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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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준이 연구실의 문을 열자, 허공이었다.

재빨리 몸의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문턱에 겨우 걸친 뒷꿈치로는 제 체중을 지지하지 못한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팔을 휘적대다가, 결국엔 문턱 아래로 훅 떨어지고 만다. 낙하하는 정수리 위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아, 헉, 뭐, 뭔."

사람이 너무 놀라면 외려 비명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머리 위는 새파랗다. 발 밑은 새카맣다. 길게 늘어진 거대한 그라데이션 안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얼마나 더 떨어져야 바닥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추락하던 몸에 저항이 걸렸다. 속도가 확연히 느려진다. 꼭, 밀도를 알 수 없는 유체에 닿은 듯이.

유준은 그제야 이마 위로 올라간 안경을 고쳐 쓸 여유가 생겼다. 심호흡을 할 틈도 생겼다.

세상이 한순간 반전한다.

머리 위가 새카맣게 어두워진다.

발 밑이 새파랗게 빛난다.

발이 무언가에 닿는다. 설 수 있다. 평범하게 아래로 향하는 중력을 받는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모르는 목소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걸 보니, 허가된 인간인 모양인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역시나 모르는 사람이 유준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하나로 묶어내린 남청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중간중간 새하얗게 바랜 흔적이 있다. 얼굴은 일단, 멀쩡한 인간처럼 보인다. 서른 중반은 되었을 법한 남자의 얼굴이다. 지금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지만.

유준은 말을 고른다. 양 교수의 비밀스러운 연구를 떠올린다.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 남자다. 말 하나 잘못했다간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런 직감이 든다.

"양석민 교수님을 뵈러 왔습니다."

남청색 남자는 날카롭게 생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야 그렇겠지. 저 문을 열고 온 거니."

"여기 안 계십니까?"

"글쎄."

남자는 슬쩍 고개를 돌려 제 주변을 훑었다. 유준의 눈에는, 반전된 그라데이션 외에는 그 무엇도 비치지 않는다. 그는 좀 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걸까.

"그 교수에게 용건이 있나?"

"......네. 동아리 정기 보고를 하러 왔습니다."

"나한테 얘기해. 내가 전해주지."

유준은 그의 모습을 살핀다. 반응을 살핀다. 자신을 그리 경계하거나, 배척하지는 않는다. 위해를 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쪽에 호의적인 거라고 판단해도 될까.

지금까지 겪었던 이런저런 사건들을 되짚는다. 연구실 문을 열었더니 공허. 이런 기이한 상황에서 구태여 이쪽을 공격하려 들지 않는다면야, 무난하게 호의적인 인격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거다.

그래서 유준은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은, 저, 출장 중이신 겁니까?"

남자는 시선을 한 바퀴 굴린다. 왼쪽 아래편에 눈동자를 멈춘다. 이 초 정도의 간극을 두고 나서, 남자는 대답했다.

"요양 중이다."

"......요양이요?"

"상태가 좀 안 좋아."

조금 긴장한 자신을 자각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않고 있으니, 남자는 미간을 다소 좁히며 유준을 노려본다.

"동아리 보고, 할 게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예. 옙."

지금은 여름의 끝물. 이런 괴상한 공간 안에 있어 잘 인식은 되지 않지만, 아무튼 여름방학이 마무리되는 시기다. 얼마 전 석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름이 아니라, 유준이 부장을 맡고 있는 민속학 연구 동아리의 방학 중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구두로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방학 중이니 크게 한 활동은 없지만 그래도 아주 활동을 하지 않은 건 아니라, 오 분 안으로 브리핑을 마치고 돌아갈 요량으로 석민의 연구실 문을 열었었다.

문제는 연구실 문 너머에 연구실이 아닌 공허가 있었다는 거지만.

유준은 삼 분 만에 브리핑을 마쳤다. 미지의 남자는 짤막한 활동 내역을 듣다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애들 장난이군."

실제로 그러했다. 유준도 동의하는 바다.

"끝났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돌려보내주지, 라는 말이 나와야만 했던 흐름이다.

하지만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새파란 두 눈으로 유준을 응시한다. 

시퍼렇게 타오르는 화염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 유준은 문득 떠올린다. 

어째서 이런 연상을 한 걸까.

"너......"

남자가 느릿하게 중얼거린다.

"아주 태연하네. 이런 상황에서."

유준은 무심코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허가된 사람이지 않습니까. 저."

배에 힘을 주고 대답한다. 긴장한 티가 나지 않도록.

그러니 남자는 노력이 가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조심해라."

"네?"

"최근 이 주변의 동향이 좋지가 않아."

"무슨 뜻이신지."

"가면을 쓴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가면이요?"

유준의 의식은 그곳에서 끊겼다.

동네 검도 도장의 연령대는 제법 다양하다. 단순 체력 향상 및 교우 관계를 위해 죽도를 휘두르는 초등학생부터, 진지하게 무술을 수련하는 청년층, 대련에 얼굴을 자주 비치진 않지만 실력을 무시할 수 없는 장노년층까지.

독고유진은 어느 곳에 속해있느냐 하면, 아무래도 장년층에 가까울 것이었다. 애초에 도장에 자주 발을 들이지않는다. 대련을 자주 하지도 않는다. 도장 회비는 매년 초에 일괄로 내고 잊어버리는 수준이다.

하지만 오늘은 점심을 먹고 느지막히 도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일과의 루틴이 비슷한 건지, 도장에 올 때마다 보이는 스물 몇 살의 남자애가 유진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양 손에 들린 죽도도 덩달아 힘차게 흔들린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형, 오랜만이네요."

형이라고 불릴 나이는 객관적으로 아닌 것 같지만 이 친구는 유진을 언제나 형이라고 불렀다.

"관장님은?"

"오늘은 아직 안 나오셨어요."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부재중인 걸 보니 오늘은 초등부의 수업이 없는 모양이다. 적당히 몸을 풀고 호구를 쓰고 있으니, 별안간 코앞에 검날이 들어왔다. 위험한 동작이다. 관장이 있었다면 한소리 들었을 법하다.

"대련해주실 거죠?"

그는 언제나 검을 두 자루 잡았다. 일도가 우세인 한국에서는 드문 검법이다.

오른손에 대도를 들고, 왼손에는 소도를 든다. 검이 두 자루이니만큼 공격도 방어도 다채롭다. 상대가 멀리 있으면 대도로 공격하고, 가까이 있으면 소도로 공격한다. 변화무쌍한 공방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유진에게 있어 좋은 대련 상대였다.

신화의 존재들은 공격을 비단 한 방향으로만 하지 않기에.

"전 형이랑 하는 대련이 좋아요."

"왜?"

간만에 착용한 호구는 무거웠다. 실전에서는 이런 걸 쓰지 않으니 당연한 체감이다.

"형은, 뭐랄까. 진짜로 사람을 벨 것처럼 대련하잖아요."

"검도는 원래 사람을 베는 무술인데."

"에이, 죽도로 사람이 베여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형은 꼭 진검을 들고 있는 것 같다니깐요."

준비 태세를 갖췄다. 두 손으로 때 탄 목검을 쥔다. 동시에 오른발을 한 발짝 앞으로 한다. 상대는 두 자루의 검을 머리 위로 들고 있다. 게가 집게발을 올린 듯한 모습이다.

"아, 형한테 해 드릴 얘기가 있었는데."

"뭔데?"

언제나의 패턴이다. 대련 전에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건네다가, 느닷없이 공격을 시작하곤 했다. 동네 도장에서나 먹힐 법한 전략이지만 유진은 썩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주에 오락실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사람이 쓰러진 거 있죠."

"사람이?"

"그거, 그거 있잖아요. 그 게임."

"무슨 게임?"

대도가 날아들었다. 어깨를 노린 타격이다. 재빠르게 검을 눕혀 받아낸다. 비어버린 오른쪽을 소도가 파고든다. 대도를 붙잡아두고 있던 검을 물린다. 왼쪽으로 몸을 돌린다. 회전 시의 하중은 발목이 오롯이 받아낸다. 이 나이가 되면, 삐지 않도록 관절을 움직이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상대의 호면 안에서 히힛,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가 났다.

"그거요, 그거. 음악에 맞춰서 버튼을 연타하는 게임."

뭔지 잘 모르겠다.

유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락실을 마지막으로 가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걸 막 하다가 소리를 악 지르면서 쓰러지는 거 있죠."

말도 채 끝내지 않고 달려든다. 민첩한 움직임이다. 처음으로 휘두른 건 대도. 무난하게 막아내니 연달아 공격해오는 소도. 목검 세 자루가 쉴새없이 부딪힌다. 동시에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온다. 유진은 적당히 뒷걸음질치다가,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자리에서 빠져나온다. 키가 작으면 도망에 유리하다는 이점도 있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검을 휘두른다.

검날이 호면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머리!"

"아우, 진짜 왜 이렇게 빨라."

투덜거리면서도 제대로 다음 판의 준비를 한다. 죽도를 잡고 손목을 빙빙 돌린다. 평범하게 위험한 행동이다. 아직도 관장이 오질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러져서 어떻게 됐는데?"

"뭘 어떻게 돼요. 주변 사람들이 119 불렀죠."

"실려갔어?"

"실려갔죠."

"음, 게임을 얼마나 열심히 했길래 쓰러진대."

대답도 듣지 않고 상대는 다시 달려들었다.

결과는 유진의 3판 3승이었다.

유진에게는 일종의 촉이 존재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이, 이계와 관련된 현상인지,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사실, 촉이라기보단 직감에 가깝다. 수많은 괴이 사건을 거쳐오면서 길러진 예감이다.

그래서 유진은 문제의 오락실로 향했다. 천안역 지하상가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 오락실은, 실은 유진도 익히 알고 있는 곳이었다. 유진이 대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영업을 했던, 오래된 오락실이다.

커다랗고 노란 간판을 지나 오락실 안으로 들어간다. 빽빽하게 들어선 게임기들 탓에 오락실 안은 조금 좁은 감이 있다. 정작, 게임기를 차지하고 있는 손님은 겨우 두 명뿐이지만. 평일 낮이니 당연한가. 여기까지 오며 거쳐왔던 지하상가에도 손님은 많지 않았다. 물론, 대학생 때와 비교해 상가에 공실이 많기도 했다.

'음악에 맞춰서 버튼을 연타하는 게임'이 뭘지 잠시 고민했다. 두더지 잡기 같은 걸까.

어영부영 오락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막 테트리스를 마치고 일어서던 손님 한 명이 유진을 이상한 눈치로 쳐다보곤 자리를 떴다.

돌연 기름칠이 되지 않은 경첩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무심코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린다. 매장 한쪽의 카운터에서 사장으로 추측되는 노인이 터벅터벅 걸어나오고 있었다. 유진과 시선이 마주치니,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를 쓱 휘어보인다.

"뭐 찾으시는 거 있어?"

동전교환기라면 저쪽에 있어, 하며 문가를 손으로 가리킨다.

"저, 음악에 맞춰서 버튼을 연타하는 게임을 찾고 있습니다."

"으응? 아아..."

동전교환기를 가리키던 손이 그대로 방향을 바꾼다. 백 이십 도 정도를 회전해서 가리킨 것은, 마지막 남은 손님이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기.

"저걸 말하시는 건가?"

확실히 무언가 버튼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고 있긴 하다. 빠른 비트의 음악은 덤이다.

"저거 말이지, 보기보다 체력 소모가 심해."

그리 말하곤 노인은 유진을 곁눈질했다.

"그래도 청년은 체력이 좋을 것 같구만."

"하하..."

"일전에는 말이야, 누가 저걸 하다가 픽 쓰러졌어."

유진은 무심코 숨을 들이킨다.

"무서운 게임이네요."

"암. 다들 최고 기록을 경신하겠다고,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두드리니깐 말이지. 근경련이 왔던 모양이야."

손님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버튼을 가볍게 툭툭 두드린다. 아무래도 게임이 끝난 듯하다.

"한 판에 오백원이니깐, 동전 없으면 교환해."

마지막 손님마저 오락실을 나섰다. 그동안 새로 들어온 손님은 유진이 유일하다. 노인은 이젠 무인 운영 시간이라며 슬쩍 웃다가, 덩달아 오락실을 뒤로 했다.

운이 좋게도 지갑 안에 오백원이 딱 하나 있었다. 유진은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게임기에게 동전을 하나 먹인다. 데모 플레이 영상이 흘러가던 화면이 순간 반짝였다.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1P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설명 하나 없이 곡 선택 창이 나타났다.

쓰러졌다던 남자는 무슨 곡을 플레이했던 걸까.

레버를 슬슬 돌리며 곡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소싯적에 몇 번 해 보았던 발로 뛰는 음악 게임보다는, 곡이 훨씬 많다. 하지만 아는 곡은 단 하나도 없다. 가요는 커녕, 가사가 있는 곡 자체가 얼마 없다.

알지 못하는 곡의 이름을 하나하나 넘기며, 익숙하지 않은 앨범 아트를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렇게 곡 리스트를 7할 정도 훑었을 때였다.

미묘한 느낌의 앨범 아트가, 위아래로 죽 늘어선 곡 이름 오른편에 떠올랐다.

3D 모델링으로 만든 단순한 형태의 꽃이 커다랗게 찍혀 있다.

이쪽을 보고 웃고 있는 꽃.

플레이 전 샘플로 흘러나오는 곡조도 발랄하니, 꼭 동요를 연상케 한다.

곡의 이름은, 『카르코사의 꿈』.

유진은 홀린 듯이 카르코사의 꿈을 선택한다. 본격적인 게임 화면으로 전환된다.

가지런히 늘어선 일곱 개의 레인. 하지만 기판에 있는 버튼은 다섯 개 뿐인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짧은 전주가 끝나고, 노트가 박자에 맞춰 레인을 타고 내려온다. 레인 최하단의 판정선에 맞추어 버튼을 누르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게임의 방법을 알아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은 두 레인의 버튼은 찾지 못했지만.

레인 오른편에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로 추정되는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온다.

앨범 아트의 꽃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천천히 양 옆으로 꽃받침을 흔들어댄다. 동요 풍의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처럼도 보인다.

노트가 내려오는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이지 모드를 선택했던 건가.

꽃은 웃고 있다. 보편적인 스마일 심볼과 닮은 미소다.

웃고 있다.

이쪽을 바라본다.

순간, 등줄기가 오싹했던 그 순간.

꽃은 입꼬리를 훅 내렸다.

까만 점에 불과했던 두 눈이 인간의 눈으로 바뀐다.

불쾌한 조형이다.

화면이 새빨갛게 점등한다.

누군가의 비명.

게임기 안에서 들린 것이 확실한 비명.

새빨갛게 점등한다.

꽃은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그 대신에, 새빨갛게 물든 화면에 비춰진 것은.

이건......

징표......?

세 갈래로 갈라진......

느리게 돈다. 

회전한다.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몰라도.

수리검의 칼날처럼......

회전한다.

노란 징표. 노랗게 물든 화면.

모니터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회전하는 날에 얼굴이 가까워진다.

닿으면,

분명,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배가 무언가에 눌린 기분이 들었다.

무심코 내려다본다.

다섯 개의 버튼이 있는 기판이 배에 파고들었다.

두 손은 기판 위를 짚고 있다.

뒤꿈치는 들어올렸다.

열 개의 발가락이 체중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니까......

모니터가 이쪽으로 다가온 게 아니라......

내가 모니터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고......

모니터는 이미 게임 오버 화면을 송출하고 있다.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아니, 꽃이 웃음을 멈춘 순간부터 애니메이션에만 집중했으니까. 게임 오버는 아마 그 직후에 이루어졌을 텐데.

그렇다면 그 징표는......?

유진은 주춤주춤 게임기에서 물러난다.

아직, 새로운 손님은 방문하지 않았다.

어쩌면, 유진의 기행을 보고 발을 돌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졌다......

확실히, 그럴법하다.

유진은 그 길로 자신의 모교를 찾았다.

석민은 부재중이었다.

"그저께도 교수님이 안 계셨다고요?"

"응. 문이 잠겨있던데. 연구실 팻말 보니까 출장 중이신 것 같았어."

오늘의 유준은 특이하게도 동아리방의 소파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유진이 들어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아주 푹 잠든 채였다. 유진은 잠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괴이 사건은 하루빨리 해결하는 편이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볍게 어깨를 흔드니 유준은 그제야 비몽사몽한 얼굴로 눈을 떴다. 유진의 얼굴을 확인하고 아주 조금 미간을 찌푸린 것도 같았다.

"안 그래도 저, 동아리 보고드릴 게 있어서. 방금 교수님 뵈러 다녀왔는데요."

"안 계셨어?"

이번에는 확실하게 미간을 좁혔다.

연구실의 문을 여니 나타난 것은 연구실이 아닌 수상한 공허.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다가, 어떤 남자를 만났다. 남청색의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애매한 나잇대의 남자였다. 그는 교수의 지인이라도 되는지, 지금은 상태가 좋지 않은 교수를 대신해 너의 보고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누군지 아세요?"

유준이 그리 물었다. 유진이라고 양 교수의 지인에 대해 크게 아는 건 없어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기나 한다.

그러자 유준은 짧게 한숨을 뱉다가, 뒤이어 남자의 전언을 전했다.

"가면을 쓴 사람을 만나지 말도록, 이라고 했어요. 그게 마지막 기억이에요."

그리고 눈을 뜨니 눈앞에 선배의 얼굴이 있었다, 란다. 유준의 말마따나, '방금' 있었던 일임은 확실해 보였다.

"......교수님, 어디 많이 안 좋으신가?"

인간의 육체에 병이 들었다면 병원에 가면 될 일이다. 이계의 물품을 사용해 '회복'하는 수도 있다. 물론, 유진은 교수와 교류가 있은 이래 그가 병원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치료'보다는 '회복'에 주안점을 두셨던 거겠지. 교수님은.

하지만 지금, 교수님은 몸을 감췄다.

이계로 사라졌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유진은 솔직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감은 잡을 수 있다.

이른 바 촉인 것이다.

교수님에게 이계와 관련된 트러블이 일어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현세에서 사라졌다고...

"나도 연구실에 다녀올게."

어느새 휴대전화를 꺼내 잡다한 알림을 확인하고 있던 유준이 시선을 들었다.

굳은 얼굴의 유진을 잠시 쳐다보다가, 묘한 얼굴로 피식 웃고야 만다.

"다녀오세요. 선배라면 뭔가 더 알 수 있는 게 있겠죠."

교수님의 첫 번째 제자니까.

유진은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동아리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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