는 제1지구니 제3지구 관리자는 최대한 그쪽 요구사항을 수용하려 했다.

세계를 흔들지 않을 정도의 미성숙한 힘일 것. 좋아, 그럼 아직 정식 마법사가 아닌 견습들로 보내자. 그래도 세기의 천재가 있으니 힘의 총량을 제한할 단말기를 둘 것. 좋아, 그럼 견습에게 마력을 빌려줄 수 있는 무언가를 파트너로 맺어 보내자. 그 단말기는 반드시 귀여운 형태일 것.

어? 잠깐만, 이 새끼? 여기서 수상한 낌새를 느낀 제3지구 관리자가 다시 회담을 연다. 그 기록을 잠시 엿보자.


3관리자 그런데 왜 하필 어린애들이냐.

1관리자 정정해달라. 정확히는 소년, 소녀다.

3관리자 그러니까 지금 미성년자를 원하는 거 아니냐.

1관리자 그런 발언은 날 이상 성욕자로 매도하는 행위다. 어디까지나 순수한 아이들의 소망으로 세계를 지키고 싶은 거다.

3관리자 단말이 굳이 귀여운 형태일 이유는 뭐냐.

1관리자 귀여우면 개이득이지 않나.

3관리자 본심은?

1관리자 마스코트 짱!

3관리자 이 자식 격리해.

1관리자 마법소년 짱!


아무튼, 제1지구 관리자의 강력하고 사심 섞였지만 타당한 요구로 파견은 견습 마법사들이 담당하게 된다. 견습들을 가르치던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반발한다. 성년도 안된 애들을 다른 세계로 보내라고요? 숙식은 그쪽에서 해결해 준답니다. 애들이 판단 잘못해서 아무나 때려잡으면 다니면요? 페어를 맺는 단말을 통해 지령을 보내면 되잖아요. 학부모가 반발하면요? 그럼 지원자만 받아요. 지원자가 없으면요?

아,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세계의 관리자로부터 지시를 받았으니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켜야 했다. 간만에 아이디어를 잔뜩 굴려대던 아카데미 총장이 혜안을 내놓는다.

졸업 평가 가산점 항목으로 넣읍시다.

견습 마법사 파견은 순식간에 아카데미의 핫이슈로 떠오른다. 졸업 평가에 따라 마법사의 등급이 정해지고, 등급은 이후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등급은 5년에 한 번씩만 재평가가 가능한데, 쪼잔하기로 소문난 아카데미 성적에 가산점?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불같은 성적 지옥은 제3지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제1지구 파견을 자원하는 견습 마법사는 넘치다 못해 줄을 섰다. 아직 마법사가 되지 못한 어린 소년과 소녀들. 소위 말하는 마법소년과 마법소녀는 제1지구 파견의 꿈을 꾸고 단말—주로 하급정령. 제3지구 관리자는 차마 마스코트라는 단어를 내뱉지 못 했다—과 계약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전영중과 성준수는 마스코트... 아니 단말과의 계약에서 처참히 실패한 쪽이었다. 학교에 속한 단말과 계약해야지만 마법소년 지원이 가능한데, 이 우등생 둘은 계약을 맺는 것보다 상대의 계약을 빠그라트리는 데 더 집중했다.

『잘 해낼 수 있겠니.』

"교수님들께 확인하셔도 돼요. 얼음 계열로는 제가 탑이니 분명 궁합이 좋을......."

"요, 준수. 이젠 정령한테도 사기를 쳐? 준수 화염 전공이었다는 건 왜 쏙 빼먹지? 얼음 정령과 계약하고 제1지구 가서 얼리고, 녹이고, 얼리고, 녹이고 마력 낭비하는 거 아냐? 가뜩이나 마력 부족한데 제1지구 마력까지 다 소진하고 오려고?"

"아니 씨발, 전공 바꾼 지가 언젠데 아직도 화염 타령이야?"

"아, 하긴 준수 화속성 밀려서 전과했지? 그래도 속성 올인은 너무하지 않아? 준수는 밸런스라는 개념을 모르나? 준수 제1지구 가면 북극에서 빙하나 만들다 오려고?"

그러는가 하면.

『균형에 맞게 힘을 잘 키웠구나. 분명 좋은 마법사가 되겠어.』

"그렇죠? 그러니까 저와 계약하시면......."

"오우 우리 영중이, 이제 정령이랑 계약도 다 하네? 니 어렸을 때 결계 치다 글자 하나 틀려서 빵꾸났다고 운 건 말했냐?"

"준수야, 언제 적 얘길 아직도 우려먹어? 그 얘기 하도 우려서 맑은국밖에 안 나오겠다."

"니 장애물 있으면 술식 꼬다가 타이밍 놓치는 버릇은 고쳤냐?"

"준수같이 앞에 뭐가 있든 말든 일단 쏴서 박살 내는 쪽이 비정상 아냐?"

이렇게 계약이 성사되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타나 어깃장을 놓았다. 내 계약은 조져놓고 너 잘되는 꼴만 두고 보라고? 어림도 없지!

제1지구에서의 실적이 마력 증대로 이어지는 만큼 정령도 좋은 마법사와 계약하길 원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성적이고 나발이고 툭하면 서로를 잡아먹으려 드는 두 견습 마법사와 계약해 파견 나갔다가 거기서도 방해받으면 곤란하다. 실적 떨어진다고. 정령으로 태어났으니 상위 정령 찍고 기왕이면 야심 차게 왕 자리도 노려봐야 하는데 시작부터 팔자를 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사람이 계약 기피 대상에 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계약의 기역을 꺼내기만 해도 포르르 사라져 버리는 정령들을 보고 그제야 뭐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와하하! 봤어? 준수랑 눈만 마주쳐도 도망가는데?"

"뭘 좋다고 쪼개? 좆된 건 너도 마찬가진데."

하하, 내가 뭐...... 라고 반박하려다 입을 다문다. 그러게? 요새 준수 쫓아다니느라 계약 얘기를 잘 안 하긴 했는데, 정령들에게 외면받는 건 저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서서히 짓눌리는지도 모르고 산지 벌써 일 년. 졸업을 앞두고 쥐꼬리만 한 점수라도 더 올려야하는데......? 방글방글 웃던 전영중의 눈매가 굳어진다. 이미 대다수의 동기는 제1지구에 파견 나갔다 슬슬 돌아오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아냐, 생각하지 마. 준수는 생각해 봤자 이상한 결론만 내니까."

"아니 이 씹... 일단 들어봐. 너나 나나 정령이랑 계약하는 건 텄으니까."

"그러게 왜 남 계약하는데 방해하고 그래?"

"이게 미쳤나, 먼저 아가리 턴 건 너거든?"

"순진한 정령 속여서 계약하려는 데 예비 마법사로서 두고 보면 안 되니까."

"니 얼려서 분수대에 장식해 놓기 전에 지랄 작작 해라."

"해보든가!"

교복 안에서 스태프가 튀어나오고, 칼싸움인지 마법전인지 주먹다툼인지 모를 난장판이 벌어졌다. 마력을 다 소진하고도 끝나지 않은 싸움은 당연히 육탄전으로 번졌고, 커다란 덩치가 엉켜 정원을 굴러다니며 싸워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한 대에 전영중이 들어간 결계를 폭파시킨 사건, 한 대에 밴시들 앞에 성준수를 버리고 갔던 일. 해묵은 원한이 핏방울과 함께 후드득 떨어져나왔다.

입술이며 뺨이며 퉁퉁 붓고 터져 주먹 들 힘도 없어져서야 대화가 재개됐다. 엉망이 된 얼굴은 놔두고 타버린 바짓단부터 복구하는데 그마저도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였다. 씹. 저 새끼 상대한다고 마력을 다 써서.......

"너나 나 둘 중 하나가 단말이 되면 되잖아."

"준수 혹시 정령 핏줄이었어? 나는 하도 하얘서 섞였으면 유령 쪽일 거라 생각했는데."

"너 내가 하얗다고 생각했냐?"

"......아무튼, 정령도 아닌데 어떻게 단말이,"

"내가 하얘?"

"......네 말에 토 안 달 테니까 계속 말해주라."

"말 돌리냐?"

씨발. 성준수 건수 잡았네. 거기서 왜 쓸데없이 하얗다는 말을 덧붙였지. 그냥 악귀 같아서라고 해도 됐을 텐데. 전영중이 얼굴을 문지르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설마 내 무의식? 나 평소에 준수를 하얗다고 생각했나?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집중력 높은 마법사답게 사고의 줄기가 순식간에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찰나, 훼방 놓듯 성준수가 집요하게도 되물었다.

"내가 그렇게 하얬어?"

"아니 그럼 네가 하얗지 까맣냐!"

전영중의 사자후에 저마다 담소를 나누던 정원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금 전까지 불꽃 튀기며(진짜로 불이 났다) 싸우다 머리채 쥐어 잡고 주먹질하더니 이제는 네가 하얗다고 소리 지르기? 그것도 남자가 남자에게? 싸움에서 사랑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와우. 요즘 애들 빠르네.

와, 진짜 죽고 싶다. 전영중은 참담함을 삼키며 성준수를 보았다. 제 승리를 확실한 얼굴이 얄미웠다.

"무슨 수로 단말이 된다는 건데."

"제1지구 관리자는 단말 조건으로 '마력을 빌려줄 수 있는 귀여운 형태'만 제시했어. 정령으로 정한 건 우리 쪽이었지."

"미안한데, 혹시 스스로가 귀엽다고 생각해?"

"언제부터 내가 하얗다고 생각했냐?"

"...알았어. 이젠 진짜 듣기만 할게."

이 자식은 꼭 말로 패놔야 고분고분하지. 전영중이 입을 꾹 다물고 나서야 성준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변신술 배웠잖아."

포유류, 어류, 조류, 다양한 종으로 변하는 연습을 했지만 어느 마법사에게든 맞는 동물이 있다. 변신술 수업은 다양한 종으로 변하고 특성을 파악하는 한편 원래 제 몸이었던 것처럼 움직이기 편한 동물을 찾는 수업이기도 했다. 함께 수업을 들었기에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성준수는 고양이었다. 그것도 양말 신은 러시안 블루. 진짜 귀여웠는데.

"아 씨발!"

전영중 미쳤냐? 뭐, 성준수가 귀여워? 하얗다에 이어 귀여워? 아예 사랑스럽다고 하지? 잠깐만. 준수가 성격이 좀 지랄맞다 뿐이지 그래도 괜찮은 편 아닌가? 자기 앞가림 잘하고. 그리고 잘생겼잖아.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은 아니지. 아니, 지금 뭐라는 거야! 지금 준수 사랑스러운 거 맞다고 변명해? 변명이 아니라, 사랑스럽단 말 굳이 부정할 필요 있나? 그냥....... 그냥 뭐! 아니야! 더 생각하지 마!

전영중의 자아가 전지킬과 전하이드로 갈라져 싸우는 걸 지켜보는 성준수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영중이 대뜸 욕부터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사람이 단말이 되는 경우는 아직 없었고, 제1지구로 가면 그쪽의 규칙에 따라 단말은 내내 변신한 모습으로 지내야 할 수도 있는데 당연히 거리낄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달린 문제니까. 쟤는 섬세해서 그런 거에 민감할 수 있지.

마구 구겨지는 얼굴을 보며 성준수도 큰 결심을 한다.

"......그렇게 싫냐?"

"어?"

"아주 질색을 하네. 그렇게 싫으면 단말 역할은 내가 할게. 어쨌든 점수는 따야 할 거 아냐."

"응?"

"대신 교수님 설득은 니가 알아서 해라. 마법소년이랑 단말 둘 다 점수 달라고."

"엇."

"제1지구 가서 실적 못 채우면 뒤질 줄 알아."

뭐지? 지금 준수가 자발적으로 반려묘가 되어주겠다고 선언한 거야? 그럼 젤리... 만져도 되나? 예상치 못한 제안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돌발적인 사고를 하는 사이에 성준수는 넋 놓은 전영중을 끌고 파견 담당 교수님을 찾아간다. 야, 설명. 쿡 옆구리를 찌르자 전영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확정되어 버린 둘의 계획을 늘어놓는다.

아이들답게 창의적인 계획을 들은 교수는 생각한다. 이 학생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지만 요새 계약할 정령의 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 썩을 하급 정령들이 제1지구 몇 번 다녀오더니 배가 불러서 아 요새 힘 좀 불려서 나는 안 가도 될 거 같은데? 라며 뻗대지를 않나, 자기가 계약 못 한 걸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방치했다고 학부모가 민원 넣어대질 않나. 형평성이 어쩌고, 성적이 저쩌고. 차라리 자발적으로 살길을 찾아온 미친 학생 둘이 조금은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원래 기획이라는 게 통과 안 되면 헛소리지만, 통과 되면 혁신인 법이다. 가보자고. 교수가 관리자에게 연락을 넣는다.


고양이? 너무 좋지.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해도 되냐고? 더 좋지! 근데 사람 모습으로 있을 거면 귀랑 꼬리도 달... 이거 놔! 여긴 내 관리구역이야!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되잖아!


변신술로 동물 형태를 취한 인간을 단말로 사용해도 되지만, 인간 형태를 취하면 동물의 특징을 신체에 남겨달라 회신받는다. 이거 좀 매니악한 취향 아니에요? 제3지구 관리자는 한참 말이 없다 마법소년과 구분 짓기 위한 그쪽의 요구였다고 답했다.

그런 연유로 1인실인 기숙사에 전영중 외에 188cm의 다소 큼직한 소년이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달고 침대를 무단 점거했다. 이쪽 관리자 취향 진짜....... 원래 달려있지도 않던 꼬리로 이불을 쓰는 소리가 미묘하게 거슬렸다. 아니, 너무 신경 쓰이잖아.

"야, 눈알 굴리지 말고 집중해서 보고서 써라."

"알겠으니까 고양이 모습으로 있으면 안 돼?"

"왜?"

너 같으면 소꿉친구의 어정쩡한 동물화를 보고싶겠니....... 변신술 수업이었으면 당장 F 맞았을 어중간한 변신이 여기서는 필수였다. 그게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너무 싫기도 했고. 도저히 못 봐주겠네—여러 의미가 담긴 감상이었다.

괜히 또 시비야. 대답 대신 입을 다물자 성준수는 그렇잖아도 고양이 같던 눈매로 고양이처럼 흘겨보며 수집한 악귀의 코어를 입에 넣었다. 아삭. 보석같이 생긴 그것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입안에서 부서졌다. 팔을 괴고 모로 누워 입에 넣는 탓에 소리와 달리 그다지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코어를 과자처럼 씹는 건 보기 좀 그렇지.......

성준수는 제1지구와 제3지구를 잇는 단말이 되면서 수집한 코어를 섭취할 수 있게 됐다. 악귀를 처치하면 등급에 맞는 마력이 담긴 코어가 나오고, 단말이 코어를 섭취해 소진한 마력을 채운다. 마법소년을 보조하느라 빠진 마력을 다 채우고 난 후의 잉여분은 그들이 살던 세계로 전송된다. 단말이 얼마나 많은 잉여마력을 전송하느냐. 그게 단말과 마법소년의 실적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아카데미의 우등생 둘이었으니 파견 한 달 만에 수집한 코어 양이 상당했으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준수햄!"

"으냐악!"

"와아악!"

침대에 누워있던 성준수가 1미터는 튀어 오르더니 고양이로 변해 전영중에게 달려들었다. 와, 방금 육성으로 고양이 소리 낸 거야? 미치겠다 진짜. 그게 네 덩치에 할 소리야? 준수, 고양이로 좀 지냈다고 진짜 자기가 고양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와중에 제 머리에 찰싹 달라붙은 고양이의 심장이 놀랐는지 빠르게 콩콩 뛰는 게 귀여웠다. 아니 미친, 아니야! 성준수 안 귀엽다고!

"이새끼야, 내가 노크하고 들어오랬지!"

"앗 죄송....... 근데 지금 고양이 소리 낸 거예요?"

"씹...... 고양이로 변하느라 그런 거야. 왜, 뭔데?"

고양이 모습으로 쌍욕을 한 바가지 해놓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변명이야....... 핀잔 대신 전영중은 머리에 올라탄 고양이를 붙잡았다. 반항 없이 순순히 몸을 내준 고양이는 품에 안고 턱을 긁자 기분 좋은 듯 눈을 감더니 이내 팔에 늘어졌다.

"아 그게, 햄들 마력 충전 때문에 애먹고 있잖아요."

"그렇지."

둘의 문제가 이거다. 성준수가 인간 단말인 탓에 마력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았다. 정령이야 힘을 빌려주고 받는 게 본능에 가까웠으니 마법소년에게 전송하는 게 능숙했는데 사람은 아니다. 세계의 제약에 따라 마법소년이 소비한 마력은 오로지 단말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는데, 둘 사이의 마력 이동이 영 신통치 않았단 소리다.

마력을 넘겨주는 술식이 있긴 하지만, 서포트 계열인지라 화력에 미친 십 대 소년들은 존재하는 것만 알고 이론, 실전 무엇 하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어버린 전영중의 마력을 강제로 채워줄 방법이 없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다른 단말에게 물어봐도 정령들은 『그 아이가 충만해지길 바라면 된단다』 이딴 소리나 하고. 결국 자연히 발산된 마력을 전영중이 흡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효율 나쁜 무선충전기였다.

충전 효율이 나쁘니 전영중은 최대한 마력을 아끼며 마법소년으로 활동했는데... 그것도 얼마나 갈지 미지수다. 요새 마력 잔량이 반도 안 되는 거 같던데.

그런 선배들의 사정을 잘 알던 기상호가 엄청난 비밀을 발설하듯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섹○하면 마력이 충전된대요."

"......."

"......."

이게 무슨... 진짜... 아.......

믿기지 않는 제안에 시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침묵이 내렸다. 저 발언이 꿈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전영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호야."

"네?"

"가라."

"아니,"

"이 씹새끼, 너 또 공부는 안 하고 이상한 거 처봤냐?"

"잠만요, 뭘 본 건 맞는데, 아니, 막 던지는 말이 아니라, 근거가 있다니까요?"

"없으면 그땐 뒤지는 거야."

"아니, 진짜, 햄, 햄들 붙어있을 때 마력 더 빨리 차지 않았어요?"

팔 위에 늘어져 있던 고양이의 근육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능숙하게 턱을 긁던 손도 멈췄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끼고 펄쩍 뛰어오른 고양이가 경계하듯 침대 구석으로 도망갔다.

"아냐."

"그러게?"

"뭘 씨발 '그러게' 이러냐? 저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휘둘려?"

"내 마력이 차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러고 보니 접촉하고 있을 때 더 잘 차는 것 같기도?"

"이게 말입니다, 완전 생뚱맞은 말 같지만 아니란 말이죠. 페○트나 센○넬AU만 봐도 마력이 급하면 섹○했다구요."

"페... 뭔 에이유? 그게 뭐야?"

"이름은 됐고, 공통적으로 섹○가 사용된 걸 보면 이곳 인간들이 뭘 보긴 했다는 거죠. 다 레퍼런스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수로 차원이동해 넘어온 우리 쪽 사람들이라던가?"

"그딴 걸 만든 새끼가 음란마귀에 씐 거겠지! 퇴치해! 그것도 악귀야! 너 그리고 미성년자가 그런 건 어디서 본 건데!?"

"못 믿겠으면 섹○말고 키스부터 해보시죠."

전영중의 반응에서 확신을 얻은 기상호가 성준수가 뭐라 하든 말든 우직하게 저 할 말만 내뱉는다. 아니 그렇지만 미디어에서 섹○ 시키는 이유가 다 있을 거라니까요? 섹○는 하면 한쪽이 손해 볼 수 있지만 키스는 아니잖아요? 남자답게 함 비비시죠?

"남자답게는 시발, 나가!"

듣다 못 한 성준수가 기상호를 밀어내고 문을 닫는다. 쾅! 큰 소리에 쫑긋하게 솟은 고양이 귀가 움찔거렸다. 음, 역시 귀엽... 아니, 키스 그거.......

가능할 거 같은데?

질색하는 성준수와 달리 전영중은 침착하게 입술 비비는 상상을 해본다. 생각보다 역겹지는 않은 듯? 아니, 괜찮... 지 않나? 성준수 정도면 할만하지?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너 진짜 돌았냐?"

"상호 말대로 섹○는 둘 중 한쪽이 희생해야 하지만 키스는 아니잖아. 키스까지는 할만하지 않아?"

확실히 전영중은 성준수보다 화술이 뛰어난 게 분명했다. 여기서 대뜸 '키스하자'고 내뱉었으면 성준수는 '지랄 마라'고 반박했을 텐데 비교 대상으로 섹○를 꺼내 들었으니. 당연히 섹○보다 키스가 백배 낫지. 바지 까고 ○추 비비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까고 입술만 비비는 게 당연히 휠씬 쉬운 거 아냐? 개이득인데? 별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궁지에 몰린 지능이 알아서 타협점을 찾는다. 둘 다 안 한다는 선택지는 슬그머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거 개수작이면 니랑 기상호 둘 다 죽는 줄 알아라."

"알았으니까 이리 와서 앉아."

"하, 시발, 진짜, 개씨발......."

허벅지 위를 툭툭 두드리자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성준수가 다가와 앉는다. 허벅지가 맞닿으며 느껴지는 체온이 지나치게 신경 쓰였다. 얘랑 이딴 자세로 키스를....... 닫힌 입술에 말캉한 살덩이가 부딪히자 질끈 눈을 감으며 입을 벌렸다.

잠시 습한 숨이 오가고, 천천히 감긴 눈이 뜨였다. 긴 꼬리가 어느새 전영중의 팔에 감겨있었지만, 성준수는 눈치채지 못한 채 가만히 숨을 고르며 조금 전 마력의 흐름을 복기했다.

저보다 한참 어린 마법소년이 제안한 터무니 없는 방법은 효과가 있었느냐.

"아, 씨발! 아!"

"준수야."

"부르지 마! 좆같은 단말, 안 해! 시팔, 졸업 평가 조지든가 말든가!"

"단말은 네가 먼저 하겠다고 한 거다?"

"그러니까 안 한다고! 때려쳐!"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게 진짜 된다고? 존나 말도 안 되는데? 그러나 제 안에 있던 마력이 숨결을 타고 넘어가는 양은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키스만으로 이 정도 효율이면 섹... 아 시발... 그건?

제 위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성준수를 억지로 끌어안고 있던 전영중이 다시 이름을 불렀다.

"준수."

"안 한다 했다!"

"나는 자존심보다 다음 5년이 걸린 성적이 더 중요해."

놀려먹으려나 싶던 전영중의 태도는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했다.

무작정 거절부터 내뱉던 성준수의 반항이 멎었다. 그래, 이레귤러적인 계약까지 해가며 우리가 제1지구에 와있는 이유. 마법소년 두 명 분량의 코어를 아득바득 모으는 이유는 다 졸업 평가 때문이었다. 그 평가 하나로 5년이 달라지니까. 그것 때문에 너나 나나 이 웃기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거지. 성준수가 짜증스레 앞머리를 움켜쥐다 한숨을 뱉었다. 어쩐지 전영중에게 계속 휘말리기만 하는 것 같은데, 거절하자니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일단 키스만."

"......알았어."

묘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며 성준수는 다시 입을 맞췄다. 따끈한 혀가 제 것과 얽히는 게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으르렁거리며 제1지구로 넘어갔던 두 사람은 반년의 파견을 마쳤올 땐 두 손을 얽어 잡고 제3지구로 돌아오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제1지구 관리자가 매우 만족하며 마력을 추가로 전송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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