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白日夢)
꿈을 꾸었다.
인간이 아닌 조그마한 것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형용할 수 없을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말들이 나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말들은 직접 내뱉은 적도, 바란적도 없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서 였을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진심을 다한 애정어린 말들. 용기내어 곁에 자리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자 귓전에 울리던 말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두목... 두목 일어나!⌟
-
"형사님. 앵보 형사님!"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오만상 인상을 쓰고 고개를 들었다. 앞에 선 신참은 바짝 얼어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하다가 책상에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제대로 된 보고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다 꾸벅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저 신참, 누구 담당이었지. 제대로 교육시켜 놓으라 일러둬야겠다고 생각하며 신경질적으로 보고서를 집어들어 옆에 던져두었다.
잠시였지만 일을 하다 꿈까지 꿀 만큼 잠들다니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3일 철야가 무리긴 했다. 잔뜩 구겨진 이마를 문지르다 짧은 한숨을 뱉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학교에서도 취직을 한 후에도 한 번 듣지 못했던 꿈속에서의 조건 없는 다정함을 기억해냈다. 그건 나의 것이 아니었으며 나를 향한 다정이 아니었다.
나와 닮은 구석 하나 찾을 수 없는 반쪽짜리 범죄자 새끼의 것이었겠지. 녀석을 반쪽이라고 칭하면 자신도 반쪽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목구멍까지 차오른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가진 적도 없는 것을 멋대로 꿈에서 보여주더니 박탈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갈 곳 잃은 감정은 늘 분노의 종착지였던 그에게 향할 뿐이었다.
뒷세계에서 모든 명예를 잃고 평생 떨어지지 않을 범죄자 꼬리표를 달고 있으면서 녀석의 얼굴은 밝았다. 가게의 바닥을 걸레질하거나 기껏 해봐야 설거지 된 잔이나 문질러 닦는 일을 하면서도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존경받는 직장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자신보다 밝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면 배알이 뒤틀리는듯 했다. 모든 걸 잃어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면서 가진 것도 명예도 지위조차 없는데도 그를 따르는 존재들 때문이겠지. 범죄자가 뭐가 좋다고 뒤에 꼭 붙어 따라다니는 그들 때문일 것이다. 어째서 같은 이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너와 나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인가.
짜증 섞인 긴 한숨을 내쉬며 주름 잡힌 미간을 문질렀다. 일하면서도 그 새끼 생각을 해야 한다니. 터져나온 실소는 흉이 진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피로로 버석한 얼굴을 쓸어내린 손으로 책상 위를 뒹굴던 펜을 다시 붙잡았다. 다정함, 애정. 그런 것들은 하등 도움 되는 곳 없이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 것들은 사람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 녀석이 다정함의 울타리에 싸여 멈추어 안주하고 있을 때 나는 보란 듯 더 강해져서 나아가야만 한다. 찰나의 꿈에서 보았던 잊히지 않는 따뜻함을 외면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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