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KPota
소나무는 운전석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차창을 때리는 소낙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통행량이 드문 국도 한켠의 오솔길에 소나무의 자가용은 서 있었다. 차를 세운 이십 분 전부터 지금까지 그의 곁을 지난 차는 한 대도 없다. 차의 시동은 꺼졌다. 이동 중 켰던 에어컨의 찬기는 아직 남아있다. 조금 서늘한 정도의 한기가 반팔 셔츠 밖으로 드러난
밖에서만 잠글 수 있는 방. 그 안에 사람이 주말 간 갇혀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외부에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그저 풀 수 없는 지혜의 고리를 쉴 새 없이 만지작대며 과방 안에 덩그러니 존재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어떤 의도로 그를 가둔 것일까? 범인은 그에게 억하심정이 있어 죽일 생각으로 가두었던 것일까? 아니, 설령 이
유준이 고민에 빠진 사이 후배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두 엄지손가락을 액정 위에서 빠르게도 움직인다. 누군가와 메시지를 하는 모양새다. 오 분 여가 지나서야, 그녀는 액정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맞은 편의 선배를 향한다. 다크서클이 깊은 선배는 그녀 조금 위의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당연히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
선배를 기다려 볼 요량으로 소파에 다시 누웠다. 끝물이긴 하지만 아직 방학은 방학이니 강의는 없다. 동기들과 정기적으로 하던 잡다한 스터디도 오늘은 예정이 없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될까, 하고 유준은 생각했다. 그 기묘한 공간 안에서의 시간의 흐름과,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시간의 흐름은 그리 다르지 않은 듯 보였으니까. 유준이 구두 보고를
윤유준이 연구실의 문을 열자, 허공이었다. 재빨리 몸의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문턱에 겨우 걸친 뒷꿈치로는 제 체중을 지지하지 못한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팔을 휘적대다가, 결국엔 문턱 아래로 훅 떨어지고 만다. 낙하하는 정수리 위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아, 헉, 뭐, 뭔." 사람이 너무 놀라면 외려 비명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머리 위는
“별 거 아닌 이야기입니다. 사쿠야 씨도 신령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인간에게는 각자의 혼이 존재하므로, 아무리 신이라 해도 허투루 몸에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그저 우러러보는 신이 그러한데, 감히 한낱 잡귀가 살아있는 인간의 육체를 탐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손님 하나 없는 가게 안은 고요하다. 기계 하나 돌아가는 소리 들리
그 재단사의 가게는 매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동네에 있었다. 봄이 되어 꽃이 피는 건 자연의 순리. 그 중에서도 매화는 유달리 꽃망울을 피우는 시기가 일러서, 삼 월이 거진 지난 지금에는 이미 목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나 있었다. 다음 주만 되면 분명 매화의 시신을 거름으로 벚꽃이 풍성하게 피어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벚꽃은 무섭게도 아름다운 이유
눈을 뜨니 코앞에 은사의 얼굴이 있었다. 유진은 한순간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고민하다가, 제가 아직 교수님이랑 침소를 같이 하고 있던가 반추했다. 물론 그런 사실은 없다. 교수님과의 동침은 한 달 전에 끝났다. 지금 유진이 편안하게 몸을 누이고 있는 곳은 그의 자택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석민은 두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살기 어린 무표정으로 유진을 내
유진은 안대를 쓰고 가라앉아 있었다. 뜨뜻미지근한 욕조물이 미량의 수증기를 내뿜는다. 약재를 달인 듯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물색은 보랏빛인 것이 어딘가 언밸런스하다. 약재란 본래 자연에서 채취하는 것인데, 자연계에서 보랏빛은 드문 색상이 아닌가. 분명 평범한 재료를 사용한 물은 아니리라. 유준은 반라의 유진을 내려다본다. 그를 따라 욕실로 들어온 고양이
"니는 원래 여자아이여야 했다. 그게 잘못되어서 천지신명님이 노하신 게지. 쯔쯔, 어짤꼬......" "꿈에 귀신이 나왔다고 애가 질질 울었다꼬? 에잉, 남자애 몸에 음기가 철철 흐르니 잡귀들이 꼬일만도 하지." "태생부터 비틀렸으니 누름굿으로 처치할만한 녀석이 아닌 기라. 그런 걸 해 봤자 임시방편이라꼬." "신내림을 언제 쯤 받아야 쓰겄나? 고등학교 안